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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94화
PAYLUA ORIGINAL · 제194화

194화. 도둑이 돌려준 이름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253자

오프라인 책장
라일은 도둑질보다 배송이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도둑은 들키지 않고 가져오기만 하면 끝나지만 배달인은 상대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돌려받는 말까지 확인해야 했다. 왕도 외곽의 가난한 주택가를 세 번째로 왕복하던 날 그는 자기 옛 직업이 한없이 편하게 느껴졌다. 도로에는 빗물과 수레바퀴 자국이 깊었다. 공동 우물 옆에는 두꺼운 담요를 걸친 아이들이 모여 있었고, 오래된 기차 창고 뒤편에서는 마차 기사가 말을 씻기고 있었다. 라일이 찾는 사람은 오래전 배달인 조직에 있던 기술 서기였다. 기록에는 ‘방울 19’라는 번호만 남아 있었다. 사람 이름을 번호로 바꾸는 일에 익숙했던 조직의 흔적이었다. 백란이 그를 작은 인쇄소 뒤편으로 안내했다. 가게 안에서는 쇠활자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종이 먼지를 뒤집어쓴 여자가 조판대를 정리하다 그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그 조직의 이름으로 찾아옵니까?” “아니요.” 라일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제 이름으로 왔습니다.” “그 이름이 진짜라고 자신해?” 라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누가 그 이름을 적었고 어떤 조건에서 지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돌려준다고 말할 때마다 그는 이상하게 속이 서늘했다. 이름이 돌아오는 대신 다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는 일이라면, 차라리 라일로 사는 편이 나았다. “모르겠습니다.”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쓰고 싶은 이름은 라일이에요.” 여자는 그를 오래 보다가 작업대 아래 상자를 꺼냈다. 내부에는 손가락만 한 금속 활자와 낡은 배송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활자는 잉크가 닳아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백란은 장부의 날짜와 영수증의 잉크 종류를 비교했다. 라일은 오래전 익혔던 봉투 접는 방식이 그대로 남았음을 알아봤다. “이게 뭐죠?” “출발지에서 발송한 거절을 중계소가 지우지 못하게 하는 복제 활자야.” 여자가 말했다. “한 문장을 세 장에 찍어서 서로 다른 길로 보내지. 한 장이 없어져도 두 장이 남도록.” “왜 지금까지 쓰지 않았습니까?” “가장 마지막에 그 장부를 관리한 사람이 회선을 닫아 버렸거든.” 여자는 라일에게 세 장의 낡은 서류를 펼쳐 보였다. 첫 장은 배송 명부, 둘째는 수취인 증명, 셋째는 분실 보고서였다. 세 장 모두 날짜가 같았지만 정작 분실된 물건의 명칭은 달랐다. 하나는 이름표, 하나는 소형 서랍, 마지막에는 사람의 신원을 뜻하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때 당신이 아이를 훔쳤다고 했죠.” 백란이 낮게 말했다. “당신이 빼낸 건 봉투 하나였어.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면서 죄까지 뒤집어썼지.” 라일은 탁자에 손을 올렸다. 새삼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류만으로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단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순간의 혼란을 이용해 또 다른 거짓말을 적는 사람만 좋은 일을 시킬 수 있었다. “제가 이걸 공개해도 됩니까?” 라일이 물었다. 여자는 잠시 그를 보았다. “내 이름이 공개되는 것에는 동의하겠어. 하지만 그때 사라진 아이들의 이름까지 마음대로 내보내면 안 돼.” “네. 확인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묻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백란은 라일에게 조그만 이름표를 건넸다. 앞면은 하얗게 지워져 있었고 뒷면에는 아주 작은 긁힌 자국이 있었다. 그녀는 이것이 그가 마지막 배송을 마친 뒤 받은 물건이라고 말했다. “네 옛 이름은 아직 장부 어딘가에 있을 거야. 찾고 싶으면 함께 찾자.” 라일이 물었다. “찾으면 무슨 일이 바뀌나요?” “기록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지.” “그 이름으로 다시 살아야 합니까?” “아니. 어떤 이름으로 살지는 네가 정하는 거야.” 라일은 이름표를 주머니에 넣었다. 오랫동안 타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무기로 살아왔지만, 오늘은 누군가가 자기 앞에서 선택권을 돌려주는 것이 낯설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대신 웃었다. 백란은 그 웃음을 알아들었다는 듯 등을 가볍게 쳤다. 인쇄소를 떠나기 전 여자는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줬다. 오래전 배송조합이 문을 닫던 밤, 그녀는 빈 종이 꾸러미를 지키고 있었다. 주인의 이름이 적히지 않은 물건을 곧바로 왕실 관리품으로 돌리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고에는 이름이 지워진 물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이름을 밝히고 돌려받겠다고 한 사람들의 봉투도 있었다. “우리는 두 종류를 구분해 묶으려고 했어.” 여자가 말했다. “누가 소유자인지 아직 모르는 것과, 소유자가 있는데 기록이 잘못된 것은 다르니까. 그런데 누군가는 그 둘을 섞으면 처리하기 편하다고 했지.” 그 말에 라일은 옛 창고의 냄새를 떠올렸다. 젖은 삼베와 기름칠한 손잡이, 밤새 켜 놓은 작은 등불. 무엇인가를 들고 뛰었던 기억은 있었지만 그 물건이 사람을 살렸는지, 누군가의 손해를 만든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당시 그는 열다섯이 되지도 않은 아이였고 어른들은 그에게 설명 대신 일을 시켰다. “나는 그날 도망쳤습니까?” “넌 통지서를 들고 나갔어. 밖에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지.” “누구였죠?” 여자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얼굴은 기억해. 이름은 확신할 수 없어. 지금 당장 내 기억으로 범인을 만들 수는 없다.” 라일은 더 캐묻지 않았다. 