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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4화
PAYLUA ORIGINAL · 제4화

4화. 동화 두 닢짜리 종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310자

오프라인 책장
마레온의 아침은 비린내와 빵 냄새가 함께 시작됐다. 항구에서 언덕으로 올라오는 넓은 돌길에는 간밤에 내린 비가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 상인들이 나무 수레를 끌고 물웅덩이를 피해 걸었다. 은빛 비늘이 반짝이는 생선을 한 아름 안은 소년이 좌판 사이를 달렸고, 두꺼운 모직 외투를 입은 모험가들은 길드 게시판 앞에서 새벽 던전 탐사 의뢰를 둘러싸고 값을 흥정했다. 푸른 항구 너머에는 아침 햇살에 돛을 밝힌 범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지상에서 보면 루멘 경매장은 호화로운 시계탑을 가진 회백색 건물이었다. 귀족들의 마차가 서는 정문은 넓고 화려했으며, 뒤편에는 상품을 들이는 짐마차 전용 도로가 있었다. 진혁이 출근할 때마다 이용하던 길은 그 도로 옆의 좁은 직원 계단이었다. 좁고 미끄럽고, 비 오는 날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목덜미를 찔렀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정문 밖에 선 채 경매장 전체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멀쩡하게 생겼는데.” 창문은 규칙적인 간격으로 놓였고 바깥벽은 깨끗했다. 천장 너머로 거대한 심장이 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부분도 수상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중앙 첨탑의 시계가 정각마다 울리는 소리는 이제 다르게 들렸다. 종소리 끝에 아주 낮은 맥박이 하나 더 섞여 있었다. “뭘 보고 있어요?” 카렌이 물었다. 그녀는 평소의 경비용 가죽 갑옷 대신 여행용 어깨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붕대는 소매 속에 감춰져 있었지만 오른손을 움직일 때마다 입술이 희미하게 굳었다. “건물 말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냥 건물 같아서요.” “사람도 그렇죠. 밖에서 보면 멀쩡한데 속이 썩은 경우가 많아요.” “저를 보면서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굳이 대답해야 하나요?” 카렌은 먼저 걸었다. 동이 조금 더 밝아지자 그녀의 은발 끝에서 젖은 빛이 반짝였다. 진혁은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두 사람은 쓰레기 운반 수레를 붙잡아 탔다. 폐기장은 언덕 반대편, 외항의 낡은 창고 구역에 있었다. 길가에는 깨진 병과 녹슨 닻, 쓸 수 없게 된 마석 장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루멘의 물건은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위탁 유물은 감정서를 작성한 뒤 소유주에게 되돌리거나, 정식 폐기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저주가 있는 물건은 봉인 주머니에 싸서 따로 처리한다. 그런데 ‘보관번호 996’에 붙은 서류에는 이상하게도 폐기 사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 “폐기 담당자와 먼저 이야기하죠.” 진혁이 말했다. 창고 앞에는 굵은 팔뚝을 가진 여인이 도끼로 나무 상자를 쪼개고 있었다. 작업복에는 기름과 흙이 묻어 있었고 한쪽 귀에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귀걸이가 달려 있었다. “루멘에서 왔습니다.” 진혁이 신분패를 내밀자 여인이 도끼를 내려놓았다. “감정사 보조? 뭐 하러 왔어. 어젯밤 난리 났다던데. 왕실 보물이라도 잃어버렸나?” “손종 하나를 찾습니다. 번호는 996이고요.” “작은 놋쇠종?” “네. 혹시 버리셨습니까?” “버리려고 했지. 그런데 버릴 수가 있어야 말이지.” 여인은 쌓인 고철 사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빈 철제 수레 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위에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만 한 종이 놓여 있었다. 가느다란 손잡이가 휘었고 울림통 표면에는 검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저걸 녹이는 화로에 넣었더니 불이 꺼졌어. 세 번이나. 기분이 영 찜찜해서 그냥 뒀지.” 진혁은 곧장 종에 손을 뻗지 않았다. 먼저 그 주위를 살폈다. 종 옆에는 작은 자루가 하나 있었고, 자루 안에는 어른 손가락만 한 목각 인형과 닳은 매듭끈이 있었다. 아무 쓸모 없다고 버려진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종은 다른 폐품들과 조금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다른 물건에 닿지 않도록 따로 놓아둔 듯했다. “이 종을 누구에게서 받으셨습니까?” “검은 모자를 쓴 남자. 우리한테 가져온 건 아니고 루멘 운송 수레에서 내려놨어.” 진혁은 종을 집어 들었다. 놋쇠는 찬물에 오래 담근 것처럼 차가웠다. 검은 얼룩 사이로 손톱보다 작은 글씨가 솟아났다. [품명: 숨소리 종.] [외관 가치: 동화 2닢.] [기능: 이름을 빼앗긴 자의 마지막 기억을 울림으로 소환한다.] [제약: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울리면 잃어버린 기억 대신 종을 든 자의 기억을 가져간다.] [잔류 기억: 보관번호 997의 결제 기록 일부.] 