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온에서 왕도 에르반으로 향하는 아침 우편열차는 생선 냄새가 났다.
간밤에 부두에서 실은 소금에 절인 청어 상자가 화물칸 앞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역무원은 냄새가 객차로 넘어오지 않도록 칸막이를 세웠지만, 찬바람이 들 때마다 짭짤하고 비릿한 공기가 사람들의 코끝을 건드렸다. 서진혁은 창가에 앉아 같은 공고문을 여섯 번째 읽었다. 접힌 자리는 벌써 하얗게 해어졌다.
‘루멘 경매장 설립 이전의 첫 번째 계약서. 시작가 금화 일만 닢. 계약 상대: 서진혁의 가족.’
다시 읽어도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종이에 일만 금화라니.” 진혁이 중얼거렸다. “이런 종이로 벽지를 바르면 왕궁도 몇 장 못 바르겠네요.”
맞은편의 카렌은 웃지 않았다. 지난밤 루멘의 외부 회신선을 차단할 때 입었던 검은 작업복 대신 여행용 외투를 걸쳤고, 아버지 레온의 검을 무릎 위에 눕혀 두었다. 손가락은 검집의 낡은 매듭을 천천히 더듬었다.
“우리가 모르는 계약 상대가 꼭 당신 친척이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렇죠.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는데요. 그런데 출품 목록에는 굳이 제 이름이 적혀 있어요.”
그는 얇은 공고문을 거꾸로 돌려 햇빛에 비춰 보았다. 여백에는 붉은 실선 두 가닥이 겹쳐 있었다. 왕도 중앙 비축고의 잘못된 수취 기록에서 보았던 표시였다. 위험하다고만 느끼던 부호가 이제는 눈에 익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세리아는 통로 쪽에서 차표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면 부족이 선명했지만, 손에는 깔끔한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여느 때처럼 무슨 일을 하든 우선 장부부터 챙기는 사람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는 이유가 하나 있어.” 세리아가 말했다.
“설마 사장님이 일만 금화를 가지고 계십니까?”
“없어.”
“그럼 왜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돈이 없으면 낙찰받을 일도 없으니까.”
진혁은 심각한 얼굴로 창밖을 봤다. 카렌이 그제야 작게 웃었다. 세리아는 맞은편에 앉으며 서류철을 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계약서가 진품이고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인지부터 따져야 해. 최초 계약서라면 원래 보관 주체가 있어야 하지. 경매에 나오기 전에 그 경로부터 확인하는 거야.”
“가족이 계약 당사자였다면요?”
“그때는 더 신중해야지. 가족이라는 말 하나로 네가 책임을 떠안을 이유는 없어.”
열차가 강을 건넜다. 철교 아래에는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불어난 물이 탁하게 흐르고, 양쪽 들판에는 봄을 준비하는 농부들이 깊은 도랑을 파고 있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누구나 자신의 하루를 살고 있었다. 진혁은 그 평범한 풍경에 눈을 오래 두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낡은 부엌에서 식어 가던 보리죽, 비가 오면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차가운 바람, 고장 난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가르치던 어른의 목소리. 기억은 남아 있었지만, 그 기억을 계약서의 날짜와 잇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어떤 물건은 알고 싶지 않은 값을 가지고 있군요.”
진혁이 말하자 세리아는 서류를 덮었다.
“그래도 봐야 할 때가 있어.”
오후가 되자 왕도는 여전히 번잡했다. 에르반 동문 앞에는 수레가 두 줄로 섰고, 흰 분필을 든 세관원들이 상자에 통관 번호를 쓰고 있었다. 염료 냄새가 밴 천을 실은 마차와 온실에서 길러 낸 붉은 꽃을 가득 실은 수레가 서로 길을 양보하지 않아, 마부들이 고함을 주고받았다.
평소의 진혁이라면 궁성 뒤쪽 노점에서 파는 설탕 견과의 가격부터 비교했을 것이다. 오늘은 거리 모퉁이마다 붙은 경매 광고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검은 바탕에 금박을 입힌 종이였다.
‘왕도 청동각 특별 경매. 세상의 시작을 소장하십시오.’
그 아래에는 계약서의 그림 대신 한 가닥의 흰 실이 인쇄되어 있었다. 서명이 없는 서류를 신비롭게 보이게 하는 흔한 광고 수법이었다. 그러나 진혁은 실의 끝이 똑바로 끊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알아봤다. 네 가닥으로 갈라진 끝. 이전 심실 기록에서 네 번째 응답을 감춘 장치에 새겨져 있던 표식과 비슷했다.
“청동각이라.” 라일이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는 열차 객차에 없던 사람이었다. 화물칸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했지만 세리아는 묻지 않았다. 굳이 범죄의 구체적인 방법을 들을 필요가 없어서였다.
“왕도에서 가장 자존심 센 경매장이죠.” 라일이 말했다. “출입구 바닥에 금박을 깔아 놓고 손님 신발이 더럽다고 투덜대는 곳.”
“네가 거기 가 본 적이 있구나.” 카렌이 물었다.
“내 신발이 더럽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어떻게 나왔어?”
“사과하고요.”
세리아가 눈썹을 들자 라일이 덧붙였다. “그날은요.”
그 전에 네 사람은 왕도 서류상 거리라고 불리는 골목을 거쳤다. 양쪽 길에는 인장 제작소, 계약 대필소, 공증인 사무실이 좁게 붙어 있었다. 잉크를 끓이는 냄새가 식당의 양파 볶는 냄새와 뒤섞였고, 문마다 ‘승계 상담’, ‘보증서 작성’, ‘분실 증서 복구’라는 글씨가 빼곡했다. 왕도에 사는 사람들은 계약서 없이 빵 한 덩이도 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한 가게 앞에서 중년 부부가 싸우고 있었다. 남자는 계약서의 도장 모양이 다르다고 주장했고 여자는 가게 측에서 종이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젊은 대필인은 양쪽의 목소리를 듣다 지친 얼굴로 책상 위에 두 장의 문서를 펼쳤다. 같은 내용이 적힌 종이였지만 하나는 가장자리에 붉은 점이 있고 다른 것은 없었다.
