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등화 장비 경매는 화려한 행사가 아니었다.
마레온 북부 어시장 뒤편의 빈 창고에는 비에 젖은 천막이 임시 지붕처럼 걸렸고, 안쪽에는 낡은 등대 부품과 깨진 유리, 철제 손잡이가 널려 있었다. 선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왕실의 인증서보다 당장 배에 끼울 수 있는 볼트였다. 수리공들은 상자에서 부품을 집어 들어 나사 간격을 재 보고, 고개를 저으면 곧장 다른 상자로 옮겨 갔다.
“우리 경매장만큼 격식이 없군.” 세리아가 말하자 벨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사장님, 이쪽이 오히려 입찰 절차를 더 정확히 지키는 것 같은데요? 선금과 보증금을 구분해서 적어요.”
“그건 우리도 하고 있지.”
“이틀 전에 라일 씨가 수수료 서류를 접시 받침으로 쓰기 전까진요.”
라일은 억울한 듯 두 손을 들었다. “그 접시가 서류에 국물을 쏟으려고 했습니다.”
카렌이 그의 손을 눌러 내렸다. “오늘은 물건을 만지지 마세요. 특히 사인하는 척하는 장난은 하지 말고요.”
그들은 창고 안쪽의 번호표를 받아 입찰대 가까운 쪽에 섰다. 57번. 진혁은 물품 목록에 있는 회전 고리의 사진과 실제 물건을 비교했다. 실제 부품은 손바닥 두 개를 이어 놓은 크기의 쇠고리였다. 오래된 소금기가 틈마다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금속 면에 선처럼 난 균열도 보였다. 외관만 보면 물류차 바퀴축보다 못했다.
출품 담당자는 물건을 ‘폐기 승인된 국유 설비’로 분류했다. 그러나 폐기 결정서에는 관리자 서명이 하나만 있었다. 경매 규정상 출품 자체는 가능하더라도, 시설 연결 부속인지는 별도 확인이 필요했다. 세리아가 그 문제를 묻자 담당자 장필주는 딱딱하게 답했다.
“폐등대는 이미 기능이 없어져서 설비 연결의 의미도 없습니다.”
“기능을 멈춘 것과 끊어 낸 것은 다릅니다.” 오렐이 말했다. “실제 배관과 기계식 연결 여부를 살펴야 합니다.”
담당자는 혀를 찼지만 검수 시간을 주었다. 진혁은 장갑을 낀 채 고리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눌렀다.
[감정 대상: 백색 등대 회전 고리 4번.]
[표면 가치: 고철 동화 열셋 닢.]
[실제 용도: 반사 프리즘의 자유 회전 제한·해제.]
[손상: 고리 안쪽 멈춤쇠 이탈.]
[활성 연결: 직접 연결 없음.]
마지막 문장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루멘 심실과 지금 직접 이어져 있는 장치가 아니라면 즉시 위험품으로 단정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누군가 이 고리를 구입해 등대에 돌려 끼우면 빛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나사를 빼 볼 수 있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공식 감정 담당자만요.”
그는 물러섰다. 이전 같으면 손바닥에 뜬 문구를 보여 주고 싶어 초조했을 것이다. 이제는 말로 확인할 수 없는 능력보다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마모 자국이 필요했다. 오렐은 도구 상자에서 규격 게이지를 꺼내 고리 안쪽을 재었다. 멈춤쇠 자리에 남은 홈이 네 군데였고, 하나가 다른 세 곳보다 깊었다.
“이건 원래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장치가 아닙니다.” 오렐이 공개 기록표에 썼다. “최소 네 방향으로 고정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담당자는 이마를 문질렀다. “그게 무슨 뜻이죠?”
