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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34화
PAYLUA ORIGINAL · 제34화

34화. 빌릴 수 없는 심장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596자

오프라인 책장
루멘 경매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손님들이 보는 중앙 계단은 세 층까지 이어지지만, 건물 뒤편의 직원용 계단은 서로 다른 층에 따로 놓여 있었다. 감정실 아래에는 냉각 창고가, 냉각 창고 뒤에는 석탄 보일러실이 있었다. 누가 설계했는지 모를 좁은 통로가 두 곳을 잇고, 경비들이 사용하는 철제 문 너머로 마침내 심실의 복도가 나왔다. 진혁은 이 건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매번 길을 잃었다. “아무래도 건물주가 의도적으로 동선을 어렵게 한 것 같아요.” 라일이 말했다. “건물주가 누군지 모른다니까요.” “그럼 건물 자체가 임대 사기꾼 아닙니까?” 헥터가 앞에서 헛기침을 했다. “심실 앞에서는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모라가 소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직 모릅니다.” 진혁은 복도에 흐르는 공기를 맡았다. 축축한 돌냄새에 금속이 가열될 때 나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벽을 따라 내려온 푸른 물줄기는 유리관 안에서 작은 파동을 만들었다. 심실의 중심에는 마치 거대한 조개 두 쪽을 세워 놓은 듯한 반투명 구조물이 있었다. 그것의 안쪽에서 빛이 수축하고 팽창했다. 박동이 울릴 때마다 벽의 가느다란 관에 푸른 빛이 흘렀다. 모라는 루멘 건물에 갇힌 고대 괴수라고 불렸지만, 괴수의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거에는 움직이는 생명체였다는 기록이 있었을 뿐, 지금의 모라는 오래전 벗겨진 껍질에 의식을 잇고 도시의 방벽을 돕는 존재였다. 바다에 큰 파도가 밀려올 때 항구 방벽에 마력을 보내고, 때로는 봉인된 기억 표지가 흔들리지 않게 붙잡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경매장 시설’이라고 불렀고 경매장 운영자는 매년 유지비를 지출했다. 그러나 유지비를 내는 사람이 생명체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심실 책임 기술자인 헤르만은 장치가 동작하기 전에 진혁을 불러 세웠다. 그는 마른 수염이 많은 장년 남자로, 루멘에서 십여 년 동안 방벽 관을 정비했다. 모라가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 모른 채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아침마다 심실의 박동을 듣고 병든 사람의 숨소리를 확인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전에는 수압과 온도만 썼습니다. 수치가 정상이면 모라가 편안한 줄 알았죠. 그런데 수치가 같아도 밤새 박동이 흔들리는 날이 있더군요.” “그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고장 난 부품을 갈고, 담당자에게 보고했어요.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은 몰랐으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변명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해 온 일을 부정하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새로 배우려고 했다. 미란도 수십 년 동안 쌓인 정비 지식이 없으면 모라의 반응을 해석할 바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생명체를 존중한다는 것은 기존 기술자를 내쫓는 게 아니라 그 기술로 무엇을 더 보호할 수 있는지 묻는 일이었다. 진혁은 점검 장부를 받아 들었다. 일정한 박동 옆에 작은 별표가 붙은 날이 많았다. 헤르만은 그 별표를 ‘이상 진동’이라고 기록했지만 그것이 모라의 불편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앞으로는 그 기록도 별도로 남기기로 했다. 미란이 유리섬에서 가져온 측정 장치를 연결했다. 마을 축전석과 다르게 루멘 심실은 독립 기계와 생체 마력이 뒤섞여 있어 한 부분을 끊어 내면 다른 부분이 예상치 못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사에는 항만 방벽 기술자, 시의회 감독관, 의료술사까지 참여했다. “오늘은 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겁니다.” 미란이 말했다. “반응을 구분할 방법부터 찾는 거예요.” 