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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53화
PAYLUA ORIGINAL · 제153화

153화. 은화 세 닢짜리 증명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138자

오프라인 책장
왕도 남쪽의 압류품 경매장은 새벽부터 시끄러웠다. 철문 옆에는 당일 거래 가능한 물건을 적은 큰 목판이 걸려 있었다. 판에는 빚을 갚지 못한 상인이 남긴 공구, 세관 창고에서 유통 기한이 지난 약재, 수리업자가 되찾아 가지 않은 시계 부품 같은 물건이 촘촘하게 적혔다. 귀족의 보석을 다루는 청동각과 달리 이곳에서는 흥정하는 목소리가 계산기 구슬 소리보다 컸다. 서진혁은 목판 아래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도장은 단독 품목으로 안 올라오는데요.” 한서린이 출품 목록을 가리켰다. “원래는 수리공 작업대와 묶여 있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특정 부품만 분리해서 출품 신청을 했습니다.” “분리 신청자가 누군지는요?” “왕립정리위원회입니다.” 카렌이 혀를 찼다. “이쯤 되면 그 위원회 사람들은 세상 모든 낡은 물건을 창고에 모으는 취미가 있는 것 같네요.” 라일은 창고 옆에서 구운 콩을 담은 종이봉투를 흔들었다. “아무도 사지 않으면 제가 사겠습니다. 도장은 쓸 곳이 많으니까요.” “위조에는 못 씁니다.” 카렌이 잘랐다. “전 편지 봉투에 찍는다는 뜻이었습니다.” “네 편지에는 서명이 없어?” 라일은 갑자기 콩을 세는 사람처럼 눈을 내렸다. 진혁은 웃고 말았다. 긴장된 날 아침에도 이런 말다툼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되었다. 경매 담당자 남건모는 장작 냄새가 밴 낡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진혁의 감정사 자격증을 살핀 뒤 직접 임시 검수대를 마련해 주었다. 도장 하나를 보기 위해 온 외부 감정사가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부러진 구리 도장을 감정하겠다고요? 그냥 수리해서 쓰면 되지 않습니까?” “어떤 수리인지가 중요합니다.” 진혁이 말했다. 도장은 손바닥보다 작은 납작한 구리판이었다. 윗면에는 둥근 손잡이의 자국만 남았고, 아랫면에는 희미한 문양이 패여 있었다. 판 가장자리의 네 군데에는 각기 다른 깊이의 홈이 있었다. 진혁은 감정대의 가죽 매트 위에 도장을 놓고 장갑을 벗었다. 손가락을 댄 순간 손바닥에 익숙한 차가움이 번졌다. [물품: 네 방향 기록 도장.] [실사용: 설비 점검 완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보조 표시.] [잔류 기억: 심실 통로의 출입 기록과 함께 사용됨.] [숨겨진 조건: 네 홈이 일치하지 않으면 원본과 사본을 구분할 수 없음.] 진혁은 손을 뗐다. 뚜렷한 답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도장이 무엇을 인증하는지, 누가 찍었는지는 별도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홈 네 개가 단순히 깨진 흔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잉크를 묻혀 눌러 보자는 라일의 제안을 말렸다. 기록 유물에 현대 잉크를 묻히면 표면의 잔류 흔적을 훼손할 수도 있었다. “먼저 압흔을 뜹시다.” 서린이 얇은 부직포와 무독성 밀랍을 가져왔다. 남건모가 입회하고 카렌이 작업 시각을 적었다. 도장을 접촉시키지 않은 종이 위에서 측면 조명을 비추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선들이 드러났다. 원형 문양 바깥으로 네 개의 짧은 선이 불규칙하게 뻗어 있었다. “서명을 복사하는 도장이 아니군요.” 서린이 말했다. “정확한 결합 상태를 표시하는 공정 도장이에요.” “그렇다면 기술 장부와 대조해야죠.” 남건모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열람 시간이 끝났습니다. 경매에 참여하시려면 먼저 등록하세요.”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분명 창밖에는 아직 오전 빛이 비치고 있었다. “정오까지라고 들었는데요.” “새 공문이 내려왔어요. 검수 종료 시각을 앞당기라고.” 담당자의 손에는 방금 도착한 듯한 푸른 봉투가 들려 있었다. 