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44화
PAYLUA ORIGINAL · 제44화

44화. 세 번째 종을 가진 아이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574자

오프라인 책장
잔조도는 지도에서 점 하나로 표시된 섬이었다. 멀리서 보면 낮은 바위 언덕에 등대 한 개가 서 있는 모습이 전부였다. 하지만 청솔호가 가까워지자 바위마다 작은 계단과 나무다리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빈틈에는 그물이 걸렸고, 목재 발판 아래에서는 조개껍데기를 씻는 물이 흘렀다. 섬 사람들은 거센 파도를 피하려고 집보다 작업장부터 바위 틈에 지었다. 옛 등대는 꼭대기 유리가 깨진 채 서 있었다. 낮에는 빛을 내지 않았지만 등대 아래 좁은 광장에는 임시 시장이 열렸다. 멀쩡한 배에서 떼어 낸 놋쇠 손잡이, 바닷물이 들어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 휴대 난로, 표면에 따개비가 붙은 고대 금속 조각이 천막 아래 쌓여 있었다. 그 사이에서 해초를 삶은 국물 냄새와 숯불에 구운 굴 냄새가 풍겼다. 진혁은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물건의 가격표부터 읽었다. “저 난로, 동화 스무 닢이면 비싸네요.” “깨끗한 것만 보시네요.” 라일이 말했다. “옆에 있는 망가진 나침반이 훨씬 귀합니다.” “왜요?” “시장 사람들이 그걸 안 건드리니까요. 누가 주인인지 아는 물건을 도둑이 제일 싫어하거든요.” 카렌이 두 사람의 등 사이로 끼어들었다. “오늘은 물건 사러 온 게 아니에요.” “저는 출장 와서 시장 조사도 할 줄 아는 유능한 직원입니다.” 진혁은 당당했다. “그렇다면 먼저 점심부터 사요. 어제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요.” 카렌이 말하자 진혁은 시장 뒤편의 굴국집을 찾았다. 주인은 작은 나무 의자 세 개를 내주었다. 굴과 말린 무를 넣고 오래 끓인 국은 맑았지만 바다 냄새가 깊었다. 뜨거운 김을 쐬니 항해 내내 얼어 있던 손가락에 감각이 돌아왔다. 그때 아이 하나가 식당 앞을 지나갔다. 갈색 외투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열두어 살 소년이었다. 커다란 외투 소매 사이로 드러난 손목에는 긁힌 자국이 있었고, 왼쪽 구두 밑창에는 실이 몇 겹이나 덧대어져 있었다. 아이는 자기 키보다 긴 장대를 메고 있었다. 장대 끝에는 크기가 다른 종 세 개가 걸려 있었다. “세 번째 종은 언제 치니?” 라일이 물었다. 소년은 발걸음을 멈췄다. 단순한 질문인데도 눈을 반짝이는 대신 뒷걸음질부터 쳤다. “배달 주문은 시장 사무소에서 받으세요.” “주문하려는 게 아니야. 네가 쓰는 신호가 궁금해서.” “외지인은 궁금해하면 돈부터 내야 해요.” 소년은 도망칠 듯했다. 진혁이 자기 국그릇을 앞으로 밀었다. “그럼 국 한 그릇과 이야기 한 토막을 바꾸면 안 될까?” 아이는 한동안 국그릇과 어른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가장 멀리 놓인 의자 끝에 앉았다. 숟가락을 쥔 손이 몹시 빨랐다. 국을 삼키는 속도만 봐도 하루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테오였다. 시장의 심부름꾼이자 어선의 기름통을 전달하는 배달인. 부모가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혼자 산다는 사실은 숨기지 않았다. 잔조도에서는 배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누군가는 시장의 값을 외해로 전하러 다녀야 했다. 테오는 그런 일을 했다. “종은 원래 다르게 쳐요.” 테오가 말했다. “첫 번째는 배가 왔다는 소리, 두 번째는 수취인이 있다는 소리, 세 번째는… 사람이 물건보다 먼저라는 소리예요.” 라일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걸 누가 가르쳤지?” “엄마요. 엄마는 배가 위험하면 다들 물건부터 구하러 달려가다가 사람이 다친다고 했어요. 종을 세 번 치면 짐을 버리고 사람부터 살리래요.” 라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가 알고 있던 신호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오랫동안 쓰인 규칙이 지역과 세대에 따라 조금씩 바뀐 듯했다. “그런데 외해에서 그 신호를 거꾸로 쓰는 사람들이 있어.” 라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테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광장의 반대편에서 회색 망토를 입은 사내 둘이 사람들에게 작은 원형 표를 나누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요.” “무슨 표지?” 