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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22화
PAYLUA ORIGINAL · 제22화

22화. 고장 난 종이배의 값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789자

오프라인 책장
마레온 시립 기록관에는 두 종류의 줄이 있었다. 하나는 재산 상속과 선박 허가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서 있는 앞문 줄이었다. 양손에 종이를 든 시민들이 햇빛 아래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다른 하나는 건물 뒤편 작은 철문 앞에 생긴, 돈을 받아야 할 사람들의 줄이었다. 그쪽에는 폭풍 때 망가진 선박과 화물의 보상 신청자들이 모였다. 망가진 수레바퀴 사진을 든 노인, 젖은 생선 가죽을 자루에 넣어 온 상인, 선원 명단을 안고 앉은 소년까지 있었다. 서진혁은 정문 줄에 서다가 뒤쪽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제 배는 아직 발견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보상을 끝냈다니요?” 어깨가 넓은 중년 남자가 서류 창구를 향해 항의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굵은 밧줄에 쓸린 자국으로 하얗게 부풀어 있었다. 관리인은 난처한 얼굴로 장부를 넘겼다. “선박등록번호 M-4417. 이미 인양권이 양도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원권리자는 남부 무역 대리점입니다.” “제가 그 배를 산 지 십오 년이에요. 이름은 파도새입니다. 배 이름을 제 아이가 지었어요.” “시스템에는 그렇게 뜹니다.” 진혁은 그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검은 경매에서 ‘내일의 인양권’이라고 부르던 계약이 생각났다. 등록번호 999의 낙찰은 중단됐지만 이전에 만들어진 불법 위임의 찌꺼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창구 앞으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원본 서명이 있습니까?” 관리인은 낯선 청년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사벨이 발급한 임시 감정 조사증을 보여 주자 표정이 조금 풀렸다. “도장이 하나 있습니다. 바람에 젖어 사본 일부가 지워졌지만요.” 창구에 나온 서류에는 선박 명의자 칸이 검게 번져 있었다. 대신 다른 사람이 일괄 대리한다는 문장만 또렷했다. 진혁은 곧장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먼저 어부에게 이름을 물었다. 마틴이라는 남자는 배를 언제 샀는지, 누가 함께 작업했는지, 도장에 어떤 흠집이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진혁은 그 말을 적었다. 사람의 기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류와 대조할 출발점은 필요했다. 그때 작은 여자아이가 마틴의 바짓단을 잡아당겼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젖은 종이배를 조심히 두 손에 올려놓았다. “아빠, 이거는 안 팔았잖아.” “리나, 그건 그냥 종이야.” “파도새 모양이잖아.” 종이배는 낡은 항로표를 접어 만든 것이었다. 모서리에 소금이 하얗게 말랐고, 밑바닥에는 푸른 잉크로 작은 선박 번호가 적혀 있었다. 진혁은 종이배를 바라봤다. 값으로 치면 동화 한 닢도 되지 않을 물건. 그러나 배가 다니던 항로의 흔적과 도장의 물기가 남아 있었다. “잠깐 봐도 될까요?” 아이는 아버지 눈치를 살핀 뒤 배를 내밀었다. 진혁은 책상에 마른 천을 깔고 조심스럽게 펼쳤다. 찢어지기 쉬운 젖은 종이를 강제로 피지 않으려고 손끝으로 공기를 불어 넣으며 한쪽씩 들었다. “이 항로표는 배에서 가져온 겁니까?” 마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풍 오기 전에 배를 비우면서 그 애가 접었어요. 제가 매일 연료 사용량과 통항 허가 도장을 찍던 종이죠.” 진혁은 지도 가장자리에 남은 도장과 관청 서류의 도장을 대조했다. 관청에 제출된 사본에는 세로줄 하나가 빠져 있었지만, 종이배에 남은 붉은 도장은 세로줄 두 개가 겹쳐 있었다. 위임 서류의 인영이 원본에서 찍힌 것이 아니라 나중에 베낀 것일 가능성이 컸다. 그는 허락을 얻어 짧게 본질 감정을 열었다. [낡은 항로표를 접은 종이배.] [시장 가치: 없음.] [잔류 기억: 폭풍 이틀 전, 파도새 선실.] [마지막 정상 등록 도장: 마레온 항만청 정식 인영.] [이후 소유권 양도 기록: 감지되지 않음.] 눈앞에 물결처럼 흐릿한 장면이 지나갔다. 작은 손이 항로표를 접고, 마틴이 웃으며 종이배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기억은 그 정도에서 끊겼다. 