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온의 시의회 종은 날이 밝은 뒤에도 여러 번 울렸다.
루멘 경매장 주변에는 시민들이 붙여 놓은 종이가 늘었다. 어떤 종이에는 ‘모라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쓰여 있었고, 또 다른 종이에는 ‘항구의 안전을 희생하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두 문장은 서로 적인 것처럼 마주 붙어 있었지만,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둘 다 바라던 사람들이었다. 방벽이 무너지면 집이 침수되는 어부와, 강제 계약 때문에 이름을 빼앗긴 사람은 전혀 다른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같은 거리에서 빵을 샀고 같은 부둣길을 걸었다.
진혁은 루멘의 뒷문으로 출근했다. 아침 시장에서 산 생선 국물 냄새가 아직 외투에 남아 있었다. 경매장의 오전 업무는 여전히 바빴다. 위탁품 확인서가 쌓였고, 분실물 보상 민원이 들어왔고, 경매를 연기한 손님들이 항의했다. 거대한 비밀을 쫓는 일이 평범한 행정 업무를 없애 주지는 않았다.
벨라는 서류를 나르던 진혁에게 말했다. “정말 급한 일 아니면 점심에는 내려와서 밥 좀 먹어. 사람이 종이로만 살 수는 없어.”
“오늘은 사장님이 주시는 겁니까?”
“내가 주는 거야. 사장님은 회의에 늦어서 한 끼 건너뛸 테니까.”
진혁은 고맙다고 말한 뒤 조용히 작은 동전 하나를 식당 모금함에 넣었다. 직원들은 누가 넣었는지 모른 채 하루에 한 번씩 식당 청소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 주곤 했다. 이곳이 제대로 돌아가는 이유는 화려한 경매 무대만이 아니었다.
시계탑에서 확보한 열쇠는 아직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출입권이라는 감정 정보는 있었지만, 사용할 장소와 사용자 동의 범위는 따로 찾아야 했다. 헥터는 체포된 침입자의 진술을 토대로 오래된 루멘 도면을 수색했고, 이사벨은 열쇠를 정식 증거로 보전했다.
그날 오후 라일이 뜻밖의 발견을 했다. 시계탑 아래 기록 창고의 계단 난간에서 오래된 동판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그 동판은 장식처럼 보였지만 맨 아래에는 아주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흔여덟 번째 자리의 문은 위에서 아래로 열지 않는다.’
라일은 계단을 한참 내려가다가 문득 멈췄다. 바닥에는 창고 관리자들이 수십 년 동안 쓰던 무거운 수레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자국은 아래층을 지나 심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문이 아래에 있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열리는 거군요.”
진혁이 말했다.
둘은 허가된 조사단과 함께 오래된 화물 승강기로 내려갔다. 미란이 도면을 들고 앞장섰고, 카렌은 뒤에서 빛을 비췄다. 승강기는 평소 창고 사이로 물건을 옮길 때 사용하던 설비였지만, 바닥 아래에는 두 번째 레일이 있었다. 무거운 물건을 싣는 레일이라기보다 종이와 작은 상자를 보호해 옮기는 경로였다.
이 장소를 찾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라일은 수레 자국을 알아봤고, 미란은 오래된 레일의 방향을 읽었으며, 헥터는 통로가 화재 대피로와 겹치지 않는지 확인했다. 이사벨은 보존 명령의 적용 범위를 새로 적었다. 발견한 공간이 루멘 소유인지, 항만청 공용시설인지에 따라 증거를 다루는 절차가 달랐기 때문이다.
진혁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지도에 각자의 서명을 받았다. 누군가의 전문 기술이 없었다면 오늘 이 방의 문턱에도 서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본질 감정이라는 능력을 얻은 뒤에는 모든 물건의 답을 혼자 찾아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정사님, 손이 아프면 말하세요.” 미란이 말했다.
“아직 만지지도 않았는데요.”
“그러니까 만지기 전에요.”
라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도 알아요. 이 양반은 아프다고 말할 때쯤이면 이미 일을 세 번 더 했을 겁니다.”
카렌은 말없이 진혁의 장갑 끈을 다시 묶어 주었다. 너무 꽉 죄지 않도록 손목 아래를 풀고 붕대가 밀리지 않게 매듭을 조절했다. 진혁은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그것으로도 충분한 순간이었다.
