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에르반의 북쪽 역에 도착했을 때, 서진혁은 먼저 사람들의 구두를 보았다.
플랫폼의 짙은 붉은 벽돌 위를 검은 구두와 작업화가 쉼 없이 오갔다. 오전 열 시에 도착하는 급행열차는 왕궁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들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포장한 회중시계를 겨드랑이에 낀 남자, 가죽 상자에 감정증서를 넣은 노파, 반쯤 열린 새장에서 파란 깃털이 삐져나온 짐꾼이 한꺼번에 출입구로 몰렸다. 기차의 쇳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역 전체에서는 수십 개의 경매가 동시에 시작된 것처럼 숫자를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엔 분명히 말해 두죠.” 카렌이 내리며 말했다. “왕도에 있는 동안 물건보다 사람부터 챙겨요.”
“그러려고 왔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왜 벌써 저쪽 가판대 가격표를 보고 있죠?”
진혁이 시선을 돌렸다. “왕도 역 앞 찐빵이 지난번보다 동화 두 닢 올랐거든요. 제 월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입니다.”
라일이 뒤에서 웃었다. “사람을 챙기는 방법이 여럿이군요. 저라면 찐빵부터 챙기겠습니다.”
세리아는 두 사람을 지나 역 앞 마차 승강장으로 향했다. 그녀의 옆에는 봉인된 서류통을 안은 벨라가 있었다. 서류통에는 루멘에서 발생한 심실 역류 사고의 공개 검증 기록과, 모라가 자신의 의사로 남긴 거절 진술의 사본이 들어 있었다. 원본은 마레온의 공동 보관실에 남겨 놓았다. 이번에는 누군가 왕도의 명령서 한 장으로 자료 전부를 가져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진혁 일행보다 한 발 늦게 내린 서도원은 역의 천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유리판 수백 장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그의 낡은 작업복에 얼룩처럼 흩어졌다.
“열두 해 전에도 이곳에 내렸지.”
“그때 찾지 못한 분이 있다고 하셨죠.” 진혁이 물었다.
“기록 복원공이었어. 이름은 윤서하.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쯤 내 나이보다 조금 어릴 거다.”
도원은 그 말 뒤에 바로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두 손으로 가방의 손잡이를 바꾸어 쥐었다.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풀이한 사람만이 짓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버리고 도망쳤는지, 그 사람이 날 살리려고 남았는지. 그날의 기록이 남아 있다면 알고 싶다.”
진혁은 섣불리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 않았다. 도원이 묻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대답은 감정 능력으로도 아직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황실 제1경매원은 왕궁 본성에서 세 거리를 떨어진 광장 동편에 있었다. 흰 돌로 세운 건물은 멀리서 보면 극장과 비슷했다. 높은 삼각 지붕 아래에는 망치를 든 손 대신 펼쳐진 빈 손바닥이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 글씨는 오래된 왕국어로 '소유는 증명하고 의사는 묻는다'라고 읽혔다. 하지만 진혁이 본 정문 안내판에는 더 현실적인 문장이 붙어 있었다.
'입장권 금화 한 닢. 특별 감정 심사 신청자는 별도 보증금 납부.'
“멋있는 문장보단 이쪽이 진짜 경매원 같군요.”
“왕실은 글자를 무료로 읽게 해 줘도 문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돈을 받지.” 세리아가 말했다.
광장에는 유리 덮개 아래 옛 화폐와 왕실 인장을 전시한 좌판이 늘어서 있었다. 경매원 주변 식당에서는 입찰가에 따라 차값을 할인해 준다는 간판을 세웠다. 상인들은 '일등급 진품'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했다. 진혁이 어느 상자의 금장식을 스쳤을 때 익숙한 글자가 나타났다.
[감정 대상: 왕실 문양 모조 장식.] [본래 용도: 기념품.] [제작 시기: 보름 전.] [역사적 증명력: 없음.]
