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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23화
PAYLUA ORIGINAL · 제23화

23화. 낙찰되지 않은 화물선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917자

오프라인 책장
밤의 제4부두에서는 모든 소리가 한 겹씩 두꺼워졌다. 나무 판자를 밟는 발소리는 갯물 아래 빈 공간에 부딪혀 울렸고, 젖은 밧줄이 부두 기둥을 쓸 때마다 짧은 신음 같은 마찰음이 났다. 등대의 불빛은 아홉 번 숨을 고르고 한 번 빙글 돌았다. 북쪽 바다에서는 폭풍에 밀려온 잔해가 물결을 따라 가끔씩 떠다녔다. 가을 바람이 바닷물을 머금고 들어오자 경비병들의 창끝에 하얀 소금기가 얹혔다. 서진혁은 방수 외투를 여미고 화물선 명단을 확인했다. 대상은 중형 화물선 ‘푸른기러기’. 선체가 낡아 속도는 느렸지만 적재 공간이 넓어 경매 물품을 서쪽 섬으로 옮길 때 자주 쓰였다. 항로는 마레온에서 염문을 지나 유리섬까지, 반나절이었다. 오늘 밤에는 낡은 문서 일곱 상자와 금고 한 개가 실릴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제는 그 문서가 실제로 무엇인지 적혀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대놓고 멈춰 세울 수는 없어요.” 카렌이 말했다. “공증인 없이 화물을 열면 상대가 도리어 우리를 불법 수색으로 고소할 겁니다.” 그녀는 검을 등에 멘 대신 짧은 호신검만 차고 있었다. 공식 수사관으로 온 것이 아니라 계약 분쟁의 이해관계인을 보호하는 검사로 동행한 것이었다. 이사벨은 아직 출입 명령이 발효되지 않았으므로 위법 수색을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러니까 보험 검사 신청부터 넣었습니다.” 진혁은 두꺼운 장부를 가리켰다. “원래 소유자가 표시되지 않은 고액 화물은 선적 전에 감정의뢰가 가능하죠. 보험사도 모르는 물건에 금화를 지급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요.” 라일이 옆에서 웃었다. “오늘도 돈 많은 사람이 손해 보기 싫은 마음을 이용하는군요.” “사람을 설득하는 데 돈만큼 확실한 언어가 별로 없죠.” 부두 옆 여관에서는 창문을 열어 놓고 늦은 저녁 장사를 하고 있었다. 매운 조개탕 냄새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진혁은 그 냄새를 맡자 배가 고파졌지만 동전 지갑을 확인하고는 마음을 접었다. 조사 여비는 이미 정해진 금액이었고, 세리아는 정산 때 영수증 하나까지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푸른기러기 호의 선원들은 금방이라도 출항할 듯 분주했다. 돛줄이 바람에 부딪힐 때마다 닳은 마찰음이 났고, 갑판에서는 통나무 굴리는 소리가 울렸다. 주방 담당 선원은 항해 중 먹을 마른 빵을 자루에 채우고 있었다. 젊은 견습 선원 하나가 길게 늘어진 밧줄을 잘못 묶자, 나이 든 항해사가 손등으로 그의 손을 툭 치며 매듭을 다시 가르쳐 줬다. “저 사람들은 우리가 검사한다고 하면 정말 좋아하겠네요.” 진혁이 중얼거렸다. 카렌은 그의 표정을 읽었다. “기분 나쁠 겁니다. 하지만 위험물이 있는 채로 나갔다가 사고가 나면 더 끔찍하겠죠.” “압니다. 그래도 그 비용을 이 사람들만 내게 할 수는 없죠.” 그는 검사 의뢰서 아래 별도 첨부란에 선원의 임금 보전 항목을 추가했다. 보험사가 끝까지 거절한다면 루멘 조사 비용으로 우선 대납할 수 있는 한도를 적었다. 무척 작은 액수였지만, 진혁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라일은 그가 숫자를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다 짧게 말했다. “전에 당신은 잃어버린 동화 한 닢도 아깝다고 했는데.” “지금도 아깝죠. 하지만 저 사람들 임금은 제가 잃어버린 게 아니잖아요.” 라일은 뜻밖이라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화물보다 먼저 선원을 생각하는 감정사는 흔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던 감정사 대부분은 물건의 소유자가 아니라 물건을 살 사람의 주머니부터 살폈으니까. 그들이 다가가자 선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계약서에 운항 허가가 찍혀 있는데 무슨 감정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지체료는 누가 냅니까?” 진혁은 미리 준비한 보증서를 내밀었다. “제가 잘못 지적해서 출항이 늦어지면 루멘의 조사 여비에서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겠습니다. 대신 등록되지 않은 위험물이 발견되면 보험사가 전액 책임을 면하지 않도록 선장님도 서명해 주셔야 합니다.” 선장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서류를 읽었다. 