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등대로 가는 길은 지도에 그려진 것보다 멀었다.
마레온 외항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자갈 해변은 낮에는 한 폭의 그림 같았지만, 썰물이 시작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드러난 갯바위마다 미끄러운 해초가 엉겨 붙었고, 낮은 웅덩이에는 날카로운 조개껍데기가 숨어 있었다. 해안도로가 끝나는 곳부터는 낡은 나무 기둥들이 바다 쪽으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그 위로 작은 관리용 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삭은 기둥만 남았다.
“저걸 건너려고 하면 제가 먼저 말리겠습니다.” 카렌이 말했다.
“말리기 전에 내가 먼저 떨어질 텐데.” 라일이 농담을 했다가 세리아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백칠성은 등대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해안청 통행 허가증과 대피용 배를 준비하라고 했다. 노인은 한때 등대 관리인이었지만, 지금은 출입 권한이 없었다. 그가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시설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세리아는 루멘의 설비 조사 기록을 첨부해 공동 안전 점검을 신청했고, 오렐은 연구 목적과 실험 금지 항목을 한 장에 정리했다. 카렌은 현장에 서명할 입회인 두 명을 데려왔다.
현장 점검 회의는 해안청의 낮은 회의실에서 열렸다. 천장에는 습기로 얼룩진 항로 지도가 매달려 있었고, 책상 한쪽에는 어선을 건져 올리는 데 쓰는 낡은 고리가 놓여 있었다. 서기관은 허가서를 읽는 내내 ‘안전을 위한 조사’와 ‘시설 재가동’이 다른 행위라는 말을 반복했다.
“저희는 불을 켜겠다고 신청한 것이 아닙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그래서 일시 출입만 허가한 겁니다. 구동 시험을 하려면 다시 신청해야 합니다.”
카렌은 출입 인원과 기술자의 역할을 확인했다. 이든은 아직 동행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누구도 그가 백색 등대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백칠성은 기록 보조 자격으로만 입회했고, 위험한 장치에 손대지 않는다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한때 모든 열쇠를 쥐었던 노인에게 지금의 자기 역할을 제한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일은 몹시 불편한 듯했다.
“전에는 내가 혼자 다 결정했네.” 그가 말했다. “불의 방향도, 사람을 보낼 시간도.”
“이제는 혼자 결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진혁이 답했다.
“젊은 사람 말은 쉬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서 여러 명이 가는 겁니다.”
백칠성은 반박하지 못하고 종이를 접었다.
서기관은 조수표에 빨간 줄을 그었다. 간조 때 접근하더라도 만조에 고립될 수 있고, 배가 파손되면 갯벌에서 해변까지 걸어오는 길은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세리아는 예비 구조선을 별도로 준비할 비용을 승인했다. 벨라는 예상 지출액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사장님, 이러면 이번 주 경매 수수료가 거의 다 들어가요.”
“알아. 그래도 사람을 잃는 비용보다는 싸.”
라일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제가 실수로 물에 빠지면 특별 구조료가 붙습니까?”
서기관은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상 구조 절차가 진행됩니다.”
“그럼 꼭 안 빠지도록 해야겠네요.”
회전 고리의 진품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도 남았다. 기술청 창고에 임시 보관된 고리와 현장 도면의 규격이 다르면 같은 기능을 보장할 수 없었다. 오렐은 원본 대신 축척 도면과 재질 시험표를 가져갔다. 진혁은 손바닥 능력만으로 그 값을 대신하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쇠조각이 있어도 조사할 때 허락받아야 하는 법이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바깥의 바람이 문틈을 흔들었다. 세리아는 서류를 가방에 넣고 진혁에게 말했다. “이제 알겠지? 멋진 보물을 찾으러 간다고 해서 배가 우리 사정을 봐주지는 않아.”
“알겠습니다. 이번엔 출발하기도 전에 배값부터 배웠네요.”
그들은 계단을 내려갔다. 항구 밖 바다에서는 새하얀 포말이 길고 낮은 줄을 만들고 있었다. 진혁은 몇 시간 뒤 그 물살 한가운데 서게 되리라는 사실을 아직 상상하지 못했다.
