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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1화
PAYLUA ORIGINAL · 제51화

51화. 황금도시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466자

오프라인 책장
화령으로 떠나겠다는 말에 가장 먼저 반대한 사람은 세리아가 아니었다. “돈이 없습니다.” 루멘 경매장 회계실의 벨라가 장부를 닫았다. 그 소리가 너무 단호해서 서진혁은 무심코 등을 곧추세웠다. 창밖에서는 항구의 새벽이 느리게 밝아 오고 있었다. 젖은 부두 바닥에는 전날 밀물에 남은 소금기가 하얗게 말라붙었고, 수리공들이 임시 방벽에서 떼어 낸 나무판을 수레에 실었다. 멀리 제분소 기어가 돌아가는 소리와 갈매기 울음이 섞였다. “지난 출장비 정산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내륙 출장이에요?” “지난번에 제가 세 사람을 구했습니다.” “전체 구조 인원은 훨씬 많았고, 직원들이 협력해서 구했죠. 그리고 사람을 구한 것을 출장비와 상계하지는 않아요.” “논리가 완벽해서 반박이 안 되는군요.” 벨라의 앞치마 주머니에는 잉크 묻은 계산 막대와 작은 빵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그는 야간 근무자의 식사를 챙기느라 밤마다 회계실과 주방을 오갔다. 진혁은 그를 무서워했지만 장부의 빈칸을 메우려는 손길이 누구보다 성실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이 검토하는 것은 어젯밤 경매장 접수함에서 발견된 위탁서였다. 내륙 황금도시 화령에 오라는 문장, 수취인 ‘31번째 후보’, 입장료 ‘당신이 끝내 잊지 않은 것 하나’. 금빛 인장이 찍힌 종이는 비싼 재질이었다. 모서리에는 전날 밤부터 희미한 연소 흔적이 생겼다. 불을 댄 것도 아닌데 향 냄새가 올라오며 종이가 한 겹씩 얇아졌다. “원본부터 봉인해야겠어요.” 카렌이 말했다. 그는 창턱에 검집을 기대 놓고 세리아가 보내 준 공증 봉투를 펼쳤다. 검사인 카렌 하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문구의 기괴함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어디서 이 문서를 접수함에 넣었는지였다. 경비대장 헥터가 접수함을 확인한 시각, 야간 접수원의 증언, 불침번의 동선이 먼저 장부에 들어갔다. “정식 위탁서는 물품 목록과 발신 주소가 있어야 해요. 이건 위탁을 가장한 초대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세리아는 새벽빛에 종이를 기울였다. 금박의 그림자가 종이 아래에 비쳤다. 보통 화령의 상회 인장은 왕관을 쓴 사자의 옆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인장에는 사자의 이빨이 하나 없었다. “화령 연합 상회가 쓰던 옛 도안이야.” 세리아가 말했다. “십칠 년 전에 폐기한 거지.” “그럼 가짜군요.” “꼭 그렇지는 않아. 옛 도장을 쓰는 개인 창고도 있으니까. 다만 발신인이 상회를 대표한다는 증거는 못 되지.” 진혁은 속으로 감탄했다. 세리아는 언제나 단정하는 데에 인색했다.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그 신중함을 답답하게 여겼다. 이제는 누군가를 함부로 팔아넘기는 계약서 앞에서 그 느림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었다. “본질을 보면 알아낼 수도…” “연속 감정은 금지.” 카렌과 세리아가 동시에 말했다. 진혁의 오른손 손바닥에는 일주일 전보다 짙어진 가느다란 흉터가 있었다. 능력으로 유물의 잔향을 읽을 때마다 손바닥 안쪽을 뜨거운 바늘이 훑고 지나갔다. 지난 항해에서 무리한 뒤로는 감정하지 않을 때도 가끔 물결무늬 통증이 올라왔다. “저도 건강한 감정사가 오래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런 말 할 때는 꼭 무리하더라.” 라일이 문가에서 중얼거렸다. 라일은 물기 없는 망토를 입고 있었다. 예전의 낡은 검은 외투 대신 회색 항로에서 산 소박한 여행복이었다. 그가 품에 넣은 작은 나침반에는 도르가 보여 준 날짜와 긁어 지운 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걸 허세처럼 꺼내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누가 훔쳤는지 알아내는 일은 값비싼 보물을 찾는 일보다 훨씬 두려웠다. 회의에는 미란도 잠깐 참석했다. 그는 항만 대체 펌프 설계도를 펼쳐 놓았다. 