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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42화
PAYLUA ORIGINAL · 제42화

42화. 물에 젖지 않는 송장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528자

오프라인 책장
청솔호의 하부 선실은 갑판에서 보는 것보다 낮고 좁았다. 두 사람이 마주 서면 어깨를 틀어야 했고, 선박 옆구리에 박힌 작은 둥근 창은 절반쯤 소금때로 흐려져 있었다. 밧줄 묶음과 예비 돛, 식수 통이 벽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말린 오징어와 타르 냄새가 진하게 섞였다. 배가 기울 때마다 모서리의 물통이 나무벽을 두드렸다. 진혁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맨발 자국을 떠올렸다. 갑판을 몇 차례 수색했지만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헥터에게서 빌린 휴대 마력등을 난간 밑으로 비추자 젖은 자국은 물기가 닦인 것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귀신인가요?” 카렌이 물었다. “귀신이 타면 선비를 따로 내야 합니까?” “그 질문은 진짜 귀신을 만났을 때 하세요.” 라일이 창가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가 손가락 두 개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쿵, 쿵, 잠깐 쉰 다음 짧게 탁. 묘하게 규칙적인 리듬이었다. “왜 그래요?” 진혁이 물었다. “이 소리를 알아요. 어린 시절 물건을 옮기던 사람들은 문을 세 번 두드렸습니다. 먼저 두 번은 배달인이 왔다는 뜻. 마지막 한 번은 안에 위험이 없느냐고 묻는 소리.” “그런 걸 왜 이제 얘기합니까?”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때는 제가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진혁은 그 말을 장난으로 넘기지 않았다. 라일은 예전부터 가벼운 농담 뒤에 무거운 침묵을 감추곤 했다. 루크의 공방에서 발견한 세 줄 파도와 종 무늬의 목걸이는 아직 증거 보관 중이었다. 그걸 돌려받을 정당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선실 문이 열리고 선장 마테오가 들어왔다. 그는 마른 해도를 테이블에 펼치더니 작은 청동 추 네 개로 모서리를 눌렀다. “손님들이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해도 위에서 회색 항로는 좁은 실처럼 이어져 있었다. 마레온 북쪽 해협을 빠져나가면 바닥이 얕은 ‘유리턱’이 있고, 그다음 ‘부서진 등대’와 ‘빈곶 부표’ 사이를 지나 외해로 이어진다. 관청 해도에는 접근 금지 선이 굵게 그어져 있었다. 바다 위의 실제 길은 조류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달라졌다. “이 길은 바닷길이지 경매장이 아니야. 그런데 석 달 전부터 밤마다 화물 접수표가 떠다니기 시작했어. 배 이름과 화물, 심지어 승객이 잠들어 있는 시간까지 적혀 있었지.” “누가 쓰는 겁니까?” “그걸 알면 내가 오늘 너희를 태웠겠냐?” 마테오는 접힌 종이를 꺼냈다. ‘항로 통행료 납부 완료’라고 쓰인 종이였다. 그가 물에 담갔다 꺼내자 흰 종이의 다른 부분은 부풀었지만 글씨 주변만 그대로였다. “지난달엔 이걸 믿은 화물선 선주가 서명했어. 다음 날 배는 멀쩡히 돌아왔는데, 자기 화물의 소유권이 다른 상회로 옮겨 있었지. 심지어 항만 창고에 보관해 둔 물건까지 말이야.” 카렌이 문서를 받아 두 손으로 팽팽하게 폈다. “서명과 원 계약서가 확인되었습니까?” “소송 중이야. 소송비가 화물값의 절반을 넘었다더군.” 마테오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누가 물어보면 바다가 빼앗아 갔다고 말하래. 선장은 그렇게 말해도 되지만, 선원들은 그렇게 말하지 못해. 굶으니까.” 진혁은 그제야 회색 항로의 경매가 사람들을 유인하는 특별한 행사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미 바닷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임의의 비용을 물리고, 납부 기록을 권리 이전의 근거로 포장하는 장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선원들에게 송장의 소문은 오래된 상처였다. 오전 당직을 마친 기관수 다브는 진혁의 옆에 앉아 말린 귤껍질을 씹었다. 다브는 회색 항로를 십 년 넘게 오갔다. 