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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2화
PAYLUA ORIGINAL · 제2화

2화. 살아 있는 건물의 가격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763자

오프라인 책장
루멘 경매장이 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지하 삼층의 바닥이 아주 조금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바닥에 새겨진 푸른 감정 문양이 파도처럼 일렁였고, 검은 돌로 쌓은 복도 벽에서 오래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서진혁은 두 발을 벌려 중심을 잡았다. 돌바닥 아래로 전해지는 둔탁한 울림은 지진과 달랐다. 간격이 일정했다. 하나, 둘. 사람의 심장보다 열 배쯤 느리고, 훨씬 무거운 박동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오르내린 경매장의 지하 계단이 살아 있는 무언가의 갈비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까 건축물 아니라고 떴는데.” “뭐라고?” 카렌이 검을 세운 채 물었다. 진혁은 대답 대신 벽에 손을 댔다. 차갑고 매끈하던 검은 석재가 미지근했다.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걸렸다. 그의 시야에 옅은 글씨가 떠올랐다. [대상: 루멘 경매장 외피 제삼층.] [상태: 부분 각성.] [잔류 기억: 일곱 번의 잠, 여섯 번의 실패.] [현재 유지되는 봉인: 6/7.] 여섯 번의 실패가 무엇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물건에 새겨진 기억을 읽는 능력은 친절한 안내인이 아니었다. 필요한 정보를 순서대로 알려 주지도 않았다. 자꾸 빼먹고, 때로는 아주 중요한 순간에 모호한 한 줄만 남겼다. “손 떼.” 세리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검은 장갑을 낀 손에는 낡은 구리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조금 전 노인이 폐품이라고 던졌던 바로 그 반지였다. 다른 손에는 얇은 은빛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사장의 집무실에서 늘 장식처럼 세워 두던 물건이다. “벽이 자네를 알아볼 거야.” “벽이 저를 알아보면 뭐가 달라집니까?” “살아서 나가고 싶으면 지금은 모르고 있는 편이 좋지.” “이미 충분히 많이 알게 됐는데요.” 진혁은 말을 뱉고 나서 뒤늦게 후회했다. 루멘에서 사장에게 말대꾸하는 직원은 두 종류였다. 짐을 싸서 나가는 직원과, 짐을 쌀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직원. 그런데 세리아는 화를 내지 않았다. 복도 저편을 바라보며 짧게 숨을 삼켰다. 그곳에는 일반 직원들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흑철문이 있었다. 문에 파인 일곱 개의 홈 가운데 여섯 개에는 푸른 불빛이 들어와 있었고 마지막 하나는 텅 비어 있었다. “문이 열리기 전에 멈춰야 해.” 카렌이 끼어들었다. “제 아버지의 검부터 돌려주세요. 저 문 안에 있잖아요.” “카렌, 그 검을 꺼내면 마지막 봉인을 대신 붙들 사람이 필요해.” “제가 붙들죠.” “그건 검을 든다는 뜻이 아니야.” 세리아의 말끝이 딱딱해졌다. 카렌의 손등에 핏줄이 섰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서늘해지는 동안, 라일은 문 옆에서 작은 철사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두 분 다 아름다운 결심인데, 불행히도 토론 시간은 삼 분밖에 없습니다.” 도둑은 천장 쪽을 가리켰다. 수정등 안의 푸른 불꽃이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진혁이 올려다보니 그 빛의 꼬리가 아주 천천히 흔들렸다. 단순한 조명인 줄 알았던 수정등이 실은 거대한 마력 흐름을 재는 계측기였다. “저게 수평으로 눕기 전에,” 라일이 말했다. “위층 손님들이 전부 계산대에 올라가게 될 겁니다.” “계산대?” “생명력이 가격이 되는 계산대.” 진혁은 위층의 광경을 떠올렸다. 황금 샹들리에 아래 금빛 의자에 앉았던 귀족들, 떨리는 손으로 입찰패를 들던 상인들, 문가에서 술잔을 나르던 종업원들. 그중 몇 명이 이미 쓰러졌을까. 경매가 끝나면 가족에게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럼 여기서 서로 째려볼 시간은 없겠네요.” 그가 흑철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카렌이 팔을 잡았다. “뭘 하려고요?” “일을 해야죠. 보조 감정사 일이 원래 사고 친 물건 뒷수습하는 거 아닙니까.” “이건 보조 감정사 일이 아니에요.” “그 말씀을 제 월급 담당자에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농담을 던졌지만 목구멍이 말랐다. 진혁은 흑철문을 만지지 않고, 문 옆에 고정된 작은 청동판부터 살폈다. 경매장에서는 모든 물건에 등록번호가 붙는다. 감정서, 보관증, 출고허가증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리 비싼 유물이라도 창고에서 움직일 수 없다. 고객들은 그것을 엄격한 보안이라고 여겼지만, 진혁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건물에서 ‘등록’이란 단어는 단순한 장부 작성보다 훨씬 무거웠다. 청동판에는 낯익은 세 줄의 글씨가 있었다. [보관번호: 000.] [물품명: 루멘 경매장.] [관리자: 세리아.] 그 아래에, 오직 진혁에게만 보이는 문장이 겹쳤다. [감정 미완료.] [제7봉인 잠금 권한: 이전 대기.] [임시 사용자 확인 시 각성 시간을 유예할 수 있음.] “사장님. 제게 권한을 넘기려던 이유가 이거군요.” 