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두드림 뒤에는 언제나 네 번째 소리가 없었다.
도르는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루멘 경매장에서 서른 해 넘게 설비를 손봐 온 노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귀를 가까이 댔다. 벽 안쪽에서는 물이 흐르는 소리와 바람이 새어 나가는 소리, 오래된 금속이 식으며 수축하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둔탁한 울림은 어느 것과도 달랐다. 마치 깊은 바다에서 거대한 누군가가 벽 너머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듯했다.
“옛날에도 이런 소리가 있었지.” 도르가 말했다.
“언제요?” 세리아가 물었다.
“열두 해 전. 하지만 그땐 세 번이 아니라 네 번 울렸소.”
심실 입구의 계단에는 젖은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고를 우려한 직원들은 접근을 막아 놓았고, 오렐은 이른 아침부터 수로 도면과 건물 구조를 나란히 펼쳤다. 도면의 선은 이상했다. 왕도의 기술자가 그린 배수관은 곧게 이어졌지만, 아래쪽 오래된 수로는 한곳에서 갈비뼈처럼 갈라져 여러 개의 작은 주머니로 들어갔다. 인공 시설의 효율을 고려한다면 만들지 않았을 곡선이었다.
“원래 건물 형태를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오렐이 설명했다. “이 부분은 누군가 뼈의 빈자리에 관을 넣은 거예요. 인체에 비유하면 피가 흐르던 자리일 수도 있고요.”
“그 비유는 점심 뒤에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진혁이 말했다.
라일은 뒤에서 갓 구운 빵을 물고 있었다. “저는 점심 뒤에도 싫습니다.”
세리아가 잠자코 오래된 지도를 펼쳤다. 루멘 경매장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늪과 작은 항구가 만나는 바위지대였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검은 돌무덤에서 밤마다 물결이 들린다고 말했지만, 누구도 살아 있는 생물의 껍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시기에는 그 바위가 선박을 막아 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고, 그 위에 창고가 세워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창고는 교역소가 되었고, 교역소는 루멘 경매장이 되었다.
진혁은 처음 이곳에 취직하던 날을 떠올렸다. 지하 창고에서 동화 두 닢짜리 구리 반지를 만졌고, 자신의 손바닥에 새겨진 ‘본질을 본다’는 문장이 처음으로 긴 경고를 보여 줬다. 그것은 제7봉인의 열쇠였고, 건물 자체는 잠든 고대 괴수의 껍질이었다. 당시 그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며칠 동안 밤마다 발밑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그 소리가 줄어들면 오히려 불안했다.
“일곱 개의 봉인이 각각 무엇을 막는지는 아직 모른다는 거죠?” 그가 물었다.
세리아가 끄덕였다. “일부는 심실의 흐름을 안정시키고, 일부는 기록 장치가 외부와 연결되지 않도록 해. 나도 유나가 만든 장치의 전부를 알지는 못해.”
“그런데 왜 그 반지를 보관하셨죠?”
“내가 보관한 게 아니야. 그 반지는 처음 네 앞에 나타났던 노인이 다시 가져갔잖아. 우리가 가진 건 그가 남긴 감정 흔적뿐이야.”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열쇠를 얻었다는 사실과 열쇠의 정체를 알았다는 사실을 혼동하곤 했다. 자신은 아직 봉인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누군가 그의 능력을 이용해 그 자리를 떠넘기려 했던 것뿐이다.
심실의 오래된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도르는 작업대 위에 작은 나무 모형을 올렸다. 건물을 처음 보수할 때 쓰던 측량도였다. 그때 기술자들은 지하 바위를 깨뜨리지 않고 빈 곳을 찾아 물길을 냈다. 지금의 도면에서는 위쪽 세 층만 보였지만, 나무 모형을 뒤집으면 아래쪽에 둥근 움푹한 공간이 여러 개 있었다.
“이건 창고를 짓기 전 모양입니까?” 진혁이 물었다.
“완전히 같지는 않소. 파도에 깎이고 사람들이 긁어낸 곳이 많아서.”
그는 모형의 가장 큰 움푹한 곳을 가리켰다. 수문을 설치하려던 인부가 이 부분을 파냈다가 두려워 도망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바위 안쪽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책임자는 그것을 지열이라고 판단했고 공사를 계속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작업자들은 이상한 증상을 호소하지 않았고, 시설도 잘 버텼다. 그래서 누구도 더 깊이 조사하지 않았다.
“그건 책임자를 탓할 일이 아니겠죠.” 오렐이 말했다. “그때 가진 도구로는 지금처럼 측정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됐을지도 몰라요.” 카렌이 말했다.
그들은 외벽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왔다. 비가 지나간 뒤라 돌 사이마다 검은 이끼가 남아 있었다. 몇몇 상인은 오래된 건물에 물이 새는 것쯤 당연하다고 말했다. 장난기 많은 아이는 벽을 두드리고 도망갔다. 그때마다 도르가 화를 내며 쫓았지만 아이들은 다음 날이면 다시 돌아왔다.
진혁은 벽의 표면을 손끝으로 따라가다가 멈췄다. 돌과 돌 사이에 난 미세한 구멍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닷물에 깎인 흔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모형에서는 그 부분이 작은 공기주머니의 입구로 표시돼 있었다.
[외벽 흔적: 고대 껍질의 기공.]
[현재 역할: 환기 및 압력 완충.]
[잔존 여부: 일부 기능 유지.]
진혁은 설명을 받아 적고 도르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고대 괴수의 폐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굳이 직원들 앞에서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 통풍구가 막히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부터 물었다.