세 갈래 관으로 물을 분산하는 방식은 시험 수조에서 효과가 있었지만, 일정 크기 이상으로 만들려면 가공 정밀도가 높은 회전축이 필요했다. 마레온의 대장간으로는 그 축을 같은 규격으로 여러 개 만들기 어려웠다. “화령에는 수정 베어링을 만드는 공방이 있어요.” 미란이 말했다.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계와 견적을 가져오면 다음 예산 심의에 쓸 수 있어요. 단, 모라의 힘을 끌어올리는 장치는 안 삽니다. 지금 필요한 건 모라의 부담을 줄이는 장비예요.” 그는 펌프가 작동하는 수로와 모라의 심실을 분리해서 그린 도면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누군가 ‘더 센 출력’을 요구할 때마다 미란은 항상 숫자를 내밀었다. 물이 들어오는 양과 빠져나가는 양, 고장 때 사람이 대피할 시간. 비밀보다 수치가 시민을 살리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결국 출장에 명분이 두 개 생겼다. 수상한 초대장을 조사하는 일, 그리고 화령의 정밀 부품 시장을 둘러보는 일. 셋째 명분은 진혁이 만들었다. “거기엔 경매장이 많잖아요. 좋은 물건 하나만 제대로 감정해도 경비를 뽑을 수 있습니다.” 벨라가 주판을 두드렸다. “적자부터 메우고 이야기해요. 루멘 자산을 담보로 개인 투기 금지, 출처 없는 물건 매입 금지, 선지급은 금화 열두 닢 한도.” “열두 닢으로 황금도시를 정복하라고요?” “정복하라고 보낸 적 없는데요.” 세리아는 그제야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진혁에게 루멘 수석 감정사 대행의 출장 신분증과 독립 조사단의 소개장을 따로 건넸다. 두 신분을 섞어서 행사하지 말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경매 물품의 감정 의견과 조사 기관의 명령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출발 전에 세리아는 진혁을 심실 전망대까지 데려갔다. 정문보다 한참 아래에 자리한 전망대는 관광객에게 공개되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다. 두꺼운 유리 아래로 청색 광맥이 느리게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바위의 틈처럼 보이는 사이사이에서 작은 진동이 전해졌다. 사람들은 그 구조물을 오랫동안 에너지 장치라고 불렀지만, 진혁은 이제 안쪽의 존재가 잠깐 잠에서 몸을 뒤척이는 느낌을 알았다. “모라가 화령에 가라고 합니까?” 그가 물었다.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어.” 세리아가 말했다. “모라가 보여 준 반응에는 여러 해석이 있어. 그래서 미란의 관측도 함께 보는 거지.” 그녀가 난간 위에 작은 기록표를 올렸다. 방벽의 압력, 대체 펌프의 가동 시간, 모라에게서 측정된 박동 간격이 각각 다른 필체로 적혀 있었다. 수치는 안정 범위의 끝에 가까웠다. 지금 당장 붕괴할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도 아니었다. “네가 화령에서 유물을 찾아 돌아오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거기서 무엇을 사면 안 되는지 알아오는 거야. 마레온이 한 번의 거래 실수로 다시 사람을 담보로 잡히게 해선 안 되니까.” 진혁은 장난을 치려다 말았다. 세리아의 목소리에는 오래전 자신이 저질렀을지 모를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가진 피로가 실려 있었다. 그는 대답 대신 기록표의 마지막 줄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의 붉은 흉터가 차가운 유리와 닿았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부품은 부품 가격으로만 사오겠습니다.” 세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 말, 계약서에도 그대로 써.” 마레온에서 화령까지는 육로로 닷새였다. 바닷가의 젖은 바람은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마른 흙냄새에 밀렸고, 언덕 위의 은회색 풀밭은 이틀이 지나자 붉은 점토 절벽으로 바뀌었다. 사흘째 저녁에는 객주 마당에 모닥불을 피웠다. 카렌이 말의 안장 끈을 점검하고, 라일이 마차 바퀴살을 두드리는 동안 진혁은 객주의 값싼 수프를 마셨다. 수프는 맑고 짰다. 그릇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도시가 그렇게 무섭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아뇨. 