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제1경매원의 망치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주경매사 권해성이 옛 망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을 때 진혁은 먼저 손잡이의 닳은 부분을 보았다. 나무 표면에는 수많은 손길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망치 머리의 은색 띠에는 한때 금으로 채웠다가 떨어져 나간 글씨가 보였다. 지금 쓰는 망치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 상인이 상자에 못을 박으려고 썼을 법한 소박한 도구였다.
“열두 해 전 이 망치는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권해성이 말했다. “왕실 물품이니 임의로 뜯을 수 없습니다. 오늘 입회한 보존위원 두 분이 작업을 승인했습니다.”
진혁은 한쪽 벽에 걸린 작업 승인표를 살폈다. 부품 보존과 분해가 허용된 범위, 봉인 원상 복구 방법이 적혀 있었다. 카렌은 입회인의 이름과 서명이 실제 인사 명부에 있는지 대조했다. 윤담은 기술관으로, 하서린은 감정 기록 담당자로 참여했다.
“망치 안에서 영수증이 나온다니.” 라일이 고개를 기울였다. “도둑으로서는 좀 실망스럽군요. 금화라도 숨겨야 주인에게 의미가 있지.”
“영수증이 금화보다 비쌀 때도 있어요.” 진혁이 말했다.
“그 말 좀 무섭네요.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물건은 대개 대형 사고를 부르던데요.”
관련 이의 신청 기간이 지난 뒤 정식 처분 허가가 나오자, 노인은 수리함에서 작은 침묵 계측추만 분리해 정식 매각할 수 있게 했다. 다른 도구는 여전히 노인에게 필요했다. 진혁은 동화 열두 닢에 그 계측추를 매입했다. 계약서에는 계측추의 사용 횟수가 한 번 남았으며 정확도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적었다. 벨라는 계약서 한쪽에 계산을 남겼다. “물건값 열두 닢, 검사비 두 닢. 장사로 따지면 아직 수익은 없어요.”
“수익은 나중에 생각하죠. 지금은 우리가 장부를 믿을 만한 방법 하나를 더 산 겁니다.”
노인은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오랫동안 수리함 뚜껑을 쓰다듬었다. 진혁은 그가 물건을 파는 동안 어떤 기억까지 넘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매각은 물건을 옮기는 행위이고, 지나온 시간은 그 사람에게 남는 것이었다. 장갑 하나를 내놓기 망설이는 자신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망치는 작은 분해대 위에 올랐다. 윤담이 옛 고정 나사를 젖히자 낡은 나무 속에서 가느다란 황동 관이 드러났다. 두꺼운 손잡이가 한쪽으로만 무거웠던 이유였다. 겉보기에는 흔한 균형추였지만, 진혁이 손을 대자 낯익은 문구가 나타났다.
[감정 대상: 제1경매원 개장 망치.] [본래 용도: 낙찰 확정과 절차 중단을 모두 기록.] [숨겨진 보관부: 비상 봉인함.] [최근 개봉 기록: 12년 전.] [보관 내용: 장부 조각 1개.]
“정말 있군요.” 진혁이 숨을 죽였다.
윤담은 도구를 내려놓았다. “비상 봉인함이라면 열 때마다 원래 압력이 사라질 수 있어요. 사진부터 남기죠.”
하서린이 위치를 표시했고 벨라가 봉인 상태를 기록했다. 분해 과정은 공개 중계됐다. 누군가 진혁 일행이 마음대로 물건을 바꿨다고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황동 관이 열리자 작은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두 번 접힌 종이는 소금기 있는 공기에 닿지 않도록 얇은 유리막 안에 들어 있었다.
가장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1호 낙찰 영수증. 물품: 이름이 비어 있는 표식. 낙찰가 동화 한 닢.'
진혁은 웃음이 나오려다가 멈췄다. 앞서 보았던 외형 목록과 금액이 같았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두 줄이 있었다.
'낙찰자: 기재 보류. 대금 납부자: 윤서하.'
