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을 훔친 사람은 정면 출입구로 나가지 않았다.
카렌은 경매장 바깥 자갈길에 남은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두 걸음 만에 멈췄다. 갓 마른 진흙 위에는 네 종류의 신발 자국이 겹쳐 있었다. 마부의 넓은 장화, 장사꾼의 얇은 구두, 경매 직원의 미끄럼 방지 밑창, 그리고 아주 작은 발. 그중 어느 것이 도장을 들고 간 사람의 것인지 바로 구분할 수 없었다.
“무턱대고 뛰면 엉뚱한 사람만 붙잡겠군요.”
진혁은 라일을 돌아봤다. 그는 낙찰 영수증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더럽혀진 종이 뒷면에는 네 번째 홈이 퇴로를 가리킨다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너라면 어떻게 나갈래?”
“도둑 입장에서요?” 라일이 물었다. “제 선택지를 말하면 바로 체포하는 겁니까?”
“그럴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라일은 한동안 경매장 뒤편을 살폈다. 버려진 외양간과 겨울 채소를 파는 시장 사이에 하역용 길이 있었다. 표지판에는 ‘운송 조합 전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라면 사람들이 물건을 옮기는 길로 가겠어요. 사람들 눈은 손보다 큰 짐을 먼저 보거든요.”
카렌은 경매장 경비대장에게 하역장 봉쇄가 가능한지 물었다. 하지만 이미 장부에 등록된 수레들을 무작정 세울 수는 없었다. 화물을 기다리는 가게와 노동자에게 손해를 주기 때문이다. 대신 경비대장은 물건 도난 신고를 정식 접수하고 지난 한 시간의 하역 출입표를 확보해 주었다.
도난 신고를 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도장이 아직 낙찰자에게 인도되지 않았으므로 피해 당사자는 경매장이었다. 낙찰받은 남자는 입찰금 반환을 요구했고, 남건모는 인도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대금 청구를 보류했다. 진혁은 그 절차가 답답하면서도 왜 필요한지 이해했다. 물건 하나를 되찾겠다고 기록을 건너뛰면 결국 누가 무엇을 잃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라일이 목록을 훑다가 한 칸을 짚었다.
“이것 보세요. 출입패를 반납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어요.”
번호는 44번. 이름에는 ‘임시 하역 조수’라고만 적혀 있었다.
“이름이 없군.” 진혁이 말했다.
“그렇다고 모두 범인은 아니죠.” 카렌이 말했다. “임시 노동자의 신분 기록을 안 하는 곳은 왕도에도 많아요.”
세 사람은 하역장을 따라 걸었다. 포목 상자가 쌓인 골목에서는 젖은 천 냄새가 났고, 구운 밤을 파는 손수레에서는 달콤한 연기가 올라왔다. 왕도의 오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렀다. 사람이 많을수록 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길 중간에는 세관 검수용 무게저울이 놓여 있었다. 좁은 골목에 수레가 한꺼번에 몰리자 노새 한 마리가 놀라 뒷발을 구르며 화물 자루를 넘어뜨렸다. 갈색 밀가루가 먼지처럼 퍼졌고, 아이 둘이 재빨리 자루 아래로 들어가 떨어진 빵가루를 주워 담았다. 경비병은 통로를 열기 위해 사람들을 뒤로 물렸다.
“이 길을 누군가 서둘러 지나갔다면 눈에 띄었겠죠.” 카렌이 말했다.
진혁은 밀가루 자루 옆에 놓인 작은 목판을 살폈다. 그 목판은 화물 이동 시간을 적는 칸으로 가득했다. 열한 시 십분에 들어온 수레 한 대가 열한 시 사십분이 되어서야 나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 수레는 서른 분 동안 여기 있었네요.”
운송 감독은 어깨를 으쓱했다. “바퀴가 고장 나서요. 짐도 중간에 조금 내렸습니다.”
“누가 내려 줬습니까?”
“임시로 일하러 온 조수요. 어려 보이는 애 하나가 도와줬지.”
“몇 살쯤 됐죠?”
“열댓 살? 머리를 모자 아래 숨겨서 잘 모르겠네요.”
진혁은 감독에게 그 아이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임시직 조수들은 이름 대신 번호패로 불렸고, 잘못된 소문이 돌면 다음날 일을 얻지 못했다.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렌은 이 장면을 공책에 적었다. 젖은 돌과 밀가루 냄새, 막힌 수레, 이름 없는 조수. 누군가 작은 물건을 몰래 옮기기에는 지저분하고 위험한 곳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어수선함이 흔적을 감추는 데 이용됐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라일은 뒤돌아 밀가루를 주워 담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는 작은 빵 봉투 하나를 감독에게 맡겼다.
“저 아이들한테 전해 주세요. 대신 다쳤는지 먼저 봐 주시고요.”
진혁이 웃자 라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는 사람들 생각이 나서요. 그게 다예요.”
작은 발자국이 갑자기 골목 벽 앞에서 끝났다. 라일이 벽 아래의 돌을 살폈다. 한 장의 석판 모서리가 최근에 긁힌 듯 반짝이고 있었다.
“손잡이를 찾지 마세요.” 라일이 말했다. “이런 문은 손잡이가 있으면 오히려 들켜요.”
“그걸 어떻게 알아?”
“어릴 때 손잡이가 없는 문만 잔뜩 배웠거든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이름 없는 배달인으로 지냈던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진혁은 벽에 귀를 댔다. 멀리서 바퀴가 움직이는 소리와 지하 배수로의 물소리가 겹쳤다. 벽면에는 방향을 가리키는 네 줄의 흠이 있었다. 세 줄은 직선이고 네 번째만 아래로 꺾여 있었다. 도장의 가장자리에 새겨져 있던 홈과 모양이 같았다.
