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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5화
PAYLUA ORIGINAL · 제55화

55화. 울리지 않은 망치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460자

오프라인 책장
특별 출품회가 열리는 날, 칠성 경매원 앞에는 전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마차가 늘어서 있었다. 바퀴마다 출입 허가를 뜻하는 황금 테가 둘러져 있었고, 귀족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작은 깃발들이 서로의 색을 뽐냈다. 정문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한 사람들 사이로 향수와 말 땀 냄새가 섞였다. 경매원 앞마당에서는 막 구운 빵과 뜨거운 약차를 팔았다. 멀리서 보면 귀한 손님을 맞는 축제였지만, 문 앞의 경비들은 손님보다 출입증을 훨씬 오래 살폈다. 서진혁은 신분증을 한 번 더 꺼냈다. 루멘 수석 감정사 대행. 화령 공인 감정사 등록을 마친 외지인. 두 가지 문서가 모두 있어도 특별 출품회는 별도의 초대가 필요했다. 회색 장갑의 사자가 건넨 금빛 봉투는 어젯밤 아벨의 소개로 찾아간 현지 공증사에게 보여 주고 사본만 떠 놓았다. 원본에는 아직 누구의 서명도 없었다. “기억을 입장료로 내라는 계약이면 안 들어가면 되잖습니까.” 카렌이 말했다. “그럼 안에서 뭘 파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게 유혹의 기본 구조예요. 궁금하다는 이유로 불리한 계약에 서명하게 만드는 거죠.” 라일은 옆에서 탐탁지 않은 얼굴로 문을 바라봤다. “무슨 경매장이 손님의 기억을 받아요? 돈을 받지. 기억을 받으려면 값어치를 세어야 하는데, 그건 도둑인 저도 어렵습니다.” 진혁은 동의했다. 하지만 도시 중심의 거대한 회랑 아래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특별 출품회가 공공 행사로 등록되어 있다면, 초대장을 가진 사람만 비밀리에 들어가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 결국 세 사람은 일반 참관자 등록 창구로 향했다. 창구에는 출품회 공개 열람권과 사전 감정 참관권이 따로 있었다. 공개 열람권은 화령 시민에게 은표 다섯 장, 외지인에게는 두 배였다. 진혁은 값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기억 하나보다 은표 열 장이 싼 거죠?” “그걸 비교하고 있어요?” 카렌이 기가 막힌 듯 웃었다. “물건의 원가를 아는 습관이 있어서요.” 사람의 기억에 가격을 붙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진혁은 결국 가장 평범한 입장료를 냈다. 영수증에는 ‘관람 권한만 인정, 입찰·정보 전송 권한 없음’이라고 명확히 인쇄되어 있었다. 종이 끝에 서명하고 들어서자 저녁처럼 어두운 로비가 나왔다. 칠성 경매원의 중심 원형홀에는 계단식 좌석이 일곱 겹으로 둘러져 있었다. 천장에는 큰 구리 원판이 매달렸고, 그 위에 난 작은 창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경매대 바닥에는 반경 일곱 보의 원이 그려져 있었다. 경매사가 망치를 내리치면 원 안쪽의 유물 보호막이 잠시 풀리고, 거래가 성립되면 다시 닫히는 구조였다. “좋은 장치네요.” 진혁이 말했다. “비싼 장치지.” 윤담이 뒤에서 대답했다. 윤담은 오늘 정식 감정복 위에 검은 외투를 걸쳤다. 외투 안주머니에는 어제 보여 준 제30후보 초대장의 사본이 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곤했다. 특별 출품회가 시작되기 전 감정팀 내부에서 전시품 일부의 출처를 문제 삼았으나 윗선이 행사를 그대로 진행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주최 측 명의는 칠성 경매원인데, 실제 출품 계약을 관리하는 곳은 따로 있더군요.” “어디요?” 카렌이 물었다. “화령 황금거래연합. 대부분의 공방과 자금 창고에 투자하는 조직입니다.” “혹시 오래된 사자 인장을 씁니까?” 윤담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는 종이 한 장을 펴 보였다. 윗부분에는 금박 사자 문양,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자료 제공자의 자격과 출처는 별도 검증’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인장이라면 이번 출품회를 주최한 위원장의 개인 창고에서 찍은 겁니다. 제가 아는 건 거기까지예요.” 잠시 뒤 홀 가운데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흰 장갑을 낀 경매사가 무대에 섰다. 그는 먼저 정해진 규칙을 낭독했다. 공개 출품물의 예상가와 소유권 상태를 소개하고, 입찰자가 손을 들면 경매 망치가 세 번 울리기 전에 보증금을 예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반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절차였다. 