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 경매원의 아침 감정회는 축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축제와는 다른 긴장이 느껴졌다.
긴 회랑 양옆에는 하얀 천을 깐 진열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진열대마다 금속 명패가 있었고, 물품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경매원 직원들은 작은 망치를 울려 관람객의 발걸음을 통제했다. 위층 유리 복도에서는 부유한 수집가들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서 있는 장인들이 물건을 보여 줄 때마다 누군가의 펜 끝이 움직였다.
서진혁이 지켜보던 녹슨 편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초라한 물건이었다. 네 귀퉁이가 뭉툭하고 가운데가 벌어져, 멀리서 보면 말발굽에 씌우는 쇳조각으로 착각하기 쉬웠다. 그런데 그 안쪽 홈에는 물결무늬와 같은 간격의 흠집이 남아 있었다. 원형 바퀴가 돌면서 닳은 흔적이라면 한 방향으로 긁혔어야 했다. 이건 양방향으로 떨리며 작동한 장치의 자국이었다.
“외지 감정사님.” 윤담이 말했다. “저 물건의 가치를 알고 계신 듯하군요.”
“아직 아닙니다. 사진과 기록을 보면 도움이 되겠네요.”
“사진이라.”
윤담은 손짓해 조수에게 입고표를 가져오게 했다. 조수는 마지못해 두 장짜리 서류를 펼쳤다. 발견 장소는 북쪽 옛 탄광 던전의 3층 기계실. 발견자는 독립 탐험대였고, 자금 사정 때문에 제대로 된 유물 세척 없이 위탁했다고 되어 있었다.
“마력 반응은 없습니다.” 윤담이 말했다. “표준 감응석, 잔류 열량 측정기, 금속 성분 검사까지 끝났습니다. 그러니 동화 열 닢도 높다고 했죠.”
“감정 기록이 충실하군요.”
진혁이 순순히 인정하자 윤담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가 원한 것은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외지인이 자신의 판단을 뒤집어 화령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줄 거라는 의심이 눈에 비쳤다.
진혁은 물건을 직접 만지지 않고 흠집을 다시 살폈다. 그사이 뒤에서 카렌이 입고표의 판매 조건을 읽었다. 수집가가 아닌 위탁 탐험대의 이름과 회수 날짜도 확인했다. 물건은 아직 소유권 정산 중이라 즉시 개인 매입할 수 없었다.
“저는 이게 말발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우리도 그렇게 적지는 않았습니다.” 윤담이 대답했다.
“그러면 혹시 방진 회전체의 외곽 고정편일 가능성을 보셨습니까?”
미란이 그려 준 도면이 떠올랐다. 펌프의 회전축을 감싸는 외피는 단단해야 했지만, 큰 힘을 받으면 작은 방향 전환을 허용해야 했다. 마레온 공방에서 만들 수 없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윤담이 손을 들자 조수 하나가 작업실로 뛰어갔다. 그는 잠시 뒤 노련한 대장장이를 데려왔다. 노인은 편자의 곡률을 보더니, 진혁보다 먼저 인상을 찌푸렸다.
“회전체라면 날개가 붙었겠지. 여기엔 고정 홈만 있소.”
“원래 날개가 있었을까요?” 진혁이 되물었다.
노인은 손톱으로 가장자리를 긁었다. 금속 위에 하얀 광택이 일었다. 먼지를 훔쳐 낸 자리에서 일정한 간격의 조그만 구멍이 드러났다. 아주 오래전에 금속 핀이 박혀 있었다가 제거된 자국이었다.
“아무래도 바깥 고정틀이군.” 노인이 말했다. “부품일 수는 있어. 하지만 어느 기계의 부품인지 모르면 고철이나 다름없지.”
윤담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감정 결과를 뒤집을 증거는 없었다. 진혁은 생각했다. 여기서 손바닥을 대면 물건의 과거가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앞선 출장에서 그 능력 때문에 여러 번 기절할 뻔했다. 게다가 유물의 이름을 읽어 낸다고 해도 화령 사람들이 감정서에 서명해 줄 이유는 없었다.
