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제1경매원의 뒷벽은 원래 벽이 아니었다.
별빛 경매가 중단된 직후, 무대 뒤의 거대한 석판이 천천히 갈라졌다. 관객에게는 장식 문양처럼 보였던 선들이 사실은 오래된 승강기의 틈이었다. 돌벽 안쪽에서는 쇠사슬과 톱니바퀴가 무거운 물건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객석의 고요는 순식간에 깨졌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려던 장갑 경매가 끝난 뒤에도 더 큰 경매가 시작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대피 통로부터!” 카렌이 외쳤다.
벨라와 경비원들이 관객을 좌측 출구로 안내했다. 라일은 앞줄에서 넘어져 발목을 삔 노신사의 팔을 잡았다. 진혁은 무대 뒤 승강기의 방향을 살폈다. 고장이 난 건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동한 건가? 그는 둘 중 무엇인지 확인하기 전에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손짓했다. 낡은 기계는 언제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부서질 수 있었다.
강유리가 비상 정지 장치 앞에 섰다. 그러나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래전 설치된 자동 이전 장치는 경매원장의 승인보다 기록된 보관인 신원을 먼저 확인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보관인 이름이 지워져 있는 지금, 시스템은 자신이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아무나 그 자리에 앉힐 수 있어요.” 유리가 말했다.
“그게 저쪽이 원한 일일 겁니다.” 세리아가 대답했다.
진혁은 손바닥을 망치의 손잡이에 댔다. 앞서 봉인함을 열었던 자리에서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감정 대상: 제1경매원 최초 경매 망치.] [기능: 낙찰 확정/절차 중단 기록.] [최후 사용: 12년 전 비상 정지.] [중단 신호 전달 경로: 제4안전로.] [현재 상태: 물리적 전달관 단절.]
진혁은 손을 거두었다. 망치 하나를 쥐고 허공에 내려친다고 기계가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중단 신호가 전달될 물리적 길부터 복구해야 했다. 그 순간 그는 백색 등대에서 구한 낡은 손잡이와 제4안전로의 구조를 떠올렸다. 루멘 심실에서 발견했던 조개 문양은 이곳의 배관에도 있었다. 같은 설계자가 아니라도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건물에 같은 원칙을 남긴 듯했다.
“저 기계는 어디서 멈출 수 있습니까?”
강유리가 뒤쪽 복도를 가리켰다. “원래는 망치 손잡이 아래에 있던 구리 신호관을 통해 멈췄어요. 열두 해 전 사고 이후 누군가 그 관을 막았습니다.”
“관을 끊은 사람은 기록에 남습니까?”
“정식 수리 기록에는 없어요. 하지만 자재 출고 장부에는 구리관 일부를 교체했다는 줄이 남아 있습니다.”
라일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누군가 장부에는 고쳤다고 적어 놓고 실제로는 끊어 놓았다는 거군요.”
문제는 시간이었다. 승강기가 완전히 올라오면 자동 이전 절차가 시작된다. 새로운 보관인을 임의로 지정하려는 장치가 움직일 수 있었다. 카렌은 경비 책임자와 함께 비상 차단을 요청했고, 하서린과 윤담은 남은 신호관의 위치를 확인했다. 진혁은 가방에서 왕도 검수대에서 정식으로 매입한 침묵 계측추를 꺼냈다. 소리 없이 멈춘 기계의 마지막 힘을 기록하는 물건이었다. 한 번밖에 쓸 수 없었지만 지금 아니면 쓸 이유가 없었다.
“이건 멈춘 곳을 찾아 줄 겁니다. 다만 결과는 독립 계측기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윤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신호관 옆의 고정구에 추를 걸었다. 아주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계측추의 바늘이 서쪽을 가리키다 덜컥 멈췄다. 끊어진 위치는 무대 뒤 수직 통로가 아니라 관객석 바닥 아래였다. 실내 설계도를 펼치자 그곳에 오래된 분기함이 있었다.
“관객석 아래?” 세리아가 놀랐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밟는 곳에 비상 정지로를 숨겨 둔 셈이네요.” 진혁이 말했다. “고장이 나면 빨리 찾기 어렵겠는데요.”