뒷줄에서는 하역 인부들이 임금을 받지 못할까 봐 수군거렸다. 그들의 사정을 모른 척하면 아무리 옳은 조사라도 원망만 남는다. 진혁은 작업반장에게 말했다. “조사 중 대기 임금은 보험 검사 비용에 포함되게 해 놨습니다. 배가 못 나가더라도 인부들 돈은 깎지 마세요.” 반장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것까지 확인했소?” “저도 월급이 하루 밀리면 화가 나니까요.” 선장은 결국 서명했다. 허가된 감정은 선적 목록과 봉인 상태의 비파괴 검사까지였다. 상자를 뜯어 내용물을 볼 권한은 없었다. 진혁은 그 선을 분명히 기억했다. 그는 낡은 목상자 바깥에 붙은 등록패를 살폈다. 일곱 상자는 모두 ‘기록 복원 불가’라는 판정을 받은 서류였다. 그런데 각 상자의 무게는 원본 문서보다 많았다. 두 번째 상자에서는 짧고 규칙적인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목판 안쪽에 살아 있는 벌레가 있는 것 같았다. “책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나요?” 진혁이 물었다. 라일은 줄을 타고 다른 쪽을 살폈다. “상자 안에 철판을 넣으면요. 도둑들이 무게를 속일 때는 보통 반대로 하죠.” “여기는 반대일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진혁은 얇은 청동 추를 꺼냈다. 루멘에서 사용하던 저가 감정 도구였다. 물건에 걸려 있는 자기장의 반응만으로 철분 유무를 보는 단순한 장치였다. 청동 추가 두 번째 상자 쪽으로 휘어졌다가, 셋째 상자 앞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다른 힘이 상자 안에 있었다. “정상 서류가 아니라 마력 저장 매체가 섞여 있습니다.” 선장이 짜증을 냈다. “그걸 증명할 수 있소?” 진혁은 즉시 답하지 못했다. 감정 능력으로는 보일지 몰라도 정식 서류에 적을 물증은 따로 필요했다. 그는 배에서 사용하는 항로용 나침반을 부탁했다. 선장이 낡은 기구를 가져오자 진혁은 침착하게 바늘의 편향을 기록했다. 배가 상자에서 멀어질수록 나침반이 정상 북쪽을 가리켰다. 마력이 함선의 항로 측정에 실제 방해를 일으키고 있었다. “자, 그럼 보험 규정상 위험물 재분류 검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선장은 한숨을 쉬며 모자를 벗었다. “누가 이걸 위험하지 않은 물건이라고 적어 놓은 거요?” “도장이 빠진 검사인이요.” 그때 선미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밧줄에 매달린 작은 수레가 갑자기 기울어 바다로 떨어지려 했다. 안에는 마지막 금고가 실려 있었다. 진혁이 돌아보니 하역 고리를 고정하는 은색 핀이 반쯤 빠져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옮기거나 고의로 풀어 놓은 흔적이었다. 카렌이 먼저 뛰었다. 그녀는 판자 틈에 발을 걸고 수레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밧줄이 그녀의 팔뚝을 거칠게 긁었다. 라일은 옆쪽 난간 위로 가볍게 올라 금고에 연결된 보조줄을 당겼다. 하지만 금고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아주 비싼 서류인가 봅니다!” 라일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진혁은 근처의 도르래를 살폈다. 오래전 감정 교육에서 배운 단순한 역학이 떠올랐다. 바퀴 둘을 잇는 줄을 다시 걸면 같은 힘으로도 더 무거운 물건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는 작업반장에게 조종 레버를 멈춰 달라고 소리치고, 떨어진 보조줄을 아래쪽 고리에 걸었다. 셋이 무게를 나누자 수레는 조금씩 수평을 되찾았다. 금고가 판자 위로 내려앉은 뒤 카렌은 팔뚝에 남은 피를 닦았다. 그녀는 진혁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다음부터는 저한테 위험하다고 먼저 말해요.” “저도 수레가 떨어지기 삼 초 전까지 몰랐습니다.” “그럼 뛰는 대신 사람부터 불러요.” 라일이 끼어들었다. “저는 사람 아닙니까?” “당신은 이미 뛰고 있었잖아요.” “이렇게 고생했는데 칭찬 하나가 없군요.” 세 사람의 말을 듣던 하역 반장이 긴장을 풀고 웃었다. 금고 측면의 작은 나무 패가 떨어졌다. 그 안에서 바짝 마른 검은 서류 조각이 드러났다. 진혁은 봉인 훼손 여부를 확인하고 선장과 작업반장 앞에서 사진용 복사판을 눌렀다. 원본은 그대로 두었다. 조각에는 물건 번호 대신 사람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스무 개의 이름, 그리고 맨 아래 다른 글씨로 적힌 문구 하나. ‘제31후보 운송 개시.’ 진혁은 곧장 이사벨에게 연락했다. 그는 선적을 막는 최종 결정은 공적 권한을 가진 사람이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벨은 위험물 신고와 위조 도장 증거를 토대로 임시 출항 정지를 승인했다. 