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의 봄맞이 장터가 열린 날, 서진혁은 경매대 세 개를 빌렸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상인들은 추운 겨울을 버티며 남겨 둔 물건을 한 번에 팔려고 광장에 모였다. 농기구를 놓은 천막에서는 흙냄새가 났고, 제과점 앞에는 계피를 뿌린 단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아이들은 종이로 만든 작은 바람개비를 들고 뛰었다. 왕궁 높은 탑 위에는 통합 정리 예비 고시를 알리는 노란 깃발이 펄럭였다. 그 깃발을 볼 때마다 몇몇 상인의 표정이 굳었다.
진혁이 빌린 경매대에는 값비싼 물건이 없었다. 첫 번째에는 가죽 손잡이가 닳은 빗자루, 두 번째에는 동화 세 닢짜리 끈 묶음, 세 번째에는 철제 종추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유명 감정사가 드디어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어떤 사람은 장난 삼아 구경하러 왔다가 물건보다 오래된 손수건의 주인을 설명하는 안내문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 계획이 이거였습니까?” 라일이 물었다. “왕국 최대 경매를 앞두고 빗자루 팔기.”
“아뇨.” 진혁이 대답했다. “이건 빗자루를 누가 내놓을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경매입니다.”
세리아는 정식 경매사 권해성의 도움을 받아 절차를 설계했다. 각 출품품에는 소유자가 직접 서명했고, 공동 소유 물품은 동의한 사람의 범위만 표기했다. 시작가와 예상 수리 비용, 소유권에 제한이 있는 이유가 객석에서도 보이게 큼직한 글씨로 붙었다. 누구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그 이의가 즉시 다른 사람의 소유권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그걸 왜 굳이 이 광장에서 합니까?” 벨라가 물었다.
“서류만 가지고 다투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가 어디에서 사라지는지 알기 어려워요.” 세리아가 말했다. “일반 경매에서는 그 차이가 눈에 보입니다. 팔 수 있는 것과 팔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첫 번째 출품자는 북시장 종탑 수리공 하빈이었다. 그녀는 작업장에서 쓰던 낡은 렌치를 내놓았다. 렌치는 오랫동안 자신이 사용했고, 다른 마을 사람의 물건이 아니었다. 경매사는 손잡이의 금과 무게를 확인한 뒤 동화 한 닢부터 시작했다. 세 닢에 낙찰됐다. 하빈은 직접 물건을 넘겼고 구매자는 영수증을 받았다. 아무 사고도 나지 않았다.
두 번째로 하빈은 종탑 전체를 출품할 수 있는지 물었다. 경매사는 그녀의 등록증에 관리 책임자라는 말만 적혀 있음을 확인했다. 소유자 전체의 위임이 없으므로 출품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하빈은 객석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위에서 망치를 치지 않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출품품은 마레온의 오래된 화물 승강기 톱니였다. 진혁은 루멘 직원들의 공동 승인서를 미리 받아 놓았다. 실제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리 후 시험 사용권을 한 달간 제한적으로 빌리는 거래였다. 거래 조건에는 사용을 중단할 수 있는 안전 사유와 책임 분담이 적혀 있었다. 장인 두 사람이 경쟁해 은화 세 닢에 시험 사용 계약을 맺었다. 벨라는 그 수익을 비상 통지 비용 계정에 적었다.
“드디어 여행 비용 말고 수익이 남네요.” 그녀가 말했다.
“찐빵 조사비는 아직 안 됩니까?” 진혁이 물었다.
“오늘도 안 됩니다.”
카렌이 옆에서 웃었다. 웃을 여유가 생긴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군중 사이에서 계속 낯선 얼굴을 살폈지만, 며칠 전부터 사람들의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조금 바뀌었다. 위협을 먼저 찾는 것만큼, 위험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거절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장터 경매는 예상보다 큰 관심을 끌었다. 사람들이 자기 집의 고장 난 물건을 들고 와 팔 수 있는지 물었고, 다른 이들은 공동 관리 물품의 출품 규정을 문의했다. 진혁 일행은 자신들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확인 가능한 법률 안내 창구와 지역별 등록 기관을 안내했다. 그 과정을 보며 뒤쪽 천막에 앉아 있던 노인이 조용히 일어났다.
그는 작은 상자를 경매대에 올려놓았다. 안에는 주인이 오래전에 돌아오지 않은 작업용 펜 한 자루가 있었다. 노인은 그 펜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잠시 맡겼고, 돌아오면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아직도 아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 물건의 가치는 금화로 환산할 수 없었다.
진혁은 경매사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 물건은 출품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노인은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누가 사겠다고 하면 난 거절할 수 있을까 싶어서 왔네.”
진혁은 상자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무대 아래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박수를 쳤다. 누군가의 물건이 팔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박수를 치는 경매는 흔치 않았다.
경매대 세 개 중 마지막에는 아침부터 문제가 생겼다. 철제 종추를 낙찰받은 장인이 물건을 들다가 작은 균열을 발견한 것이다. 출품 당시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자국이었다. 장인은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물었고, 방청석에서는 감정사가 직접 주최한 경매가 벌써 잘못됐다는 웃음이 나왔다.
진혁은 종추를 다시 올려놓았다.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처음과 다른 낮은 울림이 났다. 균열은 내부까지 이어져 있었다. 운송 중 생겼는지 기존에 있던 것인지 당장 알 수 없었다. 그는 마법 문구를 확인한 뒤 결론을 숨기지 않았다.
[감정 대상: 민간 안전 종추.]
