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감정사의 유산 앞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판단력이었다.
“제 형이 열 해 전에 외해에서 사라졌습니다. 저 구슬로 찾을 수 있습니까?”
“선박 보험 증서를 잃어버렸는데요. 그건 찾겠죠?”
“우리 집 강아지도 됩니까?”
점원은 누구에게도 확답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할 때마다 ‘이용 가능성은 감정 결과에 따름’이라고 반복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구슬의 능력이 대단할 거라고 믿었다. 진혁은 등대 아래의 작은 광장을 보면서 루멘의 공개 감정회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진위를 검증하기 전에 희망을 먼저 판매하면, 고객들은 비싼 비용을 치른 뒤에도 자기 탓부터 하게 된다.
장갑을 낀 점원의 이름은 니브라고 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보관함에 손대려는 사람에게는 한 치의 틈도 주지 않았다. 그는 손목의 화상 자국을 외투 소매 아래로 숨겼다.
“손님들. 유산이라고 해서 무료로 감정하게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기능을 시험하려면 보증금이 필요합니다.”
진혁이 물었다.
“누가 소유한 물건입니까?”
“회색 장부 조합의 정식 위탁품입니다.”
“원소유자는요?”
“제0호 감정사이지요.”
“그분의 사망이나 상속 기록은 확인됐습니까?”
니브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
“그것은 경매 운영자의 문제고, 구매자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 말은 처음부터 틀렸습니다. 물건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 값을 주면 구매자는 물건도 돈도 잃을 수 있죠.”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광장 중앙의 구슬에 홀린 듯하던 손님 몇 명이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니브는 빠르게 작은 종을 흔들었다.
“공식 경매는 밤에 열립니다. 지금은 관람만 가능합니다. 질문은 접수표에 적어 제출해 주십시오.”
카렌은 접수표를 받아 보았다. 구슬 감정을 요청하는 칸 옆에 ‘감정 결과에 동의하며 향후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수락함’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 문구 아래에는 이름 외에 혈통과 주소까지 적게 되어 있었다.
“이건 감정 신청서가 아니군요.” 카렌이 말했다.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책임을 떠맡는 계약입니다.”
“어떤 감정에나 위험은 있지요.” 니브가 대답했다.
“신청인이 누구를 대신해 어떤 위험을 떠안는지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니브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경비 둘이 가까이 왔다. 세리아가 함께 있었다면 이 순간 우아하게 계약서를 찢어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진혁에게는 경매장을 운영하는 권한도 경비를 지휘할 권한도 없었다. 그는 장부에 시간과 문구를 적고 물러났다.
임시 시장의 북쪽에는 오래된 선박 부품을 모아 둔 헛간이 있었다. 진혁 일행은 그곳에서 다른 전시품들을 살폈다. 미리 공개한 목록은 일곱 개였다. 사라진 목소리를 되돌린다는 조개 장신구, 항로를 뒤집어 보여 준다는 수평 거울, 따개비가 달라붙은 은색 나침반, 바다 밑에서 울렸다는 녹슨 종, 부서진 잠수용 호흡관, 이름을 새기지 않은 검집, 그리고 푸른 구슬.
그중 진혁이 가장 오래 바라본 것은 호흡관이었다. 유리창에는 금이 가 있었고 고무 이음새는 삭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고철값밖에 되지 않을 물건이었다. 그런데 손상된 관의 밑면에 작게 찍힌 제작자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세 개의 기어가 맞물린 문장. 마레온의 독립 청자 장치를 고쳐 준 루크의 공방에서 보았던 설계 기호였다. 다만 세부 선이 다른 것을 보면 같은 공방이 아니라 오래된 제작 계열의 표식일 수 있었다.
“잠수관을 보고 왜 웃어요?” 카렌이 물었다.
“처음으로 가격을 붙일 수 있는 물건을 만났거든요.”
“저건 망가졌잖아요.”
“망가져 보이죠. 하지만 안쪽의 조절 톱니는 새것보다 더 오래된 설계입니다. 희귀하다고 무조건 비싸지는 않아요. 누군가 고쳐 쓸 수 있어야 값이 있죠.”
