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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8화
PAYLUA ORIGINAL · 제58화

58화. 잊지 않은 하루의 시작가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456자

오프라인 책장
그날 정오가 가까워지자 화령의 하늘에 먼지가 일었다. 서쪽 건조 지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뜨겁고 거칠었다. 회랑의 금빛 장식은 먼지 아래 흐릿해졌고, 상점 주인들은 천으로 진열장을 덮었다. 매일 정오에 맞춰 울리는 큰 종은 여전히 제시간에 울리지 않았다. 대신 여러 작은 종이 먼저 울리거나 늦게 울렸다. 사람들은 시계를 고쳐 보았고, 어떤 이는 천장 장치를 수리하라는 항의문을 붙였다. 서진혁은 여관방에서 조그만 입장권을 내려다봤다. 뒷면에는 열기에 드러나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대기번호 31. 다음 정오 전까지 기억의 대가를 제출하라.’ 그것은 단순한 경고이기도 했고, 누군가가 지정한 시간표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제출하지 않는 방법은 없나요?” 카렌이 물었다. “분명 있겠죠. 계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어요?” “놈들이 그 정도로 허술할지 모르니까요.” 라일은 창가에 매달린 종을 만지작거렸다. 전날 소연의 손을 본 뒤로 말수가 줄었다. 이름을 되찾을 가능성이 가까워졌지만, 그 이름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확인할 길은 아직 멀었다. 소연의 증언, 조합의 결손 장부, 도르의 나침반은 같은 방향을 가리켰지만 그 어느 하나도 완전한 증거는 아니었다. 윤담이 아침에 가져온 소식은 더 불길했다. 칠성 경매원의 특별 출품회가 중단된 뒤, 황금거래연합은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일부 귀빈에게는 ‘제0호의 자리 심사’라는 비공개 집회 초대장이 전달되고 있었다. 참석 조건에는 특이한 문장이 있었다. ‘기억의 증빙을 제출할 수 있는 자. 접수된 증빙은 심사 후 반환할 수 있음.’ 반환할 수 있다는 말은 반환을 보장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카렌은 그 문구 아래에 줄을 그었다. 누군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나 가장 슬픈 날을 적어 내고 돌려받지 못해도, 주최 측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여관 아래층 식당에서는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회상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잃어버린 동생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기억 하나쯤 내놓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그럴수록 조심해야 한다고 대꾸했다. 화령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렸다. 진혁은 그들이 바보라서 속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가족에게 한 번만 더 인사하고 싶다는 마음은 계약서의 작은 글씨보다 절실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위험한 상품일수록 더 정확한 설명과 거절할 시간을 보장해야 했다. 억지로 호소하는 사람을 나무라는 대신, 그를 유혹하는 사람이 어떤 정보를 감췄는지 밝혀야 했다. “저 사람들을 막아야 해요.” 진혁이 말했다. “막을 수 있는 건 불법 행위예요.” 카렌이 대답했다. “경고하고 증거를 모을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의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화령 당국에 공식 조사를 요청해야죠.” 그들은 전날 회상판 사건의 자료를 들고 화령 도시감찰소를 찾았다. 감찰소는 회랑 서쪽의 오래된 법원 건물 안에 있었다. 건물 입구는 넓었지만 내부는 어둡고 조용했다. 벽마다 거울 대신 무광택 돌판이 붙어 있었다. 직원들은 종이 낭비를 막기 위해 작은 글씨로 기록했고, 창구마다 확인 도장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감찰관 유진은 서류를 보고 오래 침묵했다. 그는 한쪽 안경을 들고 회상판 작동 기록과 벽의 수정 기둥 위치를 비교했다. 외부 검사인 카렌이 증언한 내용과 윤담의 내부 보고서가 서로 다른 기관에서 작성되어 있다는 점이 증거의 신뢰도를 높였다. “집회 금지는 법원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유진이 말했다. “하지만 불명확한 출품권과 동의서의 효력은 조사할 수 있어요. 특히 도시 공인 경매원의 이름을 빌려 비공개 거래를 했다면 허가 조건 위반입니다.” “심사까지 얼마나 걸리죠?” “긴급 심사는 오늘 오후에 들어갑니다. 