고기를 실은 배에서 시작해 우편선으로 옮겼고, 선원이 부족한 날에는 항만의 쓰레기를 치우는 작은 준설선도 탔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폭풍이 아니라 일할 배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선주들은 서류에 사인하라고 할 때마다 위험한 이야기를 안 해요.” 다브가 말했다. “우리는 글을 몰라서 속는 게 아닙니다. 알고도 사인해야 다음 달 일을 받으니까요.” 진혁은 선원들의 보수가 항해 한 번당 지급되는지 물었다. 다브는 웃었다. 보통은 예정된 항로를 마쳐야 전액을 받고, 중간에 회항하면 운항 사유를 놓고 선주와 실랑이를 해야 했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에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배가 생겼다. 마테오가 이번 계약에서 회항에 따른 선원 보수를 별도로 보장한 것은 오래된 경험 때문이었다. “너희가 무사히 돌아오는 값은 미리 계산해야 해.” 마테오가 말을 거들었다.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보상금을 쥐어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진혁은 자신의 출장 정산 장부 뒷장에 그 말을 적었다. 루멘에서도 위험 수당을 달라고 웃으며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경비와 기술자들이 위험을 먼저 떠안는 일이 많았다. 다음번에는 선원들이나 경비원들의 계약서를 별도로 확인하자고 마음먹었다. 점심에는 배의 취사 담당자가 쌀과 콩을 함께 끓인 죽을 내왔다. 배가 흔들릴 때 뜨거운 국그릇을 들고 다니면 위험하다고 해서, 손잡이가 있는 낮은 나무 사발을 썼다. 카렌은 갑판에서 식사하려던 진혁을 선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바람에 날리는 소금 때문에 상처 난 손이 더 쓰라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제 제 식사까지 감독합니까?” 진혁이 물었다. “배 안에서는 누구라도 감독해야죠. 당신은 특히요.” “루멘에서 월급을 제일 적게 받는 직원한테 이런 관심을 주시다니.”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서요.” 카렌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진혁은 그때에야 얼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돌려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을 벌리고 무슨 대답을 찾는 사이 그녀는 자기 몫의 죽을 다 먹고 일어섰다. 라일은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사발 속 콩알을 세는 척했다. 정오 무렵 바람이 북서쪽으로 돌아섰다. 갑판 위의 돛이 크게 부풀었고 선원들은 좌현의 줄을 세 번 감아 묶었다. 선장은 운반비를 아끼려던 진혁에게 쇠갈고리를 하나 건네며 화물 통을 고정하라고 했다. 진혁이 버둥거리는 동안 카렌은 두 개를 끝냈다. “검사라서 매듭도 잘 묶습니까?” “저희 집은 어릴 때 그물 손질을 했어요. 아버지가 일이 끝나면 늘 같이 했죠.” “그럼 레온 씨가 묶은 매듭도 구별합니까?” 카렌의 손이 잠깐 멎었다. 그녀는 줄 끝을 당겨 단단히 조였다. “구별하고 싶어요. 구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런데 십수 년 전의 줄이라면 그걸 기억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죠.” 진혁은 괜히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지만 카렌은 도리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직접 확인할 거예요. 누가 아버지 물건을 팔겠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정말 가지고 있었는지부터.” 해가 기울 즈음 청솔호는 첫 검문 부표에 닿았다. 녹슨 부표의 꼭대기에는 낡은 황동 종이 매달려 있었고, 물속에 잠긴 쇠사슬에서 해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그런데 종 아래에는 새 가죽 주머니가 있었다. 어부들이 손에 닿지 않도록 높은 곳에 매다는 바로 그 높이였다. 마테오는 갈고리로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안에는 선박별 송장 열세 장이 들어 있었다. 각 송장에는 화물의 수량과 무게가 적혀 있었지만 맨 아래의 소유자 칸에는 이상한 말이 반복되었다. ‘경매 종료 시까지 보관자 변경 예정.’ 청솔호의 송장도 있었다. 아직 지나지 않은 오늘 밤 날짜였다. 화물 칸에는 빈 식수 통 세 개, 돛 한 벌, 건어물, 그리고 믿기 힘든 물품이 적혀 있었다. ‘제7봉인의 생체 열쇠 한 명.’ 진혁은 종이를 움켜쥐었다.