이번에도 설명은 불친절했다. 진혁이 주의 깊게 읽고 있는 사이 카렌이 옆으로 다가왔다. “찾았어요?” “찾았는데, 사용법이 좀 위험하네요.” “종을 울리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한 사람에게 두 번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카렌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걸 누가 만들었대요?” “아마 남의 기억을 빼앗는 사람들이겠죠.” 진혁이 종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폐기장 여인이 손을 내밀었다. “동화 두 닢이면 팔아 줄게. 루멘에서 버린 거라 해도 여기까지 온 물건은 내 물건이거든.” 진혁은 주머니를 뒤졌다. 동화는 세 닢뿐이었다. 아침을 굶고 나왔기 때문에 남은 한 닢은 빵값으로 쓰고 싶었다. 그는 두 닢을 내려놓았다. 여인은 잠시 그를 보더니 동화 한 닢을 밀어 되돌려 주었다. “손이 다 떨리는구먼. 밥은 먹고 일해.” “고맙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여인이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감사하면 종을 가지고 빨리 가. 얘가 자꾸 혼자 울어서 잠을 못 자겠어.” 두 사람은 창고 밖으로 나왔다. 길가에는 갓 구운 빵을 실은 수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진혁이 멀어지는 수레를 바라보자 카렌이 허리춤에서 작은 빵 하나를 꺼냈다. “먹어요.” “카렌 씨는요?” “저는 먹었어요.” 진혁이 빵을 쪼개 절반을 내밀었다. 그녀는 거절하려다가 결국 받았다. 갓 구운 빵은 아니어서 바깥은 식었지만 속에는 아직 조금 온기가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창고 벽에 기대어 씹었다. 멀리서 배를 수리하는 망치 소리와 갈매기 울음이 섞여 들렸다. “동생이 있죠.” 진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렌의 손이 멈췄다. “어떻게 알았어요?” “지난번에 아버지 검을 되찾지 못하면 동생 신분까지 담보로 넘어간다고 했잖습니까.”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에요. 열여섯. 몸이 약해서 학교도 자주 못 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빚이 늘었고, 채권자가 이상하게도 검을 달라고 했어요. 돈으로 갚겠다고 해도 듣지 않더군요.” “돈이 아니라 검이 목적이군요.” “그걸 이제야 알겠어요.” 카렌은 빵 부스러기를 털어 냈다. 그녀의 얼굴에서 평소의 날카로움이 잠시 사라졌다. 그 표정은 검을 든 용병보다 어린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누나의 표정에 가까웠다. 진혁은 손종을 외투 안쪽에 넣었다. 이 물건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당장 시험해야 했다. 그러나 기억을 소환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고,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울릴 수 없었다. 그는 문서에서 본 스물한 사람 중 한 명의 이름을 떠올렸다. 종업원 미라. 야간 근무 후 자신의 이름을 잃은 여성. 진혁은 종을 주머니에 넣기 전에 겉면에 묻은 검은 얼룩을 마른 헝겊으로 닦았다. 놋쇠 아래에서 누군가 손톱으로 새겨 놓은 동그라미 일곱 개가 드러났다. 그중 여섯 개는 흠집이 깊었고 마지막 하나는 유난히 작았다. 그는 구리 반지의 무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같은 시대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물건에 이상이 있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아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누군가 이걸 없애려 한 건 분명해요.” 두 사람의 뒤쪽에서 바퀴가 자갈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덮개를 씌운 작은 수레가 골목에 멈춰 섰다. 수레 옆에는 루멘 운송 조합의 회색 옷을 입은 남자 둘이 서 있었다. 얼굴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옷깃에 박힌 청색 실은 진혁이 매일 보던 직원 표식과 같았다. “그 손종. 반출 허가를 받았습니까?” 앞선 남자가 물었다. 진혁은 구매 사실을 적은 영수증을 꺼냈다. 폐기장 여인이 대충 그려 준 서명까지 들어 있었다. 남자가 손을 내밀자 그는 영수증을 먼저 보이되 물건은 주지 않았다. “정식 폐기 후 재판매된 물건입니다. 소유권은 여기서 다시 확인하실 수 있어요.” 남자가 고개를 숙여 영수증을 읽었다. 그 사이 뒤의 남자가 종을 낚아채려 손을 뻗었다. 카렌의 검집이 재빨리 그 손등을 눌렀다. 금속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마시죠.” 카렌이 낮게 말했다. 상대는 몇 걸음 물러났다. 앞선 남자가 옷깃을 바로잡았다. “운송 조합의 규정 위반이 있나 확인한 것뿐입니다.” “정식 조사라면 이름과 담당 부서를 기록하겠습니다.” 진혁이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러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두 사람은 더 따지지 않고 수레에 올라탔다. 바퀴가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카렌이 물었다. “왜 저렇게 쉽게 돌아갔죠?” “아무것도 기록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니까요.” 