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시민기록청의 족보 보관실은 무척 좁았다.
밖에서는 온종일 마차가 지나고 궁성의 종이 울렸지만, 두꺼운 돌벽 안에는 종이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선반마다 이름을 기준으로 묶은 문서가 빽빽했고, 맨 위 칸에는 먼지가 쌓였다. 진혁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현재 기록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제가 여기까지 와야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네요.”
“가족이란 글자가 경매에 나왔으니까요.” 한서린이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가족의 모든 진실이 적혀 있지는 않아요. 신고된 관계와 변경된 날짜만 확인할 수 있죠.”
진혁은 기록의 맨 첫 줄을 읽었다. 출생을 확인한 담당자의 이름, 기록이 옮겨진 연도, 당시 거주지. 몇 장이 빠져 있었다. 빠진 기록을 누가 가져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서도원과 연결되는 부분은 없습니까?”
“없어요. 적어도 공식 명부에는요.”
아쉬움이 밀려왔다. 어제 수리소에서 들었던 ‘작은 등불’이라는 말은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이제 공식 기록은 그 따뜻함을 차갑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혁은 문서가 없다는 사실도 기록했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 채 넘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서린은 다른 묶음을 가져왔다. 왕립 등화관리국의 임시 보호 아동 등록부였다. 전쟁이나 던전 사고로 보호자가 확인되지 않은 아이들이 일시적으로 머물던 시설의 기록이었다. 오래된 종이에는 화재와 이사로 일부 문서가 소실됐다는 메모가 있었다.
그중 한 장에서 진혁의 눈이 멈췄다.
‘제4등불시설. 임시 보호 아동 한 명 이송. 인계자: 서도원. 인수자: 미상.’
“날짜가 열두 해 전이군요.” 카렌이 말했다.
“제 나이로 생각하면…”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실제 나이와 기록된 나이는 맞아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보호받은 아이는 수십 명이었고, 이름조차 적히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라일이 종이 가장자리를 살폈다. “이송 기록인데 아이의 이름이 없네요.”
“옛날 규정에서는 위험 상황에 한해 신원을 별도 봉투로 보관하기도 했어요.” 서린이 설명했다. “대신 봉투 번호가 있어야 합니다.”
그 번호가 적혀 있어야 할 곳은 뜯겨 있었다.
라일은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오므렸다. 이름을 빼앗긴 아이들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은 그 모습을 보고 화제를 바꿨다.
“원본 봉투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시민기록청의 이전 서고거나, 당시 시설이 쓰던 등불 보관 창고예요.”
서린은 봉투 번호가 뜯겨 나간 자리를 밝은 탁상등에 비춰 보았다. 종이의 섬유가 안쪽으로 눌린 모양을 보아 누군가 급히 잡아당긴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 뜯겼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는 종이 가장자리의 눌린 자국을 얇은 먹지로 떠서 기록에 붙였다.
“이건 증명서가 아니라 손상 기록입니다.” 서린이 말했다. “지금 확정할 수 있는 건 이 부분이 사라졌다는 사실뿐이에요.”
진혁은 답답하게 느꼈다. 문서 한 장을 얻을 때마다 누군가 그 절반을 가져가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서린이 그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적어도 출품자들이 당신을 마지막 생존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은 알게 됐죠. 가족 관계를 확인할 자료가 없는데 그런 말을 경매 광고에 넣었으니까요.”
그 말이 의외로 마음을 가볍게 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것과, 상대의 확신에 근거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서린이 안내한 옆방에는 임시 보호 아동의 물품을 보관하던 작은 철제함들이 있었다. 어떤 상자에는 헝겊 인형이 있었고, 어떤 상자에는 색이 바랜 모자가 있었다. 서류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흔적은 물건에 남아 있었다. 진혁은 함부로 손을 뻗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그 물건의 기억을 읽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원래 주인이 없는 데서 꺼내 볼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건보다 사람의 기록이 더 적군요.” 그가 말했다.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구하는 건 사람이잖아요. 그 뒤에 물건이나 장부를 챙기는데, 순서가 뒤집힐 때도 많죠.”
서린은 낡은 보관함 하나를 조심스럽게 닫았다. “사고 뒤에 남은 사람들의 일을 누가 이어 가느냐도 중요해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멘에서도, 남관역에서도 그랬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기록에 없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방문을 마친 일행은 기록청 앞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노점에서는 따뜻한 고기 파이를 팔았다. 세리아는 기록을 사본으로 정리해 협회의 인장과 함께 보관했다. 진혁은 빵을 씹다가 문득 물었다.
“사장님, 저는 정말 제 가족이 누군지 모를 수도 있는 겁니까?”
세리아는 서둘러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가까운 분수대의 물을 바라봤다.
“모를 수도 있지. 그렇다고 누가 네 과거를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전부 찾고 싶다면요?”
“찾으면 돼. 다만 네가 정한 속도로.”
그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점심 무렵 세리아는 진혁에게 경매 참여 보증금을 계산해 보자고 했다. 청동각의 규정에 따르면 경매 시작가의 일정 비율을 사전에 예치해야 했다. 단순히 자격을 얻는 데 필요한 금액만으로도 진혁의 몇 년 치 월급을 넘었다.
