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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38화
PAYLUA ORIGINAL · 제38화

38화. 마지막 청자의 값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702자

오프라인 책장
레온의 검집에서 떨어져 나온 금속판은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는 부품처럼 보였다. 길이는 손가락 둘을 붙인 정도였고 한쪽 가장자리에 못 구멍이 세 개 있었다. 오랫동안 습기에 노출된 탓에 녹빛이 얇게 피어 있었다. 금속을 갈아 만든 사람은 도면보다 손의 감각을 믿는 장인이었는지, 직선이어야 할 선이 조금씩 흔들렸다. 카렌은 그것을 손바닥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부드러운 천 위에 놓고 앞뒤를 오래 살폈다. “아버지 검집 안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그녀가 말했다. 레온은 평생 낡은 검 한 자루를 사용했다. 칼날은 훌륭했지만 검집은 여러 번 수리한 흔적이 있었고, 카렌은 어린 시절 그것을 새것으로 바꾸자고 졸랐다. 레온은 그때마다 ‘오래된 물건에는 새것이 못하는 일이 있다’며 웃었다. 그것이 비밀 기록을 숨기는 장치였을 줄은 몰랐다. 아벨은 금속판의 도면을 복사한 다음 유리섬에서 가져온 소형 회로와 비교했다. 두 조각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개 세 개의 중심을 연결하는 길이와 방향이 비슷했다. 미란은 그것이 ‘응답을 듣는 장치’의 일부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청자라는 건 한 사람이 들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진혁이 물었다. “아니요. 여기서는 장치 이름일 수 있어요. 누군가가 대신 말하는 게 아니라, 신호를 번역해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요.” 그날 마레온 항만청은 오래된 방벽 수리 시설에 관한 공개 조사를 허가했다. 레온의 검집 안쪽에 남아 있던 작은 공방의 표식 덕분이었다. 표식은 북동쪽 풍차 언덕의 ‘새벽 종 공방’을 가리켰다. 지금은 상점이 문을 닫았지만, 오래전 항만용 신호 장치를 만들던 기술자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루멘과 달리 조용했다. 아랫마을에서는 어망을 삶는 냄새가 났고, 집집마다 빨랫줄에 바람막이 천을 널었다. 손수레를 밀고 가는 늙은 남자는 느릿느릿 코너를 돌았고, 학교 앞에서는 아이들이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나왔다. 진혁은 이런 거리가 마레온에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좋았다. 거대한 유물과 괴수의 이름을 몰라도 오늘 저녁 먹을 빵과 내일의 일자리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공방 앞에는 고장 난 시계들이 쌓여 있었다. 문패의 글자는 반쯤 벗겨졌고 문고리는 오래 손을 타 반짝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금속 종들이 천장에 달려 있었고, 먼지 쌓인 장부가 나무 선반을 가득 채웠다. 공방에서 일하던 젊은 견습생은 의뢰서 뒷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종을 만들 때에는 금속의 두께만큼이나 소리가 퍼지는 공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항구의 경고 종은 비바람과 뱃고동 사이에서도 들려야 했고, 학교의 종은 아이들을 놀라게 하지 않아야 했다. 그는 진혁 일행에게 작업 중인 작은 종을 보여 줬다. 보기에는 흠 없는 은색 표면이었지만 울리자 낮은 소리가 중간에 끊겼다. “겉에서 잘 보이지 않는 금이 있어요.” 견습생이 말했다. “손님은 광택을 먼저 보시겠지만 저희는 소리를 먼저 들어요.” 진혁은 자신이 하는 감정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이는 가격표만 믿으면 물건의 진짜 기능을 놓친다. 그러나 감정사의 능력이 있다고 해서 금속을 두드려 보는 장인의 귀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견습생에게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카렌은 진혁이 질문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그에게는 낯선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금화 수백 닢의 의뢰를 받아도 노인의 작업대에 쭈그려 앉아 작은 쇳조각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카렌은 그게 그를 믿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주인은 노년의 기술자 루크였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사람의 입 모양을 천천히 읽었다. 