'소유권 이전: 미완료. 거절 의사 확인 전까지 물건 인도 금지.'
서도원의 손이 떨렸다. 윤서하가 적어도 그날 경매장에 있었다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물건을 샀다는 뜻은 아니었다. 대금을 대신 낸 사람이 곧 물건의 주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대금을 낸 사람이 따로 적혀 있죠?”
강유리가 문서를 조심히 받았다. “다른 사람의 빚이나 부담을 대신 낼 수는 있어도 그 물건의 권리까지 가져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입니다.”
“그런 규정이 지금도 있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남아 있습니다. 다만 실무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어요. 최근에는 보증인이 비용을 대신 냈다는 이유로 낙찰 권한까지 넘긴 것으로 해석하는 편법이 늘어났지요.”
권해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첫 경매원은 그걸 구분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진혁은 영수증의 맨 아래를 들여다봤다. 아주 가는 필체로 날짜와 시각이 적혀 있었다. 열두 해 전 대피 사고가 발생한 바로 그날이었다. '물품 인도 금지' 명령은 사고보다 먼저 기록됐다. 누군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거래를 멈추려 했고, 그 명령이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때 바깥 복도에서 고성이 들렸다. 경매원 창고 직원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중앙 보관실의 오래된 송장 상자 한 개가 사라졌다는 신고였다. 방문객 출입 기록에는 허가받지 않은 운송 노동자 두 명이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새벽에 에르딘 측 임시 출품 접수창구에 들어갔던 남자였다.
“이상하군요.” 라일이 얼굴을 굳혔다. “망치 안의 기록이 공개되기 전에 저쪽에서 움직였어요.”
유리가 책상 위의 보관 위치도를 펼쳤다. 분실된 상자는 망치의 원본 영수증과 대응하는 배송 장부였다. 배송 장부를 잃으면 '실제 물건이 누구에게 건네졌는가'라는 마지막 고리가 끊어진다. 영수증만으로 출품인의 신원을 완전히 복원할 수 없는 이유였다.
카렌이 검을 집어 들었다. “운송 승인서를 쓴 사람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라일은 검 대신 작업 장갑을 집어 들었다. “이번엔 저도 정식으로 일할 겁니다. 도둑이 창고 구조를 가장 잘 아는 건 불합리하게 들려도 사실이니까요.”
“허가 없는 문은 열지 마.” 카렌이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허가서를 같이 들고 가려고요.”
진혁은 라일을 따라 보관동으로 향했다. 복도에는 오래된 석유등이 줄지어 있었고, 바닥에는 나무 상자의 모서리가 긁은 자국이 이어졌다. 창고 안쪽에서는 오랜 종이 냄새와 젖은 밧줄 냄새가 섞여 났다. 손수레가 급히 움직인 흔적이 있었지만 어느 방향으로 나갔는지는 쉽게 알 수 없었다. 남쪽 출구와 북쪽 운송로가 마치 거울처럼 같은 구조였기 때문이다.
기록 창고에는 이름 없는 상자가 많았다. 덮개에 검은 끈을 감은 것은 사유가 끝나지 않은 물건, 노란 끈을 감은 것은 주인이 확인됐지만 찾아가지 않은 물건, 흰 끈을 감은 것은 공공 보관 중인 장부였다. 진혁은 그 구분을 먼저 기록했다. 상자를 덮은 끈의 색만으로 소유권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장부를 먼저 찾아야 할지 판단할 단서는 됐다.
라일이 먼지 쌓인 선반 사이를 걸어가며 낮게 말했다. “어릴 때 배송조합에서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택배 상자를 훔치려면 제일 비싼 상자를 노리면 안 돼요. 제일 많은 사람이 귀찮아하는 상자를 노려야 하죠.”
“그게 무슨 자랑입니까?” 카렌이 짧게 물었다.
“지금은 자랑이 아니라 예방 교육이에요. 누군가 기록을 지우려고 한다면 매번 맨 위에 있는 귀한 상자를 가져가진 않을 겁니다. 담당자가 확인하기 싫어하는 서류를 노리겠죠.”
