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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65화
PAYLUA ORIGINAL · 제165화

165화. 거절의 등불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336자

오프라인 책장
어둠 속에서 들린 목소리는 아주 늙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쉰 숨소리가 끼어 있었지만 말끝은 분명했다. “빛을 켜면 저쪽에서 대답해요. 먼저 사람을 꺼내 주세요.” 카렌은 무릎을 꿇고 계단 아래로 등을 비췄다. 난간이 있는 폭 좁은 비상로가 물 위로 나 있었다. 중간쯤에 한 사람이 담요를 두르고 앉아 있었고, 발목에 가느다란 쇠줄이 걸려 있었다. 주변 바닥에는 찢어진 방수 포대와 식량 꾸러미가 흩어져 있었다. 최근 그곳에서 며칠을 지낸 흔적이었다.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 카렌이 외쳤다. “류이든. 등화관리국 기록 보조였어요. 아니, 지금은… 그만뒀습니다.” 백칠성이 계단을 붙잡았다. “이든? 너 열두 해 전엔 어린 수습이었잖아.” “노인장, 그 뒤로도 시간이 흘렀어요.” 이든은 희미하게 웃다가 기침을 했다. 실제로 그는 마흔을 넘겼을 법한 얼굴이었다. 얼굴에 깊은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백칠성은 그를 알아보는 듯했다. 진혁은 그의 등장 하나만으로 열두 해 전의 모든 의문이 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든이 지금 이곳에 온 이유와 과거 실종 사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별개였다. 소담이 구조 밧줄의 길이를 재는 동안 오렐은 수로에 남은 물높이 표시를 읽었다. 현재 수위에서 이든이 앉은 자리까지는 약 한 뼘 남았다. 길이 좁아 들것을 내릴 수 없었고, 발목의 쇠줄이 바닥 고리에 얽혀 있었다. “쇠줄을 자를 수 있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라일이 허리춤의 공구를 꺼냈다. “제가 내려가죠. 이 정도는 가능합니다.” “혼자 안 됩니다.” 소담이 말했다. “두 사람이 내려가고 위에서 둘이 줄을 잡아야 해요. 바람이 바뀌면 낮은 통로부터 공기가 밀려 나갑니다.” 그들은 장비의 한계를 인정했다. 진혁은 밖에서 줄의 표식을 확인하고, 카렌과 라일이 보호줄을 걸고 내려갔다. 잠시 뒤 금속을 비트는 소리가 났다. 라일은 줄을 마구 자르지 않았다. 쇠줄 한쪽이 문을 움직이는 균형추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 끊으면 위쪽 걸쇠가 떨어질 수 있었다. “누가 이렇게 묶었어요?” 라일이 물었다. 이든이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요. 문이 더 닫히지 못하게 묶었어요. 급하게 하다가 발이 걸렸고.” “그럼 형편없는 도둑이시네요.” “도둑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문을 훔칠 생각이었으면 나한테 물어봤어야죠.” 라일의 어처구니없는 위로에 이든이 짧게 웃었다. 그사이 카렌은 매듭을 풀고 쇠줄을 벽 고리에 다시 묶었다. 균형추가 안전하게 고정된 뒤에야 이든의 발목을 꺼낼 수 있었다. 위에서 당기던 진혁은 손바닥이 따끔해질 때까지 밧줄을 놓지 않았다. 이든이 일층 바닥에 올라오자 소담이 맥박과 호흡을 확인했다. 그는 탈진해 있었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세리아가 물을 건넸고 백칠성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서로 오래전의 얼굴을 확인하는 두 사람 사이에 바닷바람이 스며들었다. “어째서 돌아왔나?” 백칠성이 물었다. “나도 물어보고 싶어요. 그날 여기서 나가지 못한 사람이 누군지, 왜 아직도 이름이 장부에 없는지.” 카렌은 바로 질문을 쏟아 내지 않았다. 구조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따뜻한 곳과 치료였다. 다만 이든은 스스로 작은 방수 수첩을 내밀었다. 등화실의 교대 시간과 최근 방문자 수, 외항에서 접근한 선박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이곳의 기록을 확인하고 있었어요. 폐쇄된 줄 알았던 수로에 밤마다 물건이 들어왔습니다. 회색 배가 이쪽에 붙었고, 어떤 사람은 쇠상자를 옮겼죠. 어제는 문이 잠겨 나갈 수 없게 됐어요.” 세리아가 수첩을 덮었다. “우리도 조금 전 회색 배를 봤어요. 하지만 같은 배라는 증거가 필요하겠군.” “맞아요. 번호가 바뀐 적도 있어요.” 진혁은 이든이 꺼낸 작은 금속 명찰을 바라봤다. ‘제4안전로 검사원’이라는 글씨 아래 가장자리 일부가 갈려 있었다. [감정 대상: 제4안전로 임시 신분표.] [사용 목적: 구조 작업 중 인원 식별.] [주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표시하지 않음.] [최근 접촉: 네 사람.] 