세리아가 그를 돌아보았다. “읽었구나.” “건물을 깨우려고 고용하신 겁니까, 아니면 재우려고 고용하신 겁니까?”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진혁은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사장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재우려고,” 세리아가 마침내 말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그 두 음절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따질 시간은 없었다. 검은 상자가 위층에서 열린 것은 누군가 잠금장치를 손댔기 때문이었다. 지하의 기계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경매장 자체가 거대한 유물이라면, 이곳에도 작동 규칙이 있을 터였다. 진혁은 청동판의 끝부분,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좁은 모서리를 유심히 살폈다. 거기에 아예 닳아 없어질 듯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구매가 확정되기 전, 감정 오류는 철회할 수 있다.’ 진혁의 머릿속에서 장부의 한 페이지가 펼쳐졌다. 물건을 팔기 전에 감정사가 상태를 확정한다. 감정에 오류가 발견되면 경매는 일시 중지된다. 루멘이 정말 경매에 등록된 물품이라면, 같은 규칙이 적용되지 않을까. “라일 씨. 이 건물이 지금 누구한테 팔리고 있습니까?” “참신한 질문이네. 보통은 여기서 탈출구를 찾던데.” “누구에게 팔리는지 알아야 낙찰을 막죠.” 라일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세리아를 슬쩍 바라봤다. “사장님도 들으셨죠? 저 친구가 규칙을 알아챘어요.” 천장의 수정등이 절반 가까이 기울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사람 여러 명이 한꺼번에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카렌은 벽에서 떨어진 돌조각을 발로 밀어냈다. 단단한 검신에 가느다란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뭘 하면 되죠?” 진혁은 대답하기 전에 숨을 골랐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세 사람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상급 감정사가 시키는 대로 번호나 적던 직원이었다. 복도 건너편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검은 벽에 매달린 둥근 장식품이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그 속에서 따뜻한 피 같은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진혁은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봤다. 장식품 안쪽에는 숫자가 아주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자신이 매일 기록한 창고 보관번호와 같은 서체였다. “저건 뭡니까?” “건물이 받아들인 거래의 흔적이야.” 세리아가 말했다. “일반적인 마법 장치는 마정석을 태워 움직이지만 루멘은 조금 달라. 물건과 그 물건을 둘러싼 약속이 힘이 되지. 누군가 정당하게 값을 치르고 물건을 넘기면 봉인이 단단해지고, 속여서 가져가면 균열이 생겨.” 진혁은 천장에 벌어진 금을 올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돌벽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말라붙은 피부처럼 느껴졌다. 마력으로 빛나는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거대한 몸에 꿰맨 실 같았다. 그때 위쪽 계단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헥터의 부하로 보이는 경비병 하나가 난간을 붙잡고 내려왔다. 이마에서 피가 흘렀고 왼쪽 어깨가 이상하게 처져 있었다. “사장님… 대경매실 북쪽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손님들이 서로 밀쳐서….” 경비병은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카렌이 재빨리 달려가 부상자를 기둥에 기대게 했다. 진혁은 경비병 허리춤의 출입패를 만졌다. [북쪽 출입문 관리패.] [잠금 상태: 비상 봉쇄.] [해제 조건: 중앙 감정 절차 일시 정지.] “북쪽 문은 억지로 부숴도 안 열립니다.” 진혁이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남쪽과 서쪽 계단으로 돌려야겠군.” 세리아가 답했다. 카렌은 경비병에게 숨을 천천히 쉬게 하면서 자신의 붕대를 잘라 어깨를 고정했다. 진혁은 작은 종이에 지하 복도의 방향을 적었다. 그는 이곳에 취직한 첫 주 동안 대형 유물을 나르느라 화물 승강기와 비상 출입구를 전부 외워야 했다. 평소에는 쓸모없는 잡일이라고 투덜거렸지만 지금은 그 기억이 큰 도움이 됐다. “라일 씨, 이 종이를 위층 경비대장에게 가져다주세요. 동쪽 화물 통로는 사람이 한 번에 네 명만 지나갈 수 있습니다. 막히지 않도록 해달라고요.” “나한테 심부름을 시키네. 도둑 경력에 이런 일은 처음인데.” 라일은 투덜거리면서도 종이를 받아들었다. 도망갈 길이 많은 사람답게 그는 어둠 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남겨진 경비병이 진혁의 손목을 잡았다. “위에… 제 아내가 있습니다. 종업원이에요.” “어느 구역이죠?” “음료대… 서쪽 벽.” 진혁은 그 위치를 종이 한 장에 추가해 카렌에게 맡겼다. 가능하다면 확인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경비병은 겨우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진혁은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곳에 쓰러진 사람 한 명, 위쪽에 쓰러졌을 사람들, 아직 숨 쉬고 있을 218명. 