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제4안전로 회신소는 오래된 제분소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대리석으로 장식한 황실 제1경매원에서 마차로 삼십 분쯤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좁은 운하를 따라 석탄을 실은 배가 느릿하게 지나갔고 공방 굴뚝에서는 회색 연기가 솟았다. 다리 아래에는 낮은 수차가 돌고 있었다. 강물이 빠르게 흐르는 날에는 큰 소리를 냈지만 지금은 건조한 겨울이라 물살이 약했다. 회신소의 입구에는 '시설 정비 중, 일반인 출입 제한'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진혁은 출입문부터 밀지 않았다. 전날 남부 경매장에서 벌어진 연막 사건으로 다리가 여전히 아팠고, 카렌은 그가 무리할 때마다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엇보다 회신소는 공공 시설이었다. 임의로 문을 열었다가 안전망이 멈추면 마레온뿐 아니라 왕도 쪽 수문에도 영향이 갈 수 있었다.
“정식 점검 허가가 나올 때까지 외부 배관부터 살피죠.” 윤담이 말했다.
그는 낙찰받은 나침반을 작은 나무 받침 위에 놓았다. 바늘은 북쪽이 아니라 회신소를 향했다. 바늘 끝의 은색 광택은 물의 흐름에 맞춰 조금씩 달라졌다. 윤담은 분침을 맞춘 시계와 나침반의 흔들림을 기록했다. 진혁은 당장 결론을 말하지 않고 그 옆에서 열 번의 흔들림을 함께 세었다.
“여긴 신호를 받기만 하는 곳이 아니네요.” 그가 말했다.
“맞아요. 나가는 배관도 두 개 있습니다.” 윤담이 대답했다. “한쪽은 정식 응답을 보내고, 한쪽은 누군가 수신하지 못한 경우 다시 알리는 비상선이겠죠.”
라일은 문 위에 걸린 녹슨 표지를 바라봤다. 한쪽 모서리에 뒤집힌 원형 장식이 있었다. 백란의 흔적과 같았지만 오래전부터 있던 표식이었다. 라일은 한동안 말을 아끼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서 제 첫 심부름을 했어요. 그때 저는 제가 무슨 이름으로 불리는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기억이 나는 거야?” 진혁이 물었다.
“딱 한 장면만요. 밤늦게 배달물을 가져왔는데 안에서 누군가 제 손에 빵을 쥐여 줬어요. 배고픈 애한테 함부로 일 시키지 말라고 하더군요.”
라일은 웃지 않았다. 진혁은 그가 어린 시절의 단서를 되찾을 때마다 기뻐하기보다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는 순간 지금 살아온 삶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 사람 얼굴은?”
“기억 안 납니다. 목소리만 조금.”
오후가 되자 강유리가 점검 허가서를 가지고 도착했다. 그녀의 곁에는 자그마한 회색 모자를 쓴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문 앞에 멈춰 서서 오래된 출입 표식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서도원이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도원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도원 씨.” 여자가 먼저 말했다.
단 두 음절이었지만 열두 해라는 시간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듯했다. 서도원은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떨어뜨렸다. 라일이 얼른 주워 주려다가 멈췄다. 누구의 물건보다 그 순간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서하... 당신이야?”
윤서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라진 전설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거칠어진 손과 나이가 든 눈가, 조금 낡은 외투를 입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오른쪽 손목에는 움직임을 제한하는 얇은 보조대가 있었다. 도원이 한 발 다가서자 그녀가 손바닥을 들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도원은 그대로 멈췄다.
“그때 내가 왜 숨어 있었는지 듣고 싶겠죠. 하지만 오늘 여기 온 이유는 당신이 나를 찾았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녀는 강유리에게 정식 참가 동의서를 내밀었다. 자기 과거에 관한 정보 가운데 공개 가능한 범위와, 아직 보관해야 할 개인 기록을 명확히 구분한 문서였다. 진혁은 놀랐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윤서하의 이름을 입에 올렸지만 그녀 본인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저는 열두 해 전 제0호 감정대의 현장 입회자였습니다.” 서하가 말했다. “그 자리는 누구의 물건에 마음대로 값을 매기는 자리가 아니었어요. 누군가 제대로 거절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자리였죠.”
서도원의 눈이 붉어졌다. “그날 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
“알아요. 당신에게 남겨진 기록이 그렇게 말하도록 만들어졌으니까.”
“그럼 왜...”
“살아남은 사람에게만 묻는 질문이 있어요.” 서하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왜 돌아오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돌아오면 또 같은 일을 당할까 두려운 사람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먼저 물어야 했어요. 저는 그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말이 끝났을 때, 도원은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자신이 기다린 시간이 길었다는 이유로 서하의 준비를 빼앗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서하는 회신소의 낡은 문을 바라봤다. “오늘은 저 건물에서 남은 기록을 확인하려고 왔어요. 제가 해야 할 증언이 있고, 저 말고는 확인할 수 없는 장치가 있거든요.”
윤서하는 한동안 회신소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길 건너 제과점에서는 늦은 오후의 빵을 굽고 있었고, 지나가는 배의 기적 소리가 운하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서도원은 그녀의 옆에 앉고 싶어 하면서도 망설였다. 서하가 손바닥으로 자리를 가리킨 뒤에야 조심히 다가갔다.
“나는 네가 남긴 편지를 수도 없이 읽었어.” 도원이 말했다.
“그 편지에는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없었을 거예요.”
“그래도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으니까.”