그가 문구를 읽는 동안 등화실 위에서 두드림 세 번이 울렸다. 이번에는 빛이 켜지지 않았다. 대신 중앙 축이 조용히 돌아가며 물기가 묻은 프리즘이 루멘 방향으로 기울었다. “그 사람들 중 누군가 장치를 손댔어요.” 이든이 말했다. “고리를 떼어 낸 뒤부터 한 방향으로만 움직여요. 멈춤쇠를 빼면 만조 때 압력으로 저절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놨더군요.” 백칠성이 입을 막았다. 그는 어제 경매에 나온 고리를 떠올렸다. 그 부품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팔린 게 아니었다. 누군가 등대가 특정 방향만 향하도록 장치를 바꾼 것이다. 진혁은 등화실 계측기의 바늘을 보았다. 지금 유리에는 외부 빛이 거의 닿지 않았다. 그러나 수로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은빛이 프리즘 안에 모였다. “그런데 등을 켜면 저쪽에서 대답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그가 물었다. 이든은 입술을 축였다. “열두 해 전, 등대는 사람이 거절한 신호를 루멘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했어요. 누가 어떤 이름으로 서명했든, 본인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 소리가 삭제되지 않게. 그걸 ‘거절의 등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럼 등불은 보호 장치였군요.” 세리아가 말했다. “원래는요. 하지만 누군가 신호를 반대로 묶었어요. 이젠 거절을 보냈을 때 장치가 ‘승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진혁은 등대의 안쪽 벽에 적힌 문장을 확인했다. ‘이쪽의 문은 바깥에서 열 수 없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더 작은 글씨가 있었다. ‘돌아온 말은 반드시 원래 말한 사람에게 돌려줄 것.’ “그런데 제0호 감정사가 누군지 아십니까?” 진혁이 이든에게 물었다. 이든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누군가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는 그가 누구와 일했는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서류를 열어 보면 늘 서명란이 비어 있었거든요.” “그럼 비어 있는 자리를 왜 만들었을까요?” “누구도 혼자 모든 대답을 결정할 수 없도록요. 적어도 내가 아는 유나는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진혁은 등대 창밖의 루멘을 바라봤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지붕의 뾰족한 선 몇 개로 이루어진 평범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한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 건물은 그 누구의 집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능력이 오래된 석판의 숨겨진 구조를 보여 주었다. [감정 대상: 제4안전로 거절 신호 회로.] [원래 기능: 본인 거절의 독립 보존.] [현재 상태: 신호의 방향 일부 역전.] [원인: 제3반사판에 설치된 비인가 어댑터.] 여기까지는 그만 볼 수 없었다. 이든이 구조됐다는 사실과 관계없이, 장치가 다음 만조에 또 움직이면 누군가의 이름이 잘못된 계약에 쓰일 수 있었다. 카렌은 해 질 녘 구조선 출발 시각을 확인했다. 소담은 바다가 더 거칠어지기 전에 모두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리아는 등대를 즉시 고치겠다는 결정을 보류하고 시설 봉인과 임시 신호 차단 계획부터 작성했다. 오렐은 현장에서 분리할 수 있는 수동 압력관을 표시했다. 잠깐의 휴식 동안 이든은 등화실 창가에 앉아 낡은 수첩을 넘겼다. 종이는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가루처럼 부서질 듯했지만, 그의 필체는 최근 기록보다 오히려 또렷했다. 유나가 처음 등대를 방문했던 날짜가 거기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날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유나는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도 선배처럼 굴었어요. 물건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먼저 직원들한테 묻더군요. 여기서 일하다 다친 적 있느냐고. 그때는 이상한 사람이네 싶었지.” “유나는 원래 그랬어.” 세리아가 말했다. “물건만 보고 있으면 사람이 안 보이니까.” 