그는 레온의 이름을 듣자 손등의 먼지를 털고 오래된 작업대를 가리켰다. “그 사람은 종을 사러 오는 사람이 아니었어. 어떻게 해야 종이 혼자 울리지 않는지 묻던 사람이었지.” “혼자 울리는 종이 위험한가요?” 카렌이 물었다. “어떤 종은 위험하지. 울리면 사람들이 대피하고, 울리지 않으면 배가 충돌해. 그런데 그 종을 누가 왜 울렸는지 모르면, 종 하나가 도시를 협박할 수도 있어.” 루크는 창고에서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금속판과 비슷한 홈을 가진 장치가 있었다. 세 개의 조개 구멍과 작은 바늘이 함께 달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청자’라고 불렀다. 모라 같은 비인간 생명체의 반응을 강제로 말로 바꾸는 물건이 아니라, 미리 확인된 신호를 시간과 맥락에 따라 기록하는 기계였다. “모라가 말하면 어떻게 됩니까?” 진혁이 물었다. “말할지는 모르지. 이건 듣는 기계야. 듣는다고 모든 걸 이해한다는 뜻도 아니고.” 루크는 진혁을 빤히 보더니 덧붙였다. “자넨 물건의 진가를 안다면서? 그럼 물건을 믿지 말아야 할 때도 알겠군.” 진혁은 대답 대신 장치를 살폈다. 회로에는 삼중 잠금장치가 있었다. 대상의 신호, 기술자의 기록, 독립 청자의 재확인이 각각 따로 남았다. 중간 하나라도 조작하면 비교 기록이 일치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레온이 이걸 가져갔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한 번 가져갔다가 돌려줬어. 그리고 내가 만든 물건이 사람을 가두는 데 쓰이지 않게 해 달라고 했지.” 루크의 얼굴이 그때 잠깐 굳어졌다. “그날 같이 온 젊은 여자가 있었어. 작은 조개를 항상 세 개 들고 다니던 사람.” “유나요?” “이름은 기억 안 나. 하지만 그 여자가 말했지. 도시의 안전을 위해 어느 생명 하나를 매일 괴롭혀도 되는 거라면, 안전이란 말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루크는 수리비 내역을 적으면서 유난히 한 항목을 강조했다. 청자의 기록지였다. 특수 종이는 얇은 은막을 씌워 미세한 떨림을 남겼고, 한 번 기록하면 다시 쓰기 어려웠다. 새로운 장치를 만드는 것보다 그 기록을 오래 보존하는 비용이 더 클 수도 있었다. “기술은 장치로 끝나지 않아. 대답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남겠지. 그때 기록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어야 해.” 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섬에서 보았던 계약 조작도 처음에는 기계의 손잡이 하나를 합쳐 놓은 데서 시작됐다. 작은 변조가 기록을 독점하는 권력으로 커졌다. 루크는 그래서 세 장의 독립 기록지를 각각 다른 장소에 보관하고, 한 곳에서 함부로 바꿀 수 없게 하라고 권했다. “장비 자체는 우리가 맡고, 기록은 시의회와 기술조합, 루멘에 하나씩 나누면 되겠군요.” 진혁이 말했다. “그래. 다만 세 곳이 서로 눈치를 본다고 침묵하면 똑같은 문제가 생긴다. 확인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접근 길을 남겨 둬.” 진혁은 그 말에 항목 하나를 더 적었다. ‘제삼자 이의 신청 절차’. 일상적인 서류처럼 보였지만 앞으로는 누군가의 생존을 지키는 길이 될 수 있었다. 장치는 공짜가 아니었다. 오래된 부품을 바꿔야 했고, 루크는 작업을 위해 금화 몇 닢과 이틀의 시간을 요구했다. 진혁은 돈을 듣고 먼저 세리아의 예산표를 떠올렸다. 한때라면 값비싼 유물 하나를 팔아 수수료로 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루멘은 모라와 연결된 물건의 판매를 중지한 상태였다. “루멘이 비용을 부담하겠습니다.” 진혁이 말하자 카렌이 그를 흘끗 보았다. “사장님 허가도 없이요?” “제 급여에서 떼겠죠.” “그럼 저는 반대할게요.” 카렌의 대답이 너무 즉각적이어서 진혁은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이사벨은 공적 조사 예산과 루멘의 시설 관리 예산을 구분해 계약을 작성했다. 루크는 무상 제공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 대신 비용을 공개했고, 작업 결과를 제3자가 검증할 수 있도록 도면 사본을 제출했다. 늦은 오후 일행이 공방을 나설 때 라일이 그동안 말없이 뒤편 진열장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안에는 작은 은목걸이가 하나 걸려 있었다. 목걸이의 문양은 세 줄의 파도와 작은 종 하나였다. “이거 어디서 났습니까?” 라일이 물었다. 루크는 안경을 고쳐 썼다. “오래전 수리 맡겼던 물건이야. 맡긴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서 보관하고 있지.” 라일은 목걸이의 무늬를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렸다. 작은 종과 세 줄의 파도. 