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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30화
PAYLUA ORIGINAL · 제30화

30화. 경매에 나오지 않은 이름들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299자

오프라인 책장
유리섬의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바닷길이 먼저 어두워졌다. 서쪽 수평선에서 거무스름한 구름이 밀려오자 섬의 투명한 광석들이 하나둘 푸른빛을 잃었다. 선착장 쪽에서는 커다란 수송선의 배기음이 들렸고, 경비병들의 구두가 돌계단을 빠르게 두드렸다. 지하 보존실의 천장에 매달린 물방울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만조가 시작되면 이곳의 기록 선반들이 다시 움직인다. 그전에 할 수 있는 일을 끝내야 했다. 진혁은 서른한 번째 이름 표지가 든 상자 앞에 섰다. 나무 상자의 검은 띠를 억지로 뜯으면 연결된 기록이 흩어질 수 있었다. 그는 미란에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수취 확인 장치를 물었다. 미란은 중앙 석단에 박힌 세 개의 손바닥 홈을 가리켰다. “원래는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독립 증인이 각각 확인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가운데 두 홈을 합쳐 버렸죠. 검은 상회가 보수했다고 했어요.” “보수가 아니라 개조네요.” 카렌이 말했다. “한 명이 다른 사람의 동의를 대신하면 거래가 성립하도록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되돌려야죠.” 미란은 주머니에서 작은 공구를 꺼냈다. 원형 홈의 가장자리에 숨겨진 나사를 하나씩 풀자 금속판이 조금씩 올라왔다. 그 아래에는 원래의 독립된 손바닥 홈 세 개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긁힌 손등에 천을 감으며 말했다. “기구를 바꾸는 건 가능해요. 하지만 이게 원래대로 작동하려면 안쪽 회로에 전력을 공급해야 합니다.” “전력을 어디서 가져오죠?” “항만 방벽에 연결된 비상 마정석 일부를 써야 해요.” 진혁은 잠깐 말을 잃었다. 폭풍 때 방벽 마력을 빼돌려 사람들이 다친 사건이 있었다. 이름을 되찾겠다고 다시 공공 방벽의 전력을 가져오는 것은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었다. “안 됩니다. 그 전력은 도시 사람들 겁니다.” “그럼 장치가 움직이지 않아요.” 라일이 머리 위에서 말했다. “다른 방법은요? 세상에 공짜로 움직이는 기계는 없어도 중고 마정석은 많잖아요.” 그 말에 진혁은 문득 염문 수로에서 봤던 작은 황동 종을 떠올렸다. 운송로의 기록들이 스스로 움직일 때마다 고리의 힘이 전달됐다. 이 장치 역시 물이 밀려들며 서가를 들어 올린다. 물의 높낮이와 마정석을 함께 쓰되 비상용 전력은 건드리지 않는 방법이 있을 수 있었다. 그는 미란에게 수로의 전력도와 평소 사용량을 요청했다. 미란은 작업 일지를 펼쳐 보였다. 정상 운전 시 필요한 마력의 절반 정도는 조류의 압력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부족한 전력은 섬 작업소의 독립 축전석으로 보충할 수 있었다. 다만 장비를 연결하는 동안 기록 장치가 일시 멈추므로, 기존 사용자가 손상되지 않도록 사전에 연결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섬 작업소가 동의하면 빌릴 수 있겠군요.” “마을 사람들의 전기입니다.” 미란이 말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빌려 달라고 정식으로 묻겠습니다. 피해 보증과 사용 한도도 적고요.” 미란은 무전용 수정으로 작업소에 연락했다. 마을 회의가 짧게 열렸다.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 며칠 전 폭풍 이후 물건을 고치는 일만으로도 사람들이 지쳐 있었다. 전력을 빌려줬다가 작업소가 멈추면 주민들이 손해를 볼 수 있었다. 진혁은 기록 장치가 어떤 이유로 조사를 받는지 설명했고, 필요한 최대 전력과 종료 시간을 숫자로 적었다. 보증은 루멘과 시의회가 공동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마을 대표는 마침내 제한적으로 허락했다. “그 대신 우리 쪽 안전점검 담당자가 연결을 직접 확인할 겁니다. 위반하면 바로 끊어요.” “그렇게 해 주세요.” 진혁이 답했다. 미란이 마지막 선을 연결하는 동안 진혁은 한 번 더 시간표를 살폈다. 바닷물이 석단 둘레에 닿기까지는 십오 분 남짓이었다. 전력 전환에는 다섯 분, 시험 운전에는 세 분이 필요했다. 상대가 언제 들이닥칠지는 알 수 없었다. 미란은 작은 시계를 돌려 시간을 맞추더니 전선들을 색깔별로 구분했다. 파란 선은 조류 압력, 노란 선은 마을 축전석, 붉은 선은 기존 방벽 비상 전력에 연결돼 있었다. “붉은 선을 먼저 분리하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안전한가요?” 진혁이 물었다. “비상 부하가 걸리면 이쪽이 자동으로 켜질 수 있어요. 확인 없이 두면 우리가 아무리 다른 전력을 써도 결국 방벽에서 끌어다 쓰게 됩니다.” 