카렌이 대답했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도 쉽게 몰래 고칠 수 없는 곳이죠. 바닥 전체를 들어내야 하니까.”
그들은 대피가 끝난 구역의 바닥판을 열었다. 안에는 구리관이 두 갈래로 나뉘는 지점이 있었다. 하나는 끊겨 있었고 다른 하나는 검은 수지로 막혀 있었다. 검은 수지에는 최근에 묻은 먼지가 남아 있었다. 오래된 사고의 흔적이 아니라 누군가 며칠 전 다시 손댄 증거였다. 윤담은 수지를 긁어 시료를 남겼다. 진혁이 도구로 억지로 뚫으려 하자 그가 손을 막았다.
“여기에 힘을 주면 구리관이 찢어집니다. 그럼 중단 신호뿐 아니라 안전 배수 신호까지 같이 끊어져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옆의 분기 밸브를 우선 쓰는 겁니다. 오래된 설비를 고치는 건 성급함으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유리가 분기함의 황동 열쇠를 가져왔다. 그러나 열쇠 구멍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보관 책임자와 독립 입회인이 각각 돌려야만 작동하는 구조였다. 한 사람이 결정하면 바로 실행되지 않도록 만든 장치였다. 유리는 보관 책임자 열쇠를 끼웠다. 진혁은 입회인 등록 권한이 있는 하서린에게 다른 열쇠를 받게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동작을 확인하고 동시에 열쇠를 돌렸다.
낡은 구리관이 세 번 울렸다. 멈췄던 망치의 은색 띠가 빛났고 무대 뒤 승강기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망치를 한 번 쳐야 중단 신호가 끝까지 전달되는 구조였다.
“그럼 쳐 주세요.” 진혁이 권해성에게 말했다.
“서 감정사님이 하시죠. 이번 사건을 발견한 사람이니까.”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경매원의 주경매사가 아닙니다. 제 역할은 장치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까지예요. 공식적으로 중단할 권한은 권 경매사님께 있습니다.”
권해성은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망치를 들었다. 그는 낡은 나무 손잡이를 손바닥에 맞추고, 준비된 기록대 위에 정확히 한 번 내려쳤다.
탕.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경매실 끝의 기계는 분명히 멈췄다. 승강기가 무대 중앙에서 손바닥 두 뼘을 남기고 정지했다.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혁은 먼저 기계의 고정 상태를 확인한 뒤 몸을 숙여 안쪽을 들여다봤다.
승강기에는 금은보화가 없었다. 작은 철제 서류함 하나와 빈 의자, 그리고 오래된 유리판이 있었다. 의자 위에는 낡은 검은 장갑이 놓여 있었다. 이 장소를 만든 사람이 후대의 거대한 경매를 예상했을까. 아니면 언젠가 누군가 억지로 그 의자에 앉혀지는 일을 막으려 했을까.
강유리는 보관함의 외부 기록만을 먼저 읽었다. 내부의 개인 정보는 정식 열람 절차가 끝날 때까지 봉인하기로 했다. 유리판에는 짧은 문장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제0호는 첫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멈출 권리를 가진 자리다.'
진혁은 그 문장을 읽고 숨을 멈췄다. 지금까지 누군가는 제0호 감정사를 모든 유물의 소유자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존재처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기록은 정반대를 말했다. 제0호는 다른 사람이 말하지 못한 거절을 대신 소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거래를 멈춰 당사자가 다시 말할 시간을 마련하는 역할이었다.
서도원은 철제 서류함 앞에 섰다. 낡은 봉인표에 열두 해 전 윤서하가 쓴 것과 닮은 글씨가 있었다. 그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안에는 자신이 그동안 찾던 사람의 생사나 과거가 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서류함에 적힌 문장은 '보호 대상의 직접 동의 후 열람'이었다.
“이번에도 기다려야겠군.” 도원이 말했다.
“네.” 진혁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분이 답할 기회가 있다면, 우리가 먼저 그분의 말을 가져오면 안 되니까요.”
