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제1경매원 지하 하역로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추위였다.
벽돌을 쌓아 만든 둥근 통로는 지상보다 두 층 아래에 있었다. 천장에는 빗물이 모여 떨어졌고,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환기구에서는 축축한 바람이 내려왔다. 짐수레가 지나간 철제 레일 두 줄이 어둠 속으로 길게 뻗었다. 오래전에는 사람들이 지하 마차를 끌었겠지만 지금은 수차가 화물 바구니를 밀어 나르는 방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폭이 좁아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어려웠다.
“이런 데서 추격전을 벌이면 제 등짝이 벽에 갈립니다.” 라일이 말했다.
카렌은 바닥에 검집을 끌지 않도록 검을 짧게 쥐었다. “그래서 추격하지 않습니다. 구조팀이 오기 전까지 확인된 통로만 살핍니다.”
“오늘은 도둑에게 가장 재미없는 날이네요.”
서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철제 레일의 이음새가 어느 지점에서 새것으로 교체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상 창고 장부에는 그런 공사 내역이 없었다. 누군가 공식 지도를 고치지 않은 채 지하 운송로만 손본 것이다.
강유리가 뒤늦게 내려왔다. 그녀는 왕실 지하 시설 관리인과 안전 감독관을 데리고 있었다. 감독관은 수로의 현재 수위와 통풍 상태를 확인한 다음 세 구간 중 첫 번째까지만 진입을 허가했다. 두 번째 구간은 비상 운송 신호가 해제될 때까지 봉쇄했다. 일행은 사람을 쫓아 들어가는 대신 허가 구역에서 남은 흔적을 조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하 북쪽의 화물 이동대에서 누군가 도움을 외쳤다. 작은 바구니 하나가 레일 끝에 걸려 멈춰 있었고, 그 안에는 어린 운송 견습생이 앉아 있었다. 걸쇠가 흔들릴 때마다 바구니가 아래로 조금씩 미끄러졌다.
“움직이지 마세요!” 카렌이 외쳤다.
견습생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얼굴에 까만 기름이 묻어 있었다. “송장을 옮기라고 했는데, 갑자기 레일이 바뀌었어요. 돌아가려고 해도 안 됩니다.”
진혁은 먼저 아래쪽 바닥을 살폈다. 바구니가 떨어지면 깊은 물길까지 일곱 걸음 정도의 높이였다. 구조줄을 걸 수 있는 벽 고리가 있었지만 한쪽은 심하게 녹슬어 있었다. 윤담이 전에 설명했던 힘의 분산 원리가 떠올랐다. 무조건 고리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두 지점에 줄을 나눠 연결해야 했다.
카렌이 견습생에게 이름과 상태를 물었고, 감독관이 이중 밧줄을 설치했다. 라일은 화물 바구니가 흔들리지 않도록 긴 막대로 바퀴를 고정했다. 진혁은 벽의 낡은 톱니장치를 스쳤다.
[감정 대상: 화물 분기 톱니.] [본래 기능: 수송 방향 선택.] [현재 이상: 외부 지시로 복귀 방지.] [안전 정지: 수동 역회전 2회 후 고정핀 분리.] [주의: 바구니 하중을 먼저 지탱할 것.]
그는 감독관에게 이 정보를 전했다. 감독관은 도면과 실제 톱니 상태를 확인했다. 견습생의 무게가 이중 줄에 실린 것을 보고 나서야 역회전을 시작했다. 차갑게 맞물린 톱니가 끼익 소리를 냈다. 두 번째 회전에서 바구니가 멈췄다. 라일이 낡은 나사를 빼내자 카렌이 손을 뻗어 견습생을 끌어올렸다.
견습생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제 이름이 노건이라고 했다. 올해 열여섯이고, 사흘 전부터 이곳에서 일을 배웠다고 했다. 왕실 경매원이니 안전할 줄 알았다는 말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누가 송장을 옮기라고 했니?” 카렌이 부드럽게 물었다.
노건은 회색 모자를 쓴 감독자가 일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감독자의 이름은 몰랐다. 단지 그가 노건에게 봉인된 상자 하나를 북쪽 우편로에 태우면 하루치 임금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을 뿐이었다. 노건은 상자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아 묻지도 않았다고 했다.
“네가 책임질 일은 따로 조사할 거야.” 카렌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 몸부터 보자.”
진혁은 바구니에서 떨어진 종이를 집었다. 운송 승인표였다. 승인자의 서명란에는 세리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명을 본 순간 라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우리 사장님은 방금 저 위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지하에서 화물을 옮기셨네요. 분신술이라도 배운 겁니까?”
벨라에게 확인 전화를 걸자 세리아는 즉시 승인 사실을 부인했다. 서명은 그럴듯했지만 획을 끝내는 방향이 달랐다. 게다가 날짜가 하나 틀렸다. 세리아가 그날 왕도에 도착하기 전의 시각이었다. 진혁이 무심코 힘을 써 확인하자 문구가 나타났다.
[감정 대상: 운송 승인표.] [필적: 모사.] [원래 작성자: 불명.] [서류의 물리적 이동: 동쪽 인쇄실에서 북쪽 분기실까지.] [원본 대조 필요.]
누군가 창고 상자를 훔치면서 세리아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경매장이 아니라 절도 사건의 공범으로 몰릴 위험에 놓였다.
하지만 더 급한 것은 북쪽 운송로였다. 감독관의 전신기에서는 지하 수문의 개방 명령이 접수됐다는 알림이 울렸다. 왕궁 하천의 물을 빼내기 위한 정기 방류가 예정 시각보다 한 시간 앞당겨졌다. 승인자는 '비상 정비'라고만 적혀 있었다.