“이 정도면 가난한 사람은 물건을 보지도 못하겠군요.”
“그게 원래 의도일 때도 있어.” 세리아가 답했다. “하지만 보증금은 입찰 의사를 확인하는 수단일 뿐이지, 참가자의 진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야.”
진혁은 돈을 가진 사람들만 큰소리를 내는 장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직접 입찰하지 못한다면 정보를 검증할 수 있었다. 경매장으로서는 곤란한 일이지만, 어떤 물건이든 값보다 먼저 설명이 정확해야 했다.
“저 이번엔 입찰 안 할 겁니다.” 그가 말했다.
세리아가 눈썹을 들었다. “드디어 월급의 가치를 깨달았군.”
“아니요. 물건을 사는 사람이 되어 버리면 그들이 정한 게임에서만 싸워야 하잖아요. 전 감정사로 가겠습니다.”
카렌이 옆에서 짧게 웃었다. “평소보다 말이 멋있는데요.”
“기록해 두세요. 이런 말은 자주 못 합니다.”
라일이 손가락으로 가상의 장부를 펼쳤다. “151화 이래 처음으로 똑똑한 발언. 증인 세 명.”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긴장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 그는 계약서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청동각 앞에서 예상치 못한 소란이 벌어졌다. 특별 경매 출입증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몇몇은 계약서가 진품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은 가족 당사자라면 반드시 경매에 참여해야 한다고 외쳤다. 유력 상단의 직원들이 금화 보증금 상자를 나르느라 주변을 밀어내자 작은 상인이 계단 아래로 넘어졌다.
진혁은 먼저 그를 일으켰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상인의 손수레에서 작은 램프 세 개가 떨어져 깨졌다.
“이런, 오늘 장사 끝났네.” 상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혁은 깨진 유리 조각을 모아 길가로 치웠다. 유리 안에 있던 기름이 바닥으로 흘러 미끄러웠다. 그는 경비에게 모래를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얼마 뒤 사고를 낸 직원이 돌아와 램프값을 배상했다.
“작은 장사를 하는 사람한테는 이게 오늘 하루입니다.” 진혁이 말했다.
직원은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돈을 세어 주었다. 옆에서 보던 카렌은 진혁의 젖은 소매를 보고 말했다.
“누구를 도와주는 건 좋은데, 당신 손도 좀 챙겨요.”
그녀는 손수건으로 진혁의 손등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가 어색했다.
“이거 세탁비도 청구하실 겁니까?”
“좋아요. 은화 두 닢.”
“너무 비싼데요?”
“할인해 드릴 생각 없어요.”
둘의 말다툼을 보던 세리아가 멀리서 웃었다. 위험이 코앞에 있어도 이들이 평소처럼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때 청동각 계단 위에서 민도겸이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의 뒤에는 왕립정리위원회 대리인 에르딘이 서 있었다. 에르딘은 예전에 루멘의 독점 수신권을 요구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내일 경매에서는 전례 없는 보물의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민도겸이 말했다. “루멘 경매장 설립의 비밀을 밝힐 최초 계약서입니다.”
군중이 술렁였다. 어떤 사람은 ‘고대 괴수의 증서’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누군가는 계약서 한 장으로 마레온 항구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떠들었다.
에르딘이 한 걸음 나섰다.
“적법한 계약 상대가 확인될 경우, 낙찰자는 해당 계약의 집행권을 함께 취득할 수 있습니다.”
진혁은 얼굴이 굳었다. 출품 목록에는 없던 표현이었다. 사람의 의무를 함께 팔 수 있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세리아가 즉시 손을 들었다. “물건의 소유권과 계약의 집행권은 다릅니다. 공개적으로 근거를 밝혀 주시죠.”
민도겸은 미소를 유지했지만 에르딘은 불쾌한 얼굴이 되었다. “서류가 확인된 뒤에 논의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팔겠다고 광고할 일도 아니겠죠.” 세리아가 대꾸했다.
군중 속에서 웃음이 터졌다. 에르딘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하지만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 회색 장갑을 낀 수행원이 한 명 남았다.
그 수행원은 진혁의 손에 작은 종이를 쥐여 주었다. 카렌이 제지하기도 전에 남자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종이에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혼자 오십시오. 오늘 밤 북관의 네 번째 등불 아래.’
“이걸 믿을 수는 없겠죠.” 카렌이 말했다.
“네. 하지만 누군가 그 장소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알겠어요.”
진혁은 쪽지를 서류철에 넣었다. 예전 같으면 혼자서 진실을 확인하러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는 세리아와 서린, 카렌, 라일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떠올렸다.
“함께 가죠. 누가 혼자 오라고 했다고 꼭 혼자 갈 필요는 없으니까.”
라일은 씩 웃었다. “그 말, 마음에 드네요.”
저녁 무렵 왕도 북관의 등불들이 하나둘 켜졌다. 네 번째 등불만 아직 어두웠다. 길모퉁이에 선 진혁은 그 검은 불빛 아래에 누군가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회색 장갑을 끼지 않았다. 떨리는 손에 작은 등불을 들고 있었다.
“늦었구나.” 낮은 목소리가 말했다.
진혁은 그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다.
제15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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