모르는 부분을 모른다고 인정한 사람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이 사람은 자신을 위로하려고 거짓 과거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는 접수대 위에 남아 있던 오래된 영수증을 가리켰다. “이 종이에 제 서명이 있습니까?” “어릴 때 썼던 표식이 있어. 정확히 누가 찍었는지는 확인해야 하지만.” 표식은 반쯤 열린 원 안에 작은 점 하나를 넣은 모양이었다. 라일은 지금도 가방 안쪽에 그 무늬를 그려 둔다. 예전에는 왜 그러는지 몰랐다. 익숙한 손동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손가락으로 같은 선을 그려 봤다. 닮았지만 일치하지는 않았다. 오래된 습관은 증거가 될 수 있어도 유죄의 증거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인쇄소 여자는 봉투 세 장을 다시 묶었다. “네가 오늘 이것을 가져가도 돼. 대신 내 말과 네 기억의 경계를 적어 둬. 나중에 또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확인하자.” 라일은 수첩에 두 개의 제목을 적었다. '확인한 사실'과 '아직 모르는 사실'. 그는 그 페이지가 우스워 웃었다. 오랫동안 물건을 훔치면서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적어 두는 일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백란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라일이 나오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빵 한 조각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오래된 철길을 따라 걸으며 천천히 그것을 나누어 먹었다. 과거가 전부 돌아오지 않았어도 배고픔은 현재의 일이었다. 현재의 사람에게 따뜻한 빵을 건네는 일 역시 이름표 한 장만큼 중요했다. 왕도로 돌아오자 사정은 나빠져 있었다. 제0호 보관실에서 일부 회신의 복제본을 ‘위법 중복’이라고 분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르딘의 사무소가 신청한 행정 심사에 따라 하나의 거절에는 오직 하나의 원본만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라일이 확보한 복제 활자를 그대로 돌리면 오히려 가짜라고 몰릴 수 있었다. 강유리는 문서를 읽고 얼굴을 굳혔다. “원본을 하나로 정한다면, 그것을 숨긴 사람이 모든 회신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럼 같은 말을 반복하면 되잖습니까?” 라일이 말했다. “반복 자체가 거절일 수는 있지만 작성 시각과 당사자를 검증해야 해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주머니에서 자신의 이름표를 꺼냈다.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남긴 물건이었다. 이 이름표에 적힌 글을 다시 복구한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대신 말할 수는 없었다. 원본이 가진 역사와 현재 사람이 가진 선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세 장을 하나라고 우기지 말고, 세 장이 같은 문장에서 왔다고 증명하죠.” 라일이 말했다. “서로 다른 경로로 전달하면서 중간에 무엇이 바뀌었는지 남기면 됩니다.” 서진혁과 윤담은 그 말에 동의했다. 화령에서 발견한 구식 도장, 남관역의 봉랍 절단기와 왕도의 기준 틀을 이용해 각 장의 제작 과정과 전달 경로를 구분할 수 있었다. 마법 장치가 아니라 지루한 장부와 사람의 서명이 필요한 일이었다. 라일은 자신이 도둑질 대신 지루한 일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제 저도 직업을 바꾼 모양이군요.” 카렌이 말했다. “아니요. 그냥 제대로 배달하는 법을 배운 거죠.” “이런 일엔 월급이 나오죠?” 벨라가 멀리서 외쳤다. “영수증부터 가져오세요!” 왕도 배송조합의 젊은 직원들은 낡은 복제 활자를 보며 의아해했다. 요즘은 수정 유리판으로도 같은 문장을 세 번 출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란은 구식 활자를 버리지 않았다. 유리판이 마법적으로 바뀌었다는 의혹이 생길 때, 서로 다른 물리적 인쇄 흔적이 검증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대식 기록과 구식 활자의 장단점을 적어 직원들에게 보여 줬다. 라일도 공개 장부에 자신의 역할을 적었다. 운송 책임자는 출발 시각을 기록하고, 검수인은 내용 봉인을 확인하며, 접수인은 도착 시각을 적었다. 같은 사람이 세 역할을 독점할 수 없도록 일을 나눴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누구도 혼자 모든 기록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 조직이 좀 지루해지겠네요.” 라일이 말했다. 백란이 피식 웃었다. “안전한 배송 조직은 원래 지루해야 해. 물건보다 배달인의 무용담이 많아지면 어디선가 잘못되고 있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라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잠깐 생각했다. 흥미진진한 모험이라고 믿었던 많은 순간이 누군가의 실종과 분실 뒤에 만들어졌음을 이제 알았다. 그는 전보다 천천히 봉투를 묶었다. 봉인 끈의 매듭마다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이름을 적었다. 그날 저녁 첫 번째 복제 활자가 눌린 서류 세 장은 서로 다른 세 경로로 출발했다. 한 장은 공식 기록관, 한 장은 지방 접수소, 다른 한 장은 독립 증인이 보관했다. 복사와 전달, 확인인의 서명까지 꼼꼼히 남겼다. 라일은 자신의 이름을 빈 칸에 썼다. 과거 이름을 가진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지금 이 문장을 전달할 책임을 자신이 맡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봉투를 닫으려던 순간, 인쇄소 여자가 건네 준 분실 보고서의 뒷면에서 새로운 주소가 발견됐다. 아주 작게 찍힌 옛 활자였다. '최초 회신 원본의 보관 위치: 루멘 심실 하부, 제7봉인 외곽.' 라일은 그 문장을 읽고 진혁을 찾았다. 모든 사람이 왕실 경매장에 모여 있는 동안, 진짜 원본은 처음부터 마레온에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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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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