“제가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그는 벨라가 내준 출장비와 별도로 자신의 수당 봉투를 꺼냈다. 봉투는 얇았다. 라일이 그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을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감정 비용으로 금화 두 닢을 내겠습니다. 이 물건이 회전체의 일부라는 걸 검증하는 공개 실험을 해 주세요. 성공하면 정식 감정 보고서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올리고, 실패하면 제가 비용을 부담하겠습니다.”
“잘못 판단하면 돈만 잃겠군요.” 윤담이 말했다.
“그게 사업입니다.”
“그건 도박이라고 하는 겁니다.” 카렌이 끼어들었다.
“좋아요. 검증 절차가 있는 도박.”
윤담은 처음으로 웃었다. 거만한 웃음이 아니라, 뜻밖의 제안을 들은 전문가의 웃음이었다.
실험 전에 탐험대 대표가 진혁을 찾아왔다. 이름은 바룬. 젊은 나이에 길드의 채무를 떠안아 눈 아래에 오래된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배낭에서 발견 당시의 그림을 꺼냈다. 그림에는 기계실 한쪽 벽이 무너져 내리며 커다란 원통이 드러난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여럿이 안전줄을 묶고 들어갔지만 기계는 이미 녹슬어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 하나를 갖고 나왔다고 우릴 비웃는 사람이 많았어요.” 바룬이 말했다. “원래라면 깊은 층에서 건질 게 더 많았겠지만 한 동료가 다쳤거든요. 사람부터 데려 나왔습니다.”
“그래서 급히 판 거군요.”
“치료비가 밀렸습니다. 동화 열 닢짜리라면 굳이 안 팔고 싶었어요.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요.”
진혁은 손바닥을 감췄다. 어떤 물건은 진정한 기능을 찾으면 큰돈이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격보다 빨리 현금으로 바꿔야 할 사정이 중요했다. 그가 모르는 탐험대의 위험과 비용이 그 쇳조각 안에 있었다. 자신이 감정을 잘해서 돈을 벌었다고 소문나더라도 위탁자가 정당한 대금을 받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기능이 확인돼도 입찰 금액은 제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다만 경매가 취소되더라도 설명을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다음 구매자에게는 그 기록을 보여 줄 수 있게요.”
바룬은 간신히 웃었다. “그렇게만 해도 도움이 되겠군요.”
카렌은 그 대화를 듣고 진혁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동전 하나만 보여도 눈이 번쩍이던 사람이었다. 여전히 돈을 좋아하지만 누군가의 사정을 모른 채 값을 올려놓고 자랑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 변화가 카렌에게는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실험은 한 시간 뒤 진행됐다. 경매원 작업실 한가운데 고정대를 설치하고, 탐험대가 가져온 기계실 도면에서 비슷한 크기의 홈을 찾았다. 도면은 물에 젖은 부분이 많아 축척이 불확실했다. 대장장이는 먼저 종이에 실제 크기를 그렸다. 조수들은 작은 모형 축을 돌려 편자가 붙는 방향을 시험했다. 처음에는 맞지 않았다. 두 번째도 틀렸다.
라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말발굽으로 팔면 안 됩니까? 제가 예쁜 말 한 마리 구해 올게요.”
“당신이 구하면 분명 원래 주인이 따라올 겁니다.” 카렌이 대답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 고정편을 거꾸로 세우자 자리가 맞았다. 그러자 대장장이가 탄성을 질렀다. 내부의 홈이 앞뒤 두 축을 동시에 붙잡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고정편은 힘을 한쪽으로 몰지 않고 양쪽으로 분산하는 장치였다.
“이거, 오래된 탄광에서 쓰던 진동 완충기일 수도 있겠는데.”
윤담이 도면을 바라봤다. “분명한 건 구조입니다. 용도는 아직 추정이고요.”
진혁은 그 차이를 잊지 않았다. 그는 대장장이에게 마레온 펌프용 현대식 축과 결합할 수 있을지 물었다. 노인은 새 축의 소재와 굵기를 알아야 한다며 미란의 도면을 요청했다. 진혁은 복사본만 건넸다. 모라 심실의 안전 경로가 포함된 원본 설계는 건네지 않았다.
