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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72화
PAYLUA ORIGINAL · 제172화

172화. 낡은 장갑의 값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126자

오프라인 책장
황실 제1경매원 주변에는 새벽부터 수집가들이 모였다. 정식 개장 시각은 열 시였지만 일찍 나온 사람들은 정문 옆 야외 검수대에서 물건의 무게와 흠집을 확인했다. 어린 견습생이 작은 저울의 추가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받치고, 손목이 굵은 장인이 금속의 울림을 들으려고 은잔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비싼 보석보다 낡은 공구 앞에 사람이 더 많이 모이는 것이 진혁에게는 반가웠다. 이곳에도 물건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길은 검수대에 있지 않았다. 밤새 발치에 두었던 감정용 장갑 때문이었다. 장갑은 그가 루멘에 취직한 날 직접 산 물건이었다. 첫 월급을 받기도 전이었다. 창고 감독관은 장갑이 없는 보조에게 고철 상자를 들게 할 수 없다며 일을 주지 않았고, 진혁은 역 근처 가게에서 동화 스물한 닢을 주고 가장 싼 가죽 장갑을 샀다. 가게 주인은 너무 크다며 반품을 권했지만 작은 치수는 더 비쌌다. 첫날 손끝이 남는 장갑을 끼고 상자를 놓치는 바람에 진혁은 반나절 내내 감독관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에겐 참 비싼 장갑인데.” 카렌이 그의 맞은편에서 차를 마시다가 말했다. “팔고 싶지 않으면 다른 걸 찾으면 되죠.” “그런데 제가 정말 가진 물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루멘에서 쓰는 공구는 회사 물건이고, 유물은 공동 보관품이고, 가진 돈은 생활비로 써야 하고요.” “그럼 생각부터 거꾸로 하지 말아요. 잃어도 되는 걸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권리를 넘기지 않는 물건을 찾는 거예요.” 옆 식탁에서 라일이 끼어들었다. “제가 가진 동화 한 닢을 빌려 드리죠. 출품했다가 값이 오르면 반씩 나눠요.” 벨라가 계산서를 덮었다. “남의 돈을 빌려서 본인 물건이라 제출하면 그게 바로 문제예요.” “오늘은 아무도 농담을 못 알아듣네요.” “그 농담이 왕실 양식에 쓰이는 순간 수수료가 붙기 때문이죠.” 세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진혁은 장갑을 손에 끼웠다가 벗었다. 솔기가 터진 부분에서 마른 실밥이 일어났다. 그 속에서 손바닥의 문구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감정 대상: 낡은 감정용 장갑.] [현재 소유자: 서진혁.] [표면 가치: 동화 다섯 닢.] [잔류 기억: 첫 출근, 창고 관리인의 꾸중, 물건을 떨어뜨린 날.] [비고: 소유자의 특별한 능력을 보관하지 않음.] 마지막 문구를 확인한 진혁이 피식 웃었다. 괜히 겁을 먹었다. 자기 능력이 장갑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낡은 장갑을 팔고 싶지 않았다. 처음의 초라한 자신을 기억해 주는 물건이었다. “다른 물건을 사면 출품해도 됩니까?” “되겠죠. 그런데 이 경매원에는 출품 전에 최소 하루 보유 기간이 있습니다.” 벨라가 규정을 읽었다. “그 규정도 취지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급조한 대리 소유를 막으려는 건지.” 식탁에는 마지막 찐빵 하나가 남아 있었다. 진혁이 손을 뻗자 라일이 먼저 집어 들었다. 라일은 찐빵을 둘로 나누어 벨라의 접시 위에 놓았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오늘은 왜 그렇게 착하세요?” 벨라가 물었다. “아침부터 영수증을 세고 계시잖아요. 피곤해 보여서요.” “그렇다고 당신 몫의 반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누가 빵 반쪽 소유권 확인하자고 하면 제가 증언하죠.” 진혁은 웃었다. 라일은 늘 빈정거리지만, 돈 때문에 배신한 적이 있는 만큼 돈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버리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도 알고 있었다. 