“고철로만 팔아도 되는지 담당 부서가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경매가 지연되자 사람들이 투덜댔다. 어시장에서는 정오가 지나면 얼음을 실어 나를 인부들이 빠져나갔고, 그들 역시 하루 품삯을 놓칠 수 없었다. 진혁은 무조건 중단만 요구하는 대신, 문제가 된 고리 한 점을 별도로 보류하고 다른 부품은 계속 팔아 달라고 요청했다. 장필주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검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창고의 다른 경매는 계속됐다. 구식 구명 고리는 동화 스물셋 닢에 낙찰됐고, 금이 간 구리 항해등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유찰됐다. 그때 은빛 머리를 단정히 묶은 여성이 손을 들었다. 자신을 항만 구조조합의 최은비라고 소개한 사람은 고장 난 항해등을 다시 경매에 올려 달라고 했다.
“유리만 갈면 우리 구조선에서 쓸 수 있어요. 다만 상태가 나빠서 동화 열 닢 이상은 어렵습니다.”
담당자는 낮은 가격에 인상을 찌푸렸으나 물건의 상태를 기록한 뒤 재공고했다. 은비가 동화 아홉 닢에 낙찰받자 뒤쪽 선원들이 조용히 박수를 쳤다. 큰돈이 오가는 경매장에서 아무도 들지 않을 소리였다.
진혁은 은비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구조조합은 겨울마다 부품 비용이 모자랐다. 외항에서 배 한 척을 구하려고 나가면 연료값과 수리비가 한꺼번에 들었고, 구조 대상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일도 조심스러웠다. 돈이 모자라서 신호등 하나를 새로 사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여기선 동화 몇 닢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진혁이 물었다.
“사람이 다치지 않고 집에 돌아온다면 그날 비용은 작죠. 하지만 내일도 누굴 구하려면 오늘의 동화 몇 닢을 아껴야 하잖아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에 자신이 하찮게 보던 고철이 어떤 곳에서는 생명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물건의 가치는 주인의 사정과 쓰임에 따라 달라진다. 그의 능력이 진실한 기능을 보여 줘도, 누구에게 필요한지는 결국 사람들에게 물어야 했다.
은비는 그가 구경하던 회전 고리를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저 부품은 여기서 본 적이 있어요. 백색 등대 쪽 수로 표지를 수리할 때 같은 규격을 썼거든요. 그런데 폐등대 부품이라고 한꺼번에 팔면 표지까지 사라지는 거 아닙니까?”
진혁은 그녀의 증언을 바로 사실로 적지 않았다. 은비가 본 부품의 크기와 재질을 별도로 적고, 사진이 남아 있으면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은비는 구조조합 사무실 벽에 오래된 수리 사진을 붙여 둔 기억이 있다고 했다.
“보내 드리죠. 대신 오늘 이 고리를 사면 제대로 관리하세요.”
“사기도 전에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담스럽네요.”
“유물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서요. 사람 돌아올 길도 봐 주세요.”
그 말에 진혁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등대의 회전 고리는 단순한 회전 장치가 아니라 귀환로의 표식일 수도 있었다. 그가 입찰을 단순한 수집의 기회로 보지 않게 된 이유였다.
잠시 후 왕립정리위원회 명함을 든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에르딘의 조수 카르만이었다. 그는 남에게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열일곱 동화짜리 고리에 그렇게 관심을 보이면 시세가 올라갑니다. 서 감정사님의 명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입찰할 수도 있어요.”
“그럼 공개 사유를 설명해야겠네요.” 진혁이 말했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지요. 입찰 보류 요청을 철회하면 저희가 조용히 인수하겠습니다.”
라일이 앞으로 나섰다. “조용히 인수한 뒤 어디에 달 겁니까?”
카르만의 미소가 멈췄다. “그건 구매자의 자유입니다.”
카렌은 그 대화를 들은 시각과 내용, 상대의 소속을 기록했다. 모든 수상한 제안이 범죄는 아니었다. 하지만 추후 사용 목적을 다투게 될 때 오늘의 말은 중요해질 수 있었다.