진혁은 무심코 걸음을 멈췄다. 작은 점 하나가 원본과 사본을 구별하는 표식이라는 걸 알아봤다. 하지만 참견하듯 말을 보태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물건의 숨겨진 흔적을 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다툼을 즉시 해결할 권한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가게 밖의 안내판에 ‘공인 비교 절차 무료 안내’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부부에게 그쪽 창구를 가리켰다.
“왜 직접 감정해 주지 않았어요?” 카렌이 물었다.
“이름도 모르는 두 사람의 서류인데 제가 마음대로 판정하면 안 되죠. 양쪽이 합의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에요.”
카렌은 잠시 진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조금 달랐을 것 같은데.”
“예전에는 뭘 모르는지도 몰랐죠.”
라일이 그 대화를 듣고 낄낄거렸다. “진혁 씨가 이제 착한 말을 할 때마다 제 배가 고파지는데요. 오늘 점심은 누가 사나요?”
세리아가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 전에 청동각에 도착하면 내가 살게.”
라일은 즉시 앞장섰다. “역시 사장님이 최고예요.”
진혁은 웃다가 문득 계약 대필소의 진열대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주름진 손으로 쓴 오래된 서명들이 한 장씩 유리 아래 놓여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종이 위에 자신의 선택을 남기기 위해 이런 곳을 오갔을 것이다. 지금 그에게는 서명 한 줄이 생명을 구하거나 삶을 빼앗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는 주머니 속 공고문을 다시 눌러 접었다. 일만 금화가 적힌 계약서의 진짜 가치를 알려면 글씨뿐 아니라 그 서류가 지나온 사람의 손까지 추적해야 했다.
청동각은 궁성 동쪽 고급 상점가의 끝에 있었다. 회색 대리석 계단은 넓고 낮았고, 두 마리 청동 사자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경매장 안쪽에서는 향나무를 태우는 냄새와 은은한 현악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루멘의 벽에 밴 바닷물과 기계 기름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접수원은 진혁의 허름한 여행 가방을 보고 미간을 아주 조금 찌푸렸다.
“일반 관람 접수는 오른쪽입니다. 이번 특별 경매에는 보증금 규정이 있습니다.”
“출품 정보의 열람을 신청하러 왔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그녀가 루멘 경매장 대표 인장을 내밀자 접수원의 목소리가 곧바로 한 옥타브 부드러워졌다.
“원본 열람은 청동각 감정 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으셔야 합니다.”
“승인 신청서와 거절 사유 기재란까지 주세요.”
서류를 요구받은 접수원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진혁은 옆에서 감탄했다.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데 반드시 마법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대기실 벽에는 낙찰 예정품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열쇠 없는 상자, 유리 안에 떠 있는 모래시계, 왕실 수리공의 손망치. 마지막 진열대에는 낡은 서류 봉투를 본뜬 은제 모형이 있었다. 진혁이 가까이 가자 손바닥에 문장이 나타났다.
[감정 대상: 은제 모형 봉투.]
[가치: 장식품.]
[위험: 없음.]
[관련 정보: 진품과 접촉한 적 없음.]
진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전시의 중심에 놓인 장식품조차 원본을 본 적 없는 복제품이었다. 그만큼 진짜 계약서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사자 가족이라고 해도 원본을 볼 수 없단 말입니까?” 그가 접수원에게 물었다.
“가족 관계는 저희가 판단하지 않습니다. 등록된 출품 사실만 안내합니다.”
“그럼 누가 출품했는지는요?”
“비공개입니다.”
“원래 계약 상대가 누군지는요?”
“비공개입니다.”
“한 번만 더 물어볼게요. 공개된 건 뭐죠?”
접수원은 금박 광고지를 가리켰다. “시작가와 행사 날짜입니다.”
라일이 뒤에서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대단하네요. 경매장이 가장 값비싸게 파는 게 비밀이라니.”
그때 안쪽 문이 열렸다. 고급 비단 조끼를 입은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금테 안경 아래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세리아보다 먼저 진혁을 바라봤다.
“서진혁 감정사.”
진혁의 등골이 굳었다. 상대가 자신의 얼굴을 안다는 것은 이미 조사를 했다는 뜻이었다.
“청동각의 총괄 감정관, 민도겸입니다.” 남자가 말했다. “당신이 직접 오시리라 믿었습니다.”
“계약서 때문에요?”
“물론입니다. 다만 가족의 일을 경매장 바닥에서 논의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그는 얇은 봉투를 건넸다. 겉면에는 도장 하나가 찍혀 있었다. 동화 두 닢짜리 구리 반지에서 시작되어 수없이 보았던 열쇠 구멍 모양이었다.
“원본을 보고 싶다면 우선 자격을 증명하십시오.”
“무슨 자격이죠?”
“계약 상대 가족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자격입니다.”
복도 끝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했다.
진혁은 봉투를 열지 않았다. 열기 전에 봉인 상태부터 눈으로 확인했다. 그동안 배운 습관이었다.
“민 감정관님.” 그가 조용히 말했다. “저희 집에서 누가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는지, 당신은 어떻게 압니까?”
민도겸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
그날 처음으로, 진혁은 경매장의 밝은 조명 아래서 누군가 자신에게 값을 매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15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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