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쓰레기입니다. 다음 물건.”
감정사 보조 서진혁이 말했다.
경매장 지하 창고에서 장갑을 낀 노인이 낡은 쇠반지를 탁자 위로 던졌다. 반지에는 보석도 없었고 금 도금도 벗겨져 있었다. 누구든 고철 값 몇 푼이라 말했을 물건이었다.
그런데 진혁의 눈앞에는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무명의 구리 반지.]
[표면 가치: 동화 2닢.]
[잔류 기억: 아흔일곱 명이 이 반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다.]
[진실한 이름: 제7봉인의 열쇠.]
진혁은 반지를 던진 노인의 손을 보았다. 손등의 화상 자국이 이상하게도 열쇠 구멍 모양이었다.
“감정 끝났나?”
“예. 그런데 이건….”
“왜? 이제 와서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줄 아나?”
진혁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이곳은 루멘 경매장. 세계 각국의 유물과 몬스터 부산물이 모이는 중립 거래소였다. 말단 직원이 판단을 뒤집는 것은 곧 실직을 의미했다. 특히 최근에는 물건을 잘못 분류한 보조가 지하 감옥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뇨. 목록에는 폐품으로 적겠습니다.”
노인이 웃었다.
“영리하군.”
그는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 창고를 떠났다. 진혁은 그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진혁은 손바닥에 이상한 문장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본질을 본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시장에서 사 온 사과가 겉은 싱싱해도 속이 상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경매장 지하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부터 기이한 메시지가 잇따라 나타났다. 진품으로 평가된 성검은 모조품이었고, 금화를 세 번 이상 만진 귀족의 장갑에는 살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도 점심에 상급 감정사에게 ‘이 유물에 사람을 잠재우는 저주가 있는 것 같다’고 건넸다가 비웃음만 샀다.
“자네는 숫자나 적게. 감정은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거야.”
진혁은 숫자를 적었다. 정확히 적었다. 남들보다 빨리 적었다. 그래서 누구도 그가 물건의 진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늘은 대경매가 열리는 날이었다.
지상 홀에는 왕국의 귀족과 용병단장이 가득했다. 황금 샹들리에 아래에는 유리 진열대가 줄지어 있었고, 맨 앞에는 경매장 사장 세리아가 앉아 있었다. 검은 장갑을 낀 그녀는 미소를 지었지만, 누구도 그녀의 눈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다.
“진혁 씨.”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긴 은발을 묶은 여성 검사 카렌이었다.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 경매장 경호 일을 맡고 있었다. 얼굴에 생기가 없었지만 검집을 쥔 손은 단단했다.
“지난번에 부탁한 검, 찾았어요?”
“이 창고에는 없었습니다.”
“분명 경매장으로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카렌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가 찾는 검은 죽은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유품이었다. 도둑맞은 뒤 경매장으로 넘어왔고, 그 검을 되찾지 못하면 담보로 잡힌 동생의 신분까지 넘어갈 형편이었다.
진혁은 잠시 망설였다. 자신이 본 메시지를 말하면 그녀는 믿을까.
“검 손잡이에 검은 실이 감겨 있나요?”
“어떻게 알죠?”
“잠깐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지 않았다. 카렌이 들고 온 낡은 칼집에서 검의 기억이 흘러나왔을 뿐이다. 그 기억 속에서 검은 지하 삼층의 봉인실에 있었다.
“지금은 손님에게 보여줄 물건이 아닙니다.”
“왜요?”
“누군가 그 검을 이용해 다른 걸 열려고 하거든요.”
카렌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의심보다 기대가 먼저 떠오르는 눈이었다.
“어디 있죠?”
진혁이 대답하려는 순간 경매 개시 종이 울렸다. 종소리는 이상하게도 일곱 번 울렸다. 통상 세 번이었는데 오늘은 일곱 번이었다.
지하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첫 경매품은 용의 눈물이었다. 두 번째는 천 년 된 마도서. 세 번째는 나라 하나를 살 수 있다는 미궁 지도가 나왔다. 높은 값을 부르는 귀족들 사이로 검은 망토를 입은 도둑 라일이 나타났다. 그는 진혁 옆을 지나는 척하며 작은 종이 한 장을 떨어뜨렸다.
[오늘 밤 유물 하나가 죽는다. 사람이 아니라, 유물이. 믿지 못하겠다면 일곱 번째 종을 기다려라.]
진혁은 종이를 구겼다. 라일은 오래전부터 경매장 유물을 훔쳐 가는 도둑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값비싼 금은보화는 건드리지 않았다. 오직 이력을 알 수 없는 물건만 가져갔다.