이든은 수첩 뒷장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거절 신호 수신 실패’라고 적힌 기록이 여러 번 반복됐다. 장치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고장이 아니라, 특정 방향에서 들어온 신호만 남도록 설계됐기 때문이었다. 유나는 그 문제를 고치려 했고, 레온은 사고 당시 기술자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일을 도왔다고 했다. “그날 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소리가 많았어요.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장치가 네 번 울렸고, 사람들은 화재가 난 줄 알고 뛰었죠. 나는 밖에서 수로 밸브를 잠그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안쪽에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카렌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아버지 레온이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아는 것은 달랐다. 남겨진 기록들이 때로는 그 차이를 잔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든에게 아버지가 잘했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본 마지막 모습을 물었다. “레온은 문 앞에서 사람을 세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하려고요. 그다음에는 안쪽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카렌은 고개를 숙였다. 그 짧은 대답은 확신을 주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끝까지 자기 앞의 사람들을 살폈다는 그림 하나를 남겼다. 그녀는 그 사실을 가슴에 조용히 넣어 두었다. 세리아는 유나가 마지막으로 남긴 듯한 음성을 재생하지 않았다. 재생 장치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다시 불안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그녀가 대신 이든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정말 문 밖으로 안 나왔어?” “제가 본 출입기록에는 없어요. 하지만 다른 길이 있었잖아요. 네 번째 길이요.” 그 말에 세리아의 얼굴에서 아주 작은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 아직 살아 있다는 희망이라고 부를 만큼 크지는 않았다. 단지 죽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여지를 처음으로 제대로 인정하는 표정이었다. 진혁은 조용히 물을 더 데워 왔다. 백칠성의 손은 계속 떨렸고, 이든의 손목은 밧줄에 쓸려 있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멋진 유물을 발견하는 것보다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는 것이라는 사실이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카렌이 잔을 받아 이든에게 전달했다. “살아 있는 증인에게 먼저 필요한 건 증언보다 치료예요.” 그녀가 말했다. 이든은 고개를 숙였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도 지금 저 장치를 멈추지 않으면 또 누군가 다칠 겁니다.” 그는 배에서 받은 따뜻한 담요를 어깨에 두르며 창밖의 조수를 살폈다. 오늘 만조 때 등대가 켜질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기다려 줄 수 없는 문제였다. 그때 등대 아래에서 작은 금속판 하나가 튀어나왔다. 백칠성이 그것을 줍자 누런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제0감정대 회신 예정: 오늘 밤 첫 만조.’ 진혁은 종이를 읽고 바다를 바라봤다. 회신 시각은 예언이 아니라 장치의 작동 일정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일정을 바꾸는 방법도 기계 안에 있을 터였다. 하지만 종이 맨 아래에는 낯선 문장이 하나 더 적혀 있었다. ‘거절자가 없으면 보관인을 대신 앉힌다.’ 그는 지금 이 장치를 노리는 사람들이 왜 자신의 이름을 필요로 하는지 조금 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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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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