“아무래도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그러나 벽을 열려면 건물 관리인의 허가가 필요했다. 카렌은 경비대에 연락했고, 진혁은 길 건너 찻집에서 기다렸다. 눈앞에 단서가 있는데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라일은 창가에 앉아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바보 같죠. 이런 길을 알면서도 혼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예전 같으면 들어갔겠지?” 진혁이 물었다.
“네. 물건을 들고 나오는 방법까지 세 가지는 생각했을 겁니다.”
“지금은?”
라일은 손에 든 빈 잔을 돌렸다. “돌아왔을 때 같이 앉을 자리가 생겼으니, 그걸 잃고 싶지 않네요.”
진혁은 그 대답이 의외로 진지해서 장난을 치지 않았다.
관리인이 도착하기 전, 진혁은 오래된 골목 표지판을 하나 발견했다. 페인트가 여러 번 덧칠된 나무판 아래에는 ‘등화관리국 물자 반환로’라는 글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댔다.
[대상: 폐쇄 운송로 안내판.]
[현재 기능: 통행 안내 없음.]
[과거 용도: 사람과 물품의 분리 대피.]
“분리 대피?” 진혁이 중얼거렸다.
“그게 왜 이상하죠?” 카렌이 물었다.
“물건을 싣는 통로와 사람이 나가는 통로가 달랐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표시가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라일이 표지판 아래의 못 자국을 짚었다. “원래는 판이 두 개였겠군요. 오른쪽 것이 뜯겼어요.”
누군가 사람들이 지나갈 길을 일부러 보이지 않게 만들었는지, 단지 오래되어 부서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길의 용도를 알고 나자 그들이 찾는 도장이 왜 중요한지도 조금 분명해졌다. 네 번째 홈은 단순한 비밀 문을 여는 장치가 아닐 것이다. 위험한 시험에서 물건보다 먼저 사람을 내보내기 위한 표식일 가능성이 있었다.
카렌은 손을 내밀어 벽면의 차가운 돌을 만졌다. “누가 길을 막았든, 여기서 실제로 빠져나온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겠어요.”
“그래야죠.” 진혁이 말했다. “도둑의 발자국 하나보다 그 기록이 훨씬 중요할지도 모르니까.”
허가를 받은 관리인이 벽 아래 구멍에 쇠막대를 꽂자 석판이 천천히 들렸다. 낡은 지하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에서는 오래된 석회 가루가 떨어졌고, 계단 옆에는 푸른 이끼가 두껍게 붙어 있었다. 도난 사건의 추적은 작은 틈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지하에는 수십 년 전 물자를 옮기던 폐운송로가 있었다.
카렌은 먼저 가스 검출등을 내려보냈다. 불꽃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내려가자 돌벽 너머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누가 있어요.” 진혁이 속삭였다.
라일이 등불을 낮췄다. 폐운송로의 끝, 부서진 나무 상자 뒤에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머리에는 낡은 모자가 눌려 있었고, 팔에는 큰 가죽 가방을 끼고 있었다.
“도망가지 마.” 카렌이 말했다. “다친 데는 없어?”
아이는 날카롭게 고개를 들었다. 손목에는 새로 생긴 붉은 상처가 있었다.
“난 훔친 게 아니에요!”
진혁이 바닥에 무릎을 굽혔다. “아직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어. 이름이 뭐니?”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방의 끈을 더 꽉 붙잡았다.
“누가 보내서 여기 온 거야?”
“그 사람들이… 도장을 가지고 오면 빵하고 약을 준다고 했어요. 내가 오래된 길을 아니까.”
라일의 얼굴이 굳었다. 자기가 어릴 적 들었던 말과 너무 비슷했다.
“약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야?”
아이는 입술을 떨었다. “동생이요. 열이 계속 나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돈을 안 줬어요. 대신 내 이름을 쓰라고 했어요.”
진혁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구리 도장 하나를 위해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었다.
“도장은 어디 있지?” 카렌이 물었다.
아이는 가방을 열어 보였다. 안에는 도장 대신 부러진 나무 손잡이만 있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가져갔어요. 검은 장갑을 낀 여자였어요.”
“어느 쪽으로 갔어?”
아이는 폐운송로 안쪽의 갈림길을 가리켰다. 한쪽에는 빠르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 철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카렌은 곧장 추격하고 싶었지만 아이의 숨이 가빴다.
진혁은 라일에게 잠시 옆으로 와 달라고 했다.
“네가 아이와 같이 있어 줄래? 경비가 데려갈 때까지.”
“당신은요?”
“카렌과 함께 저 길을 확인해 볼게.”
라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오래된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아이를 남겨 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손바닥을 펴서 아이에게 빈손을 보여 주었다.
“걱정하지 마. 오늘은 누구도 네 이름을 가져가지 못하게 할 거야.”
아이가 작게 울기 시작했다. 지하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 울음은 오래 울렸다.
진혁과 카렌은 철문 쪽으로 걸었다. 복도 벽에는 등불을 수리하는 방법을 설명한 작은 그림들이 남아 있었다. 닳은 글씨 아래에 같은 문구가 되풀이되었다.
‘네 번째 길은 사람을 위해 남겨 둔다.’
카렌은 등불을 높이 들었다. 멀리 철문 아래로 밝은 빛 한 줄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 아직 안에 있어요.”
그 순간 진혁의 손바닥에 문장이 떠올랐다.
[감정 대상: 폐운송로의 비상문.]
[본래 기능: 인원 탈출.]
[현재 상태: 외부에서 잠금 시도 중.]
문 너머에서 낮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군요, 서진혁 감정사.”
그 여자는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제15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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