이런 파편만으로 배의 법적 소유권을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실물을 보전하고 두 도장을 대조할 이유는 충분했다. 진혁이 조사증을 관리인에게 내밀었다. “이 종이와 항만청 인영 대장을 증거로 접수해 주세요. 소유권 다툼이 끝날 때까지 인양권 처분을 정지해 달라는 신청도 함께 하겠습니다.” 마틴의 얼굴에 희망이 스쳤다. “그러면 배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까?” “아직은 모릅니다. 배 위치와 손상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남이 마음대로 팔아 버리게 두지는 않을 수 있어요.” 아이는 진혁의 옷소매를 잡았다. “아저씨가 종이배를 사는 사람이에요?” “아저씨는 아직 아닙니다.” “그럼 오빠?” “오빠라고 부르면 감정료 할인해 줄게.” “정말?” “오늘은 무료.” 마틴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 웃음 때문에 눈가에 힘이 풀렸는지 잠깐 고개를 숙였다. 관리인이 신청서를 정리하는 동안 진혁은 마틴 부녀에게 일단 따뜻한 차를 마시고 가라고 했다. 기록관 뒤편에는 보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천막이 있었다. 나무 의자 여러 개와 끓는 물 주전자가 놓여 있었지만 컵이 부족해 사람들이 종이컵을 돌려 쓰고 있었다. 리나는 종이배를 건네고 나서 손이 비어 버린 것이 아쉬운지 자꾸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돌려줄게.” 진혁이 말했다. “감정 기록을 만들었으니까 지금은 네 물건이야.”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리나는 종이배를 품에 안고 잠깐 머뭇거렸다. “아저씨, 아니 오빠. 그 배가 꼭 돌아왔으면 좋겠어.” 마틴은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웃으려 했다. 그러나 웃음 끝에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그는 배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 때문에 매달 부두 조합비까지 밀리고 있었다. 파도새가 돌아오지 못하면 배만 잃는 것이 아니었다. 겨울에 먹을 생선과 아이의 학비, 함께 일하던 두 선원의 일자리까지 잃을 판이었다. “배가 살아 돌아오는 일은 장담 못 합니다.” 진혁이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누가 인양권을 가져갔는지 확인하고, 원하지 않는 거래에 책임을 지지 않게 하는 일은 도울 수 있어요.” 마틴은 그 말을 한참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들 해 줄 수 없는 약속부터 하더군요. 당신 말은 좀 이상하지만, 그래서 믿어 보고 싶소.” 진혁은 마틴에게 원본 소유증과 보험증을 따로 챙기라고 안내했다. 시의회 피해 신고 창구 번호도 적어 주었다. 종이배 하나가 사건의 모든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폭풍 뒤 혼란을 틈타 생겨난 가짜 계약을 의심할 충분한 시작점이 됐다. 진혁은 결국 정문 업무를 늦게 시작했다. 기록관 내부는 항구 거리보다 훨씬 조용했다. 검게 칠한 철제 서가들이 천장 끝까지 뻗어 있었고, 이동식 사다리 위에서 직원들이 번호표를 꽂았다. 머리 위 작은 채광창으로 떨어진 햇살에는 먼지가 느릿하게 떠다녔다.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으며 계단을 오르자, 어제 지도에서 확인한 염문 보조보관소 기록이 보이는 유리 진열장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장부는 진열장이 아니라 폐기 예정 목록에 들어 있었다. “왜 폐기하죠?” 진혁이 물었다. 담당 서기 페른은 눈을 깜빡였다. “습기 때문에 글자가 번진 기록입니다. 복구 비용이 보존 가치보다 높다고 판정됐어요.” “누가 가치를 판정했습니까?” “지난달에 새로 오신 검사관이요.” “이름은요?” 페른은 색인함을 뒤졌다. 종이 한 장이 빠져 있었다. “이상하네. 서명 카드가 없어졌어요.” 진혁은 그제야 유리 진열장 아래에 가지런히 놓인 빈 카드 여러 장을 알아챘다. 카드에는 서류 번호만 남고 책임자의 이름 칸이 먹물로 지워져 있었다. 누군가 재고품을 없애는 수준이 아니라 보관을 결정한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라일이 뒤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서도 이름을 훔치네요. 이 업계 요즘 유행인가 봐요.” 카렌이 서류 뭉치를 받아 들었다. “실종 신고는요?” “없어요. 다들 근무 중인 걸로 나오는데요.” 페른이 답했다. 그 순간 창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골목의 옛 유물 거래인들이 이번 감사로 보증금이 묶였다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루멘이 아니어도 도시 전체가 거래 중단의 파장을 겪고 있었다. 