“진품만 다룬다는 왕실 앞에서 모조품을 팔아도 되나 봅니다.”
“모조품이라고 정확히 써 놓으면 돼.” 벨라가 가격표를 가리켰다. 정말로 아주 작은 글씨로 '현대 제작'이 적혀 있었다. 진혁은 웃었다. 적어도 저 상인은 자신이 파는 물건의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광장 한쪽에는 분쟁 중인 물품을 잠시 맡아 두는 공공 보관소가 있었다. 푸른 모자를 쓴 직원들이 대기 순서표를 나눠 줬고, 늙은 남자는 부러진 나무 의자 하나를 붙잡은 채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들의 의자라며 누구에게도 팔지 않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매각 신청이 아니라 보관증명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차분히 설명했다. 값어치를 묻지 않고도 물건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절차가 있다는 것이 진혁에겐 뜻밖이었다.
카렌이 그 장면을 보면서 말했다. “왕도에는 거래가 많은 만큼 분쟁도 많아요. 그래서 좋은 규칙이 필요한 거겠죠.”
“규칙이 좋다고 모든 사람이 좋게 쓰지는 않겠지만요.”
“그렇죠. 규칙을 이용해 남의 권리를 빼앗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루멘 경매장에서 발견한 가짜 서명 기록을 떠올렸다. 진혁이 보관소의 기다란 줄을 보며 중얼거렸다. “문제는 저 줄 맨 끝에 있는 사람까지 보호받을 수 있느냐겠죠.” 카렌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 서도원은 광장 우물가에서 물을 마셨다. 돌 가장자리에는 항해자들이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새긴 작은 별 문양들이 있었다. 그는 한 문양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해는 봄부터 비가 많이 왔지. 윤서하가 우산을 잃어버려서 내 작업복을 뒤집어쓰고 여길 건넜어. 그때 난 다시 올 줄 알았는데.”
진혁은 도원에게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도원의 시선이 길 건너 오래된 골목에 오래 머무는 걸 보고 질문을 바꿨다. “그분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 뒤로 아무도 찾지 않았습니까?”
“찾았어. 신원 명부도 뒤지고 사고 당시 구조자를 수소문했지. 문제는 그날 이후 누가 무엇을 잃었는지 묻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거야. 다들 자기 이야기만 듣고 싶어 했어.”
“오늘은 그분이 원하지 않는 답까지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 준다면 고맙겠다.” 도원이 짧게 웃었다. 기다리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도 기다림은 늘 어렵다는 것을 드러내는 웃음이었다.
정문 접수실은 꽃향기보다 잉크 냄새가 강했다. 호두나무 책상에 앉은 접수관이 서류통의 봉인을 한 장씩 확인하고, 모라의 거절 진술을 펼쳤다. 종이의 손상이 없는지 살피던 접수관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제0호 원본 열람을 신청하셨군요.”
“네. 황실 제1경매원에 최종 귀환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신청은 접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열람 자격은 이 경매원의 옛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신청인 본인 소유의 물건을 하나 출품하십시오. 대리 물건이나 상속 분쟁 중인 물건은 안 됩니다.”
서도원이 앞으로 나섰다. “빈손으로 온 사람은 진실을 볼 수 없다는 건가?”
“규정의 취지는 다릅니다. 처음 만든 사람은 자기에게 중요한 물건을 잃을 각오로 들어온 사람만 열람시켰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면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하겠네요.” 라일이 말했다.
접수관은 고개를 저었다. “물건의 값은 자격 조건이 아닙니다. 본인 소유임을 입증하고 경매원의 공공 절차를 따르는 것이 조건입니다. 출품을 취소할 수 있는 기한도 있습니다.”
세리아가 빠르게 물었다. “열람할 자료의 목록은 공개됩니까? 출품을 했더라도 원본이 실재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공개 가능한 외형 목록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출품 자체가 열람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라일이 입술을 삐죽였다. “물건부터 내놓고 될지 말지 모른다. 참 훌륭한 장사네요.”