진혁은 조금 실망했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말을 걸었다가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일만큼 위험한 것도 없었다. 그는 세리아에게 유나의 오래된 편지 사본을 건넸다. 세리아는 심실 가장자리의 의자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모라에게 주인이 필요했던 적은 없었어.” 그녀가 낮게 되뇌었다. 유나가 사라진 뒤 세리아는 경매장 운영자가 되어 봉인을 유지해 왔다. 매월 항만청과 공동으로 방벽 점검을 하고, 심실 관의 균열을 수리하고, 모라가 안정되지 않는 날에는 경매를 취소했다. 그녀는 그것이 책임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도움이 된 일도 많았다. 그러나 그 책임을 근거로 모라의 의사를 묻는 일을 뒤로 미루지는 않았을까. “그동안 누가 모라를 대신해 서명했습니까?” 이사벨이 물었다. 루멘의 옛 계약서는 붉은 실로 묶여 있었다. 열두 번의 갱신 기록 가운데 네 번은 같은 필체였고, 나머지는 다른 직원이 대신 정리한 것이었다. 회계장부에는 언제 어디를 수리했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지만 모라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했는지에 관한 항목은 없었다. 세리아는 그 사실이 가장 부끄러웠다. 고장 난 관은 며칠씩 수리하면서 그 관 끝에 연결된 존재가 괴로워하는지 묻는 절차를 만들지 않았다. “그때는 물어볼 언어가 없었어.” 세리아가 말했다. 미란이 답했다. “모른다는 사실은 핑계가 되기도 하지만, 조사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하죠.” 헤르만은 기술자로서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적었다. 심실 상태가 평소와 다를 때에는 출력만 원상복구하지 않고 반응의 시간과 환경을 기록한다. 누구도 한 사람의 재량으로 강제 출력을 늘리지 않는다. 이상이 있으면 다른 기술자에게도 확인받는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박한 규칙이었지만 이것이 없었기에 과거의 계약은 너무 오래 한 방향으로만 작동했다. 세리아는 관리 계약 사본을 내놓았다. 최초 계약자는 ‘모라의 원권리자를 대리하는 관리인’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이름이 없는 대신 제7봉인의 인장 하나가 찍혀 있었다. 매번 계약을 갱신할 때는 그 인장을 복제한 증서가 사용되었다. “복제라면 원본이 있을 겁니다.” 카렌이 말했다. “그렇겠지. 문제는 아무도 그 원본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거야.” 미란은 각기 다른 세 가지 신호를 만들었다. 첫 번째는 단순히 벽을 세 번 두드리는 기계 진동, 두 번째는 조명 전환, 세 번째는 모라에게 들어가는 방벽 부하를 아주 짧게 낮추는 조치였다. 마지막 조치는 사전에 항만청과 협의했고 실제 방벽 출력을 바꾸지 않는 회피선에서만 진행했다. 첫 두 신호에는 심실이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에서 모라의 박동이 빨라졌다. 기구는 반응을 기록했을 뿐, 그것을 고통이나 기쁨이라고 판정하지 않았다. 진혁이 손바닥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 문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능력은 마법 같은 정답 기계가 아니었다. 특히 살아 있는 상대의 생각을 마음대로 읽어 낼 수는 없었다. 검사 도중 모라의 박동이 갑자기 한 번 크게 울렸다. 벽의 유리관에서 푸른 물방울이 역류했고, 심실 위쪽 천장에 설치된 기계가 진동했다. 헥터가 출입문을 열고 기술자들을 바깥으로 안내했다. 멀리 항만청 감시 종이 짧게 울렸다. “방벽에는 영향 없습니다.” 미란이 측정판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심실의 옛날 회로가 외부 신호를 받았어요.” “우리가 보낸 신호가 아닌데요?” 진혁이 묻자 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회로가 연결된 방향을 지도로 짚었다. 북부 소금 계단이 있는 구역이었다. “누군가 그쪽에서 모라를 부르고 있어요.” 헥터가 통신수정을 작동시켰다. 소금 계단 조사 현장에서는 봉인된 통로의 안쪽 장치가 한 번 더 움직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누가 만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진혁은 그곳의 검은 사각형과 금화 오백 닢짜리 증인 모집 공고를 떠올렸다. “첫 증인을 모아서 저 신호를 승인하려 한 겁니까?” “가설은 세울 수 있지만 확정은 못 해요.” 이사벨이 말했다. “원본 계약 문구를 더 찾아야 합니다.” 그때 심실 문턱 아래에서 무엇인가 굴러왔다. 작은 금속 구슬이었다. 