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을 여는 아침, 왕도의 하늘은 낮고 흐렸다.
북관의 낡은 등화관리소 앞에는 임시 통제선이 놓였고, 시청 공증인 윤상화와 시설 담당자 두 명이 출입 명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전날 깨진 등불의 유리 조각은 모두 수거했지만 기둥 아래에는 검은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누가 다녀갔는지 알 수 없었다.
서도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약속한 시각에 나타났다. 그는 몸에 맞지 않는 오래된 외투를 입고 있었고, 양손은 빈손이었다. 카렌은 그를 만나자마자 신원 확인 절차부터 진행했다. 과거의 근무표, 협력공방 인장, 주민 등록 기록은 대체로 일치했다. 그러나 기록이 끊긴 열두 해 동안 어디에서 살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직 전부 확인된 건 아닙니다.” 카렌이 말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됐네.”
진혁은 그를 바라봤다. 어제는 마음속에서 단번에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사람이다. 지금은 아직 그렇게 부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차갑게 외면할 수도 없었다.
등화관리소는 기울어진 나무 계단을 올라야 하는 작은 건물이었다. 벽에는 오래된 항로 표식이 걸려 있었고, 창문 옆에는 수리할 수 없는 유리갓들이 상자째 쌓여 있었다. 제4등불 보관함은 뒤쪽 작업실의 벽 안에 설치되어 있었다.
손잡이에는 숫자 대신 네 개의 작은 홈이 있었다. 서도원이 가져온 녹슨 열쇠를 넣자 첫 번째 홈이 천천히 돌아갔다. 두 번째 홈과 세 번째 홈까지 맞아들어 갔지만, 마지막 홈에서 기계가 멈췄다.
“네 번째가 빠져 있군요.” 오렐이 중얼거렸다.
그는 어젯밤 마레온에서 도착한 기술관이었다. 루멘 시설팀을 비울 수 없어 열차에서 밤을 새웠다고 했다. 도르가 보낸 기술 도면은 여러 번 접혀 손때가 묻어 있었다.
“보관함이 네 방향 검수 도장을 요구하는 구조네요.”
“도장은 미조 씨가 보관 중입니다.” 카렌이 말했다.
미조는 앞쪽에서 봉인한 상자를 가져왔다. 공증인은 봉인의 손상 여부와 일련번호를 확인한 뒤에야 뚜껑을 열었다. 사라졌던 구리 도장은 여전히 네 방향 홈을 갖고 있었다.
“원본을 훔쳐 오는 것보다 안전 절차가 길군요.” 진혁이 말했다.
윤상화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본을 훔쳐 가는 사람이 생겨도 누가 맡았는지 알 수 있지요.”
도장을 홈에 맞춰 넣자 보관함 안쪽의 낡은 종이 띠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서류는 작은 철제 롤러에 감겨 있었다. 표면에는 검은 얼룩이 있었지만 찢어진 곳은 적었다.
첫 장에는 '긴급 보상 협약 원본 참조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루멘 심실 시험에 참여한 기술자들의 명단이 이어졌다. 서도원이라는 이름 옆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칸의 값은 금화 일만 닢이었다.
“여기까지 보면 상대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진혁이 말했다.
세리아가 눈길을 내렸다. “뒷면을 봐.”
윤상화가 서류를 뒤집었다. 거기에 본문이 있었다.
‘위험 시험 중 기술자의 사망 또는 실종으로 노동 제공이 중단될 경우, 발주인은 별도 구제 절차와 무관하게 가족에게 보상금 일만 금화를 지급한다. 해당 금액은 기술자 개인의 채무가 아니며, 상속인에게 의무로 승계되지 않는다.’
진혁은 몇 번이나 같은 문장을 읽었다.
그 순간 윤상화가 옆에 서 있던 기술관에게 원래 문장의 위치를 표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글씨는 종이의 한가운데 있었다. 누군가 이후에 별도의 표를 붙이기 전에 만들어진 기록이라는 뜻이었다. 오렐은 종이 섬유의 색과 잉크가 스며든 정도를 살폈다. 원본의 오래된 먹은 종이와 함께 누렇게 변했지만, 덧붙인 등록표의 잉크는 표면에 얕게 남아 있었다.
“이렇게 뒤집히는 일이 흔합니까?” 진혁이 물었다.
윤상화는 단정하지 않았다. “흔하다는 것과 의도적이라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다만 지금처럼 돈을 받을 사람과 돈을 낼 사람을 바꿔 적었다면, 오류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서도원은 장부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진혁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내가 받을 돈이 있었구나.” 노인이 낮게 말했다. “열두 해 동안 내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들었는데.”
“그 말을 누가 했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정리위원회 직원들이지. 시험이 실패했으니 보상금을 갚아야 한다고. 그러니 숨어 살라고 했어.”
그는 입을 다물고 문서를 다시 바라봤다. 공식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보상 조항과 후대 등록표의 불일치였다. 그가 들었다는 협박은 아직 별도의 증언이었다. 그러나 진혁은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노인이 지난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지 생각했다.
“왜 제게 바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나타나면 너한테도 그 돈을 갚으라고 할까 봐.”
진혁은 고개를 숙였다. 대답하기 전에 문득 어린 시절 등불 불빛 아래에서 기다렸던 밤이 떠올랐다. 기다린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던 그 밤이 사실이라면, 그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잘못된 계약 기록 하나가 여러 사람을 오래 떼어 놓았을 가능성이 처음으로 선명해졌다.