진혁은 금속판 위에 놓인 미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생업으로 장치를 수리하던 기술자였지 사람의 이름을 놓고 싸우는 전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위험한 일을 맡아 준 것은 자신의 고향이 더는 남의 물건처럼 거래되지 않게 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무섭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미란은 웃지 않았다. “당연하죠. 이 장치가 잘못 돌아가면 우리 마을의 기록이 전부 망가질 수 있는데요.” “그럼 중단할 권한도 미란 씨에게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급해도 안전하지 않으면 멈추세요.” 미란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작은 고개짓으로 대답했다. “그 약속만 믿고 하겠습니다.” 바깥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약속과 계산이 실제 시험을 받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섬 선착장에서 금속 종이 울렸다. 검은 인장 상회의 경비가 지하로 내려오고 있었다. 맨 앞의 남자는 붉은 수건으로 목을 감고 있었다. 그는 유리섬 관리권을 가진 회사의 대리인이라고 소개했다. 얼굴은 가면으로 가리지 않았지만 서류를 내밀 때마다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벨로크였다. “이곳의 설비는 저희가 관리합니다.” 벨로크가 말했다. “즉시 손을 떼시오.” 카렌이 공적 명령서를 내밀었다. “관리권과 소유권은 다릅니다. 법적으로 보존 명령을 받은 장부를 무단 반출할 수 없습니다.” 벨로크는 문서를 훑어보고 비웃었다. “저 서류가 마법 회로에 효력을 발휘하기라도 합니까?” “법은 사람을 상대하고, 회로는 기술자를 상대하죠.” 진혁이 말했다. “우린 둘 다 데려왔습니다.” 미란이 작은 공구를 들어 보였다. 벨로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몸을 돌려 경비병에게 손짓했다. 병사들이 중앙 석단의 비상 손잡이를 당기자 물길이 거세게 흐르기 시작했다. 장치가 강제로 수취 절차를 시작했다. 이름 표지가 든 상자 위에 검은 글씨가 떠올랐다. [제31후보 수취 진행.] [미확인 이름 다섯 건 일괄 대리 확인.] 진혁의 왼손이 저릿했다. 마치 손바닥 아래에서 가느다란 바늘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는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임의로 힘을 더 쓰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표식이 열쇠가 될 수 있었다. “카렌, 저쪽 손잡이를 멈춰 주세요. 장치는 부수지 마세요.” 카렌이 앞으로 뛰었다. 경비병 하나가 창을 휘두르자 그녀는 몸을 낮춰 창끝을 피하고 상대의 손목을 검집으로 쳤다. 금속이 돌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두 번째 경비병은 옆에서 다가왔지만 라일이 미끄러운 바닥에 밧줄을 당겨 발을 걸었다. 남자는 균형을 잃고 얕은 물웅덩이에 넘어졌다. “제가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날이 오네요!” 라일이 외쳤다. 진혁은 중앙 석단에 올라섰다. 금속판 아래에서 세 개의 손바닥 홈이 번쩍였다. 미란은 빠르게 전력선을 옮기고 있었고, 마을의 점검 담당자가 수정 통신으로 부하를 확인했다. 물의 압력이 안정되자 장치가 잠깐 멈칫했다. 진혁은 힘껏 외쳤다. “이름을 받는 당사자로서 제31후보의 자동 수취를 거절합니다! 다른 다섯 사람의 권리를 대신 받지 않겠습니다!” 어디선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경매에서 봤던 제998호 증인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거절한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진혁은 답하기 전에 숨을 골랐다. “원래 책임을 가진 사람에게 돌아가야죠. 그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계약을 중지하고 법이 정한 절차로 판단해야 합니다.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 몰아주면 안 됩니다.” 문자가 흔들렸다. [제31후보 의사 확인: 수취 거부.] [자동 책임 이전: 중지.] [다섯 명의 이름 표지: 개별 보호 보관 전환.] 한순간, 손바닥의 문양이 뜨겁게 타올랐다. 진혁은 고통에 무릎을 꿇었다. 눈앞에는 짧은 장면들이 스쳤다. 어릴 적 그가 처음 들어온 낯선 시장, 주머니에 남아 있던 동화 두 닢, 비를 피해 들어간 작은 서점, 먼지 쌓인 감정 입문서. 그리고 그 책의 첫 장에 손을 얹던 순간. [잔류 기억 접촉.] [능력 부여 경위: 인위적 인장 각성.] [시행자: 확인되지 않음.] 진혁은 이를 악물었다. 마침내 자신의 능력이 우연히 생긴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단서를 얻었다. 하지만 시선을 멀리 돌리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경비병들이 물러난 뒤 벨로크는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선착장에는 이사벨이 보낸 시의회 선박이 도착해 있었다. 