[현 상태: 금속 내부 균열.]
[위험: 하중 조건에서 파손 가능.]
“이 상태로는 안전 시연에 쓸 수 없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환불을 원하는 구매자는 계약을 취소하고, 수리 가능성을 확인하려면 별도 감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장인은 웃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환불을 선택했다. 벨라는 즉시 지급 내역을 고쳤고, 사후 감정 비용은 행사 운영비에서 처리했다. 세리아는 이 처리 과정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기록판에 적었다. 그 사이 장터에 온 아이 몇 명은 사람이 망치로 물건을 내리치는 모습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하빈이 진혁 옆에 섰다. “깨진 물건을 팔 수도 있었는데 왜 안 팔았어요?”
“깨진 줄 알면서 멀쩡하다고 넘기면 내일 그 장인이 다칠 수 있잖아요.”
“그럼 경매에서는 손해 아니에요?”
“오늘은 손해죠. 대신 내일 같은 실수를 덜 해야 하겠죠.”
그때 방청석에서 작은 박수가 들렸다. 누군가 보냈던 입찰 패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금화보다 먼저 자기 물건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경매를 원하고 있었다. 진혁은 그 박수가 비싼 유물을 낙찰받았을 때의 환호보다 오래 귀에 남는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다.
그날 오후, 예상하지 못한 방문자가 왔다. 회색 두건을 쓴 여자가 경매장 뒤편에서 라일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다니니?”
라일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굳었다. 여자의 왼쪽 허리에는 뒤집힌 원형 장식이 달려 있었다. 백란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많지는 않았지만 입가의 작은 흉터가 옅은 미소에도 드러났다. 한때 배송조합에서 일하던 사람이었고, 이제는 여러 지역을 떠도는 기록 보존인이었다.
“정말 나타났네요.” 라일이 말했다.
“네가 흘린 흔적을 내가 쫓아다닌 거지.”
“왜 제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백란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진혁은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라일에게 어떤 이름이 맞는지 자신이 정할 수 없었다. 백란은 낡은 작은 금속통을 꺼냈다. 안에는 찢어진 수송장 두 장과 이름 일부가 가려진 봉투가 있었다.
“네 원래 이름이 뭔지 적힌 장부는 내가 갖고 있지 않아. 대신 네가 마지막으로 자기 이름을 남긴 물건은 여기 있어. 열어 볼지 말지는 네가 정해.”
라일은 손을 뻗다가 멈췄다. 평소라면 손가락으로 자물쇠를 풀고 그 안의 물건을 먼저 살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손끝이 떨렸다.
“지금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백란은 말없이 통을 다시 닫았다. 그녀의 눈에는 실망이 아니라 안도에 가까운 감정이 스쳤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됐다. 네가 도망쳤던 곳에서는 아이들한테 그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거든.”
진혁이 물었다. “어젯밤 영상판에 나온 사람도 당신입니까?”
“맞아. 장갑을 낀 채 도장을 건네준 건 나였어. 하지만 서류에 네 이름을 쓰진 않았다.”
“왜 거기 있었습니까?” 카렌이 단호하게 물었다.
백란은 이미 준비한 듯 공인 조사관에게 제출할 진술서를 꺼냈다. 에르딘 사무소가 통지 확인판을 모으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임시 배송 노동자로 들어갔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사관의 입회 없이 증거를 넘기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말 중요한 건 도장 하나가 아니야.” 백란이 말했다. “통합 정리 첫날, 도착하지 않은 편지를 도착했다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면 침묵을 동의로 바꾸기가 쉬워지지.”
“그걸 증명할 수 있나요?” 진혁이 물었다.
“한 건은.”
백란은 우편국의 폐기 확인판 한 장을 꺼냈다. 진혁이 동화 두 닢에 산 기준 틀과 홈의 모양이 달랐다. 최근에 다시 가공된 흔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북쪽 폐광행 통지용이었고 실제로는 도착하지 못했다는 반송 기록도 제시했다. 최종 확인은 공식 장부와 대조해야 했다.
일행은 그날 수익을 세는 대신 다음 작업을 정했다. 지역별 도착 증명을 모으고, 정식 통지와 미전달 통지를 구분해 공개 감정회에서 확인하기로 했다. 백란은 자신이 아는 우편 인력 중 증언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라일은 그녀에게 바로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해 질 무렵 광장에는 다시 봄맞이 장터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진혁은 작은 경매대의 망치를 손가락으로 굴렸다. 오늘 판 물건들의 총액은 금화 한 닢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물건을 팔거나 거절하는 절차를 공개적으로 보았다. 그는 그 성취가 이상하게 든든했다.
바로 그때 왕궁 방향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종이 세 번 울리고 잠시 침묵한 뒤 다시 두 번 울렸다. 권해성이 급히 달려왔다.
“왕실 통합 정리 본부가 예비 등록을 조기 마감했습니다. 아직 통지를 못 받은 지역도 있는데 접수 종료 시각을 앞당긴 겁니다.”
카렌이 얼굴을 굳혔다. “무슨 근거로요?”
“왕국 안전망에 긴급 이상이 발생했다는 사유랍니다.”
진혁은 자신이 가진 작은 나침반을 꺼냈다. 바늘이 왕궁 쪽을 향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예비 경매를 앞당기기 위해 안전망에 실제 이상을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경매대 위의 마지막 물건, 주인에게 돌아간 펜이 놓였던 빈 자리를 잠깐 바라봤다. 이번에는 그 빈자리를 누군가 강제로 채우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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