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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3화
PAYLUA ORIGINAL · 제3화

3화. 사라진 직원 명부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053자

오프라인 책장
루멘 경매장에서 가장 비싼 방은 황금 장식이 달린 귀빈실이 아니었다. 사장 집무실 뒤편의 장부 보관실이었다. 그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벽마다 천장까지 닿는 서가가 늘어서 있었고, 두툼한 가죽 장부들이 연도와 거래 번호에 따라 꽂혀 있었다. 종이에서는 말린 풀과 오래된 잉크 냄새가 났다. 서가 앞을 걸을 때마다 바닥에 그려진 흰 선이 발끝 아래에서 희미하게 밝아졌다.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장부를 한 권만 꺼내도 경비실로 경보가 전달되는 구조였다. 진혁은 그 방의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처음 앉아 보는 푹신한 가죽 의자였다. 그러나 등받이에 기댈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죠.” 그가 말했다. “어제 제가 경매장 전체의 임시 소유권을 떠안았다고요?” “정확히는 소유권 주장자가 됐지.” 세리아가 잔에 차를 따랐다. 흰 자기 주전자에서 따뜻한 김이 올랐다. 지하에서 사람 목숨을 놓고 실랑이한 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마치 평범한 출근 첫날처럼 차를 권했다. “차라도 마시면서 들어.” “제 목숨이 담보로 잡혔는데 차가 넘어가겠습니까?” “안 넘어가면 설탕을 넣어 줄까?” 진혁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세리아는 정말로 설탕 단지를 밀어 주었다. 밖에서는 새벽 종이 울리고 있었다. 밤새 바람이 거셌는지 창문 없는 보관실에도 항구 특유의 젖은 냄새가 배어 있었다. 루멘의 언덕 아래에서는 상점들이 문을 열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생선 장수들은 소금물에 손을 담그고, 빵집에서는 첫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넣고, 경비대는 성문과 선착장에서 교대했다.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불과 몇 시간 전 이 도시의 중심 건물이 깨어나 수백 명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려 했는데, 창밖 세상은 그대로였다. “위층 손님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의식이 돌아왔어. 다만 스물한 명이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해.” “스물한 명이나요?” “부유한 손님 중에는 지갑을 잃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 그 말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세리아는 찻잔을 놓고 진혁에게 기록 한 장을 내밀었다. 은박으로 봉인된 응급 보고서였다. ‘환자 218명 중 회복 197, 기억 소실 21. 사망 0.’ 회복자 숫자만 보면 기적에 가까웠지만, 진혁은 마지막 줄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기억 소실자 중 한 명은 경매장 종업원이었다. 어린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밤 근무를 하던 여성이었다. 보고서에는 그녀가 자기 이름은 물론 집 주소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 사람들, 돌려놓을 방법 있습니까?” “있겠지. 하지만 난 아직 못 찾았어.” “사장님이 모르시는 것도 있군요.” “아주 많아.” 세리아는 태연하게 인정했다. 문이 열리고 카렌이 들어왔다. 한쪽 팔에는 새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경비대장 헥터가 서 있었다. 넓은 어깨와 짧게 깎은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 남자였다. 전날 지하에서 검은 안개가 퍼졌을 때 상층 출입구를 봉쇄해 피해를 줄인 사람이 바로 그였다. “상황 보고입니다.” 헥터가 인사를 했다. “귀족 측에서 해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의회에서도 조사관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아침 교대조는 출근했지만, 야간 근무자 세 명은 행방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 셋은?” 진혁의 질문에 헥터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계약 기록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이곳 장부는 잉크가 지워지지 않게 마법 처리를 한다. 직원 계약은 두 부씩 작성하고, 사본은 길드에 보내고, 원본은 루멘에 보관한다. 종이 한 장만 없어질 수는 있어도 이름 세 개가 관련 기록에서 동시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진혁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장부를 보여주십시오.” 