그가 이런 작은 호의를 베푸는 날에는 대개 스스로도 어색해했다. 세리아는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왕도에 온 목적을 잊지 마. 네 장갑 한 켤레가 문제가 아니야. 제0호 장치와 연결된 기록을 누가 조작했는지 밝혀야 해.” “알고 있습니다.” 진혁은 반쯤 남은 찐빵을 손으로 감쌌다. “그래서 소유권이 분명한 작은 물건부터 확인할 겁니다. 큰 계약도 결국 누군가 처음에 쓴 작은 글씨에서 시작했을 테니까요.” 그 말에 서도원이 창밖을 바라봤다. “열두 해 전에도 누군가 종이에 아주 작은 글씨를 썼지. 모두가 서둘러 서명하려고 할 때 그 글씨를 읽어 준 사람이 윤서하였어.” 창가의 차 주전자는 어느새 식어 있었다. 벨라가 새 물을 부탁했고, 종업원은 서두르지 않고 찻잔부터 정리했다. 진혁은 왕도에서 가장 값비싼 경매장 바로 곁에서도 이렇게 사람의 하루가 이어진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때 식당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한 노인이 손수레 위에 낡은 금속함을 싣고 광장 검수대로 가고 있었다. 상자는 황동과 철판을 덧대 만든 것이었으며 뚜껑에는 숫자 '0'이 작게 새겨져 있었다. 손수레 바퀴 하나가 덜컹거릴 때마다 안에서 맑은 쇳소리가 났다. 진혁은 컵을 내려놓았다. “저거 한번 봐야겠는데요.” “점심값도 빼앗기면 안 됩니다.” 벨라가 경고했다. 진혁이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이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마른 먼지를 날리던 돌바닥에 동그란 물자국이 생겼고, 수집가들은 물건 위에 방수포를 덮었다. 어떤 사람은 금화 수십 닢짜리 금속 모형을 품에 안고 달렸지만, 어떤 사람은 비에 젖은 서류만 걱정했다. 진혁은 후자가 더 이해됐다. 비싼 금속은 대개 닦을 수 있지만 젖은 기록은 원래 문장을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검수대 옆 소형 수리점에서 아홉 살쯤 되는 아이가 녹슨 볼트를 닦고 있었다. 아이는 진혁의 손을 보더니 말했다. “그 장갑은 손가락이 너무 길어요.” “예리하네. 새 장갑 사라고?” “아뇨. 손끝에 면을 덧대면 돼요.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아이의 아버지는 간이 좌판에서 시계와 공구를 고쳤다. 손재주는 좋았지만 대형 경매원 납품 자격을 얻지 못해 이곳에서 작은 수리를 받는다고 했다. 정식 자격을 얻으려면 비싼 보증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가족의 한 달 생활비보다 컸다. 진혁은 저울과 안전 검수 기준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작은 장인에게 그 비용이 얼마나 큰 벽인지도 이해했다. “보증금을 한꺼번에 내지 않고 협동조합 명의로 분담할 수는 없을까요?” 그가 묻자 남자가 웃었다. “서류에는 가능하다고 쓰여 있죠. 그런데 함께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아직 셋뿐입니다. 다들 서로 모르는 사람이니 책임이 생길까 무섭거든요.” 진혁은 이 말을 기억해 두었다. 훗날 루멘의 보수용 부품을 발주할 때 여러 작은 공방의 기술력을 확인할 방법이 필요했다. 좋은 물건은 거대한 상회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감정 기회까지 잃을 필요는 없었다. 야외 검수대에서는 두 사람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노인은 물건이 경매원 창고에서 회수한 자기 소유의 수리함이라고 주장했다. 검수원은 왕실 납품품을 개인이 매각할 수 없다고 맞섰다. 상자의 바닥에는 왕실 인장 비슷한 흔적이 있었다. 누구의 소유인지 확정하지 못하면 경매에 나올 수 없었다. 진혁은 물건을 감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장갑을 낀 손으로 측면을 만졌다. [감정 대상: 회전식 공구 보관함.] [원래 사용자: 공공 설비 수리공.] [표면 가치: 은화 한 닢.] [특이점: 내부에 저가 부품 네 개 보관.] [왕실 재산 여부: 기록 불충분.] “제가 가진 능력도 소유권 증명서를 만들어 주지는 않네요.” 그가 혼잣말하자 검수원이 눈을 흘겼다. 