그 전까지는 피해자의 새 서명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내문을 낼 수 있어요.” 진혁은 방금까지 느꼈던 초조함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적을 잡는 장면이 화려할 필요는 없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근거로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시간을 만드는 일도 중요했다. 긴급 심사에 제출할 자료를 준비하던 사이, 감찰관 유진은 한 장의 종이를 따로 꺼냈다. 화령에서는 입찰권과 보증금 계좌를 연동할 때 본인 확인을 위해 은표 번호를 함께 기록한다고 했다. 일반 관람권에는 그 번호를 넣지 않는다. 그런데 진혁이 가져온 열 감지 입장권 뒷면에는 누군가 관람객용 등록 번호 대신 후보자 번호를 덧씌웠다. “이건 정식 거래 장부에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유진이 말했다. “사적으로 만든 번호를 공인 경매권처럼 보이게 했어요.” 윤담은 창밖으로 보이는 경매원 간판을 바라봤다. “행사팀의 허가권을 누가 넘겨받았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기술 장치도, 입장권도 경매원의 것이지만 문구를 정한 사람은 다른 조직일 수 있어요.” 진혁은 여태 자신을 쫓아다니던 제31후보라는 표현에 새삼 이상함을 느꼈다. 숫자는 이름보다 쉽게 바꿀 수 있었다. 누군가가 번호만 붙여 놓으면 서류를 볼 때마다 같은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숫자가 자신의 정체나 운명을 결정하지는 못했다. 그는 아벨에게서 배운 대로 수첩을 두 칸으로 나눴다. 확인한 사실에는 ‘제31후보 표기 반복, 입장권 열 감지 잉크, 경매원 입찰권과 다른 양식’이라고 적었다. 확인하지 못한 주장에는 ‘제0호의 후계자, 기억 이전 권리, 종탑 고장 원인’이라고 적었다. “아직 모르는 칸이 더 많네요.” 그가 말했다. “그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카렌이 답했다. “모르는 걸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큰 사고를 내니까요.” 그러나 오후 첫 시각, 상황이 변했다. 감찰소 입구에서 종이 한 번 울렸고, 안내원이 얼굴이 창백한 채 달려왔다. “황금거래연합에서 공식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제31후보가 화령에 들어오면서 도시의 시간 장치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진혁은 말문이 막혔다. “제가요?” 윤담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터무니없습니다. 종이 고장 난 건 당신이 도착하기 전부터…” “잠깐.” 유진이 말을 끊었다. “그들의 주장과 실제 원인은 별개입니다.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 혐의로 방문객을 구금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소문은 법원보다 빨랐다. 점심 무렵 시장 상인들은 진혁을 흘끗거리기 시작했고, 숙소 주인은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밤에는 창문을 닫으라고 했다. 화령의 시간 장치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었다. 도시의 상업 거래가 정오의 종을 기준으로 정산되었기 때문에 종이 잘못 울리면 낙찰 시간과 거래 마감 시각이 흔들렸다. 지연된 금액이 쌓이면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 했다. 그날 저녁, 진혁은 윤담과 함께 종탑을 직접 보러 갔다. 두 사람은 감찰관의 입회 아래 기술자들이 작성한 고장 보고서를 열람했다. 종탑은 경매원과 환전소 사이의 높은 다리 위에 있었고, 여러 줄의 톱니바퀴가 도시 시계를 연결했다. 긴 쇠막대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아래의 교환소 전광판이 같은 분 단위로 바뀌었다. “기계적으로 고장 난 겁니까?” 진혁이 물었다. 기술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톱니가 닳은 건 아니에요. 제시간에 움직이는데 종을 내리는 집게만 의도적으로 늦춰진 것 같습니다. 누가 그랬는지는 아직 모르고요.” 윤담은 종탑의 출입 기록을 확인했다. 전날 밤 마지막으로 내부에 들어간 사람은 황금거래연합의 시계 검사원이었다. 그러나 그 검사원이 직접 조작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진혁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기계에 닿아 과거를 보고 싶은 충동이 강했다. 손바닥의 문장이 뜨거워졌지만,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제 이름으로 저 종을 고장 냈다는 계약을 만들려는 게 아닐까요?” 