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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41화
PAYLUA ORIGINAL · 제41화

41화. 안개가 값을 매기는 항로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691자

오프라인 책장
마레온 자유항에서 새벽을 가장 먼저 깨우는 것은 갈매기가 아니었다. 북항 제분소의 쇠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밀가루가 실린 통이 경사로를 굴러가면 어둠 속에서 철제 고리가 부딪쳤고, 그 소리를 들은 빵집 화부들이 화덕에 불을 넣었다. 그다음에는 얼음 창고의 문이 열리고, 어부들의 장화가 물웅덩이를 밟았다. 갈매기는 그제야 지붕 위에서 고함을 질렀다. 마치 자신들이 항구를 깨웠다는 듯이. 서진혁은 그런 북항의 소리를 들으며 루멘 경매장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제복 외투의 단추를 두 개나 잘못 끼웠다. 밤새 서류를 정리하다 깜빡 잠든 데다, 출발 전에 세리아가 사무실로 불러 출장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위험 지역 수당은 있죠?” “있어.” “숙박비는 별도죠?” “선실이 숙박이야.” “그럼 파도에 흔들리다가 토하면 위험 지역 수당과 숙박비를 동시에 청구할 수 있습니까?” 세리아는 서류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자네가 항해를 시작하기도 전에 난파할 가능성이 가장 높군.” 문 옆에서 기다리던 카렌이 진혁의 삐뚤어진 단추를 바라봤다. 손을 뻗을 듯하다가 그만두고 말로만 알려 주었다. “세 번째 단추부터 다시 끼워요. 배에서 그렇게 다니면 선원들이 도박에 진 사람으로 알겠네요.” “저희 사장님과 도박하면 월급이 걸립니다.” 라일은 건물 모퉁이에서 빵을 씹고 있었다. 어젯밤 누군가 집어던진 초대장 봉투가 그의 겨드랑이 아래 끼어 있었다. 까만 종이에 회색 잉크로 그려진 가느다란 수로. 그 가운데에는 방금 굳은 밀랍처럼 둥근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제0호 감정사의 유산 공개 경매. 회색 항로 제삼의 밤. 시작가 공개 불가. 입장자는 스스로 가져온 값을 제시할 것.’ “초대장부터 불친절합니다.” 진혁이 말했다. “시간은 밤이고, 장소는 항로 전체고, 시작가는 모른다니. 식당 광고에 ‘오면 알려 드림’이라고 써 놓은 꼴이잖아요.” 라일이 남은 빵을 삼켰다. “그런 식당은 대개 비싸지요.” 동이 트자 경매장 외벽의 황동 장식이 붉게 물들었다. 세리아는 진혁을 데리고 지하 심실로 내려갔다. 유난히 추운 아침이었다. 벽마다 구리 관이 지나갔는데,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는 누군가 나지막하게 숨 쉬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미란이 독립 청자 장치의 유리관을 살펴보고 있었다. 기계 옆에는 밤새 교대 근무를 한 기술자 두 명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자 진혁의 출장 기분이 조금 사라졌다. “나가도 되겠습니까?” “모라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미란이 대답했다. “우리는 아직 그 신호를 완전히 읽지 못해. 하지만 출장을 가는 사람과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나눌 수 있지. 강제 추출 밸브는 봉인했고, 항만 방벽의 대체 펌프는 오늘부터 시험 가동이야.” 시의회 감찰관 이사벨이 준비한 문서도 있었다. 최초 보호 협약의 사본은 봉인함 두 개에 나누어 보관하고, 발견 지점과 봉인 번호를 서로 다른 장부에 기록하기로 했다. 아흔일곱 건의 미열람 신청서 역시 루멘에 남긴다. 그걸 배에 싣고 나갔다가 빼앗기기라도 하면, 지금까지의 조사는 소문만 남게 될 터였다. 세리아가 진혁에게 얇은 빈 장부를 내밀었다. “이번 출장의 장부야. 무슨 유물을 보더라도 먼저 시세를 적지 마. 누가 출처를 증명하는지부터 적어.” “그럼 돈은 어디에 적습니까?” “맨 뒤에.” “가장 중요한 걸 맨 뒤에요?” “보물보다 사람이 먼저니까.” 세리아의 목소리는 농담이 아니었다. 진혁도 더는 웃지 않았다. 출발을 알리기 위해 진혁은 세리아의 집무실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창가에는 전날 시민들이 제출한 항만 안전 의견서가 쌓여 있었다. 방벽을 계속 유지해 달라는 상인들의 서명과, 모라의 의사를 확인하기 전에는 강제 추출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같은 책상에 놓여 있었다. 