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 경매장에서는 손님이 가져온 물건을 모두 경매에 올리지 않았다.
값이 지나치게 낮은 물건은 일반 상점으로 안내했다. 정체가 불분명한 유물은 격리 보관했다. 사람의 생명이나 신원을 거래에 끼워 넣은 계약은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그런데 오르벤 칼스트는 청동 열쇠를 위탁 신청하며 이미 정해진 날짜와 시작가까지 적어 보냈다. 마치 루멘이 그의 명령을 따를 것이라고 믿는 사람 같았다.
시작가는 금화 만 닢이었다.
경매장 접수 책임자인 벨라는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저 가격이면 말단 직원이 열두 번 다시 태어나도 사기 힘들겠네요.”
진혁은 계산해 보려다 관뒀다. “저희 월급을 그렇게 자세히 알고 계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네 연봉 대장을 정리하는 사람이 나야.”
그제야 진혁은 반박을 멈췄다. 벨라는 노련한 직원답게 유물 반입 기록, 소유권 증빙, 물성 검증을 하나씩 요구했다. 위탁인이 값을 크게 불렀다는 사실은 오히려 조사해야 할 항목을 늘렸다. 열쇠는 검은 천에 싸여 도착했고, 곁에는 변호인 한 명과 경비 둘이 붙었다.
세리아는 곧바로 경매를 승인하지 않았다. 대신 공증인 입회하에 접수실에서 감정 절차를 열었다. 열쇠는 손바닥 길이의 청동 제품이었다. 톱니 부분이 일곱 갈래로 나뉘어 있었고, 손잡이에는 조개 세 개가 새겨져 있었다. 수백 년 된 금속이라기에는 표면에 긁힌 흔적이 적었다.
“모라의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는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변호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낙찰자가 직접 확인하시면 됩니다.”
“낙찰자가 확인할 수 없는 기능을 보장하는 광고는 사용할 수 없어.”
진혁은 청동 열쇠의 무게와 금속 함량을 기록했다. 보조 감정 수정판에 올리자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대상: 구형 출입 통제용 청동 열쇠.]
[표면 제작: 최근 8~15년 이내 보수 가능성.]
[맞물리는 구조: 기계식 자물쇠가 아님.]
[잔류 기억: 강한 공명 흔적.]
[사용 목적: 미확정.]
“문을 여는 물건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변호인의 입꼬리가 조금 내려갔다.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는 감정사라면서 그 정도도 모르나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야죠. 다 안다고 말하면 감정이 아니라 광고니까요.”
라일은 그 말을 듣고 아주 작게 박수를 쳤다가 카렌에게 손목을 잡혔다. 세리아는 정식 경매를 보류하는 대신 실물과 공증 자료를 제한된 전문가 공개 감정회에 전시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판매가 아닌 검증이었다. 의뢰인이 거부할 권리도 있었다. 변호인은 잠깐 생각하다 동의했다. 수수료를 내고 물건을 과시할 기회로 삼으려는 모양이었다.
감정회에 앞서 벨라는 홍보 문구를 세 번이나 고쳤다. 최초 의뢰서에는 ‘모라의 출구를 여는 열쇠’라는 문장이 굵게 적혀 있었지만, 수정된 안내판에는 ‘기능 미확인 청동 유물의 공개 물성 검증’이라고만 썼다. 제목이 재미없다는 불평도 들렸다.
“손님들이 왜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벨라가 말했다.
“그게 올바른 반응입니다.” 진혁이 답했다. “정체가 확정되지 않은 물건을 신기한 보물처럼 광고하면 안 되니까요.”
“광고 담당자의 마음은 조금 생각해 주게.”
진혁은 미안해져서 물건의 제작 과정과 검증 원리를 소개하는 작은 안내문을 직접 작성했다. 대장간 기술자들은 금속을 어떻게 식별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고, 역사 연구자는 조개 무늬가 어느 시대에 쓰였는지 비교할 수 있었다. 호기심을 부풀리는 대신 공개 검증의 의미를 보여 주는 행사였다. 시민 몇 명은 처음으로 경매가 단지 높은 값을 외치는 일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여러 사람의 지식을 모으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단 한 가지 예상 못 한 장면도 있었다. 뒤편 객석의 꼬마가 진혁에게 물었다. “아저씨, 거짓말인지 알아보는 기계도 있나요?”