좁은 끝방에는 작은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있었다. 화려한 제998호의 증인석과 달리 낡고 평범한 의자였다. 창문이 없는데도 책상 위에는 유리 등잔이 놓여 있었고, 등잔 안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벽에는 수백 개의 종이 봉투가 꽂혀 있었다.
아벨이 첫 봉투를 꺼내 읽었다.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이 남긴 이의 신청서였다. 어떤 사람은 강제 노동 계약을 끝내 달라고 썼고, 어떤 사람은 죽은 부모의 이름을 부당하게 팔지 말아 달라고 썼다. 그 가운데에는 아직 읽어 보지 못한 편지가 많았다.
“왜 이 기록이 숨겨졌을까요?” 카렌이 물었다.
“보관된 경위는 알아내야겠죠.” 진혁이 답했다. “하지만 숨겨진 이유와 기록의 의미는 다를 수 있어요.”
책상에는 일곱 갈래로 구분된 서명대가 있었다. 서명대의 마지막 자리에는 같은 글이 반복해서 새겨져 있었다.
‘확인하지 못한 사람에게 권리를 넘기지 않는다.’
미란은 이것이 원래 제7봉인의 비상 확인 장치라고 설명했다. 누군가 하나의 관리 계약으로 모든 권리를 주장할 때, 빠진 당사자가 없다는 것을 독립 증인이 확인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실제로 독립 증인이 누구였는지는 장부에서 지워져 있었다.
진혁은 책상 서랍을 열지 않았다. 먼저 이사벨이 공적 봉인 기록을 작성하고, 아벨이 서랍의 잠금 상태를 확인했다. 서랍은 제998호 출입권으로 정상 개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쇠를 돌려도 자동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는 장치는 아니었다. 새 서명대의 첫 줄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안에는 두 개의 물건이 있었다. 하나는 낡은 조개껍데기 세 개. 다른 하나는 모라에게 적용되던 최초 계약의 기록 사본이었다.
아벨은 사본을 천천히 읽었다. 계약의 첫 번째 조항은 예상과 달랐다.
‘본 보호 협약은 모라의 생존과 도시의 공적 안전을 함께 위한 것으로, 보호 대상의 소유권을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않는다.’
두 번째 조항에는 보호 대상의 의사 반응을 확인할 때 독립 청자의 기록을 함께 보존한다고 되어 있었다. 세 번째 조항에는 거부가 확인되면 강제 마력 채취를 중단하고, 도시 방벽은 시민 공동 부담으로 대체 설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원래는 이렇게 만들어졌군요.”
세리아가 도착해 사본을 읽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오랜 긴장이 잠깐 풀렸다. 유나는 아무도 보호할 수 없는 이상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방벽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강제 이용을 막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세리아는 그 방법을 끝까지 믿지 못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틈을 이용해 계약을 바꾸었다.
하지만 서류가 발견됐다고 곧바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것은 원본 계약의 사본이었고, 시의회가 최종 효력을 인정하려면 작성 시기와 당사자들의 진정을 확인해야 했다. 게다가 시민 공동 부담으로 전환할 새 방벽 시설도 당장 충분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은 뭘 할 수 있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이사벨은 문서를 다시 읽었다. “긴급 보전 심사를 신청할 수 있어요. 원권리자 확인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모라를 소유 대상으로 등록하지 못하게 하고, 안전이 확인된 최소한의 방벽 지원만 유지하도록 하는 겁니다. 대신 대체 설비 비용을 시의회가 공개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긴급 심사는 시의회만의 결정으로 끝날 수 없었다. 방벽 담당 기술자가 현장에 출석해 현재 출력과 비상 대체 장치의 한계를 설명했다. 항만 노동조합 대표는 시설 교체 기간에 위험 작업을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어부 대표는 항구 바깥의 작은 배들이 조류 경보를 받을 방법을 요청했다. 모라를 자유롭게 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항구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요구는 그 자리에서 같은 예산표 위에 놓였다.
오르벤의 변호인은 오래된 사본만으로 계약을 무효라고 선언할 수 없다고 반론했다. 이사벨도 그 부분은 인정했다. 그래서 긴급 심사는 최종 소유권 판정이 아니라 자료와 현장을 보전하는 임시 결정이었다. 누구도 소유권이 입증됐다고 선전할 수 없고, 새로 모라의 출력을 늘리는 계약을 할 수 없으며, 대체 시설을 준비하지 않은 채 갑자기 방벽 공급을 끊어서도 안 됐다.