“받아야 할 돈이었네요.”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세리아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네.”
“그러면 왜 계약서가 이렇게 팔리는 거죠?”
오렐은 롤러의 반대쪽을 살폈다. 거기에는 나중에 붙인 얇은 종이띠가 있었다. 정리위원회에서 만든 보조 등록표였다. 본래의 '지급 대상'이라는 칸이 '승계 의무자'로 바뀌어 있었고, '사망 또는 실종 보상'은 '채무 미이행 보전금'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뜻을 거꾸로 만든 겁니다.” 오렐이 말했다.
윤상화가 기록을 마쳤다. “확인된 것은 서로 다른 두 문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시점에, 누가 내용을 바꿨는지는 추가 증거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때 등화관리소 밖에서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시청 전령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청동각 특별 경매가 앞당겨졌습니다! 정오가 아니라 오전 열한 시 개장입니다. 출품품 원본도 이미 청동각으로 이송됐습니다.”
진혁은 시계를 보았다. 아직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서류를 들고 바로 가면 되겠습니까?”
세리아는 공증인을 바라봤다. “최대한 빨리 사본을 만들되 원본은 보관하세요. 누군가 이동 중에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윤상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증 기록과 봉인 사본 두 부를 만들겠습니다.”
라일은 밖으로 나가 마차를 구했다. 카렌은 경비에게 이동 경로를 알리고 진혁을 따라갔다. 서도원은 계단 아래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 이름이 그 종이에 붙어 있으니 가야지. 하지만 진혁아, 네가 내 말 때문에 모든 것을 걸지는 말아라.”
“그럴 생각 없습니다.”
“다행이군.”
“다만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도망치고 싶지는 않아요.”
노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진혁의 기억 속 어느 순간과 닮아 있었다.
청동각의 앞마당에는 이미 경매 대기열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귀족의 마차뿐 아니라 왕실 은행의 금고 수송차까지 나타나 있었다. 오늘의 경매가 단순한 고문서 수집 행사가 아니라 거대한 이권 거래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풍경이었다.
민도겸은 예정보다 일찍 단상에 섰다. 그의 목소리가 확성 수정구를 통해 홀 전체에 울렸다.
“청동각 특별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중심 출품품은 루멘 설립 이전의 계약서입니다.”
진혁 일행이 들어왔을 때 민도겸은 이미 첫 번째 서류를 공개하고 있었다. 유리 진열함 안에는 수백 년 된 것으로 보이는 낡은 양피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금화 일만 닢의 액수가 새겨져 있었다.
카렌은 출입구에서 경비의 확인을 받았다. 진혁은 곧장 단상으로 걸어가지 않았다. 먼저 경매장 참가 규칙을 확인하고 정식 이의 절차를 요청했다. 민도겸의 눈썹이 올라갔다.
“서진혁 감정사. 이곳에 당사자로 참석하셨습니까, 아니면 입찰자로 참석하셨습니까?”
“출품품의 설명이 사실과 다른지 확인할 참고인으로 왔습니다.”
“참고인에게는 입찰을 중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록 접수만 해 주세요. 경매를 진행하시더라도 제시된 정보의 오류를 모든 입찰자에게 고지해야 합니다.”
군중이 술렁였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오류라면 어떤 겁니까?”
진혁은 공증인이 준비한 사본을 펼쳤다. “금화 일만 닢은 가족이 지급해야 할 돈이 아닙니다. 위험 시험에 참여한 기술자에게 사고가 나면 가족이 지급받도록 약속된 보상금입니다.”
여러 사람이 서로를 바라봤다. 민도겸이 즉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이 계약서의 권리는 별도로 이전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권리 이전 기록을 공개하십시오.” 세리아가 말했다.
에르딘이 객석 앞쪽에서 일어났다. 그는 분명 진혁 일행이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경매에서 감정 분쟁은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계약서의 소유권만 매매합니다.”
진혁이 그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집행권도 함께 판다고 홍보하셨는데요.”
에르딘은 대답하지 않았다. 청동각 직원 하나가 황급히 출품 안내문을 걷어 갔다.
민도겸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입찰을 시작하겠습니다. 금화 일만 닢!”
몇 초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때 2층 특별석에서 하얀 장갑을 낀 사람이 번호패를 들었다.
“일만 금화.”
진혁은 고개를 들었다. 특별석의 유리창은 어두워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두 번째 사람이 만 이천 금화를 불렀다. 세 번째 사람이 만 오천 금화를 제시했다.
도저히 개인이 따라갈 수 없는 숫자들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진혁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물건의 독점 소유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팔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망치가 내려가기 직전 손바닥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감정 대상: 청동각 특별 출품 제1호.]
[표면 명칭: 최초 계약서.]
[실제 구성: 원본 1장, 후대 덧붙임 2장.]
[주의: 현재 진열된 원본의 네 번째 모서리가 교체되었음.]
진혁은 숨을 삼켰다. 그들은 단순히 내용을 다르게 읽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서 계약서 자체를 바꿔 놓은 것이다.
“잠깐만요!”
그가 외치자 모두가 돌아봤다. 민도겸이 망치를 든 채 멈췄다.
“또 무슨 이의입니까?”
진혁은 출품품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를 가리켰다.
“그 종이. 누가 제4안전로의 검수 표시를 잘라 냈습니까?”
제15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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