노인은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수십 년 전 경매원의 북쪽 펌프를 관리하던 공방이 문을 닫으면서 수리함을 임금 대신 받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류에는 당시 공방장의 서명이 없어 거래를 증명할 수 없었다. 진혁은 성급히 노인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인이 거짓말한다고 단정하지도 않았다. 서로 다른 기록을 대조해 볼 필요가 있었다. 검수원은 마지막으로 뚜껑을 들어 올렸다. 안에는 작은 흑연 조각, 줄이 느슨한 줄자, 바늘형 무게추, 나무 손잡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 무게추에서만 희미한 글자가 떠올랐다. [감정 대상: 침묵 계측추.] [실제 기능: 작동하지 않은 기계의 마지막 힘을 기록.] [기록 잔량: 1회.] [보정값: 장치에 따라 차이 발생.] [주의: 측정 결과를 독립 기록과 대조할 것.] 단순한 추였지만 소리 없이 멈춘 장치의 마지막 움직임을 한 차례 읽을 수 있다면, 루멘에서 발견한 가짜 회신 기록을 검증하는 데 쓸 수 있었다. 진혁은 곧장 물건을 사지 않았다. 공방장의 상속인이 물건을 되찾으러 올 수 있고, 왕실이 정당한 소유권을 증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수리함을 내일 정식 감정대에 올려 주실 수 있나요? 소유권 확인부터 하고요.” 노인은 진혁을 쳐다보다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하루를 기다리라는 말은 쉬운 부탁이 아니었다. 진혁은 그 사정을 알고 있었다. 대신 검수원에게 노인의 수리 작업 내역을 입회한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고, 임금 미지급이 있었다면 공방 채권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게 했다. 세리아는 그 장면을 말없이 지켜봤다. 경매원 내부에서는 새 행사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었다. 오늘 정오에 열리는 것은 고가 경매가 아니라 '분실 출품품 반환 감정회'였다. 몇 년 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을 감정해 정당한 수령자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진혁은 그 명단에서 뜻밖의 이름을 보았다. '반환 심사 17번: 고장 난 저울 받침. 기존 신청인 윤서하.' 서도원이 손을 뻗어 명단을 붙잡았다. 그가 찾던 사람이 서류상으로는 죽은 자가 아니라, 아직 물건을 찾아가지 않은 신청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이 여기에 왔던 거야.” “그렇게 단정하긴 이릅니다.” 카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름만 빌렸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은 차가웠지만 필요한 말이었다. 도원은 명단을 다시 보았다. 날짜는 열두 해 전의 사고 이후가 아니라 불과 석 달 전이었다. 세리아는 보관 책임자 강유리를 찾아가기로 했다. 진혁은 그동안 자신이 출품할 물건을 고르기 위해 낡은 장갑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하지만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야외 검수대에 있던 수리함 안에서 작은 무게추가 흔들렸다. 뚜껑을 덮었는데도 한 번 더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멀리 어딘가에서 멈춘 기계가 자신을 확인해 달라고 보내는 신호 같았다. 그리고 수리함의 한쪽 장부에서 새 글씨가 드러났다. '최초 검수자: 윤서하. 미반환 원인: 수령인의 부재가 아님.' 진혁은 그 문장을 길게 바라봤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기록에는 다른 가능성이 적혀 있었다. 돌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누군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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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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