서하는 손목의 보조대를 천천히 풀었다. 오래된 상처 자국이 보였다. “그날 도망치면서 손을 다쳤어요. 몸보다 마음이 회복되는 데 오래 걸렸죠. 도원 씨가 나를 찾는다는 건 들었어요. 하지만 다시 그날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도원은 한참 말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화를 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물었다. “지금은 조금 덜 무섭습니까?”
서하의 얼굴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 “아직 무서워요. 그래도 오늘은 제가 스스로 왔어요.”
두 사람 사이에는 미처 나누지 못한 말이 수없이 남아 있었다. 진혁은 그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발견하면 끝까지 감정하고 이름을 알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그가 감정할 물건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사라진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들여다볼 권리는 없었다.
카렌이 그의 곁에 섰다. “기다리는 게 불편하죠?”
“네. 빨리 알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기다릴 줄 알게 됐네요.”
진혁은 카렌의 손을 잠시 바라봤다. 그녀는 오래된 상처가 남은 손으로 검집을 잡고 있었다. 각자 지키고 싶은 것이 달랐지만, 누군가를 재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길 위에 서 있었다. 둘은 말없이 회신소 건물의 지붕을 살폈다. 낡은 동판 한 장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저 건물은 십수 년 동안 기다렸을 사람들만큼이나 오래된 침묵을 품고 있었다.
점검반은 두 열쇠를 동시에 돌려 출입문을 열었다. 실내는 생각보다 좁았다. 두꺼운 벽 사이에 구리관 수십 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중앙에는 커다란 기계식 시계가 설치돼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물방울이 구리판을 때릴 때마다 짧은 울림이 났다. 기계 아래의 바닥에는 사람 둘이 서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둥근 홈이 있었다.
서하가 그 홈을 가리켰다. “원래 여기에는 두 사람이 함께 섰어요. 한 사람은 요청을 읽고, 다른 한 사람은 응답자가 직접 대답했는지 확인했죠. 그런데 열두 해 전 누군가 그 두 자리를 한 사람에게 합치려 했어요.”
그녀는 벽의 안내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응답 없음을 동의로 취급하지 않는다.' 글자는 오래돼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읽을 수 있었다.
진혁이 물었다. “그 규정을 없애려 했던 사람이 에르딘입니까?”
“그 이름을 쓰는 조직의 초기 인물들은 봤어요. 하지만 지금의 에르딘이 어떤 사람인지 저는 몰라요. 추측을 증언으로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왜 이 회신소가 멈췄죠?” 윤담이 물었다.
서하는 천천히 기계 뒤편의 덮개를 열었다. 안에는 비어 있어야 할 작은 수납 칸에 검은 판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판의 표면에는 사람들이 거절할 때 생기는 신호를 분류하는 홈이 새겨져 있었다. 정상 장치라면 거절이 들어오면 경매를 잠시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판을 통과하면 거절은 기록 창고로만 보내지고 외부에는 침묵처럼 보였다.
“이건 새로운 기술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옛날 기술을 뒤집어 쓴 거죠.”
그 순간 기계식 시계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멈췄다. 초침은 정방향으로 움직이는데 가운데 원판만 반대로 돌고 있었다. 창가의 나침반 바늘이 크게 떨렸다. 정식 점검 신청에 맞춰 누군가 외부에서 시험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세요!” 윤담이 외쳤다. “배관에 압력이 걸립니다!”
카렌이 서도원과 윤서하를 뒤로 물렸다. 라일은 입구를 지키며 인원수를 세었다. 진혁은 나침반을 들고 배관의 진동을 읽었다. 눈앞에 붉은 문구가 떠올랐다.
[회신소 상태: 비정상 응답 변환 중.]
[위험: 정상 거절 신호가 지연으로 표기됨.]
[권고: 원래 비상 차단선은 북쪽 벽 내부.]
그는 북쪽 벽의 덮개를 열려고 했지만 손잡이가 부식돼 있었다. 카렌이 검집 끝으로 틈을 벌렸고 윤담이 규정된 차단 공구를 끼웠다. 서하는 구리관의 순서를 기억해 내며 정확한 번호를 불렀다. 그동안 라일은 문 앞에서 마을의 점검 직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누군가 혼자 모든 일을 해내는 순간은 없었다.
밸브가 돌아가자 압력계의 바늘이 천천히 내려왔다. 기계가 멈췄다. 진혁은 손을 털었지만 손바닥의 문장은 여전히 뜨거웠다. 방금 누군가가 사람의 거절을 침묵으로 바꾸려 했다는 사실이 선명했다.
서하가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도원이 그녀에게 물을 건넸다. 이번에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받았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혁은 그 모습을 보고 밖으로 나갔다.
회신소의 정식 조사 기록에는 외부 시험 신호의 출발점이 남았다. '황실 통합 정리 본부, 임시 송신 회선'. 담당자의 개인 이름은 가려져 있었지만 시각과 회선 번호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준비가 아니라 실행 연습까지 하는 거군요.” 세리아가 말했다.
서하가 진혁을 불렀다. 그녀는 손목의 보조대를 만지작거리다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담은 문서는 아니었다. 열두 해 전 제작한 제0호 감정대의 안전 운용 절차 사본이었다.
“제가 직접 공개하기로 결정한 부분입니다. 필요한 곳에 사용하세요.”
진혁은 봉투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 안에는 놀랍도록 짧은 문장이 하나 적혀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거래되는 것을 거절하면, 그 사람의 뜻이 확인될 때까지 모든 망치를 멈춘다.'
그는 그 문장을 읽고 오래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찾아다닌 가장 비싼 유물은 거창한 황금 검이나 고대 괴수의 심장이 아니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물건은, 다른 사람이 내린 망치를 단 한 번 멈출 수 있게 하는 작은 장치일지도 몰랐다.
제1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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