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능력이 경매에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보통 사람은 믿지 않는다.
서진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참 동안 임시 출품 통지를 노려보다가 벨라에게 물었다.
“저한테 능력이라는 물건이 있었다면 누가 창고 번호라도 붙여 줬을 텐데요. 보관료는 또 얼마나 받는 겁니까?”
“웃을 일이 아니에요.” 벨라가 말했다. “출품 목록에 올리기만 해도 나중에 신원과 계약을 연결할 근거로 쓰려고 할 수 있어요.”
카렌은 통지서의 수신 방식부터 확인했다. 밀봉 인장은 정식이지만 봉투 바깥의 발송 번호는 임시 발급품이었다. 왕실 이름을 쓴 사문서가 아니었다. 더 골치 아프게도 정식 접수 과정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규정의 빈틈을 이용하고 있었다.
일행은 강유리에게 서류를 가져갔다. 유리는 황실 제1경매원의 동쪽 업무동 3층에 있었다. 납작한 창문 아래로 광장이 내려다보였고, 책상 옆 벽에는 분실 물품 봉인함이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그곳은 향수 대신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나는 방이었다.
“이런 신청은 어제만 두 건 더 들어왔습니다.” 유리가 말했다. “누군가 기술이나 직책을 물건처럼 표현해 출품하려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형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보류 처리했습니다.”
“그럼 오늘 통지서는 왜 발송됐죠?” 진혁이 물었다.
“접수 화면과 발송 장치가 분리돼 있기 때문입니다. 승인 전에 통지가 나갈 수 있는 구조였죠. 과거에는 업무를 빠르게 하려고 만든 기능입니다.”
“지금은 누가 훔칠 물건을 미리 알려 주는 기능이겠네요.” 라일이 말했다.
유리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는 접수 프로그램의 과거 기록과 원본 종이 접수표를 비교해 보겠다고 했다. 대신 진혁에게 당부했다. “에르딘의 출품 대리에 대해선 별도 반박서를 제출하세요. 그 신청을 방치하면 그의 주장 자체가 나중에 사실인 것처럼 인용될 수 있습니다.”
세리아는 즉석에서 반박서 초안을 썼다. 진혁은 마지막 줄을 직접 적었다. '나의 능력은 내 의사와 분리된 출품품이 아니다. 나는 이를 판매하거나 타인에게 입찰 권한을 준 사실이 없다.' 그 문장을 쓰는 동안 손바닥의 작은 문구가 마치 종이를 보고 있는 듯 뜨거워졌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유리는 공개 가능한 접수 현황을 보여 주었다. 에르딘의 신청서에는 진혁의 능력만이 아니었다. '루멘 심실 응답권', '모라의 보호 관리권', '백색 등대 회신 자료 독점 활용권'까지 하나의 경매 묶음으로 올라 있었다. 판매자의 이름은 각기 달랐지만 출품 대리인은 모두 에르딘이었다.
“본인이 허락하지 않은 권리를 모아서 상품처럼 만들었군요.” 카렌이 말했다.
“그런데 왜 바로 기각하지 않습니까?” 서도원이 물었다.
유리가 난감하게 답했다. “당사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는 주장 때문에 사전 심사가 길어지고 있어요. 오히려 대리인 측은 그 불명확성을 이용해서 나중에 자신들이 대리 권한을 입증하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진혁은 모라를 떠올렸다. 루멘 경매장 안에서 처음 자신의 뜻을 말하던 존재. 경매장에 살고 있다고 해서 건물의 물건이 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라에게도 알려야겠어요.”
“마레온까지 다녀올 시간은 없습니다.” 벨라가 말했다.
“원격 기록 회선을 쓸 수 있잖아요. 물론 그 회선도 독립 확인부터 해야겠지만요.”
경매원에는 원거리 감정기관과 통신하는 투사 장치가 있었다. 다만 왕도에서 모라의 말을 직접 듣기 위해서는 루멘과 양쪽의 기술관, 입회인이 연결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임의로 회선을 열면 통화 내용이 원치 않는 사람에게 전달될 위험이 있었다. 세리아는 먼저 마레온의 도르와 오렐에게 인증 신호를 보내고, 왕도에서는 하서린을 기록 담당으로 세웠다.
작은 유리판에 희미한 빛이 번졌다. 루멘의 지하 조명이 투사됐고, 모라의 그림자가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나타났다.
“서진혁.”
“잘 지냈어?”
“루멘이 밤에 좀 시끄러워. 사람들이 또 누굴 대신 정하려고 해.”
“그 문제 때문에 연락했어. 누군가 네 권리를 자기 물건처럼 경매에 올리려고 했어. 그걸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모라는 잠시 침묵했다. 유리판 너머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라의 그림자는 안개처럼 흩어졌다 모였다. 진혁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지난번에 싫다고 했어.”
“응. 그 기록도 남아 있어.”
“그런데 싫다고 하면 그걸 또 가져가서 팔 수 있는 거야?”
그 말에 방 안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는 거절을 승낙으로 바꾸려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거절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거래의 구실로 삼고 있었다. 카렌은 손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그렇게 하게 두지 않을 거야.” 진혁이 말했다. “다만 우리도 규정을 확인하면서 움직여야 해. 네 말을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는 것도 옳진 않으니까.”
