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 경매장의 심실이 경매품으로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심실을 팔겠다고 신청했지만, 그 신청서가 대문 밖에 도착하자마자 반려되었다. 출품자는 왕립정리위원회 대리인 에르딘이었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보낼 때마다 종이 가장자리를 금실로 장식했고, 서명은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도록 한가운데에 크게 적었다. 이번 신청서에도 반짝이는 인장이 세 개 찍혀 있었다.
‘루멘 구형 공동설비 운용권, 99년간 독점 사용. 공개 경쟁 입찰 요청.’
“이거 경매장 임대 광고입니까?” 진혁이 물었다.
세리아는 신청서를 탁자에 올려놓고 한참 웃지 않았다. “장소를 빌려 달라는 사람은 많아. 하지만 자기 소유가 아닌 시설의 사용권을 남의 경매장에 출품하는 사람은 처음이네.”
벨라는 밑줄을 그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동설비’가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냉각 수로인지, 임대 부지인지, 아니면 심실 자체인지.”
카렌은 계약서의 작은 글씨를 살폈다. “운용권이라는 표현은 조심해야 해요. 장비를 관리할 권한과 사람의 동의를 대신할 권리는 전혀 다르니까요.”
에르딘은 같은 날 왕도 항만위원회에 별도 신청서를 제출했다. 루멘이 긴급 점검 때문에 일부 구역을 폐쇄한 것을 근거로 ‘공공시설의 관리 부실’을 주장했다. 만약 긴급 사용권이 승인되면 왕도에서 보낸 시설팀이 심실의 수로를 직접 운영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정식 절차처럼 보였지만, 정작 시민들을 위한 안전 대책은 두 쪽 분량의 형식적인 문장에 불과했다.
오렐은 자료를 읽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쪽은 냉각 수로의 압력보다 물량만 계산했군요. 갑자기 유량을 높이면 껍질의 빈 공간이 뒤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기술 검토를 했을 리가 없어요.”
“그래도 돈을 많이 주겠다는 사람은 있겠죠?” 라일이 말했다.
“그래서 더 위험하죠.” 진혁이 답했다.
항만위원회의 공개 심사는 나흘 뒤였다. 그동안 루멘은 관리권을 입증하고 대체 운영 계획을 제출해야 했다. 세리아는 감정사와 시설팀을 회의실로 불렀다. 지도 위에는 주요 냉각 수로, 옛 배수구, 제2심실로 추정되는 구역이 서로 다른 색으로 표시됐다. 그녀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차근차근 설명했다. 건물을 처음 산 사람들은 외벽과 지상의 창고를 샀다. 오래된 바위 아래의 무엇을 샀는지 기록한 서류는 없었다. 세리아가 루멘을 인수한 뒤에도 심실 자체의 소유권은 별도로 확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장님도 심실을 소유한 게 아닐 수 있네요.” 진혁이 말했다.
“맞아. 내가 관리자로서 책임을 질 수는 있어도 무엇이든 팔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그 말은 모두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세리아는 지금까지 경매장의 주인으로 행동했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진혁은 그녀가 평소보다 작아 보였다. 동시에 조금 더 믿음직해 보이기도 했다.
심사 준비에서 예상하지 못한 반대는 경매장 바깥에서 나왔다. 루멘 북쪽 골목에는 수십 년째 영업하는 작은 식당이 있었다. 그곳 주인 에다 아주머니는 경매장 직원들이 야근할 때마다 국을 끓여 보내 주었다. 그녀는 어느 날 도시 관리인들이 가게 앞에 금지 표식을 붙였다고 화를 내며 찾아왔다.
“무슨 위험 구역이라는 거야? 경매장 수로가 우리 가게 밑으로 지나간대. 그러면 이 집을 비우라는 거니?”
오렐은 현장을 확인했다. 식당 바닥 아래에는 왕도에서 파견한 시설팀이 지도에 표시한 큰 배수관이 없었다. 대신 오래된 좁은 빗물길 하나가 존재했다. 기록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지만, 도면의 축척이 달라 실생활에 영향이 없는 부분까지 위험 구역으로 칠해 놓은 것이었다.
“표시를 바로잡아야겠어요.” 오렐이 말했다. “불필요하게 가게를 닫게 하는 건 안전 조치가 아니라 피해입니다.”
에다 아주머니는 손목을 걷어붙이고 대꾸했다. “그럼 우리도 경매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거야? 밥값만 받고 살던 사람이지만 가게 밑 지형만큼은 내가 잘 알지.”
그녀는 어릴 때부터 물이 찼던 골목과 한 번도 젖지 않았던 계단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곧 기술 자료를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조사할 장소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됐다. 진혁은 사람들이 사는 곳의 지형이 지도 한 장보다 복잡하다는 걸 알았다.
조사가 끝난 저녁 에다는 모두를 식당에 불러 따뜻한 국을 내왔다. 카렌은 큰 그릇의 국을 말없이 비웠고, 라일은 빵을 네 조각이나 집어 먹었다. 진혁은 계산서를 보고 반쯤 감동했다.
“이만큼 먹고도 이렇게 쌉니까?”
“너희는 맨날 비싼 것만 생각하나 봐. 국값이 착하면 그냥 먹으면 되지.”
진혁은 웃으며 돈을 냈다. 바깥에서는 일몰을 알리는 작은 종이 울리고 있었다. 심실의 회신 기한이 또 하루 줄어든 셈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만큼은 따뜻한 음식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오래 남았다.
