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섬은 멀리서 보면 바다 위에 떨어진 깨진 거울 조각 같았다.
섬의 북쪽 해안에는 검은 현무암 절벽이 솟아 있었고, 남쪽에는 밝은 회색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중간에는 투명한 광석이 섞인 바위들이 빛을 반사했다. 바닷물이 잔잔한 날에는 섬 전체가 빛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균열과 날카로운 돌이 많았다. 배를 잘못 대면 선체가 찢기기 쉬운 곳이었다.
진혁은 난다의 소개로 구한 작은 화물선을 타고 오전 일찍 섬에 도착했다. 배에서는 염장 생선 냄새가 났고, 선장은 바닷길을 건너는 내내 물결의 방향을 살폈다. 조류가 바뀌는 구간에서는 노를 젓지 않고 잠깐 기다려야 했다. 진혁은 배의 흔들림에 익숙해지지 못한 채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얼굴색이 안 좋습니다.” 카렌이 말했다.
“생각보다 바다가 크네요.”
“태어나서 처음 본 것처럼 말하네요.”
“항구에서 보는 바다와 배 위에서 보는 바다는 다르니까요.”
라일이 두 사람 옆에서 웃었다. “감정사의 첫 번째 발견, 바다는 젖어 있다.”
진혁은 대꾸하려다 목구멍이 울렁거리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카렌은 그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 그녀는 한동안 무거웠던 얼굴을 처음으로 풀고 있었다.
선착장에는 검은 인장 상회의 경비들이 서 있었다. 긴 외투 아래에 가죽 갑옷을 받쳐 입은 그들은 방문객에게 허가증을 요구했다. 이사벨의 공적 조사 명령서와 루멘의 원본 출처 확인서를 본 경비대장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섬의 안전 때문에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몇 명까지 허용되죠?” 카렌이 물었다.
“두 명입니다.”
“정확한 근거가 있는 규정입니까?”
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혁은 웃으며 공적 명령서의 뒷장을 펼쳤다. 보관 인원과 감정인, 안전 경호 담당자 각 한 명의 동행이 허가된다고 적혀 있었다.
“저희는 셋입니다. 세 사람 모두 정당하게 들어갈 자격이 있어요.”
라일이 빈손을 펴 보였다. “전 오늘 아무것도 훔치러 온 게 아닙니다.”
“그 말이 제일 미심쩍군.” 경비대장이 중얼거렸다.
결국 세 사람은 이름을 적고 섬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병들은 뒤따르려 했지만 카렌이 조사 절차를 근거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도록 요청했다. 공공 부지의 장부를 검증하는 자리에서 상회 경비가 문서에 손대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마을 선착장에서는 물건을 내리는 작업이 막 끝난 참이었다. 녹슨 크레인 하나가 바퀴 달린 상자를 들어 올렸고, 그 아래에는 소년들이 떨어진 밧줄을 주웠다. 배에서 내린 소금과 곡물은 커다란 저울에 올라갔다. 마레온의 화려한 경매장에서 쓰는 마법 저울과 달리 이곳의 저울은 나무 기둥에 쇠추를 매달아 사용했다. 무거운 추를 움직일 때마다 나무가 삐걱거렸다.
“여기도 경매를 합니까?” 진혁이 물었다.
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요일마다 잡은 해산물과 광석을 팔지. 도시 사람들은 이곳을 유리섬이라 부르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냥 고향이라고 해.”
진혁은 포구를 바라봤다. 상회의 압력 때문에 장부 조사에 협력하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는 현장을 지키려면 주민에게 협력의 대가와 안전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란은 마을 회관에 진혁 일행이 도착한 이유를 알렸다. 작업소 장인 셋과 항만 조합 대표 한 명이 나타났다. 낯선 조사단을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들은 먼저 물었다.
“장부를 가져가면 우리가 다음 주에 운반할 물건은 어떻게 됩니까?”
“증거를 빼돌리지 못하도록 보관하지만, 정당한 거래 장부까지 가져가지는 않을 겁니다.” 진혁이 답했다. “필요한 건 위조된 서명과 그와 연결된 물품의 원본입니다.”
“말은 그럴듯하지. 지난번 조사단도 그렇게 말했다가 반년 동안 창고를 닫았어.”
카렌은 그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당시 무슨 피해가 있었는지 기록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번 명령에는 사용 중인 정상 시설을 계속 운영하도록 조건을 달 수 있습니다.”