문서에서 숫자는 단순했지만 실제 사람에게는 얼굴과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다. “첫째, 위층 사람들의 생명력 이전을 멈춰야 합니다. 둘째, 이 건물의 소유권 이전을 보류해야 하고요. 셋째….”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복도 끝의 문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문틈에서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지하 삼층인데 바람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셋째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제가 감정해 봐야 알겠습니다.” 세리아가 그를 한참 보았다. “실패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마레온 항구 전체가 위험해져.” 마레온. 세 대륙의 무역선이 드나드는 자유항이었다. 아침이면 어시장에서 은빛 비늘이 길바닥에 쏟아지고, 낮에는 모험가 길드 앞에 던전 탐색 의뢰서가 나붙고, 밤에는 먼 항해에서 돌아온 배들이 등대를 따라 들어왔다. 루멘 경매장은 그 도시의 중심 언덕 위에 있었다. 항구의 창고와 운송 조합, 여관과 환전상들은 루멘에서 유물이 거래되는 날이면 평소보다 두 배 바빴다. 진혁도 첫 월급을 받으면 저 언덕 아래 작은 방의 밀린 월세부터 낼 생각이었다. 도시가 무너진다면 그의 월세 걱정도 사라질 것이다. 썩 마음에 드는 해결책은 아니었다. “마레온이 날아가기 전에 월급은 주시죠.” 세리아의 입가에 순간 웃음이 걸렸다. “성공하면 두 배로 줄게.” “약속하셨습니다.” 진혁은 청동판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에서 갑자기 숱한 장면이 밀려왔다. 검은 파도가 성벽에 부딪히고, 아무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골짜기를 내려갔다. 붉은 하늘 아래 아흔일곱 명이 동그랗게 둘러섰다. 그들의 손에서 구리 반지가 차례차례 옮겨졌다. 마지막 사람이 반지를 끼며 누군가에게 말했다. ‘잠들어라. 우리가 먼저 기억하마.’ 장면이 끊겼다. 진혁은 무릎을 꿇었다. 머리 한가운데를 녹슨 못으로 찌르는 듯했다. 카렌이 어깨를 받쳐 주었다. “서진혁! 정신 차려요.” 손바닥 위 문장이 번졌다. [정상적인 감정 절차를 요청하시겠습니까?] [경고: 현재 거래 대상에는 관객 218명의 생명력이 포함됩니다.] 진혁은 그대로 굳었다. “218명….” “뭐가요?” “위에서 쓰러진 사람들이요. 아직 거래가 완료되진 않았습니다.” 그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감정 절차를 요청하면 손님들의 생명력이 결제되기 직전 멈춘다. 그러나 절차를 진행할 사람이 필요했다. “세리아 사장님. 저는 정식 감정사가 아니어서 감정서에 서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그 자격증이 문제가 아니야.” “경매장의 규칙은 자격을 따지잖습니까. 제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멋대로 팔 수 없듯, 멋대로 감정할 수도 없는 거죠.” 세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는 사장이라기보다 오래된 재판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임시 수석 감정사 권한을 부여하지.” “그건 정식 문서로 남기셔야죠.” “지금?” “제가 나중에 잘못했다고 뒤집어쓰긴 싫습니다.” 라일이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카렌마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세리아는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허공에 얇은 은빛 계약서가 펼쳐졌다. 그 위에 세리아의 이름과 경매장 인장이 새겨졌다. [임시 수석 감정사: 서진혁.] [권한 유효: 소유권 분쟁 종료 시까지.] 진혁은 그 문서를 확인한 뒤에야 청동판에 다시 손을 댔다. “감정 오류를 신고합니다. 이 경매의 상품이 잘못 분류됐습니다.” 세 번째 박동이 울렸다. 흑철문의 틈으로 쏟아지던 검은 안개가 순간 멎었다. 천장의 수정등이 흔들리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위층 어딘가에서 수백 명이 동시에 숨을 들이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감정 이의 제기 접수.] [관객 생명력 이전 일시 정지.] [상품 000의 정확한 소유권을 확인하십시오.] [제한 시간: 48시간.] 진혁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성공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러나 바로 다음 줄을 읽고 얼굴이 굳었다. [임시 소유권 주장자: 서진혁.] [이의 제기가 기각되면 주장자의 생명과 기억을 미납 대금으로 징수합니다.] “사장님.” “왜?” “두 배 월급, 아무래도 부족하겠습니다.” 세리아가 진혁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보려고 했지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혁은 청동판에서 손을 떼었다. 벽 아래의 심장이 한 번 느리고 깊게 뛰었다. 도시의 운명이 유예된 시간은 딱 이틀. 그리고 그 시간을 담보로 잡힌 사람은, 이제 막 임시 승진한 말단 감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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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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