카렌이 물었다. “오늘 밤 제0호 감정사의 유산을 볼 수 있는 표래요. 금화 한 닢을 내면 앞줄, 두 닢을 내면 물건도 만질 수 있대요. 이름을 적으면 공짜라는데 저는 안 했어요.” “왜 안 했니?” 테오는 외투 소매를 끌어내렸다. “엄마가 이름은 종이보다 오래 간다고 했거든요.” 진혁은 세리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보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 그걸 장난처럼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식사를 끝낸 뒤 시장 사무소를 찾아갔다. 사무소는 등대 아래에 붙은 작은 벽돌집이었다. 물때표와 사라진 어선 이름이 기록된 널빤지가 한쪽 벽을 채웠다. 관리인은 얼굴에 화상을 입은 노파였는데, 공공 선착장 사용료를 받는 것 외에는 시장 경매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여기 주인이 아니에요.” 노파가 말했다. “바다에 떠 있는 큰 선박을 빌려 밤마다 손님을 모으지. 우리 섬의 이름만 빌려 쓰는 거야. 사람들이 등대를 믿는 걸 이용하지.” “그럼 누구한테 사용 허가를 받습니까?” “받지 않아요. 관청 배가 오기 전에 떠버리니까.” 카렌은 날짜별 방문 선박 목록과 납부한 정박비를 확인했다. 일주일 사이 똑같은 배가 다른 이름으로 세 번 입항한 기록이 있었다. 선박 소유자는 ‘회색 장부 조합’이라는 신규 법인으로 적혀 있었는데 설립 소재지는 비어 있었다. 합법적인 경매를 열려면 위탁품 소유권과 거래지를 신고해야 했다. 그러나 수상 경매는 바깥 수역이라는 틈을 이용해 여러 관할의 검사를 피하고 있었다. 시장 사무소 안쪽에서는 또 다른 다툼이 있었다. 물에 젖은 어망을 두고 어부 둘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끊어진 그물의 매듭 모양은 비슷했고, 어느 쪽도 이름표를 달지 않았다. 노파는 곧바로 주인을 정하지 않고 전날 그물을 걷은 위치와 같이 일한 사람의 이름을 물었다. 옆에 있던 노인이 간단한 기록을 찾아오자 다툼은 생각보다 빨리 풀렸다. 진혁은 그것을 보며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화려한 마법이 없어도 사람의 물건을 돌려줄 수 있었다. 반대로 대단한 유물이 있어도 기록이 사라지면 한 사람의 삶이 통째로 흐려졌다. 노파가 물었다. “자네는 도시에서 큰 경매를 하는 사람이라지?” “아직 보조를 갓 벗어난 수준입니다.” “그럼 배워 두게. 여기서는 물건 하나 잘못 넘기면 내일 마주칠 사람이 굶는다네.” 그 말은 사무실에서 들은 어떤 교육보다 오래 남았다. 진혁은 노파에게 잔조도의 사고 기록과 공증 안내를 마레온에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노파는 잘난 척하는 도시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도울 사람이면 환영이라고 답했다. 시장 밖으로 나오자 테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낡은 목걸이 끈을 진혁에게 내밀었다. 끈에는 장식이 없었지만 세 줄 파도 모양의 묶음이 남아 있었다. “이 매듭을 아는 어른을 찾으러 왔죠?” 라일이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알았어?” “어젯밤 회색 배 사람들이 물었어요. 세 줄 파도와 종을 기억하는 남자를 못 봤냐고. 그 사람을 찾으면 금화 열 닢을 준다면서요.” “나를?”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말 안 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이 묻는 이름이 사람이 아니라 화물 목록에 적혀 있었거든요.” 카렌의 표정이 굳었다. 진혁은 아이가 잠든 곳을 물었다. 테오는 시장의 빈창고에서 다른 심부름꾼 두 명과 잔다고 했다. 섬의 관리인은 아이들이 밤에 혼자 선착장에 나오지 않도록 보살피고 있었지만, 항로 경매 조직의 손길까지 막기는 어려웠다. 일행은 노파와 상의해 테오를 안전한 건물에 머물게 하고 선착장 경비에게 회색 배의 인상착의를 공유했다. 누구의 보호자 행세를 하며 아이를 데려가는 일은 하지 않았다. 테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할 때마다 상대가 받아 적는 것을 확인했다. 섬 관리인은 테오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선박과도 단독으로 계약하지 말고 시장 사무소에서 배달 요청서를 확인하도록 했다. 