거기 가서 한 푼도 못 벌까 봐.” “그건 정말 당신답네요.” 카렌은 오래 쳐다보지 않았다. 아버지 레온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표정이 어딘가 멀어졌다. 동생 이안은 마레온에서 회복 중이었다. 떠나기 전 이안은 누나의 손에 조그만 종이쪽지를 쥐여 주었다. ‘누나가 집에 올 때는 식탁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어.’ 카렌은 그 말을 몇 번이나 읽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종이 끝이 조금씩 닳았다. 나흘째부터 길의 표지석이 달라졌다. 마레온에서는 항구까지 몇 리인지 적어 놓았지만 화령 근처의 표지석에는 도시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세금 관문과 공인 교환소의 위치가 새겨져 있었다. 지나가는 행상은 금화를 직접 세지 않았다. 납작한 금속표에 인장을 찍어 거래 대금을 보증받았다. 길가에는 금화가 떨어져도 줍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잃어버린 돈을 주운 사람에게는 소유권 확인과 보관료가 청구된다고 했다. “이곳의 법은 돈에도 이름표를 붙이는군요.” 진혁이 말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라일이 대답했다. “돈을 가져간 도둑이 금화를 쓰면 바로 들키거든.” “그걸 왜 그렇게 자세히 압니까?” “관광 안내서에 나오니까.” 카렌이 미소를 숨기며 고개를 저었다. 닷새째 해질 무렵, 붉은 언덕 너머에서 화령이 나타났다. 성벽이라고 생각한 것은 실제로는 금빛 사암으로 만든 수십 층의 회랑이었다. 건물마다 빗물을 모으는 좁은 수로가 지나갔고, 수로 가장자리에는 저녁 햇빛을 받아 타오르는 듯한 동판이 이어졌다. 다리 아래에서는 짐수레들이 층층이 오가고 있었다. 상점 간판과 거래소의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망치 소리, 교환상이 외치는 환산율, 굽는 견과의 달콤한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화령이 황금도시라 불리는 것은 길에 금이 깔려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물건이 손을 바꾸는 과정마다 비용이 붙었다. 성문 통행료, 짐 검사료, 교환 수수료, 안전 보관료. 금화를 가지고 들어와도 금화가 온전히 남아 나가기 어려운 도시였다. 동문 세관에서 진혁은 그 사실을 바로 배웠다. “외지 감정사 보증 등록비, 금화 두 닢.” “지금요?” “지금입니다. 업무를 볼 예정이라면요.” “아직 아무것도 감정하지 않았는데요.” “그럼 일반 관광객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대신 상업 감정서에 서명하지 못합니다.” 진혁은 통행 관리인과 말없이 눈을 맞추었다. 관리인의 책상에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항의하다가 쌓아 놓은 신청서가 높이 쌓여 있었다. 그는 결국 영수증을 받고 금화 두 닢을 냈다. 벨라가 보면 분명히 한숨을 쉴 금액이었다. 성문 안쪽 첫 광장에서, 한 노파가 수레 위에 작은 유물 조각들을 펼쳐 놓고 있었다. 지나가는 상인들은 물건보다 가격표를 먼저 보았다. 노파는 낡은 청동 찻잔을 손질하면서도 흥정하는 사람을 한 명도 붙잡지 않았다. 진혁은 찻잔 손잡이의 마모 자국이 이상해 잠깐 멈췄다. 그 순간 손바닥의 흉터가 아주 작게 욱신거렸다. 찻잔 밑바닥에는 화령의 표준 감정 인장이 아니라 여섯 갈래 방사선이 새겨져 있었다. 같은 문양을 그는 해저 밀봉통의 세 갈래 금속판 끝에서 본 적이 있었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선의 배열이 닮아 있었다. “얼마입니까?” 진혁이 물었다. “그걸 사려는 거냐?” 노파가 되물었다. “아직은 가격부터 묻는 겁니다.” 노파는 조용히 대답했다. “가격표는 붙이지 않았다. 이 물건은 팔러 나온 게 아니거든.” “그런데 왜 여기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멀리서 황금 회랑의 종이 다섯 번 울렸다. 찻잔 바닥에서 노파의 주름진 손끝이 잠시 멈췄다. “너는 화령에 늦게 왔구나, 서진혁.” 그가 자기 이름을 말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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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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