페른은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저희가 기록을 늦추면 사람들은 오늘 하루도 벌지 못해요. 그런데 왜 저 문서들만 그리 중요한 거죠?” 진혁은 조금 전 종이배를 떠올렸다. “기록이 잘못되면 사람들은 돈이 아니라 자기 물건과 삶을 통째로 잃을 수도 있어서요.” 페른은 대답하지 않고 다른 서류함을 열었다. 거기서 오래된 운송장 한 장이 나왔다. 운송장은 염문 보조보관소에서 마레온 서쪽의 유리섬으로 보낸 비품 목록이었다. 보내는 물품은 ‘복구 불가능한 장부’라고 적혔지만, 운송 보험가액은 금화 삼백 닢이나 됐다. 폐품의 값치고는 지나치게 높았다. “이건 버리는 게 아니네요.” 진혁이 말했다. “보험을 걸고 옮기는군요.” 카렌이 덧붙였다. 라일은 운송장 가장자리의 검은 도장을 훑었다. 도장의 가운데에는 같은 숫자가 있었다. 031. 진혁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 이 사건은 단순히 자신에게 붙은 오래된 이름의 수수께끼가 아니었다. 폐기되어야 할 장부가 몰래 이동하고,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권리가 그 이동과 함께 지워지고 있었다. 페른은 정식 운송 대장을 뒤져 배의 선박명과 선장 이름을 찾아 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손을 떨었지만, 기록관 밖에서 자신의 상관을 기다리는 이사벨의 조사관을 본 뒤 조금 안심한 듯했다. “선배들은 기록에 이름이 잘못 적혀 있어도 바로 고치지 말라고 했어요.” 페른이 말했다. “원래 기록을 지우면 누가 고쳤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대신 틀린 부분을 한 줄 긋고 수정자의 이름과 날짜를 적었죠.” “좋은 규칙이네요.” 진혁이 답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통째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종이를 통째로 바꾸면 줄 긋는 것도 필요 없대요.” 카렌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 “교체하라고 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합니까?” 페른은 창구 뒤에 놓인 인장함을 가리켰다. “직접 본 적은 없어요. 항상 결재함에 명령서만 와 있습니다. 도장은 검은 달 모양이에요.” 라일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검은 인장 상회하고 닮았네요.”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이라고 적지는 못해요.” 진혁이 답했다. “하지만 명령서 사본과 결재함 출입 기록은 확보할 수 있겠죠.” 그들은 페른에게 정식 기록 보존 요청을 접수하고, 바뀐 종이를 임의로 없애지 말라고 부탁했다. 페른은 서류를 받다가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제 사촌이 파도새에서 일했어요. 폭풍 뒤 배가 사라진 날부터 연락이 끊겼고요. 기록을 찾으면 저도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진혁은 대답을 가볍게 하지 않았다. “적어도 찾는 사람 이름을 지우지는 않겠습니다.” 페른은 울컥한 듯 고개를 숙였다. 먼지 많은 기록관이 한순간 다른 의미로 느껴졌다. 책장마다 쌓인 종이는 과거를 자랑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남긴 주소였다. 그때 이사벨이 보낸 전달용 종이새가 기록관 창턱에 내려앉았다. ‘염문 보조보관소 폐쇄 요청 접수. 현장 출입 명령은 내일 발효. 오늘 밤 마지막 화물선 출항 예정.’ 진혁은 운송장을 구겨 쥐려다가 겨우 참았다. 그가 법을 위반하면 상대는 증거를 더 쉽게 감출 수 있었다. 정식 보존 명령이 내릴 때까지 화물을 멈춰 세울 방법이 필요했다. “그 배, 어느 부두에서 출발하죠?” 라일이 웃었다. “설마 훔치러 갑니까?” “아니요. 보험 검사하러 갑니다.” “결국 저랑 비슷한 일인데 이름만 고상하네요.” “고상한 일엔 서류가 필요하죠.” 진혁은 마틴의 종이배에 찍힌 정상 도장과 031 운송장 도장을 나란히 놓았다. 두 도장은 유난히 닮아 있었다. 그런데 운송장에는 항만청의 정식 검사인을 뜻하는 미세한 톱니무늬가 하나 빠져 있었다. 누군가 가짜 권한을 만들어 도시의 기록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에 쓰이는 도장은 어쩌면 폭풍 속에서 배 한 척을 빼앗긴 어부의 사건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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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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