“수문이 열리면 북쪽 운송로는 잠깁니다.” 감독관이 말했다. “거기 남은 사람이 있으면 큰일 납니다.”
“운송을 끊고 대피 신호부터 보내야 합니다.” 카렌이 답했다.
진혁은 가방에서 화령에서 낙찰받아 보관하던 소형 신호 연결판을 꺼냈다. 오래된 철도 신호를 외부에서 확인할 때 쓰던 물건이었다. 지금은 레일 위 전류를 읽어 비상 정지 구간이 살아 있는지 살필 수 있었다. 감독관은 규격을 확인한 뒤 사용을 승인했다. 연결판은 두 번 붉게 깜박이다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북쪽 운송로에 물건을 싣는 구동 장치가 정지됐다.
하지만 물의 흐름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수문의 조작권은 지상 별도 시설에 있었다. 강유리가 왕궁 시설청에 긴급 중지 요청을 보냈고, 감독관은 현장 작업자들에게 수로에서 나오라고 연락했다.
왕궁 시설청에서는 처음에 방류 일정을 바꿀 수 없다고 답했다. 이미 하천 아래쪽의 수문이 차례로 작동할 예정이어서 한곳만 멈추면 다른 구간의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강유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현장 인원 수와 지하 운송로 상태를 설명했다. 작업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 수로에 허가되지 않은 화물 바구니가 있다는 사실, 비상 정지 구간에 사람이 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하나씩 전달했다.
“그러면 방류를 전부 멈추는 게 아니라 북쪽 분기 수위를 낮출 수는 없습니까?” 유리가 물었다.
시설청 기술관은 잠시 답하지 않았다. 두 기관의 도면을 대조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진혁은 통신기에서 새어 나오는 기계음만 듣고 있었다. 몇 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기술관은 북쪽 분기 방류량을 줄이되 아래 구간에는 더 많은 물이 흘러가니 별도 경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카렌은 근처 주민 대피 담당에게 즉시 연락했다. 지하 통로에서 서류를 찾기 위해 수로를 막았다가 다른 구역의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작은 일이 더 큰 안전 조정으로 번졌다. 진혁은 자신이 지금까지 익힌 유물 감정 기술이 이런 순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정확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빨리 전달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노건은 외투를 어깨에 걸친 채 자꾸 몸을 떨었다. 라일이 그 옆에 앉아 물었다. “아까 그 사람, 네가 말을 못 하면 일을 그만두게 하겠다고 했지?”
아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가 잘못한 것도 있어요. 상자 안을 보지 말랬는데, 왜인지 묻지도 않았거든요.”
“그건 네가 배워야 할 문제야. 하지만 널 위험한 바구니에 태운 사람의 책임까지 네가 가져갈 필요는 없어.”
라일은 그 말을 하고 자신이 왜 이렇게 진지해졌는지 몰라 잠깐 입을 다물었다. 어릴 때 그도 비슷한 말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카렌이 멀리서 두 사람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구조 기록에는 노건이 작업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과 지시자의 신원이 미확인이라는 점이 따로 적혔다. 억울함을 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남기는 일이었다.
잠시 후 남쪽 계단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났다. 회색 모자를 쓴 운송 감독자가 경비 두 명에게 붙잡힌 채 올라왔다. 그는 변명부터 했다.
“정식 지시를 받았습니다! 왕실 문양이 있었어요!”
“서명과 문양이 있다고 모든 지시가 정당해지는 건 아닙니다.” 유리가 말했다. “우선 누가 명령했는지 조사합시다.”
감독자는 출품 대리인 에르딘의 사무실에서 온 전달서라고 답했다. 에르딘은 국왕의 비축 물품을 보호하려 했다며 자신의 조치가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할 게 뻔했다. 진혁은 그 다툼을 끝내기보다 상자의 행방을 묻기로 했다.
“어느 쪽 바구니로 보냈습니까?”
감독자는 입을 다물었다. 라일이 노건에게 받은 고리 모양의 분기표를 내밀었다. 새로 교체된 톱니의 분기 번호와 같은 표식이었다. 지하 우편로는 왕궁 아래의 폐쇄 보관동으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공공 우편물과 비상 감정 기록을 분류하는 오래된 승강기가 있었다.
그 순간 수로 바닥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물이 밀려왔다. 모두가 몸을 돌려 계단으로 뛰었다. 진혁은 뒤처진 노건의 팔을 잡았다. 물살이 첫 계단을 때렸고 습한 공기가 얼굴로 올라왔다. 카렌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고정 걸쇠를 걸었다. 그들이 올라선 지상에서는 평범한 오후 햇빛이 가득했다. 바로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상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곧바로 서로의 인원을 확인했다. 감독관은 처음에 지하에 들어간 사람과 밖으로 나온 사람의 숫자가 한 명 차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그 한 명은 먼저 올라가 왕실 시설청에 상황을 알리던 경비원이었다. 그의 연락이 무사히 확인되자 카렌은 처음으로 검집에서 손을 뗐다. 서류상 한 줄의 착오도 현장에서는 사람 한 명의 생사를 가르는 두려움이 될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온 노건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상자는 아직 없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북쪽 승강기에 문제가 생겨서 제가 옮기지 못했거든요.”
“그럼 누가 찾아갔니?”
“저는 못 봤습니다. 다만 마지막 상자에 이런 표지가 붙어 있었어요.”
노건이 주머니에서 젖은 종이를 꺼냈다. 오래된 흰 이름표 그림이었다. 그 아래엔 손으로 휘갈긴 숫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
'998.'
서진혁은 검게 젖어 가는 숫자를 바라봤다. 오래전부터 따라온 원부가 이번에는 왕궁 지하의 배송 상자에 실려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상자를 누가 운반했느냐보다, 도착을 원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사실이었다.
제17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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