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능력을 써서 읽지 않아도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문서에는 가격란까지 있었다. ‘예상 낙찰가: 오십만 금화.’ “이봐요.” 진혁이 말했다. “저를 오십만 금화에 팔 거면 적어도 제게 수수료를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라일은 종이의 가장자리를 관찰했다. 카렌은 그 문서를 탁자에 펼쳐 인영 위치와 기입 순서를 살폈다. “기입된 시간이 이상해요. 이쪽 줄은 오래된 잉크인데 진혁 씨 이름을 뜻하는 문구만 최근에 덧칠됐습니다.” “40화 전에 찾아낸 옛 원부 조작과 같은 방식이군요.” 진혁은 목소리를 낮췄다. “기존 권한 틀을 빌리고, 그 위에 새 사람을 끼워 넣는 수법.” 선장이 송장 한 장을 뒤집었다. “이것 봐. 배마다 적힌 ‘담당 항해사’가 같은 사람이야. 이름도 없어. 서명은 세 줄 파도와 종.” 라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옷깃 안쪽을 만졌다. 지금은 없는 목걸이가 걸려 있던 자리였다. 문제는 송장을 없애는 일이 아니었다. 바닷물에 담가도 글씨가 번지지 않는 재질이라면 폐기했다고 주장하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같은 사본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진혁은 아벨이 가르쳐 준 대로 회수 장소와 시각을 적고, 각 장의 모서리에 선장의 선박 인장을 찍었다. 카렌은 소지품 목록과 물에 젖지 않는 특성을 따로 기록했다. 선원 둘도 입회했다. 항로 표지를 지나자 수면이 조금 달라졌다. 마레온 가까이에서는 물속의 모래가 잔잔한 갈색 띠를 만들었지만, 이곳의 바닷물은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짙은 녹색이었다. 표면에는 물고기가 남긴 작은 원이 이어졌고, 멀리 보이는 암초에는 흰 파도가 낮게 부딪쳤다. 다브는 종종 수면에 떠오르는 나무 조각을 갈고리로 건져 올렸다. 오래된 파편인 줄 알았는데 최근에 자른 판재도 있었다. “요즘은 저쪽에서 버린 짐이 많이 떠내려옵니다.” 다브가 말했다. “배를 불태운 흔적도 있었어요. 물건을 몰래 옮기는 사람들은 사고라고 말하지만, 바닷물에 탄 냄새는 오래 남아요.” 진혁은 그 파편 가운데 하나에 새겨진 숫자를 보았다. 998과 닮았지만 마지막 획이 잘려 정확히 읽을 수 없었다. 그는 즉시 항로 기록표에 발견 위치를 적었다. 물에 떠다니는 나무 하나로 범죄를 단정할 수 없지만,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표식이 반복된다면 조사할 만한 길이 될 터였다. 마테오는 멀리서 이상한 돛 모양을 발견하고 망원경을 꺼냈다. 선원들의 말소리가 조금 줄어들었다. 조타륜 옆의 요셉이 숨을 들이켰다. 누군가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 사이 멀리서 검은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선체가 얇고 돛에는 문장도 없었다. 수면을 가르며 다가오던 배는 청솔호에서 한 화살 거리쯤 남겨 두고 멈추었다. 갑판 위에 선 여자가 손을 들었다. 회색 망토를 입은 장년 여인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남녀 두 명이 커다란 황동 상자를 떠받치고 있었다. “루멘 경매장 일행이 맞습니까?” 여자가 외쳤다. “누구십니까?” 카렌이 답했다. “회색 항로 임시 물품 관리인입니다. 보관자 변경 예정 물품을 인수하러 왔습니다.” 여자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금화가 가득해 보이는 작은 자루들이 들어 있었다. 바다 냄새에 섞인 금속의 탁한 광택이 눈을 찔렀다. “오십만 금화의 선입금 중 계약금 오천을 지급하겠습니다. 사람 하나를 넘기면 나머지는 경매 뒤에 정산하지요.” 마테오가 선실 뒤쪽에서 석궁을 꺼냈다. 카렌은 몸을 세워 난간 앞을 막았다. 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께 제가 비싸게 팔린다고 말하면 월급을 올려 주실까요?” “그 전에 살아서 돌아가요.” 카렌이 짧게 말했다. 회색 망토의 여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황동 상자를 닫았다. 그리고 수면을 향해 종을 세 번 쳤다. 안개가 배와 배 사이에서 갈라졌다. 청솔호의 선실 문 아래로, 방금까지 없었던 맨발 자국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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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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