객석의 좌석 배치는 사람들의 권리를 구분해 놓은 지도 같았다. 앞쪽은 보증금을 많이 예치한 구매자, 중간은 입찰 가능한 소규모 상인, 뒤쪽은 일반 참관인이 앉았다. 신분이 돈의 크기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작은 공방의 장인도 지정된 보증금만 내면 앞자리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고, 높은 귀족도 참관권만 있으면 뒤편에 앉아야 했다. 다만 현실에서는 높은 보증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유리했다. 진혁은 경매사의 말끝을 주의 깊게 들었다. 물건의 이름, 출처, 보관 상태, 알려진 결함을 소개한 뒤 경매사는 시작가를 불렀다. 한 사람이 입찰하면 다음 사람이 올리고, 세 번의 호명이 끝나야 낙찰됐다. 경매장 직원은 각 입찰자의 패찰 번호를 적었다. 누가 얼마를 부른 것인지 기록되지 않으면 나중에 돈만이 아니라 분쟁까지 오가기 때문이었다. 첫째 줄의 노부인이 손을 들어 작은 유물을 사는 순간, 맞은편의 젊은 귀족이 낙찰가를 비웃었다. 그러나 윤담은 아무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감정사가 예상가를 제시하는 일과 수집가가 기꺼이 지불하는 금액은 서로 달랐다. 진혁은 그 차이에 흥미를 느꼈다. 이곳에서 그는 아직 보지 못한 경매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사고 싶어지지 않아요?” 라일이 속삭였다. “무척요.” “돈은?” “없죠.” “놀랍게 건강한 상태군요.” 진혁이 씁쓸하게 웃었다. 가진 돈이 적다는 현실이 그의 욕심을 억제하고 있었다. 덕분에 조금 더 차분하게 모든 입찰을 기록할 수 있었다. 첫 물품은 고대 수로에서 발견된 청동 관이었다. 세공 장식에 물고기 세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별다른 마법이 없는 장식품으로 알려졌지만, 화령 수집가에게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이었다. 사람들은 가격을 올렸다. 진혁은 감정 결과와 실제 낙찰가를 수첩에 적었다. 수집가의 열망은 감정사의 예상보다 높았고, 윤담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재질이 아니라 같은 시대의 다른 작품과 한 쌍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째 물품은 던전에서 회수된 금속 손잡이였다. 윤담이 작성한 감정서에는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잠금 장치의 응급 해제부’라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진혁은 거기서 윤담의 꼼꼼함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과 좋은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별개였다. 진혁은 입찰 번호가 올라갈 때마다 얇은 연필로 숫자를 옮겨 적었다. 입찰자는 대개 눈짓과 작은 손동작으로 가격을 올렸다. 경매사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하나의 목소리로 모든 숫자를 읽었다. 공개 경쟁의 공정함은 화려한 무대보다 그 기계적인 반복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카렌은 원형홀 위쪽의 귀빈석을 눈여겨보았다. 대부분은 서로 아는 얼굴인 듯 짧게 인사했지만, 오른쪽 끝 방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커튼 뒤에서 누군가 잠깐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에는 길고 얇은 반지가 있었다. 카렌은 반지에 새겨진 작은 문양을 보려 했으나 곧 창이 닫혔다. “손님이 감정서도 못 보는 방이 있네요.” 그가 윤담에게 말했다. “비공개 관람석입니다. 본래는 낙찰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면 위험한 공공 기관을 위한 공간이었어요. 요즘은 투자자가 이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용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정당한 요구가 있으면 감찰소가 열람할 수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들여다볼 순 없습니다.” 카렌은 수첩에 관람석 번호를 적었다. 귀빈석에서 보낸 손짓 하나만으로 무슨 범죄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뒤늦게 필요한 순간에 정확한 위치와 시각을 기억하는 건 검사의 일이었다. 그사이 진혁은 원형홀 바닥의 원을 바라봤다. 