진혁은 자세히 살폈다. 잠수관의 연결 부위에는 해저 압력을 나누는 세 갈래의 밸브가 있었다. 현행 잠수 장비와 결합하려면 변환 이음새가 필요하겠지만, 회색 항로처럼 수면 아래 마력 조류가 불안정한 곳에서는 압력 분산 장치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볼까요?”
“물어보되 절대 관심을 보이지 마세요.” 라일이 말했다. “흥정의 첫 번째 규칙입니다.”
“그럼 라일 씨가 가세요.”
“저는 사기꾼하고 흥정하면 싸움부터 나거든요.”
시장 관리인인 노파는 허가받은 영업 부스와 회색 장부 조합의 부스를 구분해 주었다. 헛간의 오래된 장비들은 섬 사람들이 침몰선에서 합법적으로 인양한 부품이었다. 반면 구슬과 고대 유산 목록은 출처가 불확실했다. 진혁은 호흡관의 합법적인 소유자와 인양 기록을 먼저 확인했다. 삼십 년 전 섬 근처에서 인양된 소형 잠수선의 부품으로, 경매 조합에 위탁하지 않고 섬의 수리소에서 직접 팔고 있었다.
가격은 금화 두 닢 반이었다.
“너무 싸지 않습니까?” 진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리소 주인은 덜컥 웃었다.
“쓸 사람이 없는데 값이 올라가겠소? 고철로 녹이면 금화 한 닢도 안 나오지. 부품만 고쳐 쓴다고 가져가면 싸게 드리겠소.”
진혁은 자신이 알아낸 기능을 어느 정도 설명했다. 그리고 장비에 금이 간 부분과 수리비도 함께 계산했다. 성능을 입증하지 못했으니 ‘보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금화 세 닢에 현 상태 그대로 거래하되, 수리소가 향후 변환 이음새를 제작하면 작업비를 별도로 지급하기로 했다. 수리소 주인은 제값을 받았다고 만족했고, 진혁은 출장 비용 장부에 지출을 기록했다.
“이런 게 진짜 경매사 일 아닐까요.” 그가 말했다.
“남들이 관심 없는 걸 사서 고생을 늘리는 일이요?” 카렌이 되물었다.
“때로는요.”
임시 감정장 뒤편의 천막에서는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나이 든 어부가 유물이라고 주장하는 붉은 돌을 들고 왔다. 손바닥만 한 돌에는 물결무늬가 있었고, 어부는 폭풍이 오기 직전에 바닷가에서 주웠다고 했다. 점원은 특별한 마력의 흔적이 없다며 고철값도 안 된다고 했다. 어부는 상처받은 얼굴로 돌아서려 했다.
진혁은 돌을 유심히 보았다. 돌의 겉에는 평범한 철 성분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자리에 조개가 굳어 붙은 방식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뜻이었다. 오래된 것과 귀한 것은 다르다. 그는 어부에게 천천히 말했다.
“큰돈이 되는 유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무늬는 잔조도 주변의 옛 방파제에 쓰였던 돌과 비슷하네요. 섬의 오래된 공사 기록과 비교하면 출처를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부는 조용히 돌을 싸서 넣었다. “돈은 안 되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일하던 방파제의 돌일 수 있겠군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은 항상 판매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누군가가 물건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는 일이기도 했다.
카렌은 종이에 물품 상태를 그려 넣었다. 진혁은 잠수관의 금 간 유리와 멀쩡한 밸브를 구별해 표시했다. 물건의 일부분만 쓸 수 있다면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것이 거래의 기본이었다. 라일은 새 금속판을 조달하면 장치 전체를 복원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진혁은 기대를 품었지만 바로 장부에 ‘기능 보장 없음’이라고 적었다. 오늘의 발견이 내일의 성공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리소에서 돌아오는 길, 진혁은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 다시 확인했다.