진혁은 영수증을 다시 접어 품에 넣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동화 한 닢짜리 영수증조차 생명을 지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미라 씨를 찾아가죠.” 두 사람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햇살이 높아져 있었다. 병원은 외항과 주택가 사이에 있는 회백색 돌건물이었다. 소독용 약초를 끓이는 냄새가 복도에 가득했고, 커튼 안쪽에서는 기침하는 사람과 신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바쁜 간호사들은 환자를 침상 사이로 옮기고 있었다. 미라는 창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스무 살을 조금 넘겼을까. 밤새 울었는지 눈꺼풀이 부어 있었다. 손목에는 경매장 종업원의 파란 매듭끈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미라 씨.” 진혁이 인사했다.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반응이 없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죠.” “죄송해요.” 미라의 목소리가 작았다. “사람들이 자꾸 제 이름을 부르는데, 그 이름이 제 것인지 모르겠어요. 아침에 어떤 남자애가 와서 누나라고 울었어요. 저는 그 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애가 울어서 저도 같이 울었어요.” 진혁은 가슴이 묵직해졌다. 손종을 꺼내기 전에 그녀에게 무엇을 하려는지 설명했다. 저주받은 물건일 수 있고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지만 위험이 따른다고 말했다. 미라는 한참 생각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해주세요. 그 아이가 누군지 알고 싶어요.” 카렌은 문 앞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게 막았다. 진혁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놋쇠종을 손가락 사이에 들고 아주 작게 흔들었다. 딸랑. 금속 소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병실에서 들리던 기침과 발소리가 한순간 멀어지는 듯했다. 미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혁의 앞에는 희뿌연 빛이 펼쳐졌다. 비 오는 날의 좁은 골목. 어린 소녀가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낡은 종이 있었고, 그 앞에 어린 남자아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소녀가 종을 흔들며 웃었다. ‘길 잃으면 이 소리 듣고 와. 내가 늘 여기 있을게.’ 장면이 바뀌었다. 같은 아이가 어느새 키가 커서 경매장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월급날이면 동생에게 작은 빵을 사 주고, 밤늦게까지 일한 다음에도 손목의 파란 매듭끈을 매만졌다. 환상이 사라지자 미라가 숨을 들이켰다. “테오.” 그녀가 속삭였다. “제 동생은 테오예요.” 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성공이었다. 미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후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제 이름은 아직 모르겠어요.” 진혁은 기뻐하던 표정을 거두었다. 손종은 기억 전체를 돌려놓는 물건이 아니었다. 훔쳐 간 기억에 닿을 수 있는 길을 한 번 열어 줄 뿐이었다. 그는 무심코 손종을 다시 들었다가 경고를 떠올리고 멈췄다. 두 번 울리면 자신의 기억을 대가로 가져간다. 그는 종을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여기까지입니다.” 미라는 울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테오가 누군지 알았어요. 그거면 지금은 충분해요.” 그 말이 진혁에게 깊이 남았다. 마법으로 사람을 온전히 고치는 것보다, 스스로를 되찾을 첫 실마리를 건네는 일이 더 중요할 때도 있었다. 병실을 나오자 카렌이 조용히 물었다. “왜 두 번 안 울렸어요?” “대가가 필요해서요.” “무슨 대가요?” “제 기억이요.” 카렌은 그제야 그를 똑바로 보았다. 진혁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손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두 사람은 병원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손종이 외투 안에서 저절로 떨렸다. 진혁은 걸음을 멈췄다. 흔든 사람도 없는데 놋쇠에서 아주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딸랑, 딸랑. 이번에는 미라의 기억이 아니었다. 진혁의 눈앞에 검은 장부 한 장이 떠올랐다. [상품 997. 첫 번째 비밀.] [거래 완료 예정: 오늘 일몰.] [매도인: 루멘 경매장.] [매수인: 검은 인장 상회.] [담보 제공자: 서진혁.] 진혁은 당황해서 외투를 열어 종을 확인했다. 종이 마지막으로 아주 낮게 울렸다. 그러자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이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네 첫 번째 비밀이 무엇인지, 너도 아직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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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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