승강기 사건에 대한 긴급 조사는 그날 밤 시작됐다. 에르딘의 출품 대리인 측이 제출한 위임 신청 상당수는 정식 소유권 증빙 부족으로 반려됐다. 그러나 에르딘의 직접 가담 여부와 지하 운송 기록 조작의 배후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왕실 감사청은 관련 기록을 공동 봉인하고 독립 심사단을 구성했다.
이틀 뒤, 황실 제1경매원 정문에는 정상 영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사람들이 다시 물건을 들고 줄을 섰다. 꽃을 든 소년이 작은 꽃병을 팔았고, 수선공은 고장 난 시계의 가치를 물었다. 왕실 경매원이라고 해서 매일 역사적인 비밀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물건 하나를 잘 팔아 한 달치 생활비를 마련하려 왔다.
진혁은 자신의 낡은 장갑을 다시 끼고 광장을 걸었다. 카렌은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그의 옆에 있었고, 라일은 오늘 저녁은 비싼 고기를 먹자며 투덜거렸다. 세리아는 손실 계산서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모두 지쳤지만 살아 있었다.
“장갑 안 팔길 잘했네요.” 라일이 말했다.
“금화 백 닢을 놓친 건 아직도 아깝습니다.” 진혁이 답했다.
“그럼 역시 돈밖에 모르는 사람 아닙니까?”
“돈도 알지만, 이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좀 알게 됐거든요.”
사건 이후 진혁은 장갑의 찢어진 손가락 끝을 수선했다. 왕실 광장에 있던 작은 수리점에서 면을 덧대고, 안쪽의 실밥을 새로 눌러 주었다. 수선공은 처음부터 새 장갑을 샀으면 더 싸게 먹혔을 거라고 했다. 진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장갑을 계속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새것의 가격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벨라는 그날의 손익 계산서를 보여 주었다. 공개 심사와 비상 중단으로 벌금을 면한 금액, 실제 지급한 감정 수수료, 법적 대응을 위해 남겨 둔 비용이 구분되어 있었다. 엄청난 금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보다 명확한 기록이 남았다. 세리아는 그 장부를 보며 말했다. “마레온에 돌아가면 직원들이 안심할 수 있게 이번 일부터 설명해야겠어. 경매장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알 권리가 있으니까.”
진혁은 어깨를 돌렸다. 며칠째 긴장했던 근육이 조금씩 풀렸다. 자기 능력만으로 세상을 구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카렌과 라일, 세리아와 벨라, 윤담과 서린, 도원과 유리. 그들은 서로 다른 말을 했지만 오늘 밤 적어도 같은 망치를 잘못된 곳에 내려치지는 않았다.
그날 오후 서도원 앞으로 새로운 편지가 도착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봉투에는 반송 주소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윤서하의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도장 자국이 있었다. 도원은 편지를 읽다가 그대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살아 있는지 묻기 전에, 그날 무엇을 지켰는지 먼저 물어 주세요. 이제는 당신과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도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진혁은 그를 혼자 두었다. 꼭 필요한 이야기에는 다른 사람의 관객석이 없는 편이 나을 때도 있었다.
그날 저녁 왕실 경매원 앞에 또 하나의 공고가 붙었다. 이번에는 작은 글씨가 아니라 광장 양쪽에서 읽힐 만큼 큰 글자였다.
'왕국 전역 등록 유물의 소유권 통합 정리. 황실 최종 경매 예비 고시.'
카렌이 그것을 읽고 말했다. “저게 시작되면 국가 전체의 기록이 움직여요.”
세리아가 낮게 대답했다. “우리 같은 작은 경매장 하나의 문제가 아니게 되겠지.”
진혁은 공고 아래의 날짜를 확인했다. 정확히 스무 날 뒤였다. 누군가는 마지막 경매에서 왕국의 모든 권리 관계를 한 번에 정리하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켜 낸 작은 거절들이 거대한 망치 한 번에 지워질 수도 있었다.
그는 새 수첩을 펼쳤다. 첫 장에는 동화 열한 닢으로 낙찰받았던 작은 종추의 거래 비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 아래에 한 문장을 더 적었다.
'큰 경매일수록 가장 작은 물건의 주인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가 거래 대금 뒤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제18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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