오후 두 시, 작은 작업선이 부두를 떠났다. 선장은 선체에 두꺼운 고무 대신 묵직한 삼베 완충재를 두른 수리선 운항인 조소담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바닷바람에 반쯤 감긴 눈으로 물살의 방향을 누구보다 빨리 읽었다.
“흰 돌기둥 세 개를 지나면 물길이 갈라져요. 왼쪽은 깊지만 돌아 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른쪽은 얕아서 배 밑바닥이 긁힙니다. 오늘은 왼쪽으로 갑니다.”
라일이 물었다. “제가 뛰어내려서 줄을 당기면 더 빠른 길로 갈 수 있습니까?”
“더 빠르게 물에 빠지겠죠.”
소담은 무뚝뚝하게 답하고 긴 막대를 수면에 찔렀다. 진혁은 그 모습이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경매장에서는 사람마다 값부터 물었지만, 이 바다에서는 돈을 많이 내도 물길을 거슬러 갈 수 없었다.
백색 등대는 가까이서 보니 흰색보다 회색에 가까웠다. 오래된 석회가 떨어져 군데군데 검은 돌이 드러났고, 바람에 밀린 소금기가 창문을 두껍게 덮었다. 원형 벽을 따라 세 개의 좁은 창이 있었는데, 맨 위의 창만 유리 안쪽이 유난히 깨끗했다. 누군가 최근 닦은 것처럼 보였다.
“열두 해 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면서요?” 진혁이 물었다.
“적법하게 들어온 사람은 없지.” 백칠성이 말했다.
등대 아래에는 나무로 만든 상륙계단이 있었다. 첫 번째 발판부터 썩어 있었다. 소담은 선체를 가깝게 대지 않고 줄을 걸어 물에 떠 있는 수송판을 고정했다. 오렐이 작은 도구함을 넘겨받고 가장 먼저 계단의 하중을 확인했다. 진혁은 손을 빌려 주다가 소담이 바닥에 떨어진 밧줄 조각을 유심히 살피는 것을 보았다.
“무슨 문제예요?”
“이 줄, 어젯밤에 잘렸어요. 끝이 하얗잖아요. 오래 썩어서 끊긴 밧줄은 이렇게 깨끗하게 남지 않아요.”
누군가 접근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에르딘의 짓으로 몰아갈 증거는 없었다. 카렌은 밧줄 끝을 봉투에 넣고 시간과 장소를 적었다. 세리아가 추가 대피선을 호출하는 동안 진혁은 출입문 앞까지 가지도 못한 채 발을 멈춰야 했다.
등대 아래의 물빛은 선착장의 파란색과 전혀 달랐다. 수면 바로 아래에서 검은 돌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조류가 방향을 틀 때마다 먼 쪽의 흰 포말이 일렬로 움직였다. 진혁이 눈을 가늘게 뜨자 소담이 작은 해류 표시판을 들어 보였다.
“저 물결의 방향이 지금 배의 방향과 반대잖아요? 그래서 노를 힘껏 저어도 제자리인 겁니다.”
“마법 때문이 아니군요.”
“바다는 원래 사람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요. 마법이 끼어들면 더 어려워지겠지만요.”
카렌은 선장의 설명을 듣고 지도에 조류의 방향을 그렸다. 작은 표시 하나가 구조 계획을 바꿀 수 있었다. 진혁은 마법을 보지 못하는 선장이 바다의 성질을 읽는 방식도 일종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든 오래 쌓인 경험이 있었다. 자신이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백칠성은 선체 옆으로 지나가는 검은 돌을 보며 옛날의 표식을 기억해 냈다. “예전엔 저 돌 위에 구리판이 하나 있었지. 등대가 꺼지면 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배가 좌초할 수 있었네.”
“왜 떼어 냈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그것도 폐기 목록에 들어갔어. 지금 생각하면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네.”
소담은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 등대를 폐쇄했다는 이유로 수로의 경고표지까지 가져갔다면, 그건 돈 문제가 아니라 안전 문제예요.”