“있다면 저부터 써 봐야겠네요.”
“왜요?”
“아침에 빵 하나만 먹었다고 했는데 두 개 먹었거든요.”
관객들이 웃었다. 카렌도 웃었지만 바로 그의 점심을 챙기겠다고 메모했다.
공개 감정회는 다음 날 열렸다. 중앙 홀의 붉은 커튼 대신 낮은 회색 천막을 치고, 관람객과 유물 사이에는 안전선을 설치했다. 참가자들은 등록 명부에 서명했지만 신원 담보를 요구받지 않았다. 기술자, 감정사, 항만청 연구원뿐 아니라 평범한 경매 손님도 뒤편에서 볼 수 있었다.
진혁은 무대에 서기 전 심호흡을 했다. 멋진 물건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부분을 공개하려는 자리였다. 이런 행사에는 박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청동 열쇠라고 불리는 이 물건은 금속 자체만으로 큰 가치가 없습니다.”
객석에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진혁이 계속했다.
“그러나 원래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하면 도시의 역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확보한 정보로는 모라의 출구를 연다고 광고할 근거가 부족합니다.”
청중 앞줄의 노인이 손을 들었다. “그럼 금화 만 닢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의뢰인이 제시한 희망가입니다. 검증된 평가액이 아닙니다.”
라일이 뒤에서 속삭였다. “시작가 만 닢을 듣고 왔던 손님들이 지금 울고 있겠군요.”
카렌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당신은 왜 울지 않아요?”
“전 원래 돈 없는 사람이라 익숙합니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손님 한 명이 열쇠를 바라보다 갑자기 자신의 손등을 긁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다른 두 사람이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심실 쪽에서 낮은 박동이 울렸다. 전시장을 담당하던 의료술사가 관람객을 출구로 안내했고, 세리아는 즉시 행사를 중단했다.
진혁은 열쇠를 직접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전시대 아래를 보았다. 관람 시작 전에 없던 가느다란 은빛 줄이 바닥 틈으로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전시대와 오래된 봉인 회로를 연결한 것이다. 줄을 따라가자 비어 있는 안내원 책상 아래에서 작은 공명판이 발견됐다.
“열쇠의 성질을 증명하려는 게 아닙니다.” 미란이 현장에 도착해 말했다. “심실의 반응을 일부러 이쪽으로 끌고 온 거예요.”
“왜요?” 카렌이 물었다.
“사람들 앞에서 모라가 위험한 존재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거겠죠. 그런 상황이면 강력한 관리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쉬워지고요.”
그 추정은 동기가 될 수 있었지만 아직 범인을 가리키지는 못했다. 공명판의 지문과 설치 시각을 확인해야 했다. 헥터가 출입 명부를 검토했고, 열쇠를 반입한 경비 중 한 사람이 행사 직전 직원 전용 통로에 들어갔다 나온 사실이 확인됐다. 그 경비는 검문을 받고도 무전 신호를 무시한 채 달아났다.
도주자가 경비 제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했다. 입장객 몇 명은 진짜 경비와 범인을 구별하지 못한 채 출구로 몰렸다. 헥터는 경비대 표식이 다른 점을 발견하고 손님들에게 줄을 만들어 이동하도록 안내했다. 그는 환자에게 먼저 길을 터 주고, 전시대와 출구 사이의 통로를 비워 두었다.
카렌은 빠르게 달리는 대신 주변 동선을 먼저 읽었다. 중앙 복도는 사람으로 막혔고, 서쪽 계단에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있었다. 도주자의 발자국은 직원 승강장으로 이어졌으므로 그곳을 막으면 시민들 사이에서 몸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라일은 이런 계산에 익숙했다. 도둑에게 길은 언제나 쫓기는 사람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었다.
“저쪽으로 돌아가면 화물 리프트 아래에 닿습니다.” 라일이 말했다.
“다치지 마요.” 카렌이 답했다.
라일은 돌아보며 웃었다. “그 말은 제가 들어 본 가장 아름다운 체포 지시입니다.”