아이가 당장 벌이를 잃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노파는 시장의 수리공과 생선 판매자들이 돌아가며 심부름 일감을 주겠다고 했다. 진혁은 그들이 현실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외지인이 며칠 떠들고 사라지는 것보다, 아이의 다음 아침이 안전한 편이 중요했다. 라일은 등대 밑에서 한동안 배달인들의 오래된 경로표를 들여다봤다. 경로표는 멋진 보물 지도가 아니었다. 얕은 수심을 나타내는 점과 조류가 약해지는 시간을 그려 놓은 낡은 작업 도면이었다. 그러나 작은 필체로 적힌 ‘바람이 북쪽에서 불 때 아이를 보내지 말 것’이라는 문구를 발견하자 그는 오래 서 있었다. 누군가 오래전에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을 걱정했고, 그 말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상해요.” 라일이 말했다. “어릴 때는 누가 제게 그런 말을 해 준 줄도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한 줄 한 줄이 다 걱정하는 말이네요.” 카렌은 경로표를 다시 접어 보관함에 넣었다. “기억이 없다고 누군가의 마음까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겠죠.” “그런 말은 검사의 업무에 포함됩니까?” “사람을 진술서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일이죠.” 그 순간 시장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술에 취한 어부가 구슬을 파는 점원의 전단지를 들고 해묵은 부채를 없앨 수 있느냐고 떠들었다. 점원은 구슬을 소유하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빚은 잃어버린 물건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진혁은 어부에게 돈을 쓰기 전에 어떤 계약으로 빚을 졌는지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어부는 실망해 떠났지만 조금 뒤 시장의 공증 안내소 위치를 물으러 돌아왔다. 어떤 유물은 진짜일 수도 있었다. 어떤 유물은 위대한 힘을 가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힘을 확인하기 전에도 각자의 바람을 걸고 돈을 내고 있었다. 진혁은 그 욕망을 비웃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겨우 몇 달 전에는 월급만 조금 올라가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날 저녁, 잔조도 등대 아래 광장에 임시 감정장이 열렸다. 기둥 네 개를 세우고 낡은 돛을 지붕으로 삼은 작은 장터였다. 사람들은 젖은 외투를 입은 채 줄을 섰고, 경매 담당자들은 서류 가방을 땅에 놓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렸다. 진혁은 처음으로 제0호 감정사의 유산이라고 적힌 전시함을 보았다. 손바닥만 한 푸른 구슬이었다. 표면에는 별자리 같은 점들이 박혀 있었고, 뒤집으면 안에서 작은 배 그림이 움직였다. 구슬 아래쪽에는 작은 명판이 붙어 있었다. ‘제0호 감정사의 유산, 제일 예비품. 소유한 사람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관람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금화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바다에 빠진 가족의 유품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진혁의 오른손이 다시 뜨거워졌다. 그는 구슬을 만지지 않고 전시함의 유리 두께와 밑받침의 흠집을 먼저 살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구슬 속 배가 가리키는 방향이 매번 똑같았다. 수천 가지 잃어버린 물건 가운데 어느 것을 찾든, 구슬은 하나의 좌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건 감정품이 아니라 안내판 같습니다.” 그때 전시함 옆의 점원이 낮게 웃었다. “감정사님. 유산의 가치는 찾는 사람에게 달렸지요. 오늘은 누가 무엇을 잃었는지부터 말씀하시겠습니까?” 진혁은 그 점원의 장갑을 보았다. 검은 가죽 장갑 손목에, 열쇠 구멍 모양의 오래된 화상 자국이 얼핏 비쳤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4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4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