진혁이 경매장에 처음 고용됐을 때 세리아는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사람은 왜 물건에 가치를 매길까?”
진혁은 흔히들 하는 답을 말했다. 희소성과 실용성, 제작자의 명성, 공급과 수요. 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가격이야. 내가 묻는 건 가치지.”
그때의 진혁은 의미를 몰랐다. 일주일간 지하 창고에서 수백 가지 물건을 만진 뒤에야 조금 알게 되었다. 값비싼 왕관은 피를 먹은 흉물이었고, 아무도 사지 않는 나무 인형은 죽은 부모가 자식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한 여성이 인형을 찾으러 와서 낡은 동화 세 닢을 내밀었을 때, 진혁은 자기 돈을 보태 창고 보관료를 내 주었다.
“안 팔아도 되는 물건이잖아요.”
그의 말에 여자는 한참 울었다. 다른 직원들은 그를 비웃었다. 경매장에서 동정심을 가진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진혁은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인형을 돌려준 날 밤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능력은 이상하게 작동했다. 물건을 만지면 언제나 진실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 물건을 둘러싼 사람의 기억이 스며 있는 경우에만 길을 열었다. 경매장의 금빛 청동종은 수백 명의 환호를 보여 줬지만, 어느 날 도착한 검은 상자는 거의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단 하나의 명령만 반복했다.
[열지 말 것.]
그는 당시에는 상자가 고장 난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리아가 그것을 따로 주문받은 날, 외벽의 감정 주술이 모두 지워졌다.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경비는 평소의 세 배로 늘어났다. 진혁은 그때부터 상자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었다.
카렌도 그 상자를 알아본 듯했다. 그녀는 경매장을 순찰하던 중 진혁을 불러 세웠다.
“저 문양, 기억해요?”
상자 바닥에는 초승달과 엇갈린 칼 두 자루가 새겨져 있었다.
“본 적 있으세요?”
“아버지가 죽기 전에 제 검집 안쪽에 그려 놓으셨어요.”
카렌은 손가락으로 작은 흔적을 문질렀다.
“왜 그런 걸 그렸느냐고 물었더니 언젠가 위험한 물건을 보면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셨죠. 저는 그 말이 검에 대한 경고인 줄 알았어요.”
“지금 보니 상자에 대한 경고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카렌은 턱을 굳혔다.
“아버지가 지키던 건 검이 아니었군요.”
진혁이 답하려는데 주변 직원들이 다가왔다. 그는 황급히 상자 위에 천을 덮었다. 누구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한 듯했지만, 복도 끝에 선 라일만은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진혁은 그때 라일이 아무 물건도 훔치지 않은 채 사라졌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도둑이 경매장에 들어와 훔치지 않고 돌아갔다면 훔치려던 대상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경매가 중반에 이르자 세리아가 직접 단상에 올랐다.
“오늘의 비공개 특별품을 공개하겠습니다.”
천이 벗겨지자 손바닥만 한 검은 상자가 나왔다. 상자는 어디에도 잠금장치가 없었다. 그런데 진혁의 눈에 메시지가 하나둘 떠올랐다.
[소유자 미상.]
[외관 가치: 은화 3닢.]
[실제 분류: 대륙 봉인 장치.]
[경고: 상자를 열면 지하에 잠든 것을 깨웁니다.]
진혁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손을 들어 경고하려는데 어떤 귀족이 금화 5만 닢을 불렀다. 다른 쪽에서는 10만 닢. 값이 뛰자 세리아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열면 안 돼요.”
진혁이 중얼거렸다.
카렌이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요?”
“저 상자요. 열면 안 됩니다.”
그때 상자 위에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봉인 장치가 이미 개봉 상태로 변경되었습니다.]
진혁은 눈을 크게 떴다. 상자는 멀쩡히 닫혀 있었다. 누군가 밖에서 보이지 않게 안쪽의 잠금만 해제한 것이다.
홀 가장자리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장식용 마법 효과처럼 보였다. 그러다 첫 손님이 의자에서 쓰러졌다. 목덜미에 작은 검은 무늬가 생겼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비틀거렸다.
“독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아니었다. 진혁에게는 독이라는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떠오른 문장은 더 끔찍했다.
[관객의 생명력을 경매장 지하로 이전 중.]
진혁은 뛰기 시작했다. 카렌이 곧바로 따라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경비들이 서 있었지만 카렌은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그들의 무기를 쳐 냈다.
