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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45화
PAYLUA ORIGINAL · 제145화

145화. 눈을 가린 청각 보존사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188자

오프라인 책장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기 전에, 세리아는 방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오렐과 도르는 불편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 시험은 이미 중단됐고 기록 장치를 움직일 이유도 없었다. 기술관들은 기록 코어의 마개를 잠근 뒤 복도에 입회 확인표를 남겼다. 음성 자료는 단독 판단에 쓰지 않도록 봉인한 채 보존했다. 복도에 남은 진혁은 창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세리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벽을 등진 채 오래 서 있었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사람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카렌이 다가가자 세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날과 같은 목소리야.” “유나의 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카렌이 물었다. “확신한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까지 잘못된 기록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는지 봤잖아.” 진혁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세리아에게 유나는 사라진 동료인 동시에 오래전에 지키지 못한 사람이었다. 목소리 하나가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했다. 그것만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세리아는 유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곧바로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대신 기술관에게 청취 당시의 환경을 적은 표를 요청했다. 방 안에 누가 있었는지, 기계는 어느 방향을 보고 있었는지, 전원이 들어왔는지, 기록판을 누가 만졌는지 같은 것들이었다. 감정사의 능력은 문서에 적지 않았다. 독립적인 재현 시험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내용을 공식 증거로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오전 진혁은 반품을 요청한 노부부를 만났다. 지난달 수리했던 무음 오르골이 다시 작동을 멈췄다는 이유였다. 노부부는 물건을 되팔 생각이 없었다. 딸의 어린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하게 들리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진혁은 직접 장치를 만지기보다 수리공과 함께 태엽의 장력을 측정했다. 한쪽 나사가 조금 느슨해져 내부 필름의 회전이 끊겼을 뿐, 기록된 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수리공이 나사를 조정하고 재생바늘을 바꾸자 짧은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이번에도 눈물을 닦았다. “목소리가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자꾸 듣게 되네요.” 진혁은 어떻게 대답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들리는 것과, 지금 실제로 말하고 있는 건 다른 일이겠죠. 하지만 그래서 이 노래가 덜 소중한 건 아닙니다.” 할아버지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골의 소리는 오래전에 끝난 시간을 오늘로 데려왔다. 그러나 그 소리의 주인을 대신해 새로운 선택을 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진혁은 루멘 심실에서 들은 목소리도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세리아에게 그대로 전할지는 한동안 고민했다. 벨라가 수리비를 받으러 나오자 노부부는 작은 금액을 내고 오르골을 품에 안았다. 복도로 돌아서는 순간 진혁은 창밖으로 커다란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간판이 한 번 흔들리고 가는 빗줄기가 대리석 계단을 적셨다. 곧 손님이 도착한다는 전갈이 왔다. 다음 날 오전, 경매장으로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여자는 검은 면포로 눈을 가리고 있었고, 지팡이 끝에는 작은 은방울이 달려 있었다. 그녀가 현관 문턱을 넘을 때마다 방울이 울렸지만 걸음걸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안내를 맡은 직원이 사람들 사이로 길을 내자 여자는 공중의 거리를 정확히 짚듯 지팡이를 움직였다. “제0호의 응답을 보관하러 왔습니다.” 벨라가 서류를 요구하자 여자는 미리 준비한 납작한 문패를 내밀었다. 황동판에 음각으로 새긴 이름은 ‘노해린’이었다. 직업 칸에는 감정사 대신 ‘청각 보존사’라고 적혔다. 왕립감정청에서 발급한 면허는 오래전 폐지된 종류였다. “누구 추천으로 오셨습니까?” 벨라가 물었다. “제가 오기로 했습니다. 기다린 사람이 없다는 건 압니다.” 세리아가 계단에서 내려오다 그 목소리를 듣고 멈췄다. “해린?” 여자의 지팡이가 가볍게 떨렸다. “아직도 그 이름으로 부르네요.” 둘 사이에는 설명되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세리아의 얼굴이 한순간 굳었다가 느슨해졌다. 그녀는 달려가 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손님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안내했다. “열두 해 전에 사라진 줄 알았어.” “사라진 건 눈앞의 풍경이었죠. 저는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계속 일했다면 어떤 소리가 진짜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었을 테니까.” 응접실 창으로 들어온 빛이 낮은 나무 탁자 위에 작은 사각형을 만들었다. 차 향기가 퍼졌지만 누구도 찻잔을 들지 않았다. 해린은 면포를 풀지 않은 채 자신의 손가락으로 탁자 표면을 두드렸다. 마치 무언가의 맥박을 듣는 것처럼. “유나가 제게 부탁했어요. 혹시 루멘에서 세 번의 신호가 들리면 가 보라고. 네 번째 소리를 그들이 훔치지 못했는지 확인해 달라고요.” “네 번째 소리요?” 진혁이 물었다. “거절의 소리입니다.” 해린은 오래된 장치의 구조를 설명했다. 사람의 의사를 기록하던 기계는 원래 네 번의 절차로 움직였다. 물건이 들어왔는지, 소유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요청하는지, 그리고 요청을 거절할 수 있는지. 마지막 단계가 있어야 앞선 세 단계가 기록으로서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기계를 개조한 사람들은 네 번째 신호를 ‘응답이 없는 상태’로 바꾸었다. 