정비공이 공구를 흘린 것인지 확인하려고 헥터가 허리를 굽혔지만 구슬은 문턱에서 멈추지 않았다. 좁은 홈을 따라 굴러 진혁의 발끝까지 왔다. 라일이 냉큼 주우려다 카렌에게 손목을 잡혔다. “만지기 전에 조사부터.” “저를 범죄자 취급하지 마시죠.” “그러면 훔치려고 손을 뻗지 말았어야죠.” 금속 구슬은 금화보다 조금 작았고 한쪽에는 조개 세 개가 일렬로 새겨져 있었다. 진혁은 격리판에 올려 보조 감정을 했다. [분류: 구형 신호 수신기 부품.] [제작 연대: 미확정.] [표면 잔류 음성: 확인 가능.] 미란이 승인된 기계로 음성을 꺼냈다. 아주 희미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들리는 사람에게. 주인이 누구냐고 묻지 마. 누가 멈추라고 하면 멈출 수 있는지 물어.” 세리아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서 편지가 바스락거렸다. “유나의 목소리예요.” 진혁이 물었다. “확실합니까?” “제 기억으로는요. 그래서 더 확인해야 해.” 모라는 다시 천천히 뛰었다. 진혁은 심실의 푸른빛이 벽을 따라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라가 신호를 보냈는지, 누군가 모라를 이용해 구슬을 굴린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금속 구슬이 알려 준 질문은 분명했다. 모라의 관리 계약을 재심사할 때 확인해야 할 것은 ‘누가 소유하는가’라는 한 줄이 아닐 수 있었다. 그 생명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멈출 권한을 누가 보장할 것인가. 그날 밤 세리아는 경매장 전체 직원에게 뜻밖의 공고를 냈다. 앞으로 루멘의 위탁 계약에는 살아 있는 존재의 기억·이름·신체 일부가 포함된 경우 독립 검토를 받도록 하고, 모라를 동원한 거래는 시의회 심사가 끝날 때까지 일절 중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수익이 줄 수 있었고 일부 투자자들이 반발할 것이 뻔했다. “경매장 망하면 저희 급여는요?” 진혁이 물었다. 세리아가 그를 바라봤다. “안전과 임금은 둘 다 지켜야지. 회계 담당과 대책을 세워 놨어.” 라일이 웃었다. “이제야 사장님께 감동하나 봅니다.” “급여가 밀리지 않는 사장님은 감동적이죠.” 카렌은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심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라의 박동이 한 번 더 들렸다. 이전과 똑같은 소리였지만 이제 그 소리를 시설의 작동음이라고만 부르기는 어려웠다. 실험이 끝나자 세리아는 심실 인력에게 하루 근무를 마치라고 말했다. 기술자 몇 명은 더 남아 부품을 확인하고 싶어 했지만, 피곤한 사람이 정밀한 장치를 잘못 다루는 일은 오히려 위험했다. 그녀는 야간 감시 교대표를 다시 작성하고, 봉인 회로에는 이중 확인 규칙을 붙였다. 경매장 위층 식당에는 직원 저녁 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콩 수프와 구운 빵, 덜 익은 사과가 놓인 소박한 식탁이었다. 진혁은 세리아와 마주 앉았다. 그녀는 평소 회계회의에서 사람들 몫을 하나하나 계산하던 사람답게 수프가 부족한지 먼저 물었다. 진혁은 식당을 둘러보며 이 사람들이 모라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했다. “공개하실 겁니까?” 세리아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감춰 두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 지금도 모두에게 한꺼번에 알리는 건 위험할 수 있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계약의 영향을 받게 해서는 안 되겠지.” “설명회를 여는 건 어떨까요. 모라를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요.” “장소와 표현부터 조심해야겠네.” 누구도 심실을 드나들며 살아 있는 존재를 관광 상품처럼 대할 수는 없었다. 모라가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모르니 떠도는 소문을 통제하기도 어려웠다. 그날 두 사람이 결정한 것은 첫 공개 설명회를 시민 대표와 경비, 기술자가 함께 준비한다는 소박한 약속뿐이었다. 사무실로 올라왔을 때 이사벨이 전언을 보냈다. 시의회 심사장에 새로운 신청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모라의 적법한 원권리자를 자처하는 자. 원본 제7봉인 증서를 소지했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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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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