식당을 나서던 세리아는 경매장 앞에 붙은 경고문을 보았다. ‘왕립정리위원회의 관리 신청 접수. 주민의 안전을 위한 점검 예정.’ 정중한 문장이었지만 그 뒤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설명한 내용은 없었다. 세리아는 경고문을 떼어 버리지 않았다. 대신 주민들에게 읽기 쉬운 설명서를 따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심사에 필요한 기술 자료를 모으는 동안 루멘은 정상 영업을 계속했다. 오히려 손님이 늘었다. ‘왕실이 사려는 비밀 설비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유물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귀족은 손바닥만 한 보석에 왕도의 운용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며 높은 가격을 요구했다. 진혁이 감정한 결과 그것은 평범한 광산 경계석이었다. 귀족은 얼굴을 붉혔지만 낮아진 값을 받아들였다.
반면 한 늙은 선박 기술자가 낡은 연동 레버를 맡겼다. 스프링이 끊어져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진혁의 손바닥에는 다른 설명이 나타났다.
[수동 우회 레버.]
[기능: 한쪽 수로를 분리하는 동안 다른 쪽 흐름을 유지.]
[분리 압력 허용량: 소형 펌프 수준.]
[주의: 대형 심실에는 단독 사용 금지.]
진혁은 노인에게 사용 기록을 물었다. 노인은 젊은 시절 루멘 경매장 동쪽 부두에 설치했던 물건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작업자들이 급히 대피해야 할 때만 사용했고, 여러 대를 연결해 배수구를 우회했다고 했다. 진혁은 정식 감정서를 작성해 주고, 노인의 허락을 받아 도르와 함께 실물 도면을 복사했다.
“큰 돈은 안 되겠네.” 노인이 아쉬워했다.
“반대로 이런 물건을 찾는 사람은 있습니다. 수리 업체에 기능을 공개하고 견적을 받아 보시죠.”
노인은 감정서를 품에 넣고 돌아갔다. 진혁은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시장에서 찾는 숨겨진 가치는 언제나 돈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래된 도구 하나가 누군가의 안전을 지킬 수도 있었다.
그날의 감정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기술 보고서만 제출하면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경매장 측이 먼저 주민 대피 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도르는 임시 대피로를 넓히려면 북쪽 창고의 물품 일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벨라는 그 비용을 계산해 한숨을 쉬었다.
“돈이 든다는 이유로 대피로를 막아 둘 순 없죠.” 진혁이 말했다.
“맞아요.” 벨라는 장부에 새로운 항목을 적었다. “하지만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다음 달 임금까지 계산하지 않고 지출하면 더 많은 사람이 곤란해지니까요.”
그녀는 정식 경매에서 나온 수수료와 시설 안전 기금의 잔액을 비교했다. 진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쪽에서는 금화 수백 닢의 독점 운용권을 놓고 싸우는데, 다른 쪽에서는 동화 몇십 닢을 아끼려고 무거운 상자를 직접 옮기고 있었다.
세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게 우리 경매장이야. 세상을 다루는 일과 바닥을 닦는 일이 같은 건물에서 이루어지지.”
진혁은 입을 닫았다. 자신이 대단한 유물의 비밀을 알아냈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청소를 멈추는 건 아니었다. 당장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은 위험한 물건을 판촉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가 계속될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회의가 끝나자 세리아는 모든 참석자의 권한을 따로 확인했다. 오늘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안전 조치와 조사 계획이었다. 심실의 소유권이나 내부 응답의 의미를 확정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적어도 오늘은 그 선을 지키기로 했다.
심사 전날 저녁, 에르딘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는 마차를 타고 오지 않았다. 뒤뜰의 작은 출입문으로 들어와 진혁에게만 만남을 요청했다. 진혁은 카렌과 벨라가 있는 공개 응접실을 제안했다. 에르딘은 아주 잠깐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웃었다.
“감정사님이 가진 종시계와 보조축, 둘을 적당한 가격에 사겠습니다. 시장가의 열 배면 어떻습니까?”
“둘 다 조사 중인 물건입니다. 마음대로 팔 수 없어요.”
“그럼 보관권만 넘기십시오. 제가 증거가 사라지지 않도록 잘 지키겠습니다.”
라일이 뒤에서 피식 웃었다. “도둑이 보관을 부탁한다면 저는 제일 먼저 도망갈 텐데.”
에르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불필요한 농담은 거래를 어렵게 합니다.”
“필요한 농담은 거래를 막아 주기도 하죠.” 진혁이 말했다.
에르딘은 마지막으로 진혁의 시선이 자꾸 종시계에 머무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경매장 중앙홀의 낡은 시계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새 장치가 나오면 옛 장치는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도시가 발전하는 방법이지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버리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봤습니다.” 진혁이 답했다.
“그래서 제가 설명하려고 온 겁니다. 돈으로요.”
“돈은 값을 알려 줄 수 있어도 물건의 쓰임까지 설명하진 못합니다.”
에르딘은 미소 지은 채 물러섰다. 진혁은 그가 자신을 설득하려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에 마음을 바꾸는지 확인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매사의 눈에는 그런 차이가 꽤 중요했다.
에르딘은 작은 종이 하나를 남기고 떠났다. 그 종이에는 루멘 심실의 수로 운용권을 매입하려는 여섯 명의 입찰자 이름이 있었다. 왕도 금융회사 둘, 항만 건설조합 하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개인 세 명. 각자의 보증금은 금화 수백 닢에 달했다.
가장 아래에는 별도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낙찰될 경우, 제0호 회신의 수신권 포함.’
진혁은 숨이 막혔다. 그들은 건물도, 물도 아닌, 누군가의 대답을 받을 권리부터 사려 하고 있었다.
제14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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