붉은 두 가닥 선이 찍혀 있었다. 세리아는 봉투를 받아 내용을 확인하더니, 남건모에게 차분히 물었다. “공문 발송 시각이 언제죠?” “오늘 오전 아홉 시입니다.” “그런데 감정 종료 시각은 오전 여덟 시로 변경돼 있네요.” 남건모가 눈을 크게 떴다. 자기 자신도 모순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서류가 늦게 왔다고 시간을 거슬러 적용할 수는 없죠.” 세리아가 말했다. “경매장이 자기 규정을 스스로 어기면 입찰 결과도 문제가 됩니다.” 담당자는 공문을 창고 관리인에게 넘겼다. 잠시 논의한 뒤 기존 일정대로 검수를 허용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줄이려 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시도는 효력이 없어졌다. 검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진혁은 작업대를 여러 각도에서 기록했다. 옆 판자에는 오래된 톱날이 부딪친 흠집과 깊이가 일정한 연필선이 남아 있었다. 서린은 그 선을 자로 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두 손가락 폭씩 정확하게 나뉘어 있네요. 물건을 재는 작업대였던 모양이에요.” 진혁은 네 방향 홈 아래에 있는 작은 쇠받침을 살폈다. 받침은 서랍을 고정하는 장식처럼 보였지만, 손으로 누르자 조금 움직였다. 정해진 방향으로만 밀 수 있는 안전핀에 가까웠다. 그는 분리하지 않고 사진에 위치를 남겼다. “소유 기록을 확인하기 전에는 손대지 마요.” 카렌이 말했다. “알아요. 제 손이 요즘 말을 잘 듣습니다.” 라일이 못 믿겠다는 듯 기침했다. 진혁은 그에게 팔꿈치를 쿡 찔렀다. 그동안 옆 검수대에서는 대장장이 둘이 녹슨 물레바퀴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다시 쓸 수 있다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은 강도가 부족해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남건모는 말을 듣고 물레바퀴를 오늘의 판매 목록에서 제외했다. 경매장은 물건을 팔아야 돈을 벌지만, 위험을 감추고 판 물건은 결국 더 큰 손해를 부른다. 진혁은 그 장면을 유심히 보았다. 마레온에서도 같은 원칙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장과 작업대가 원래 한 벌이었다면 도장만 유독 비싸게 사려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부품이 본체인지 알면, 가장 비싼 물건을 사지 않고도 같은 사실을 검증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정오가 되자 경매장 앞 작은 종이 울렸다. 수십 명의 손님이 장화에 묻은 흙을 털며 천막 아래로 모였다. 남건모는 수리용 톱, 고철 못, 낡은 촛대 순서로 물건을 내놓았다. 값싼 경매에는 값비싼 경매와 다른 긴장감이 있었다. 은화 하나를 더 쓰는 것은 어느 공방에서는 한 주의 장작값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도장이 등장했을 때 첫 호가는 은화 세 닢이었다. “세 닢! 어딘가에서 쓰던 도장이요. 수리할 수 있으면 잘 쓰고, 아니면 구릿값은 나옵니다!” 진혁이 손을 들었다. “세 닢.” 뒤쪽에서 낯선 남자가 곧바로 손을 들었다.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턱에는 새 면도 자국이 남은 사람이었다. “다섯 닢.” 진혁은 천막 뒤의 그림자를 살폈다. 남자의 신발은 평범한 노동자의 것이 아니었다. 얇은 밑창에 매끈한 송아지 가죽을 덧댄 고급 구두였다. 햇빛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태도도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여섯 닢.” “열 닢.” 남건모가 낙찰 망치를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구리 도장에 은화 열 닢을 쓰는 것은 작은 공방의 도구 세트 값과 비슷했다. 카렌이 진혁의 팔꿈치를 가볍게 쳤다. “예산이 얼마까지죠?” “제 개인 돈으로는 열두 닢까지요.” “경매장 돈은 쓰지 마세요.” “압니다.” 진혁은 열한 닢을 불렀다. 상대는 곧장 열다섯 닢을 제시했다. 천막 안의 공기가 변했다. 