“어디로 가요?”
“봉인실!”
진혁은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갈수록 숨 쉬기가 어려워졌다. 벽에 걸린 수정등이 하나씩 꺼지고, 바닥의 마법 문양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카렌이 앞장섰다. 그녀는 복도 모퉁이에서 나타난 철갑 인형의 팔을 검으로 끊어 냈다. 금속 조각들이 쏟아지는 순간 진혁은 인형의 머리 위에 번지는 문장을 읽었다.
[경비용 자동 인형.]
[명령 변경 시각: 오늘 18시 42분.]
[최근 명령: 외부 침입자보다 내부 직원 우선 제거.]
“카렌 씨, 조심하세요! 저 인형들은 직원을 먼저 공격합니다!”
카렌이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어떻게 알았어요?”
“인형의 움직임을 보세요. 저를 먼저 겨냥했잖아요!”
그는 능력을 숨기려 대답을 둘러댔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손끝이 떨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숨길 수 있을까. 경매장은 점점 살아 움직였고, 자신이 볼 수 있는 진실은 수많은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음 계단의 벽에는 물건의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001에서 시작해 999까지 이어지는 번호였다. 그런데 번호의 끝은 존재하지 않았다. 끝없는 목록처럼 벽 아래까지 숫자가 내려갔다. 진혁이 손으로 997을 만지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등록품 997번. 이름: 경매에 참여한 사람의 첫 번째 비밀.]
그는 손을 황급히 뗐다. 바로 옆의 998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등록품 998번. 이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의 이름.]
경매장은 유물만 거래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일한 사람도, 사러 온 사람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진혁은 자신이 처음 입사했을 때 서명했던 계약서를 떠올렸다. 월급은 적었고 출입 제한이 많았다. 그때는 단순한 노동계약이라고 생각했다.
“카렌 씨. 제 이름을 혹시 잊어버리시면….”
“무슨 소리예요?”
“그냥 한 번 더 불러 주세요. 서진혁이라고.”
카렌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가 곧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혁. 기억할게요.”
그 목소리에 진혁은 처음으로 조금 안심했다. 적어도 지금 이 복도에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지하 삼층의 문 앞에서 그들은 라일과 마주쳤다. 도둑은 이미 잠금쇠를 풀고 있었다. 그가 두 사람을 보고 웃었다.
“늦었네, 감정사 양반.”
“오늘 밤 유물이 죽는다고 했지?”
“아, 그 편지는 읽었구나.”
“무슨 뜻이야?”
라일의 웃음이 사라졌다.
“살아 있는 유물은 죽을 수 있어. 그런데 그 유물을 죽여야만 인간이 살아남는 경우도 있지.”
그는 옆으로 비켜섰다. 문틈 사이로 검은 실이 감긴 검 한 자루가 보였다. 카렌이 달려가려 하자 진혁이 팔을 붙잡았다.
검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카렌의 부친이 봉인한 물건.]
[발동 조건: 마지막 혈족의 피.]
[현재 권한 보유자: 카렌.]
카렌이 속삭였다.
“내 아버지는 도둑을 쫓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아니요.”
진혁은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버님은 누군가가 여기서 나오지 못하게 막다가 돌아가신 겁니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검은 장갑을 낀 세리아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래층의 아수라장을 보면서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서진혁.”
“사장님.”
“한 달 동안 지켜봤지. 자네는 모두가 보지 못하는 가치를 읽더군.”
진혁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숨겨 왔다고 믿었던 능력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럼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까?”
세리아가 미소 지었다.
“자네가 자격이 되는지 보고 싶었거든.”
그녀는 맨 처음 노인이 보여 줬던 낡은 쇠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있었다. 진혁의 눈앞에 문구가 붉게 번졌다.
[제7봉인의 열쇠가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봉인 장치 소유자 권한 양도 준비.]
[대상자: 서진혁.]
진혁이 뒷걸음질 쳤다.
“저는 그냥 보조 직원입니다.”
“그래서 좋은 거야.”
세리아가 손을 내밀었다.
“누구도 자네가 열쇠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복도 바닥이 흔들렸다. 먼 지하에서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의 손바닥에 적힌 ‘본질을 본다’라는 문장이 뜨겁게 빛났다.
[최종 감정 대상이 나타났습니다.]
[대상명: 루멘 경매장.]
[분류: 건축물 아님.]
[실제 정체: 잠든 고대 괴수의 껍질.]
진혁은 세리아와, 카렌과, 천장의 금을 번갈아 보았다.
경매장이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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