진혁은 한참 생각했다. 그에게 소중한 물건은 많았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낡은 칸에 숫자를 적던 장부, 루멘의 작은 수리공들과 함께 고쳤던 공구, 카렌이 빌려 준 붕대. 하지만 소중함과 소유권은 다른 문제였다. 그럴듯한 유물 하나를 가져와 내놓으면 이번에도 그 물건이 가진 복잡한 권리를 훔쳐 쓰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직접 산 물건이어야 한다면 제 감정용 장갑은요?”
접수관은 목록을 확인하더니 답했다. “개인 소유로 증명되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출품 물건은 일반 공개 경매에 올라갑니다. 누군가 낙찰받으면 되찾을 수 없습니다.”
진혁은 닳은 장갑을 꺼내 들었다. 손바닥에 난 구멍은 마레온 지하 창고에서 녹슨 상자를 옮기다가 생긴 것이었다. 그 아래에는 일주일 전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능력의 흔적이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장갑은 평범했다. 값으로 치면 새 장갑보다 훨씬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바로 내려놓지 못했다.
“아무도 안 사면 어떻게 됩니까?”
“유찰되면 되돌려 드립니다.”
“제가 사면요?”
“자기 물건에 입찰할 수는 없습니다.”
카렌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가진 걸 모두 내놓으라는 뜻은 아니에요. 물건 하나를 내놓으라는 조건이지.”
진혁은 장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남에게 넘겨도 되는 물건과, 남이 가져가면 안 되는 물건을 구분해야 했다. 왕실의 거대한 문 앞에 서서도 그 일만은 남에게 떠넘길 수 없었다.
접수관이 원본 외형 목록을 건넸다. 세 장짜리 종이였다. 첫 장에는 장치 치수와 봉인 번호가, 둘째 장에는 보관실의 구조가, 마지막 장에는 최초 열람 신청자의 물품 기록이 있었다. 진혁은 마지막 줄을 읽는 순간 멈췄다.
'제1호 출품 물건: 사용하지 않은 이름표. 시작가 동화 한 닢.'
“왜 이름표가 비어 있었죠?”
접수관이 대답하기 전에 뒤편 문이 열렸다. 은빛 테를 두른 안경을 쓴 중년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하얀 서류 장갑을 벗으면서 진혁이 들고 있는 목록을 바라봤다.
“그 이름표의 진품을 보려는 사람은 오래간만이군요. 제 이름은 강유리, 이곳 보관 책임자입니다.”
그녀는 서도원을 보고 말끝을 멈췄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아는 듯했다.
“서도원 씨.” 여자가 낮게 말했다. “열두 해 전에는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더니, 오늘은 돌아오셨네요.”
도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윤서하는 어디 있습니까?”
유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가까운 창구에는 여전히 신청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품속의 열쇠를 꺼냈다.
“그 질문을 여기서 하면 당신에게 불리합니다. 우선 오늘 출품 신청을 철회하지 마세요. 그리고 절대로 타인이 대신 출품하게 하지 마십시오.”
“무슨 뜻입니까?” 진혁이 물었다.
유리가 작은 열쇠를 손가락 사이에서 돌렸다. “이 경매원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만 오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출품자로 만들어 놓고 그 권리까지 사려는 사람도 있지요.”
그녀가 돌아서자 복도 끝에 세워 둔 장식용 망치가 가볍게 흔들렸다. 바람도 없었다. 진혁에게만 붉은 문구가 나타났다.
[감정 대상: 황실 제1경매원 출품 접수대.] [숨겨진 기능: 물품 거래 기록과 출품인 신원 기록 분리.] [최근 조작 시도: 신원 기록에 미등록 대상 연결.] [대상: 서진혁.]
진혁은 자기 손에 남은 장갑 자국을 내려다봤다. 아직 아무것도 출품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그의 이름을 이미 경매에 올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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