방금 전까지 웃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 낡은 도장을 두고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라일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렇게까지 사려는 이유가 있군요.” “물건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걸 막으려는 걸 수도 있어요.” 진혁은 손을 내렸다. 남건모가 놀란 듯 물었다. “더 없습니까? 열다섯 닢!” 망치가 내려갔다. 진혁은 도장을 놓쳤다. 카렌이 그를 돌아봤다. “이렇게 끝나요?” “사려고 온 건 맞는데, 입찰에 취해서 손해 볼 이유는 없잖아요.” 낙찰자가 돈을 내는 동안 진혁은 경매 규정의 작은 조항을 확인했다. 압류품 분할 출품은 원 소유자 혹은 채권자의 승인 기록이 남아 있어야 했다. 도장이 혼자 떨어져 나왔다는 것은 그것이 붙어 있던 작업대의 기록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도장이 아니라 작업대를 보러 가야겠어요.” 남건모는 진혁의 요청에 창고 폐품 구역을 안내했다. 판재가 부러진 작업대는 밧줄로 묶인 채 벽에 세워져 있었다. 표면에는 오래된 흠집이 많았지만 한쪽 다리에는 작은 홈 네 개가 남아 있었다. 진혁은 그 홈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도장의 가장자리와 같은 간격이었다. 작업대에는 도장 머리를 끼워 보관하는 전용 자리였던 것이다. [작업대: 설비 점검용 휴대 감정대.] [숨겨진 기능: 네 방향 기록 도장의 압흔을 비교하는 받침대.] 그는 더 깊이 감정하려다가 손을 뗐다. 능력이 알려 주지 않는 것, 즉 이 장비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할 증거가 필요했다. 작업대 뒤쪽의 서랍은 비어 있었다. 다만 손잡이 아래에 수리공이 쓰던 낡은 종이 꼬리표가 걸려 있었다. 글씨가 흐릿해 일부는 읽을 수 없었다. ‘수선 담당: 서…원.’ 진혁의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의 기억 속 어른과 같은 성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실만으로 가족의 물건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사진을 남겨 주세요.” 그가 서린에게 말했다. “그리고 원 소유 기록을 확인합시다.” 그 순간 천막 밖에서 짧은 비명이 났다. 도장을 낙찰받았던 남자가 보증금 영수증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달아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도장이 없었다. 누군가 낙찰 직후 물건을 빼앗아 간 모양이었다. 카렌은 즉시 바깥으로 뛰어갔다. 라일도 몸을 돌렸지만 진혁은 그를 붙잡았다. “당장 쫓지 마. 먼저 물건이 누구에게 인도됐는지 확인해야 해.” 라일이 이를 악물었다. “도둑이 누군지 알 수 있는데도요?” “네가 먼저 뛰면 다들 너부터 의심할 거야.” 라일은 한순간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남건모가 반환 기록을 들고 나왔다. 아직 낙찰 인도 서명이 없었다. 그런데 봉인함 안에 있어야 할 도장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진혁은 빈 함을 내려다봤다. 자신이 놓친 것은 구리 도장 한 개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가져가기 위해 작은 경매장에서 소란까지 만들었다. 바깥에서 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혁! 이쪽에 와 봐요!” 그는 서둘러 문을 나섰다. 겨울 햇살 아래, 낙찰자가 떨어뜨린 영수증 뒷면에는 누군가 급히 쓴 문장이 있었다. ‘도장의 네 번째 홈은 서명이 아니라 사람의 퇴로를 가리킨다.’ 진혁은 종이를 오래 내려다봤다. 어쩌면 자신의 가족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계약에 묶어 두기 위해 고용된 것이 아니라, 그 계약에서 빠져나올 길을 만들던 사람들이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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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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