배의 엔진이 꺼지자 부두에 잠시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기다리던 선원들이 항의하려다 조사 명령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적재함을 지키던 낯선 경호원 셋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중 한 명은 몸을 돌려 어둠 속 계단으로 내려가려 했다. 라일이 그 앞에 먼저 섰다. “어디 가세요? 저도 급한 곳이 있는데 같이 갑시다.” “비켜.” “아, 전 비켜 드리는 대신 통행료를 받습니다.” 남자가 허리에서 짧은 칼을 뽑는 순간 카렌이 땅에 떨어진 쇠고리를 발로 차올렸다. 고리가 칼 손목에 부딪혔고, 경호원은 놀라 무기를 놓쳤다. 다른 두 사람은 헥터의 경비대가 들어오자 저항하지 않았다. 소란은 금세 끝났지만, 그들 주머니에서는 항만청의 출입패와 검은 인장 상회의 영수증이 함께 나왔다. 헥터는 현장에서 경호원들이 쓴 출입패를 수거하고 각자 다른 장소에서 진술을 받도록 했다. 그는 진혁이 물품 검사 기록을 정리하는 동안 선박 관리 대장에 적힌 모든 승선 인원과 실제 갑판의 사람 수가 맞는지도 확인했다. 명단에는 열두 명이 올라 있었지만 부두에 서 있는 선원은 열 명뿐이었다. 나머지 둘은 선적 직전에 내렸다고 했다. “어디로 갔습니까?” 헥터가 선장에게 물었다. 선장은 차가운 밤바람에도 땀을 흘렸다. “남쪽 물류 창고로 파견됐다더군요. 나도 내릴 때 얼굴을 제대로 못 봤소.” “그렇다면 내린 시각을 적어 주세요. 확실하지 않으면 확실하지 않다고 쓰면 됩니다.” 진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헥터는 항상 그렇듯 아주 평범한 절차를 지키고 있었다. 그 평범함이 갑자기 소중해 보였다. 검은 경매에서 훔친 서류를 되찾는 데에는 거대한 마법이 필요했지만, 도망친 사람을 쫓는 첫 단계는 명단과 실제 인원을 맞춰 보는 일이었다. 선장도 조금씩 진정했다. 그는 배에 숨겨진 물건이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임을 알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내 배에 저런 걸 실었다면 내 이름으로도 책임을 떠넘겼을 거 아니오!” “그래서 검사 기록에 선장님의 이의도 적겠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사람이 계약서를 그렇게 꼼꼼하게 보면 평생 장사도 못 한다고들 하지. 그런데 오늘은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오.” “그런 말씀은 사장님 앞에서 크게 해 주세요. 근무 평가에 필요합니다.” 선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진혁은 그 웃음소리 아래에서 잠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밀봉된 화물상자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낮은 진동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검은 경매는 끝났어도 배후 조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진혁은 확보된 운송 영수증을 보며 말했다. “금고 안에 든 것이 제 이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저 문서에 적힌 다른 사람들도 먼저 확인해야겠어요.” “왜죠?” 선장이 물었다. “제31후보라는 말이 붙었으니까요. 앞에 서른 명이 있었단 뜻입니다.” 그날 밤, 진혁은 루멘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처음으로 자신과 아무 관련 없는 듯한 서른 명의 인생을 생각했다. 그들은 정말 제998호의 책임을 떠안았을까. 그들 이름 역시 누군가 마음대로 가져다 썼을까. 창밖에는 좁은 골목의 빵집 불빛이 새어 나왔다. 늦게 문을 닫는 가게 앞에서 어머니가 아이에게 따뜻한 국물을 먹이고 있었다. 자신도 저곳에서 저녁 한 끼 먹고 월급을 계산하던 사람인데, 언제부터 낯선 이름 수십 개를 지키겠다고 뛰어다니게 된 걸까. 카렌이 그의 시선을 따라봤다. “무서워요?” “조금요.” “도망가도 된다고는 못 해요. 하지만 무섭다고 말해 주니까 좋네요.” 진혁은 멋쩍게 웃었다. “싸움 잘하는 사람 앞에서 겁 없는 척하면 들통날 것 같아서요.” 그날 확보한 영수증의 뒷면에는 유리섬의 물때 시각이 적혀 있었다. 출항은 막았지만 화물을 기다리는 사람은 여전히 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영수증을 작성한 필체는, 삼백 년 전 원부에 새로 적힌 ‘서진혁’의 필체와 완전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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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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