진혁은 그 말에 회전 고리의 폐기 기록을 다시 떠올렸다. 비슷한 결정을 한 사람들은 이 해안에 와 본 적이 있을까. 항로 한가운데 숨은 돌을 직접 본 뒤에도 표지판을 고철로 분류할 수 있었을까.
배가 흔들렸다. 외항 쪽에서 빠른 모터 소리가 들렸다. 좁은 수로로 큰 수송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선체에는 왕립정리위원회의 회색 줄이 그려져 있었다.
“시설 점검이 겹쳤다고?” 소담이 욕설을 삼켰다. “사전 항행 공고도 없이 저 물길에 들어오면 작은 배는 벽에 부딪힙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몸을 낮추라고 외쳤다. 큰 배가 만들어 낸 파도가 수리선을 등대 벽으로 밀어붙였다. 금속 난간이 긁히는 소리가 났고, 바닥에 둔 도구함이 미끄러졌다.
진혁은 본능적으로 그 상자를 붙잡으려다가 멈췄다. 카렌이 먼저 다가와 어린 견습선원 한 명의 어깨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진혁도 곧장 견습의 구명줄을 붙들었다. 상자는 물속으로 떨어졌지만, 사람은 난간 안쪽으로 돌아왔다.
“괜찮아요?” 진혁이 물었다.
견습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배가 일부러 가까이 온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은 숨부터 고르자.”
소담은 배를 깊은 물길로 빼냈다. 대형 선박은 아무런 사과도 없이 멀어졌다. 카렌은 뱃머리의 선체 번호를 확인했고, 세리아는 항만청에 항행 방해 신고를 넣었다. 등대 조사보다 먼저 그날의 안전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로 상륙했을 때는 조수가 더 빠르게 빠지고 있었다. 긴 밧줄로 상륙판을 고정한 뒤 일행은 등대의 낮은 현관까지 올라갔다. 문에는 낡은 황동 인장 두 개가 붙어 있었다. 하나는 등화관리국의 폐쇄 봉인이고, 다른 하나는 ‘제4피난로’라 적힌 얇은 안전 표지였다.
“이 표지는 왜 지우지 않았을까요?” 세리아가 물었다.
“폐쇄 중에도 비상 탈출로는 남겨 두라는 규정이 있었거든.” 백칠성이 말했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그 길이 완전히 막힌 것으로 되어 있었지.”
진혁은 문틀을 가볍게 만졌다.
[감정 대상: 백색 등대 외부 폐쇄문.]
[정상 용도: 직원 출입 및 기상 악화 시 피난.]
[현재 잠금: 외부 잠금 장치 작동 중.]
[주의: 내부 비상 손잡이는 별도 회로.]
그는 전날 낙찰받은 동화 아홉 닢짜리 청동 손잡이를 떠올렸다. 누군가 안에서 그 부품을 빼냈다면 왜 그랬을까. 고장 나서였을까,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함부로 문을 열지 못하게 하려던 것일까.
오렐은 외부 봉인을 임의로 뜯지 않았다. 현장 입회 기록을 확인한 다음 기술청의 승인된 열쇠를 사용했다. 문이 열리자 소금기와 오래된 기름 냄새가 밀려 나왔다. 원통형 내부에는 벽을 감아 올라가는 철제 계단이 있었고 중앙에는 빛을 반사하는 원통 기둥이 서 있었다. 천장 가까이까지 올라가는 축은 멈춰 있었으나 차갑지는 않았다.
“안쪽에 바람이 통하네요.” 카렌이 말했다.
백칠성이 고개를 들었다. “등대는 숨을 쉬지. 그렇다고 살아 있다는 뜻은 아니야.”
진혁은 그 말을 들으며 루멘의 고대 껍질을 떠올렸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결론에 맞춰 현상을 읽는 순간, 모든 기계는 괴수가 되고 모든 괴수는 단순한 기계가 된다. 그 둘을 구분하는 일이 감정사의 진짜 일이었다.
그때 맨 위 층에서 작은 쇠구슬이 굴러 떨어졌다. 계단에 한 번, 중앙 기둥에 두 번 부딪힌 뒤 구슬은 진혁의 발 앞에 멈췄다. 표면에는 오늘의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누가 떨어뜨린 거죠?” 라일이 속삭였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제16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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