그날 오후, 경매원은 물건의 분류를 폐품에서 ‘기계 유물 부품, 용도 추가 확인 필요’로 수정했다. 가격을 확정하지 않았다. 다만 위탁 탐험대가 그 변경을 확인하고 공개 경쟁 매각을 허락했다. 새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가공 시험이 끝난 뒤에도 경매원은 한 차례 더 논쟁을 치렀다. 윤담은 물건을 최고등급 유물로 올려 주자는 감정 조수의 의견을 거절했다. 실험으로 확인한 것은 진동을 분산하는 구조뿐이고, 얼마나 오랫동안 같은 효과를 유지하는지는 모른다는 이유였다.
“비싼 이름을 붙이면 오늘은 잘 팔리겠죠.” 윤담이 말했다. “하지만 내일 부품이 깨져 사람이 다치면 그 이름을 붙인 감정사의 책임은 그대로 남습니다.”
진혁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왜 윤담이 화령 수석 감정사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판단하는 방식이 달랐고 서로를 쉽게 믿지도 않았다. 그러나 물건을 필요 이상으로 위험하게 팔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은 같았다.
수정 감정서의 마지막 장에는 기술자 두 명의 의견이 서로 다르게 기록됐다. 한 사람은 고대 광산 설비의 부품이라 주장했고, 다른 사람은 수로 진동 방지 장치일 수 있다고 적었다. 두 견해 중 어느 것도 삭제하지 않았다. 분명하지 않은 부분을 분명한 척하지 않으니, 나중에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직접 위험을 계산할 수 있었다.
윤담은 진혁에게 감정서 사본을 건넸다. “화령에서는 외지인을 경계합니다. 그건 내가 잘 압니다. 하지만 좋은 질문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겠군요.”
“좋은 질문은 보통 비싸지 않습니까?”
“자네 질문은 상당히 시끄럽기도 하고요.”
둘은 처음으로 마주 웃었다.
결국 저녁 소규모 경매에서 그 고정편은 은표 천사백 장에 낙찰됐다. 금화로 환산하면 동화 열 닢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금액이었다. 낙찰자는 탄광 설비를 수리하는 공방 주인이었다. 진혁은 매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탐험대와 공방을 연결해 준 감정 공로비 명목으로 경매원 규정에 따른 중개 수당을 받았다. 금화 여섯 닢. 실험비와 수수료를 빼고도 작은 수익이 남았다.
“드디어 돈을 벌었네요.” 카렌이 말했다.
“이것이 제 진정한 재능입니다.”
라일이 박수를 두 번 쳤다. “아픈 손 안 쓰고 번 돈이라 더 값지군요.”
“당연하죠. 몸을 쓰지 않고 머리를 써서 벌어야 오래 법니다.”
그의 말은 곧장 대장장이의 기침 소리에 묻혔다. 노인은 진혁이 건넨 미란의 도면을 가리켰다.
“그런데 자네가 필요한 건 이 낡은 부품이 아니겠어. 도면에 맞는 걸 새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을 안다네. 동쪽 장인길의 백조 공방이지. 문제는 그곳이 요즘 입찰을 전부 거절한다는 거야.”
“왜요?”
“새 주인이 와서 낡은 설비를 다 사들였거든. 장인들은 돈을 받았는데 공방은 멈췄지. 정작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은 일거리가 없어 굶고 있어.”
진혁은 벌어들인 금화 여섯 닢을 내려다봤다. 저 멀리 바다 건너 항구에서는 방벽 펌프가 계속 낡은 축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새 주인이 누구죠?”
노인은 답하기 전에 한 번 주변을 살폈다.
“칠성 경매원에 새로 들어온 투자자라고 들었어.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계약서에 찍힌 도장이 희한했다더군.”
그가 종이 위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그리고 사자 옆모습을 그리더니 이빨 하나를 지웠다.
진혁은 어젯밤 초대장의 인장을 떠올렸다. 경매장에 온 사람이 처음부터 기계 부품을 쫓으리라는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었던 걸까.
윤담은 저녁 서류를 정리하다가 진혁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오늘 감정은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자네처럼 좋은 눈을 가진 사람을 화령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돈 몇 닢 때문일 리 없지요.”
“당신도 초대장을 받았습니까?”
윤담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조끼 안쪽에서 접힌 문서 하나를 꺼냈다. 같은 모양의 사자 인장, 그러나 종이에 적힌 숫자는 달랐다.
‘제30후보 윤담에게. 제31후보의 감정을 참관할 것.’
제5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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