그러면 침묵이 동의로 처리될 수 있었다. “그건 기록의 오작동입니까, 누군가의 의도입니까?” 카렌이 물었다. “처음에는 실수였어요. 나중에는 누군가 그 실수가 돈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라일이 팔짱을 꼈다. “침묵을 사고팔았군요.” “네. 그 말이 정확해요.” 진혁은 해린이 말하는 동안 종시계를 살폈다. 그녀가 네 번째 소리를 언급할 때마다 분침이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우연일 가능성을 배제하려고 그는 소리 없이 시계를 탁자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때도 분침은 움직였다. 반면 해린이 입을 다문 동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가리신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해린은 잠시 웃었다. “궁금할 줄 알았어요. 저는 감정에 실패한 뒤 눈을 감은 게 아닙니다. 어떤 장치는 바라보는 사람의 반응을 다시 기록으로 삼아요. 보는 행위 자체가 신호가 되죠. 그 장치를 멈춘 뒤에도 한동안 시각적인 기록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각 보존사가 된 겁니다.” “지금도 눈을 뜨면 위험합니까?” “제가 그럴 리 없다고 단정할 만큼 검사해 보진 않았어요. 이 면포는 두려움보다 습관에 가깝습니다.” 말에는 오랜 고통을 감추려는 억지가 없었다.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면서도 거기에 권위를 붙이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진혁은 그녀를 신뢰하고 싶어졌다. 그렇기에 더 조심해야 했다. “그럼 확인하겠습니다. 유나가 보낸 것이라는 그 목소리가 생존한 사람의 현재 발언인지, 옛 기록인지 알 방법이 있습니까?” 해린은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사실을 전할 수도 있고, 거짓말을 흉내 낼 수도 있어요. 기록된 순간과 들리는 순간이 다른데, 사람들이 그 차이를 자꾸 잊어요. 먼저 원래 기록된 시각을 찾아야 합니다.” 해린의 청각 보존사 면허는 고대 장치가 널리 쓰이던 시대에 발급된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직업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남기는 일과 그 뜻을 해석하는 일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왕립감정청의 녹음실에서 일했다. 종이 한 장이 금화 수천 닢의 값을 움직이는 곳이었고, 잘못된 필사 한 줄이 사람의 집을 빼앗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처음엔 기록을 완벽하게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해린이 말했다. “소리를 정확히 보존하면 진실도 같이 남는 줄 알았죠.” 그녀는 자신의 장갑을 벗어 손가락에 남은 옅은 상처를 보여 줬다. 음향 장치가 폭주하던 날 기록판을 빼내려다 생긴 흔적이었다. 눈을 가리게 된 이유가 그 사고와 관련 있는지 묻자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날 저는 소리를 들었고, 그 뒤에도 사람들이 제게 그 말을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억이 또렷하다고 사실도 또렷한 건 아니더군요.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 섞여 있었어요.” 세리아는 조용히 물었다. “유나의 마지막 말도 그렇다는 거니?” “그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찾으려면 기록만 붙들고 있으면 안 돼요. 실제로 움직였던 사람들의 흔적도 찾아야 하죠.” 해린은 루멘이 보관하던 과거 급여대장과 출입 카드 목록을 요청했다. 열두 해 전 제0감정대를 점검한 사람 중에는 이미 죽은 이도 있고, 먼 곳으로 이사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하급 기술자 둘의 이름은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곧바로 실종이라 부르지 않았다. 단지 행적을 확인해야 할 두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그날 저녁 세리아는 그 명단을 보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 유나가 사라졌다고 믿었던 해와 같은 해의 기록이었다. 사라졌다는 말이 얼마나 쉬운지, 한 사람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날 오후 해린은 오렐과 함께 독립된 두 녹음 장치로 파형을 측정했다. 하나는 마레온 기술청이 인증한 기계였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개인 장비였다. 두 장치가 같은 시간 차를 기록했다. 음성의 끝부분에는 아주 약한 마찰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아니라 문이 닫히는 소리와 비슷했다. “원래 누가 들으라고 만든 음성이 아니군요.” 오렐이 말했다. “어딘가에서 잘려 나왔습니다.” 해린이 엄지로 지팡이 손잡이를 눌렀다. “더 중요한 건 앞부분이 없다는 겁니다.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돼’라는 말에는 이유가 필요해요. 누가, 왜, 어디에 있어서는 안 되는지.” 세리아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질문했다. “유나가 그때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 “일부만요. 유나는 심실 안쪽에서 누군가 한 거절이 제대로 들리는지 시험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장치를 멈추려던 날에는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살아 있었는지는?” “제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문이 닫히는 소리였어요.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어둠이 내리고 직원들이 퇴근한 뒤, 해린은 진혁을 홀로 부르지 않았다. 카렌과 세리아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검은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열두 해 전의 오디오 필름 한 조각과 작은 메모가 들어 있었다. ‘제0감정인의 자리는 사람이 앉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곳에 사람을 앉힐 수 있다.’ 진혁이 메모를 읽을 때 손바닥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주의: 제0호 감정대 응답 수신 시, 사람의 신원을 장치로 대체하려는 요청이 발생할 수 있음.] 그는 메모를 내려놓았다. 누군가 자신을 ‘제0호’로 만들려는 이유가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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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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