카렌은 어이없어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랐다. 잠깐 뒤 리프트의 쇠사슬이 크게 울렸다. 진혁은 달리기 시작하다 발목을 헛디뎌 벽에 기대었다. 자신이 칼을 휘두르는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런 순간마다 확실해졌다. 대신 그는 복도의 방재도를 확인해 리프트가 중간에서 멈출 때 생길 수 있는 압력을 기술자에게 미리 전달했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니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
카렌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뒤따랐다. 그녀의 검은 오직 길을 막는 마력 그물을 자르는 데 사용됐다. 시민들이 밀려 있는 좁은 복도에서 검을 휘두르면 오히려 위험했다. 라일은 반대편 계단을 돌아가 도주자의 앞길을 막았다.
경비는 바깥으로 나가려다 항만청의 화물 리프트로 몸을 던졌다. 라일이 쇠사슬을 붙잡아 제동 장치를 걸었다. 리프트가 덜컹하며 중간 층에 멈췄다. 카렌은 그가 무기를 꺼내기 전에 팔을 제압하고 공적 체포 절차를 고지했다.
진혁은 한참 뒤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왜 이렇게 빨라요?”
라일이 되물었다. “왜 이렇게 느려요?”
“저는 감정사입니다!”
“감정할 거면 저 사람 신발부터 하세요. 도망가기 딱 좋은 물건이니까.”
실제 조사 결과, 경비가 소지한 출입 허가증은 오르벤의 회사 명의였다. 다만 그가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술은 확보되지 않았다. 경비는 공명판 설치 자체는 인정했지만 ‘경매장 장치가 안전한지 시험하는 일’이라고만 주장했다.
이사벨은 증거가 확보되자 감정회 기록을 보전하고, 열쇠의 위탁 자체를 잠정 중지시켰다. 모라의 심실에 불법 공명 신호를 보낸 사건은 별도 수사가 시작됐다. 오르벤 측은 경비의 일탈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밤이 되자 세리아는 손님들에게 손해 배상 안내문을 보냈다. 하루 매출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루멘의 직원들은 처음으로 공개 감정회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물건의 화려한 이름보다 그것이 어떻게 증명되는지가 더 중요했다.
진혁이 장부를 정리하고 있을 때 미란이 청동 열쇠의 복제 도면을 들고 찾아왔다.
“공명판을 제거한 상태에서 열쇠를 따로 검사했는데요. 이건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옛날 안전장치의 동작을 멈추는 승인 도구에 가까워요.”
“그렇다면 정말로 모라의 출구와 연결됐을 수도 있겠군요.”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출구를 여는 게 아니라 닫는 데 쓰였을 수도요.”
진혁은 창밖을 바라봤다. 항구 건너편에 불을 켜 놓은 어선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터가 안전하다고 믿고 하루를 시작했다. 모라가 무서운 존재라는 소문이 퍼지면 그 믿음은 무너지기 쉬웠다.
전시장에서 다친 사람들은 의료술사가 차례로 확인했다. 손등을 긁었던 손님에게는 피부 자극 외에 심각한 이상이 없었지만, 공명판에 가까이 있었던 아이 하나는 두통을 호소했다. 세리아는 의료비와 귀가 비용을 루멘이 먼저 부담하겠다고 했고, 오르벤 측 책임 여부는 조사 결과에 따라 따로 구상하기로 했다. 사건을 당장 매듭짓는 것보다 다친 사람의 치료가 먼저였다.
진혁은 감정 기록을 정리하며 가짜 위탁 광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보았다. 열쇠 자체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이름과 시작가만으로 관람객을 모았고, 모라의 반응을 보여 줄 무대까지 만들었다. 오르벤의 의뢰가 실제로 그런 의도를 품었는지는 검증해야 했지만, 안전하지 않은 홍보를 허용한 책임은 루멘에도 있었다.
벨라가 새 안내문을 가져왔다. “다음부터 기능이 미확인된 물건을 전시할 때는 독립 장치 검사를 선행하겠습니다.”
진혁은 동의했다. 큰 실수를 막는 것은 종종 영웅 한 명의 능력이 아니라 작은 절차 하나였다.
그날 밤 항만청 기록 보관실에서 오래된 서류 하나가 발견됐다. 공명판의 구조와 똑같은 회로를 그린 도면이었다. 도면의 작성자는 레온 하르트. 가장 아래에 손글씨가 남아 있었다.
‘열쇠를 돌리기 전에 반드시 안쪽의 대답을 들을 것.’
제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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