그는 아주 어린 시절 누군가 그 무늬를 옷 안쪽으로 숨겨 주던 감각을 떠올렸다. '남이 물으면 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 당시에는 그 말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누군가의 비밀을 숨기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루크는 라일에게 오래된 수리 접수 대장을 보여 줬다. 목걸이를 맡긴 사람의 이름은 물에 번져 읽히지 않았다. 대신 맡긴 날짜와 보증금으로 낸 동화 세 닢은 남아 있었다. 금화 수백 닢을 다루는 경매장에서 일하는 라일이 고작 동화 세 닢 앞에서 말을 잃었다. “예전에는 이런 걸 보면 그냥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라일이 말했다. “내 것인지 아닌지 따질 사람이 없었거든요.” 진혁은 접수 대장 한 장을 복사할 수 있는지 물었다. 루크는 허락하면서 원본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도둑이었던 사람에게 가장 이상한 변화는, 갖고 싶은 물건을 훔치지 않는 일이 때로는 그것을 되찾는 첫걸음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라일은 목걸이 앞에서 숨을 고르지 못했다. 어린 날 누군가 자신을 품에 안고 빗속을 뛰어가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돌바닥을 치던 구두 소리, 낡은 외투 냄새, 목에 닿던 차가운 금속. 그때 자신을 부르던 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름 부분만 꺼내려 하면 기억이 흰 연기로 바뀌었다. 진혁은 라일을 재촉하지 않았다. 손이 뻗어 나가려다가 멈추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목걸이를 증거로 보존할 수 있는지 루크에게 정중히 물었다. 루크는 맡긴 사람의 소유권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함부로 줄 수 없다고 답했다. “당연하죠.” 라일이 먼저 말했다. 그는 억지로 웃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제 주머니에 들어갔을 겁니다. 이번에는 찾아오죠. 제 거라는 증거를 가지고.” 그는 가게 밖으로 나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펼쳐진 항구에는 수십 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다. 이름을 가진 배도 있었고 숫자만 그려진 작업선도 있었다. 라일은 어릴 때 자신이 탔던 배가 어느 쪽이었는지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나는 것은 물결에 흔들리던 붉은 등이 전부였다. “저 목걸이 하나 찾겠다고 다른 사람들 일을 방해하진 않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 일이 아닙니다. 당신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오늘 저걸 훔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 두세요.” 카렌은 라일이 대답 없이 웃는 얼굴을 보았다. 사람의 이름을 되찾는 일이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은 선택 하나가 더 소중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 과거를 훔쳐오는 대신 물어보는 방법을 택했다. 그날 밤 루멘으로 돌아온 일행은 공방 조사 결과를 정리했다. 카렌은 아버지의 필체가 남은 금속판을 복사한 뒤 원본을 봉인했다. 진혁은 루크의 작업 일정과 마레온 시의회 심사 기한을 나란히 적었다. 남은 시간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짧아졌다. 장치 하나를 완성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는 누구도 모라의 대답을 제대로 들을 방법을 갖지 못했다. 그때 세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들고 온 것은 경매 명세서가 아니었다. “진혁. 오르벤이 공개 심사에 출석하겠다고 했어. 모라가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자기에게 운영권이 있다는 주장으로.” 진혁은 달력을 보았다. 심사일까지 사흘. “그때까지 청자가 완성됩니까?” “루크는 최선을 다하겠대.” 창밖에서 항구의 저녁 종이 울렸다. 진혁은 평범한 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같은 시간 안에 묶어 주는지 생각했다. 모라에게는 아직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답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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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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