시장에는 같은 모양의 금속 조각이 열 개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용의 뼈에서 나온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이 가격을 두 배로 불렀다. 하지만 진혁이 자석과 소금물 반응으로 확인한 결과, 대부분은 배 밑바닥을 덧댄 흔한 합금이었다. 한 조각은 색만 다를 뿐 기능이 없었다. 반대로 보잘것없는 작은 도르래에는 정교한 역회전 방지 장치가 남아 있어 닻을 고정하는 데 유용해 보였다.
“그걸 꼭 사야 합니까?” 카렌이 물었다.
“아뇨. 필요 없는 건 안 사야죠.”
“드디어 배우셨네요.”
“원래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라일이 옆에서 웃었다. 그러나 진혁은 진지했다. 능력이 보여 주는 파편적인 문구는 때로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 물건이 드물다고 해서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는 것도 아니었다. 쓸 사람이 없거나 수리비가 비싸면 오래된 왕국의 기술도 창고에서 먼지로 남았다. 누군가의 목숨과 연결된 물건이라면 아무리 비싸도 거래하지 않는 편이 옳았다.
시장 끝의 작은 게시판에는 해상 사고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글을 붙여 놓았다. 부친의 손목시계, 어머니가 직접 바느질한 외투, 배 이름을 새긴 작은 나무판. 진혁은 그것들을 읽다가 푸른 구슬의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는 설명을 떠올렸다. 그 기능이 사실이라면 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일까. 동시에 그 희망을 이용하는 자는 얼마나 큰 값을 받을 수 있을까.
그는 게시판 옆에 시장 수리소의 주소를 적어 두었다. 누군가 물건을 찾으면 무턱대고 경매부터 맡기지 말고 소유자를 확인하도록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되찾는 과정에서는 수수료 한 닢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은 라일은 정말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혹시 서진혁 씨가 바뀐 겁니까? 돈을 안 받는다니.”
“필요하면 받겠죠.”
“아, 맞네요. 안 바뀌셨네요.”
저녁 식사 전, 시장 밖 방파제에서 테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세 개의 종을 천으로 감아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밝은 낮에는 종을 치며 다니던 아이가 밤이 되자 숨기고 다니는 모습이 묘하게 씁쓸했다.
“니브라는 사람이 저한테도 왔어요.”
“무슨 말을 했니?” 라일이 물었다.
“목걸이를 아는 남자가 나타나면 안내하래요. 안내하면 금화 열 닢, 안 하면 다음번 배달 일을 못 하게 하겠대요.”
카렌의 손이 검집으로 갔다가 멈췄다. 진혁이 먼저 아이를 바라봤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오라고 했어?”
“등대 뒤편의 계단요. 밤 열한 시에.”
“거긴 뭐가 있니?”
“낡은 문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열쇠로 열려고 했는데 안 됐어요. 그런데….”
테오는 잠시 망설였다.
“저번에 누군가가 그 문 앞에 서서 이름을 말하니까 안에서 종이 울렸어요.”
그날 밤의 정식 경매에 들어가기 전, 일행은 먼저 등대 뒤편을 조사하기로 했다. 관리인과 선장의 입회 아래, 건물의 공용 통로까지만 접근하기로 약속했다. 문을 강제로 열거나 아이를 시험 대상으로 세우지 않는다는 조건도 붙였다.
등대 뒤편에 닿자 짠물이 떨어지는 돌계단 아래 어두운 철문이 보였다. 문은 오래된 것이었지만 최근 윤활유를 바른 흔적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세 줄 파도와 종을 겹친 문양이 있었다.
라일이 그 앞에 섰다. 돌벽을 바라보던 그의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마지막 배달인은 증인이 아니다.”
철문 안쪽에서 낮은 종소리가 났다.
진혁은 라일을 돌아봤다. 그 말은 아까 주운 황동 종의 혀에 새겨진 문장이었다. 어쩌면 아이가 배운 구호가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던 오래된 문장일지도 몰랐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작은 투입구가 열리더니 접힌 종이 한 장이 바깥으로 떨어졌다.
‘당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먼저 돌려받으십시오.’
라일이 그 종이를 바라봤다. 평소의 능청스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정말로… 제 이름을 누가 가지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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