정오에 가까워지자 담당 부서에서 답이 왔다. 고리는 독립 보관품으로 분류된 기록이 있으며, 소유권 매각 자체는 허용됐다. 대신 낙찰자가 설치하거나 재가공하려면 관할 기술청의 허가를 다시 받아야 했다. 그 조건이 공개 공고에 추가되자 중단됐던 입찰이 재개됐다.
“시작가 동화 열일곱 닢!”
“스무 닢.” 진혁이 번호패를 들었다.
카르만은 곧장 “은화 한 닢”을 불렀다. 동화 백 닢이 은화 한 닢이었으므로 순식간에 다섯 배가 올랐다. 주변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낡은 고리에 은화 한 닢?” 어부가 중얼거렸다. “저걸로 새 밧줄 두 타래는 사겠네.”
진혁은 곧장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고리 외에 네 방향 홈을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오렐에게 조용히 물었다. 기술관은 제작 기간과 비용을 적었다. 이틀, 재료비 은화 세 닢 안팎. 원품이 증거라면 제작물이 대신할 수는 없지만, 수리 용도로는 충분했다.
“원품이 필요하다면 여기서 끝없이 돈을 쓸 필요가 있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증거 보관이 목적이긴 한데… 가격이 올라가는 걸 보니 그 사람도 원품을 원하네요.”
카르만은 은화 두 닢을 불렀다. 진혁은 동화 하나를 더 보태지 않았다. 관중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장필주가 망치를 들었다. 그 순간 백칠성이 입찰대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름으로 물품 사용 제한 요청서를 제출했다. 그의 손에 낡은 등화관리 일지가 들려 있었다.
“이 고리는 폐기품이 아니오. 등화시설의 제4안전 방향을 남겨 두는 물건이오. 여기 서명한 사람은 나요.”
담당자는 원래 기록과 대조했다. 출품된 고리의 제조 일련번호 뒤 한 글자가 그 일지와 맞지 않았다. 낙찰을 확정하면 소유권 분쟁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매장은 규정에 따라 입찰을 무효로 하고 물건을 임시 보관했다.
카르만의 얼굴이 붉어졌다. “동전 몇 닢짜리 고철 때문에 절차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겁니까?”
세리아가 대답했다. “값이 낮다고 주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백칠성은 고마워하기보다 침울해했다. “누군가 일련번호를 바꿔 놓은 걸세. 고리 말고도 바꾼 게 있을 수 있어.”
그들은 공고 사진과 실제 부품의 번호를 다시 살폈다. 사진에는 없던 아주 얇은 긁힘이 고리 바깥쪽에 있었다. 네 갈래 선으로 이뤄진 긁힘. 진혁은 그것이 단순한 훼손이 아니라 오래된 항로 방향표시와 같은 형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오후, 봉인된 고리는 기술청 임시 창고로 옮겨졌다. 진혁은 다른 상자에서 값싸게 낙찰받은 작은 청동 손잡이 하나를 가방에 넣었다. 동화 아홉 닢에 산 물건이었다. 외형은 시시했지만 손잡이 끝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조개 문양이 있었다.
[감정 대상: 청동 손잡이.]
[본래 기능: 등대의 비상 지하문 수동 개방.]
[열쇠 아님. 내부에서만 작동함.]
“쓸 수 없는 손잡이를 사셨다고요?” 라일이 물었다.
“지금은 못 쓰지.” 진혁이 답했다. “하지만 누군가 안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백칠성이 그 문양을 보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까지 차분했던 노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건 내 작업대에 두었던 물건이 아니야.”
“그럼 어디에 있었습니까?”
“열두 해 전, 등대가 폐쇄되던 날 안쪽에서 누군가 그걸 빼냈네. 그 뒤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바깥의 파도 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백칠성은 시야 끝의 하얀 건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손잡이가 밖으로 나왔다는 건… 안에 있던 사람이 이제 다른 길을 찾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어.”
제16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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