윤담은 짧게 웃었다. “상상력이 풍부하시군요.” “요즘은 상상보다 못한 계약서도 많이 봤습니다.” 종탑의 계단은 좁았다. 사람들이 어깨를 돌리지 않으면 서로 지나갈 수 없었고, 아래쪽에서는 수레 바퀴가 돌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틈새를 타고 올라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기계실의 톱니바퀴는 사람 키만 한 크기였다. 느리고 꾸준히 움직이는 쇳덩이는 사람에게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진혁은 대장장이의 작업과 종탑 기술자의 일을 비교했다. 바퀴는 정확한 간격으로 물려 있어야 했고, 하나라도 잘못 움직이면 전체가 늦춰졌다. 그들에게 이곳은 숭배해야 할 마법탑이 아니라 유지비가 들고 고장도 나는 일터였다. 기술자 한 명은 기름때 묻은 천을 어깨에 걸고 새벽부터 교대 근무를 한다고 했다. “가끔은 종이 왜 제때 안 울리냐며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어요.” 기술자가 말했다. “우리가 일부러 늦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대부분은 바람에 마른 가루가 끼거나 축이 비틀려서 그래요. 이상이 있을 때마다 사고일지에 남깁니다.” 그가 펼친 사고일지에는 지난 세 달 동안의 고장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윤담은 그중 특정 날짜에만 같은 손글씨로 조작 확인 서명이 남은 것을 발견했다. 서명자는 최근 황금거래연합에서 파견한 검사원이었다. 진혁은 곧장 범인이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서명을 한 사람이 실제로 검사만 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도장을 훔쳤을 수도 있었다. 기술자는 그 서명들이 공인 검사원의 접근 권한을 뜻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세 사람은 출입문이 닫히는 시각과 금속 쐐기 검사 기록을 따로 확보하기로 했다. 기계실에서 내려오는 동안 진혁의 손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게 오늘 그가 지키기로 한 원칙이었다. 기술자는 두 사람을 옆방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고장 전후의 움직임을 종이에 찍어 낸 기록기가 있었다. 시계의 정확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종을 내리는 집게만 정오 직전에 멈췄다는 패턴이 반복됐다. 누군가 하나의 장치를 고의로 멈추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기다리던 남자가 진혁 앞을 막았다. 지난번 황금거래연합의 회색 장갑 사자였다. 그는 이번에는 빈손으로 왔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려면 오늘 밤 심사에 참석해 주세요.” “참석하면 기억을 달라고 하실 겁니까?” “그렇게까지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물건의 가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죠.” “제 기억의 가치를 누가 정합니까?” 사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걸 정할 자리가 비어 있어요. 당신이 그 자리에 앉으면 됩니다.” 진혁은 사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뜻밖에 남자는 초조해 보였다. 진혁이 거절하면 계획이 무너질 사람처럼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저는 남의 기억에 가격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그럼 당신이 가장 지키고 싶은 사람의 이름이 대신 오를 수도 있습니다.” 사자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진혁이 뒤따라가려 하자 카렌이 멀리서 달려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상대방의 협박을 증언할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날 밤이 오기 전, 진혁은 화령 감찰소에 문서 한 장을 추가로 제출했다. ‘제31후보의 명의로 어떠한 기억·신원·타인의 권리도 매각하거나 담보 설정하도록 허락한 사실이 없음.’ 종이 끝에는 그의 서명이 또렷했다. 수상한 심사에 참석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기 의사를 먼저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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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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