대표는 잠시 의심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보더니, 회관 서랍에서 피해 신청서 묶음을 꺼냈다. 선박 네 척이 운항을 멈췄고 열두 가구가 보수 일을 쉬었다는 내용이었다. 진혁은 그 수치를 수첩에 옮겼다. 검은 경매를 무너뜨린다는 멋진 말이 결국 이 숫자들의 삶과 충돌한다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유리섬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바닷바람을 피하려 집들이 낮게 지어졌고, 창문에는 얇은 광석 조각을 끼워 넣었다. 흰 벽 앞에서는 아이들이 작은 돌을 튕기며 놀았고, 언덕 위에는 기록 운송로를 고치는 작업소가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미란이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녀는 아버지의 수리 일지를 미리 찾으려 했지만 상회가 보관실을 잠갔다고 했다.
“오늘은 법원 명령서가 있으니 열어야 해요.” 카렌이 말했다.
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이곳은 사람보다 문이 먼저 말을 듣는 곳이에요.”
지하 보존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놀랍게도 따뜻했다. 투명한 광석이 벽을 따라 길게 박혀 있었고, 그 안에 작은 빛들이 갇힌 듯 움직였다. 계단 아래에는 물이 고인 원형 홀이 있었다. 중앙에 낮은 석단이 있고, 석단 주위로 여덟 개의 기록 선반이 돌며 물결에 닿지 않게 서 있었다.
미란은 아버지가 남긴 공구를 꺼냈다. “이 수로는 바닷물과 마력을 동시에 이용합니다. 고대 기술이라도 작동 원리는 있어요. 물이 들어오는 동안 무거운 서가를 들어 올리고, 마력이 기록의 좌표를 맞추죠.”
진혁은 벽의 손바닥 문양을 가리켰다. “이건요?”
“서명하는 위치예요. 원래는 물건을 맡기는 사람, 받는 사람, 확인하는 사람이 따로 서명하도록 만든 장치였대요.”
“그런데 지금은 한 사람이 셋을 대신하죠.”
미란이 그를 돌아봤다.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비슷한 서명을 당할 뻔했습니다.”
보존실의 기록대에는 고장 난 금속 인장이 놓여 있었다. 조각을 세워 보면 검은 경매의 제998호 원부와 같은 문양이었다. 인장의 한쪽 끝에는 ‘대리권 승계’라는 글자가 새로 새겨져 있었다. 본래의 ‘대리 표시 금지’라는 글자는 그 아래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은 원본을 건드리기 전에 사진 복사판으로 상태를 기록했다. 미란은 공구를 사용해 손상된 인장을 고정했고, 카렌은 보관 명령에 따라 출입 기록을 만들었다. 라일은 선반 뒤쪽을 살폈다. 익숙한 구조라며 손을 넣었다가 낡은 쇠고리를 하나 꺼냈다.
“이런 건 도둑보다 수리공이 잘 알죠.” 미란이 말했다.
“저도 수리할 줄 알아요. 잠긴 금고의 마음을요.”
선반이 천천히 돌자 안쪽에 오래된 수리 일지들이 나타났다. 날짜는 레온 하르트가 실종되던 해의 여름에 멈춰 있었다. 카렌은 아버지 이름이 적힌 장을 찾자 잠시 숨을 멈췄다. 사고 보고에는 ‘수문 정비 중 붕괴, 사망 추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뒤쪽에 끼워진 수리공의 개인 메모에는 다른 내용이 있었다.
‘레온 조사관, 수문을 수동으로 닫음. 연결된 이름 표지가 바다 밖으로 유출되려 하자 임시 분리. 서류 원본 회수 불가. 귀환 여부 확인되지 않음.’
카렌의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미란이 작게 말했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누구에게도 사건 얘기를 안 했어요. 누군가가 입을 막으려 했다는 것 같기도 했고요.”
“아버지가 돌아왔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진혁은 답하기 전에 메모를 다시 읽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뜻까지예요. 사망 사실을 뒤집을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희망을 경계하는 것이 슬픔을 없애 주지는 않았다.