모라가 작게 대답했다. “필요하면 또 물어봐. 내가 답할지 정할게.”
세리아는 창가로 돌아섰다.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오래전 유나가 남긴 문장을 떠올렸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대신 결정하지 말라는 말. 이제 모라는 누군가의 보호 물건이 아니라 스스로 대답하는 존재로 자라고 있었다.
연결이 끊어진 뒤 유리판에는 루멘의 빈 복도만 남았다. 세리아는 곧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처음 경매장을 맡았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계약서와 봉인 장치만 제대로 유지하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지킬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예전의 나는 모라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질문에 대신 대답하려 했어.” 세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게 무서워서 그랬지. 그 애가 무슨 대답을 할지 알 수 없었거든.”
카렌이 곁에 앉았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이해는 돼요. 그렇다고 계속 대신 말할 수는 없죠.”
세리아는 억지로 웃었다. “넌 이상하게 내가 듣기 싫은 말을 정확히 골라 하는구나.”
“그러려고 검사가 됐으니까요.”
두 사람 사이에 조금은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카렌은 세리아가 숨기는 비밀을 모두 의심했다. 세리아는 카렌의 정의감이 자신이 지키는 경매장을 파괴할까 경계했다. 이제 두 사람은 같은 위기를 다른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한 사람은 오래된 책임을 아는 관리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책임 때문에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이 없는지 확인하는 검사였다.
진혁이 말했다.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곳에 있는 게 나쁘지만은 않네요.”
세리아가 곧바로 받았다. “그렇다고 네 월급 인상안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야.”
“제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먼저 그렇게 말씀하시죠?”
라일이 문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둘 다 월급 인상이 필요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저는 경호비도 못 받고 있는데.”
벨라가 멀리서 받아쳤다. “라일 씨는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교육비부터 정산해야 해요.”
짧은 웃음이 방 안에 돌아왔다. 하지만 진혁은 그 뒤 곧바로 모라에게서 받은 메시지 기록을 두 겹으로 봉인했다. 하나는 모라가 재사용을 허락한 범위만 표시한 공개본, 다른 하나는 독립 보관실에 남길 전문이었다. 공개 심사장에서는 꼭 필요한 문장만 사용하기로 했다. 누군가의 거절을 보호하기 위해 기록했다가 그 말을 여기저기 전시하는 것도 다른 종류의 폭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밖의 광장에서는 정오 종이 울렸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가 창 너머로 밀려왔다. 진혁은 그 풍경을 바라보며 경매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대로 거래되는 시장은 누군가의 낡은 기술과 노동에 다시 가치를 주었다. 문제는 거래할 수 없는 것까지 팔려고 들 때 시작됐다.
그날 오후 정식 출품 반박 절차가 열렸다. 에르딘은 직접 나오지 않았다. 대신 대리인단이 진혁의 능력을 '출품이 가능한 특별한 지적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왕실은 능력 자체가 거래 가능한지 판단할 공식 감정 기준이 없다고 인정했다. 임시 출품은 반려됐다. 그러나 대리인단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당장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진혁은 낡은 장갑을 손에 끼었다. 자신이 가진 가장 확실한 개인 소유물이었다. 반박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자 광장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왕도 사람들이 파는 우산에 물방울이 튀었고, 가판대 천막이 바람에 부풀었다.
서도원이 그에게 물었다. “그 장갑을 출품하려는 건가?”
“그럴 생각입니다. 하지만 누가 사겠다고 하면 정말 보내 줘야겠죠.”
“왜 하필 그 물건이냐?”
“아무도 제 일을 대신 정해 주지 못했다는 걸 보여 주려고요. 그때 제 돈으로 산 거니까.”
도원은 오래전 자신의 손이 닿았던 또 다른 장갑을 떠올린 듯했다. “윤서하도 비슷한 말을 했지. 누구도 내 대신 일하지 않았으니, 내 선택도 남에게 팔 수 없다고.”
진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분이 정말 그런 말을 했습니까?”
“열두 해 전 경매실에서. 사람들이 들어야 했던 말이었어.”
세리아는 반박 심사 뒤 윤서하와 관련된 보호 주소를 자신도 열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그녀는 왕도에서 영향력이 작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 힘을 쓰지 않았다. 카렌은 그런 세리아를 조금 다르게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비밀 통로부터 찾으셨겠죠.”
“그럴 수도 있겠네. 지금은 누군가의 비밀을 아는 일이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과 다르다는 걸 아니까.”
진혁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정보 없이 사건을 풀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누구에게 무엇을 물을지 잘 정해야지.” 세리아가 말했다.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니니까.”
진혁은 손바닥의 문구를 보았다. 본질을 본다. 그 능력이 그에게 보이지 않는 모든 삶을 들여다볼 자격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작은 수첩에 '당사자 확인'이라는 말을 크게 적었다.
그날 밤, 강유리가 직접 보낸 문서가 도착했다. 윤서하에게 전달한 서도원의 편지는 반송되지 않았다. 본인 수령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보호 주소의 전달 체계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동봉된 작은 사진에는 황실 제1경매원의 옛 경매 망치가 찍혀 있었다. 손잡이 아래에 낯익은 조개 문양이 있었다. 백색 등대의 비상 손잡이, 루멘의 제4안전로와 같았다.
사진 뒷면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첫 낙찰자의 영수증은 망치 안에 있다.'
제17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