보호막은 회전하는 문양으로 둘러져 있었지만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전선 같은 금속줄이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법 장치라 불렀다. 진혁은 그 장치가 마법과 기계의 중간에 있는 현실적인 물건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위치를 내리면 무엇이 멈추고 무엇이 계속 움직이는지, 오늘은 그 점을 지켜보기로 했다. 문제는 세 번째 물품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무대 위의 상자가 열리자 얇은 은색 유리판이 보였다. 크기는 손거울 정도였고, 표면에는 금이 간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선이 있었다. 경매사는 그것을 ‘회상판’이라고 소개했다. 평범한 물건에 닿으면 소유자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풍경을 보여 준다는 설명이었다. 관람객들이 웅성거렸다. 사람들의 기억을 추출하는 물건은 여러 나라에서 거래 제한 대상이었다. 특히 본인의 동의 없이 기억의 내용이나 신원을 복제하는 기술은 불법으로 취급되는 곳이 많았다. “시험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기억만 재현합니다.” 경매사가 말했다. 그 순간 객석 네 번째 줄의 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손거울을 가리키며 외쳤다. “거짓말이야! 난 아무것도 준 적이 없어!” 경비들이 달려갔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 사진을 꺼냈다.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의 외침은 분노라기보다 공포에 가까웠다. “저 안에 내 딸의 목소리가 있어. 내가 허락한 적도 없는데!” 마침 회상판이 희미하게 빛났다. 맑은 웃음소리 같은 소리가 무대의 금속 바닥을 타고 퍼졌다. 객석 여기저기서 숨을 삼켰다. 진혁은 손바닥을 대고 싶어졌다. 그러나 카렌이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대상을 격리해야 해요. 흥분한 사람을 끌어내기 전에 증거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윤담이 감정팀 경비에게 지시했다. 별도 차폐 상자를 가져오고, 실험 동의를 확인할 때까지 회상판의 가동을 중지하라고 했다. 경매사는 주저했다. 위층 귀빈석의 누군가를 올려다본 뒤에야 망치를 내려놓았다. 진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무대 가장자리의 조명은 계속 켜져 있었다. 회상판은 상자 안에 있었지만 객석 바깥쪽 벽에 설치된 작은 수정 기둥 세 개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소리의 출처가 정말 유물이라면 차폐 상자에 넣었을 때 잦아들어야 했다. 그런데 소리는 아주 조금씩 이어졌다. “잠깐요.” 진혁이 윤담에게 말했다. “저게 유물의 소리라는 걸 누가 확인했습니까?” 윤담의 시선이 수정 기둥으로 향했다. 그는 조수에게 조명 회로를 끄라고 했다. 스위치가 내려가자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객석의 정적은 망치 소리보다 훨씬 컸다. 진혁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누군가 관객을 겁주기 위해 소리를 숨겨 흘려보낸 것이었다. 그렇다고 회상판 자체가 무해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판을 사도록 사람들의 감정을 흔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대 뒤쪽 통로에서 회색 장갑의 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박수를 치려다가 멈춘 사람처럼 손가락을 펼친 채 서 있었다. “오늘 경매는 일시 중지입니다.” 윤담이 객석을 향해 선언했다. “제3출품물의 작동 방식과 권리 관계가 재확인될 때까지 낙찰 절차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진혁은 윤담이 진짜 경쟁자라는 것을 그제야 믿게 되었다. 경쟁자는 자신과 다른 길로 같은 기준을 지키려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관객들이 일어서기 시작할 무렵, 천장 구리 원판의 그림자가 뒤집혔다. 평소라면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였다. 그런데 종은 울리지 않았다. 원판 안쪽의 작은 글자들이 햇빛에 드러났다. ‘제31후보 확인. 공개 경매 종료. 두 번째 입장 절차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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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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