염문에 남아 있던 아벨 공증인이 봉인된 증거를 전송했고, 마을 회의의 전력 허가 기록이 합법적 장치 점검을 뒷받침했다. 벨로크는 강제 운송과 보존 명령 방해의 현행 사실로 조사 대상이 됐다. 그의 배는 아직 압수되지 않았지만 도주가 제한됐다. 모든 일이 끝나자 진혁은 물에 젖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카렌이 무릎을 굽혀 그의 손을 살폈다. 피부는 붉었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사람이 살아 있는 이름 하나를 지키는 것도 이렇게 어렵네요.” “그래도 해냈잖아요.” “정확히는 제 것 하나요. 다른 다섯은 아직 주인을 찾아야 합니다.”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가 작은 성공을 거창하게 부풀리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어쩐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자기 상처를 뒤로 미루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라일은 작은 나무 상자 곁에 앉아 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빈 이름표를 문질렀다. 잠깐 푸른 그림자가 떠오르더니 목걸이를 건 어린아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라일은 본능적으로 그 얼굴에 손을 뻗었다. 그림자가 흩어졌다. “저였어요.” 진혁이 돌아봤다. “뭘 봤습니까?” “예전에 누가 저를 부르던 얼굴. 목소리까지는 기억 안 나지만… 저였어요.” 라일의 웃음은 처음으로 어색하지 않았다. 그는 빈 이름표를 다시 내려놓았다. 훔쳐야 할 물건이 아니라 회복해야 할 사람의 일부라는 걸 알아본 듯했다. 보존실 바깥으로 나오자 밤바다에는 작고 따뜻한 불빛들이 떠 있었다. 어선들이 늦은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선착장으로 나와 그물과 생선을 받아 주었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발치에서 빈 바구니를 옮겼다. 몇 시간 전까지 섬의 지하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사고팔려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평범한 광경이었다. 진혁은 한동안 말없이 그 모습을 봤다. 목숨을 걸고 막으려 했던 일의 결과가 거대한 환호나 보물 상자가 아니라 이런 저녁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코트를 여미며 웃었다. 카렌이 곁에 섰다. “그쪽 손은 아직 아파요?” “조금요. 내일 의료인에게 보일 겁니다.” “진짜로요?” “진짜입니다. 명세서도 남길 거예요.” 그녀가 웃었다. “그 말은 믿어도 되겠네요.” 라일은 멀리서 구운 생선 꼬치를 세 개 들고 달려왔다. 하나는 벌써 반쯤 먹고 있었다. “저녁은 제가 쏩니다!” 진혁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돈 어디서 났습니까?” “정당하게 일한 보수요. 오늘은 무언가를 훔치지 않고 지켜서 벌었습니다.” “그런데 세 개라고 하지 않았나요? 왜 두 개 반밖에 안 남았죠?” “맛을 확인했죠. 감정사의 직업병이 옮았습니다.” 셋은 작은 부두 의자에 앉아 생선을 나눠 먹었다. 이 순간이 곧 지나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날 밤 유리섬의 마을 회관에서는 회수된 기록의 임시 보관 절차가 진행됐다. 상자 속 여섯 이름은 각각 별도 봉인하고, 현지 기록원과 시의회, 루멘이 사본을 나눠 보관했다. 위험한 운송로는 폐쇄하지 않고 안전 장치와 감독 인력을 붙여 단계적으로 복구하기로 했다. 마을의 축전석은 약속한 한도 안에서만 사용됐으며 전력이 끊긴 집은 없었다. 진혁은 벽에 걸린 오래된 지도 앞에서 잠시 멈췄다. 낡은 지도에는 유리섬과 루멘 사이에 작은 점 일곱 개가 이어져 있었다. 제7봉인과 같은 수였다. 그가 손을 대지 않고 빛에 비춰 보자, 점들 사이에 아주 작은 글자가 있었다. ‘첫 경매는 물건을 팔기 위해 열리지 않았다.’ 그 아래에는 다른 필체로 새로운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 ‘모라의 원권리자 확인까지 17일.’ 진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의 이름이 빼앗기는 일은 일단 막았다. 그러나 검은 경매의 근본 문제, 누가 모라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제0호 감정사는 그 답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는 듯했다. 그가 지도 아래쪽의 작은 쇠못을 빼자 종이 뒤에서 봉투가 떨어졌다. 봉투의 수신인은 서진혁이 아니었다. ‘루멘 경매장 사장 세리아에게.’ 봉투 앞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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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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