세리아는 어느 쪽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항만 기술자의 계산서를 위에 놓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제출한 대피 계획을 그 아래에 끼워 넣었다. “내가 떠나서 괜찮을까요?” 진혁이 물었다. “자네가 여기 있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야. 그리고 나 혼자 이 도시를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지.” 세리아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 지난 일들 때문에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 유나와 다퉜던 책임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다시 정보를 숨길 이유는 되지 않았다. 진혁은 그 마음을 짐작하고 책상 위의 대피 안내문을 가지런히 정리해 주었다. “그럼 돌아올 때는 적어도 쓸 만한 증거를 가져오겠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 “당연하죠. 빈손으로 돌아오면 수당만이라도 받아야죠.” 세리아가 웃었다. 진혁은 그제야 출장에 나설 수 있었다. 북항의 통제소 앞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회색 항로는 지도에서 회색 물감으로 덮인 지역이 아니라, 마레온 바깥의 수중 암초와 오래된 마력 조류가 얽힌 좁은 바닷길을 뜻했다. 예전에는 유물 운반선이 외해를 피하려고 쓰던 지름길이었다. 십여 년 전부터는 해무 속에서 나침반이 한 바퀴씩 틀어지는 사고가 잦아져 허가받은 안내선만 지나갈 수 있었다. 세리아가 고용한 선박은 작은 화물선 ‘청솔호’였다. 선수에는 새파란 물감을 덧칠한 나무 인형이 붙어 있었지만 선체는 오래되었고, 갑판 곳곳에 발꿈치 모양의 수선판이 박혀 있었다. 선장 마테오는 콧수염이 짧은 중년 사내였다. 그는 처음부터 승객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큰 칼 가져온 사람은 칼집에 묶고, 남의 주머니 잘 여는 사람은 자기 주머니부터 잠가. 회색 항로에서는 싸움보다 떨어뜨린 물건 하나 건지는 게 비싸다.” 라일이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남의 주머니를 열지 않습니다.” “그럼 네 허리춤에 걸린 내 선실 열쇠는 왜 거기 있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보안 상태를 시험했습니다.” 카렌은 진혁의 옆에서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선장은 열쇠를 돌려받고 나서야 출항 명부를 펼쳤다. 한편 세리아는 배에 타지 않았다. 루멘의 안전 조치와 사흘 뒤 재심사에 책임자가 필요했다. 대신 벨라가 경매용 회계 봉투를 진혁에게 맡겼다. 정상 거래를 위한 보증금 스무 금화, 선박 임차료, 비상 식량비, 의료비가 각각 분리되어 있었다. “이 돈으로 유산을 낙찰받아 오라고요?” 진혁이 물었다. “아니. 적어도 굶지는 말라는 거지.” 벨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수상한 경매에 보증금부터 털어 넣으면 돌아와서 내 얼굴 볼 생각 하지 마.” 출항 전 점검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테오는 승객 셋에게도 선원 수첩의 간단한 규칙을 읽게 했다. 선내 화재가 나면 가장 가까운 물통이 어디 있는지, 구명 부표가 어디 걸려 있는지, 밤에는 어느 쪽 갑판이 화물 통로인지 따져 보게 했다. 진혁이 오른쪽과 왼쪽을 두 번 바꿔 말하자 선장은 갑판에 분필로 커다란 화살표를 그렸다. “방향감각이 그렇게 없는데 왜 회색 항로에 오겠다고 했어?” “방향을 찾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저는 물건의 가치를 찾는 사람이고요.” “바다에서는 방향 잃으면 물건도 함께 잃어.” 선원들은 농담에 웃었지만 그 말이 얼마나 진지한 충고인지 곧 알 수 있었다. 항로 허가증에는 통행 가능한 해역과 철수 기준이 분명히 적혀 있었고, 허가를 받은 선장도 안개가 일정 거리 이상 짙어지면 통항을 멈춰야 했다. 청솔호 선원 중 가장 어린 요셉은 글을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해 선장이 위험 신호를 그림으로 그려 주었다. 진혁은 그 아이에게 문서를 읽어 주다가 자기 나이에 그랬다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했다. 화물의 무게를 확인하는 일도 필요했다. 곡물 통은 좌현에, 물통과 수리용 목재는 우현에 배치했다. 짐이 한쪽으로 쏠리면 급하게 방향을 바꿀 때 균형을 잃는다. 