그들은 빈 선반의 먼지 자국을 확인했다. 사라진 상자는 크지 않았지만 바닥에 눌린 자국이 유난히 깊었다. 안에 문서만 든 것이 아니라 쇳덩이나 기계 부품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선반 옆에는 부러진 봉인 실 한 가닥이 남아 있었다. 진혁은 그것을 집지 않고 벨라가 준비한 작은 유리관에 넣도록 했다. 증거에 손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카렌이 출입 명부를 펼쳤다. 창고에 드나든 사람들 중 실제로 상자를 나를 수 있는 시간에 등록된 사람은 네 명뿐이었다. 그 가운데 두 명은 밤 근무자가 아니었고, 다른 한 명은 다친 손 때문에 무거운 짐을 들 수 없다는 진료 기록이 있었다. 물론 그 기록만으로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 생겼다.
“상자를 훔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편하겠네요.” 라일이 중얼거렸다.
“그럼 누가 물건을 잃었는지보다 누가 미워 보이는지만 따질 겁니다.” 진혁이 대답했다. “그건 감정보다 위험한 일이죠.”
서도원은 창고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고 있었다. “여기와 비슷한 곳에서 윤서하가 밤새 문서를 말리던 게 생각나는군. 젖은 장부의 글자가 사라지지 않게 종이 한 장씩 넘기던 모습 말이야.”
“그런 기록이라면 어떤 사람이 훔쳐가도 다시 만들기 어렵겠네요.”
“그래. 그래서 우린 원본을 하나만 남겨 두지 않으려 했지.”
진혁은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누구의 소유인지 모호한 물건이라도 잃어버린 기록에 어떤 사람의 삶이 달렸을 수 있었다. 이 길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진혁은 바닥의 얇은 철편을 집어 올렸다.
[감정 대상: 화물 수레의 고정 걸쇠.] [최근 사용: 지하 하역로.] [마지막 충격 방향: 아래쪽.] [비고: 표준 규격과 폭 3밀리 차이.]
“이건 여기서 쓰는 수레가 아니에요. 지하 하역로에서 온 거예요.”
라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구가 아니라 아래쪽으로 물건을 보냈겠네요.”
계단을 내려갈수록 바닥은 축축해졌다. 지상에서는 들리지 않던 수차의 진동이 발밑으로 올라왔다. 왕궁 주변의 빗물을 빼내는 지하 수로가 경매원 보관동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작은 물건들은 수차를 따라 움직이는 화물 바구니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처음에는 효율적인 운송을 위해 만든 설비였겠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비밀을 숨겨 옮기기에 좋은 길이 됐다.
계단 끝에서 라일이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춰 세웠다. 멀리서 철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 뒤로 사람이 달리는 소리도 들렸다. 카렌은 진혁을 돌아봤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물러나기 어려워요. 먼저 지원을 부르죠.”
“맞아요.” 진혁이 답했다. “물건 하나 때문에 사람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죠.”
바로 그때 지하 천장에 붙은 배송 신호등이 붉게 켜졌다. 안내판에는 '일반 하역 중지, 왕실 비상 운송 개시'라는 문구가 떴다. 누군가 중앙에서 하역로를 통째로 잠그려 하고 있었다.
진혁이 작은 손전등을 들어 벽의 배관을 비췄다. 관 하나의 연결부에는 조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백색 등대의 안전 손잡이와 같은 표식이었다.
“이 길도 제4안전로에 연결됩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루멘, 등대, 왕도 비축고를 잇는 오래된 구조가 여기에도 있었다. 누군가 기록을 훔쳐간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숨기기 위해서만은 아닐 수 있었다. 그 기록이 앞으로 누가 문을 열 권리가 있는지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또 한 번 철문이 울렸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물 냄새가 점점 짙어졌다. 진혁은 손바닥을 꽉 쥐었다. 어떤 기록이든 사람이 살아서 가지고 돌아와야 의미가 있었다.
제17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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