기록대 한쪽에는 작은 가죽 수첩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부러진 고무줄로 묶어 보관한 수첩에는 부품 교체 시각과 수문 잠김 압력이 적혀 있었다. 미란은 아버지의 필체라며 첫 장을 펼쳤다. 그 뒤에는 레온이 손으로 그린 간단한 선로도 있었다. 선로는 중앙 수문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쪽은 바다를 향했고, 다른 한쪽은 기록 보존 장치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진혁은 왼쪽 선로를 가리켰다. “이곳이 실제로 침수됐을 가능성이 있군요.”
“맞아요.” 미란이 답했다. “하지만 수리 일지에는 중앙 기계실의 침수만 적혀 있어요. 사람을 찾으려면 실제 사고 지점과 문서상의 사고 지점을 비교해야 해요.”
라일은 수첩 끝에 끼워진 낡은 천 조각을 발견했다. 회색 천에 푸른 실로 꿰맨 작은 표식이 있었다. 카렌이 알아보고 숨을 들이켰다. 레온이 생전에 소매 안쪽에 달고 다니던 검사단 표식이었다.
“아버지는 이걸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제가 어릴 때마다 만지면 혼날까 봐 몰래 구경하던 거였는데.”
카렌은 천 조각을 두 손으로 감쌌다. 진혁은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흔한 옷감 조각이어도 그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다른 가치가 있었다.
잠시 뒤 카렌이 수첩을 다시 펼쳤다. 천 조각 안쪽에는 작은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돌아오지 못하면 증인이 되어라.’
카렌은 그 문장을 읽고 오래 말이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천 조각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기록용 복사판을 눌렀다. 소중한 흔적이라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남겨 두어야 했다. 그녀의 손끝이 떨렸지만 움직임은 정확했다.
그때 보존실 한가운데 있던 빛기둥이 짧게 울렸다. 목소리가 들렸다.
“레온, 그 문은 닫으면 안 돼. 안쪽에 아직 사람이 있어.”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세리아가 검은 경매에서 ‘유나’라고 불렀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진혁은 본능적으로 빛기둥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손대기 전에 미란이 그의 팔을 막았다.
“잔향 기록이에요. 손으로 잡으면 최근 기억이 덧씌워질 수 있어요.”
“녹음 같은 겁니까?”
“대화의 잔류 마력을 보관하는 장치예요. 기록된 사람이 지금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니에요.”
카렌은 목소리를 듣고 두 손을 움켜쥐었다. 곧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유나, 넌 모라에게 돌아가. 난 누군가 이 기록을 증명할 수 있게 남겠어.”
“당신 혼자 안 돼.”
“혼자가 아니야. 증인의 자리는 원래 함께 책임지기 위해 있는 거니까.”
빛기둥은 잠시 흔들리다가 꺼졌다. 진혁은 그 목소리를 녹음용 수정에 복사했다. 원본을 보존하기 위해 직접 옮기지 않았다. 세리아와 카렌이 그 음성을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웠다.
진혁은 그제야 미란이 말한 ‘빛이 남는 돌’을 이해했다. 사람들이 유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무기의 위력이나 금화의 양뿐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말처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흔적도 돌 속에 남았다.
그가 기록대 아래쪽에서 작은 상자를 찾은 것은 그 직후였다. 상자에는 여섯 사람의 이름 표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서진혁이라고 적혀 있었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빈칸이었다. 빈칸 아래에는 예전 수리 일지의 끝부분과 같은 도장이 있었다.
‘제0호.’
진혁의 손바닥 문양이 뜨거워졌다.
[운송 대상 확인.]
[제31후보: 현재 연결 유지.]
[자기 이름 반환 절차: 원권리자 본인의 확인 가능.]
[단, 잔여 후보자 연결을 보호할 별도 운송 경로 필요.]
그는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누군가 일부러 자신이 이곳에 도착하도록 길을 놓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이곳에는 진짜로 사람들을 되돌릴 단서가 있었다.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기보다는 어떤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지 분리해야 했다.
“미란 씨, 이 장치가 언제 다시 움직입니까?”
“저녁 만조 때요. 그때 상회가 다음 화물을 받으러 올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가 먼저 기록을 지켜야겠군요.”
카렌은 눈가를 닦고 검을 점검했다. 라일은 출구와 창고 입구의 거리를 재듯 걸어 다녔다. 미란은 잠긴 보수 도구함을 열었다. 네 사람은 처음으로 같은 장소를 각기 다른 이유로 지키기로 했다.
마지막 햇빛이 유리섬 절벽을 붉게 물들일 무렵, 보존실 바깥에서 낮은 엔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검은 인장 상회의 수송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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