라일은 제법 숙련된 손놀림으로 밧줄을 묶었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진혁은 그가 바다 위에서 유난히 안정된 걸음을 걷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린 시절 항해사들에게 배웠다는 이야기가 단순한 기억의 조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렌은 이안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선착장 우편 담당자에게 맡겼다. 동생이 회복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그녀의 표정에는 미묘한 긴장이 스쳤다. 바다로 떠나는 자신이 집을 비워도 되는지 수십 번 물었을 것이다. 진혁이 괜한 농담을 하지 않고 곁에 서 있자 카렌이 먼저 말했다. “이안이 오늘부터 혼자 병원까지 걷기로 했어요. 예전에는 누가 길을 정해 주지 않으면 밖으로 못 나왔는데요.” “잘됐네요.” “그러니까 이 항해도 잘 끝났으면 좋겠어요. 집에 돌아가서 그 애가 혼자 걸었다는 얘기를 직접 듣고 싶거든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의 이름과 삶을 거래하려던 자들을 쫓는 일이 수익 좋은 유물을 찾는 것보다 먼저인 이유가, 그 짧은 말속에 있었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 부두의 소년 한 명이 선장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방수 천으로 감싼 작은 접수표였다. 손때가 많이 묻은 종이 아래쪽에는 진혁이 보았던 초대장과 똑같은 검은 원이 찍혀 있었다. “오늘부터 회색 항로를 지나는 모든 선박은 입장료를 내야 한대요.” 소년이 말했다. “여기에 이름과 가장 소중한 물건을 적으면 된다던데요.” 선장은 얼굴을 굳혔다. “누가 그런 걸 받으라고 했지?” “아침에 검은 모자 쓴 사람이요. 뱃사람들이 다 적어야 한다고 했어요.” 진혁은 접수표를 잡아 보려다가 오른손 손바닥의 붕대를 의식하고 왼손으로 돌렸다. 종이에는 미세한 물결 무늬가 찍혀 있었다. 그는 가장자리를 살폈다. 마르지 않은 인쇄 잉크 냄새가 났다. 예전에 이 종이를 들고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어젯밤 찍어 낸 인쇄소의 쇠판이 얼핏 떠올랐다. [등록증 표면. 새 인쇄.] [기억 잔향: 세 줄 파도와 종.] [실제 징수 권한: 확인 불가.] 진혁은 곧바로 손을 떼었다. 관자놀이 안쪽이 쿡 찔렸다. 카렌이 그의 얼굴빛을 보고 팔을 잡았다. “또 능력 썼어요?” “한 줄만 봤습니다. 세 줄은 병가 신청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들은 소년의 증언과 접수표를 항만 경비에게 남겼다. 돈을 걷는 자의 신분이 확인되지 않는 한 서명하지 말라는 안내도 부탁했다. 선장은 닻줄을 풀라는 명령을 내렸다. 청솔호가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가자 루멘 경매장의 첨탑이 지붕 사이로 작아졌다. 제분소 소리 대신 돛대의 삐걱거림이 들리고, 염장 생선 냄새 대신 젖은 로프의 냄새가 코에 들어왔다. 갑판 난간에 선 진혁은 세리아가 마지막으로 건넨 종이를 펼쳤다. 출장 계약서 뒷면이었다. ‘귀환 조건: 살아서 돌아올 것. 비용 정산은 그다음.’ 그는 잠시 웃었다. 그러다 회색 해무 속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항로에 들어서기 전인데도, 안개 저편에서 누군가 세 번 정확히 종을 쳤다. 선장 마테오의 얼굴에서 피가 가셨다. “첫 번째 종은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다.” “그럼 세 번째는요?” 라일이 물었다. 갑판에 걸린 구명 부표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진혁은 소리의 방향을 가늠하려 귀를 기울였지만 안개 속에서는 거리조차 알 수 없었다. 마테오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도 그 위험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진혁은 그제야 회색 항로가 허가제인 이유를 조금 이해했다. 마테오는 답하지 않았다. 항해일지의 날짜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를 적었다. ‘오늘의 길잡이, 한 명 더 탑승.’ 진혁은 갑판을 돌아보았다. 승객은 자신과 카렌, 라일뿐이었다. 그런데 젖은 갑판에는 낯선 맨발 자국이 네 사람의 발자국 사이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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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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