서가에서 가져온 직원 명부는 가죽이 닳은 책이었다. 첫 장에는 경매장 설립 당시 직원 수가 적혀 있었고 뒤로는 이름과 입사일, 급여와 보증인 정보가 줄지어 기록돼 있었다. 진혁 자신의 서명도 보였다. 한 달 전에, 일이 절실했던 밤 그는 계약서의 작은 글씨를 다 읽지도 못하고 서명했었다. 진혁은 손끝으로 자기 이름을 훑었다. [등록 대상: 서진혁.] [분류: 임직원.] [계약 당시 양도한 권리: 근무 시간에 대한 사용권.] [비공개 부속 조항: 마지막 순간의 이름을 보관한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제가 동의한 적 없습니다.” 세리아가 그를 쳐다봤다. “무슨 문구가 보여?” “마지막 순간의 이름을 보관한다, 라고요.” 카렌이 검집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사람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자신을 누구라 생각했는지,” 세리아가 대답했다. “루멘이 그 이름을 가져가면 세상에서는 그 사람이 지워질 수도 있어.”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진혁은 빈칸 세 개를 발견했다. 어젯밤까지 분명 이름이 있던 자리에는 잉크가 번진 자국조차 없었다. 줄의 간격만 아주 조금 넓었다. 책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아무 이상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찾아야 해요.” 카렌이 단호하게 말했다. “죽었든 살았든, 이름이 없다고 사람까지 없던 일이 되면 안 되잖아요.” 진혁은 카렌을 보았다. 전날 그녀가 자신에게 서진혁이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기억이 흔들리는 복도에서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은 작은 방패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라진 직원들은 누구였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헥터는 망설이다 품에서 작은 종잇조각 세 장을 꺼냈다.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직접 적어 둔 야간 순찰 메모였다. “한 명은 늘 맨 앞문을 지키던 청년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저녁마다 작업장에서도 일했죠. 또 한 명은 창고에서 숫자를 아주 빨리 세던 여자였고, 마지막은….” 헥터는 말을 흐렸다. 그는 경비대장이어서 누구보다 직원들을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누구였는지 이름도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을 찾으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억이 안 나십니까?” “같이 밥을 먹은 건 기억납니다. 어제 저녁 그 청년이 빵을 두 개 가져와서 하나를 내게 줬다는 것까지요. 그런데 얼굴만 생각하려 하면 누군가 손으로 문질러 지운 그림처럼 흐려집니다.” 헥터는 메모를 다시 접었다. “그 아이가 빵을 건네던 손은 기억납니다. 손가락 둘이 추위에 갈라져 있었어요. 그렇게 일한 사람을 사라졌다고 모른 척할 순 없습니다.” 카렌이 그에게 다가가 메모 한 장을 받았다. 진혁은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종이를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곳의 피해는 목숨을 잃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이름을 지워 버리면 그 사람이 일하며 쌓아 온 관계까지 함께 빼앗을 수 있었다. 진혁은 오래전부터 돈이 없어도 남에게 빚지고 살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런 일 앞에서는 누구든 누군가의 기억에 의지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찾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헥터가 눈을 들었다. “약속할 수 있나?” “모두 찾는다고는 아직 못 합니다. 대신 기록이 사라진 이유를 찾고, 있는 기록은 하나도 버리지 않겠습니다.” 헥터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방을 나섰다. 무거운 장화 소리가 문밖으로 멀어졌다. 장부 한쪽에서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상품 등록 997: 첫 번째 비밀.] [상품 등록 998: 마지막 생존자의 이름.] [접근 권한: 임시 소유권 주장자.] [열람 비용: 금화 50닢 또는 동등한 가치의 기억.] 진혁은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장부 한 장 보는데 금화 쉰 닢이요?” 금화 한 닢이면 항구의 평범한 노동자 가족이 보름 가까이 생활할 수 있었다. 그는 보조 감정사로 일하면서 한 달에 금화 네 닢을 받았다. 그것도 숙식 공제 전 금액이었다. 장부를 열람하려면 열두 달 치 월급을 한 번에 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불공정하네요. 사내 자료 열람에 직원 할인도 없다니.” 