진혁은 한쪽에서 심사 기록을 들었다. 통쾌한 한마디로 모든 계약을 무효로 만드는 장면은 없었다. 여러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절충 문장을 고치고, 어떤 경우에도 모라를 다시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확인하는 긴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느린 결정이 누군가의 생활을 지킬 수 있다면, 경매장의 화려한 낙찰봉 소리보다 값진 일이었다.
그날 저녁 긴급 심사가 열렸다. 오르벤도 소환 통지를 받았고 자신의 변호인과 함께 참석했다. 그는 사본의 진위를 문제 삼았지만 문서 자체를 파기할 수는 없었다. 공적 증거로 적법하게 발견됐고 원본 대조 절차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심사관들은 첫 번째 결정으로 오르벤과 다른 신청인의 독점 관리권 등록을 당분간 금지했다. 두 번째로 모라의 마력 출력에 관한 독립 감시와 중단 가능 회로를 보존하도록 했다. 세 번째로 항만청에 방벽 대체 설비 예산과 설치 일정을 공개하도록 명령했다. 모라가 자유로운 의사를 표시할 방법은 청자 장치를 통해 추가 검증하고, 그것이 모라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명확하게 적었다.
세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루멘이 모라를 소유물처럼 취급해도 된다는 주장은 공식적으로 제동이 걸렸다. 진혁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환호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심사가 끝난 뒤 카렌은 부두 산책길에 진혁을 불렀다. 밤바다는 잔잔했고 멀리 등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빛을 보냈다. 한쪽에서는 어부들이 내일 조업할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카렌은 외투 주머니에서 작은 삶은 달걀을 꺼내 진혁에게 건넸다.
“또요?”
“오늘도 점심을 건너뛰었잖아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벨라 씨가 말했어요.”
진혁은 달걀을 받아 들고 웃었다. “모든 사람이 제 식사 기록을 공유하는군요.”
카렌은 옅게 웃다가 바다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돌아올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걸로 충분한 날도 있겠죠.”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서른한 번째 후보가 된 이유를 여전히 몰랐다. 능력이 인위적으로 각성됐다는 단서 하나만으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었다.
“우리가 오늘 한 일은 누구의 값을 매긴 건 아니겠죠?” 카렌이 물었다.
“네. 누구도 사지 못하게 한 겁니다.”
그 말에 카렌은 천천히 미소 지었다.
루멘으로 돌아왔을 때 세리아는 야근 중이었다. 책상에는 새 계약 서식이 쌓여 있었고, 헥터는 야간 경비 명부를 수정하고 있었다. 라일은 상금을 받을 수 있는 사건 목록을 세고 있었지만, 그가 진짜로 바라보는 것은 풍차 언덕에서 보았던 목걸이의 사진이었다.
진혁은 벨라에게 내일의 일반 경매 목록을 받았다. 검과 돌, 오래된 지도와 목걸이, 길드가 위탁한 던전 부산물. 세상에는 여전히 매매해도 되는 물건이 많았다. 그것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내고 정당한 거래를 돕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가 막 책상에 앉았을 때 제998호 출입권의 보존함에서 작은 빛이 새어 나왔다.
[비상 서명대 제1차 열람 완료.]
[미열람 보호 신청서: 97건.]
[최종 증인 원본: 미확인.]
마지막 줄이 천천히 바뀌었다.
[다음 공개 경매 예고: 제0호 감정사의 유산.]
[경매 장소: 마레온 바깥, 회색 항로.]
진혁은 펜을 내려놓았다. 검은 인장 상회와 제0호 감정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자신들에게 진짜 무대를 보여 주려는 듯했다.
“사장님.”
그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또 무슨 일이지?”
“이번에는 계약서보다 먼저 지도를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리아는 오래 한숨을 내쉬더니 진혁을 바라봤다.
“그럼 내일부터는 출장 수당이 붙겠군.”
진혁은 즉시 표정을 바꿨다.
“어디까지 가면 얼마입니까?”
심실 깊은 곳에서 모라의 박동이 한 번 고르게 울렸다. 바깥에서는 밤배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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