카렌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안 웃으면 울 것 같아서요.” 세리아는 서랍을 열고 낡은 대장 한 권을 꺼냈다. 검은 가죽 표지에는 루멘의 상징인 일곱 개의 고리가 새겨져 있었다. 그중 가장 바깥 고리는 칼로 긁힌 것처럼 손상되어 있었다. “루멘에는 일곱 개의 봉인이 있어. 처음 세워진 건물이 아니라, 발견된 것을 건물로 덮은 거야. 지상 경매장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얼굴이고, 아래의 봉인 구조가 진짜 중심이지.” 그녀의 설명은 진혁이 알던 도시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었다. 마레온 항구에는 오래전 바다에서 솟아난 검은 언덕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언덕을 개발해 창고와 거래소를 지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경매장이 세워졌다. 어부들은 아직도 루멘 아래에서 밤마다 고래 소리가 난다고 수군거렸다. 진혁은 술집의 헛소문이라 여겼다. “저 아래 있는 건 괴수입니까?” “그렇게 부르기도 해. 다만 그게 정확한 이름인지는 몰라.” “왜 하필 경매장으로 만든 거죠?” “봉인이 물건의 소유와 교환이라는 규칙으로 유지되기 때문이야. 금전을 주고받는 거래 하나하나가 결계를 보강해. 거꾸로 규칙을 어기면 그 힘이 결계를 파먹지.” 말이 끝나자 장부 표지의 일곱 고리 중 하나가 희미하게 빛났다. 진혁은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유물 경매는 단순한 장사가 아니었다. 도시 사람들의 무역이 계속되는 한 이곳의 봉인은 조금씩 유지되는 구조였다. 그렇다면 어젯밤 검은 상자를 열려고 한 누군가는 경매를 망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거래의 규칙을 악용해 봉인을 빼앗으려 했을 가능성이 컸다. “누가 그 상자를 들여왔습니까?” 헥터가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위탁 업체는 검은 인장 상회. 운송 서류는 정상입니다. 하지만 물건을 맡긴 상인의 주소를 찾아가 보니 지난달 문을 닫은 건물이었습니다.” “보증인은요?” “상회 대표의 인장뿐입니다.” 라일이 어디선가 불쑥 끼어들었다. “대표는 없어요. 적어도 낮에는.” 모두가 동시에 문으로 돌아봤다. 도둑은 보관실의 출입 경보를 울리지 않고 들어왔다. 한 손에는 항구에서 파는 따뜻한 구운 밤 봉지가 들려 있었다. “도둑이 장부 보관실에서 뭘 하는 거지?” 헥터가 허리의 칼에 손을 대자 라일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오늘은 정보 제공자 자격으로 왔습니다. 밤은 공짜고요.” “언제 들어왔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장부 한 장에 금화 쉰 닢 요구하실 때부터요. 아주 감동적인 가격 정책이었습니다.” 진혁은 라일이 내민 밤을 하나 받았다. 껍질이 뜨거워 손가락을 번갈아 움직여야 했다. 평범한 따뜻함이 묘하게 반가웠다. 라일은 작은 종이쪽지를 탁자에 놓았다. 검은 인장 상회의 물건들이 지난 여섯 달 동안 루멘 창고를 거쳐 간 목록이었다. 대부분은 별 가치 없는 고철과 오래된 가구였다. 그런데 진혁의 시선이 목록 가장 아랫줄에 멈췄다. ‘무명의 손종. 보관번호 996. 동화 2닢.’ “이건 어디에 있습니까?” “어제 폐기장으로 보냈을걸요.” 헥터가 답했다. 진혁이 종이를 잡자 능력이 반응했다. [대상: 보관번호 996 관련 문서.] [잔류 기억: 이름을 잃은 스물한 사람의 목소리.] [주의: 폐기 예정 시각, 오늘 정오.] 진혁은 벽시계를 보았다. 정오까지 세 시간 남짓. “폐기장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마차로 반 시간은 걸립니다.” 진혁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 “가죠. 잃어버린 이름을 찾으러.” 세리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서진혁. 넌 아직 이의 제기를 완료하지 못했어. 남은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진혁은 문턱에서 돌아섰다. “그러니까 첫 증거부터 찾으려는 겁니다. 경매장이 빼앗은 걸 되돌릴 수 있다면, 잘못된 거래였다는 것도 증명할 수 있겠죠.” 잠시 뒤 세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정말 물건을 보는 눈이 있구나, 자넨.” 진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좋은 눈이면 뭘 합니까. 아직 월급 명세서에 수당 하나 추가되지 않았는데.” 그가 계단을 오를 때, 장부 보관실의 어둠 속에서 한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갔다. 아무도 보지 못한 그 장의 아래쪽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임시 소유권 주장자의 생존 가능성: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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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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