도르는 돌 틈에 꽂힌 먼지 망을 하나 보여 줬다. 염분이 쌓이면 작은 구멍부터 막힌다고 했다. 오래된 건물을 관리한다는 일은 비밀을 지키는 것보다 이런 사소한 일을 제때 하는 것이었다. 진혁은 그날부터 심실 점검표에 통풍구 청소 상태도 적게 했다.
오렐은 심실 공기 압력과 공용 창고의 기록 부표가 반응한 시각을 비교했다. 소금 창고에서 세 번 울린 두드림과 심실 진동의 시간 차는 종이에 적힐 만큼 짧았지만 분명했다. 신호는 창고에서 심실로 간 것이 아니라, 심실에서 창고로 갔다가 되돌아온 듯했다.
“질문을 보낸 곳이 이쪽일 수 있습니다.” 오렐이 말했다.
“심실이 사람처럼 질문했다는 말이에요?” 카렌이 되물었다.
“기계가 기록한 질문이라는 뜻입니다. 말하는 사람을 상상하기 전에 도선부터 확인해야죠.”
진혁은 주머니에서 왕도 경매에서 낙찰받은 종시계의 소형 기록 코어를 꺼냈다. 코어는 투명한 덮개 아래에서 아주 작은 음영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대자 다른 때보다 많은 문장이 떠올랐다.
[루멘 심실: 원형 생체 껍질.]
[현재 상태: 외부 자극에 대한 반사 반응 존재.]
[기록 장치: 반응을 언어 신호로 변환.]
[식별 미완료: 자극의 주체와 수신자의 주체가 서로 다름.]
진혁은 그 마지막 문장을 반복해 읽었다.
“심실이 대답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 심실의 반응을 대답처럼 바꾸는 걸 수도 있겠네요.”
오렐은 그 말을 바로 결론으로 삼지 않았다. 그는 서로 다른 두 신호를 분리하는 시험을 제안했다. 수로에 주는 아주 약한 수압 변동과 종시계의 규칙적인 박동을 다른 시각에 발생시키고, 심실 표면과 수신 부표에 각각 어떤 파형이 남는지 보는 방식이었다.
시험은 하루를 다 썼다. 시설팀은 심실 주변에 물통과 가벼운 기록 바늘을 설치했다. 카렌은 기록을 받아 정해진 시간을 읽었고, 라일은 기계실과 지하 창고 사이를 오가며 무전관을 연결했다. 세리아는 전 과정에 서명했지만, 소유자로서 무조건 진행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기술관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즉시 중단한다는 조건을 먼저 달았다.
첫 번째 수압 변동에는 벽의 돌기 두 개만 미세하게 움직였다. 두 번째 종시계 자극에는 바닥 아래의 진동이 세 번 이어졌다. 그런데 두 자극을 전혀 주지 않은 시간대에도 네 번째와 비슷한 떨림이 기록됐다. 가장 오래된 수로의 안쪽에서였다.
“자발적인 반응인가요?” 세리아가 낮게 물었다.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단순한 잔류 압력일 수도 있어요.” 오렐의 목소리는 신중했다.
진혁은 처음으로 안도보다 두려움을 느꼈다. 이 건물이 살아 있다면, 오랜 세월 사람들을 품고 시장의 소음을 견디는 동안 무엇을 느꼈을까. 반대로 이미 죽은 껍질이라면, 누군가 죽은 생물의 반응을 빌려 수천 명의 동의를 만들어 내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평범한 경매장 업무와는 너무 멀리 왔다.
저녁 경매가 끝난 뒤 세리아는 모든 직원에게 짧은 설명회를 열었다. 안내를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 손으로 벽을 두드려도 되는지, 이상한 종소리를 들으면 누구에게 알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심실의 정확한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부분과 확인된 설비 위험을 분리해 설명했다.
“여러분이 위험한 장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소리가 들리면 혼자 내려가지 마세요. 점검팀이 현장을 확인할 거예요.”
젊은 경비원이 손을 들었다. “건물이 살아 있다는 소문은요?”
세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오래된 생물의 흔적이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방식으로 살아 있는지 아닌지는 조사 중이에요. 그래서 더 조심하는 겁니다.”
설명회가 끝나자 직원들은 서로 다른 얼굴로 흩어졌다. 어떤 사람은 동료와 농담을 했고, 어떤 사람은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벨라는 모든 직원에게 퇴근 동선을 다시 알려 주었다. 진혁은 그 모습을 보며 사업장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화려한 경매의 성공만이 아니라 누군가 출근했다가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날 저녁 라일은 좁은 복도에 의자를 갖다 놓고 한참 장난을 쳤다. 누군가 지나가면 의자가 혼자 움직이는 척 발끝으로 살짝 밀었다. 진혁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그럴 때예요?”
“다들 겁먹은 얼굴만 하고 있잖아요. 조금 웃어야죠.”
“그러다가 진짜로 움직이면 어떡할 건데요?”
라일은 잠깐 멈추더니 의자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땐 제가 제일 먼저 도망갈 겁니다.”
진혁은 한숨을 쉬다가 결국 웃고 말았다. 늘 이상한 말만 하는 라일의 장난에도 누군가를 긴장에서 풀어 주려는 마음이 조금은 섞여 있었다.
밤이 되자 카렌은 회랑 끝 창가에서 그를 발견했다. 진혁은 검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 내항의 불빛은 파도에 잘게 부서졌고, 건물 너머 어선의 종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무섭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조금요. 정확히 말하면 잘못 알아낼까 봐 무서워요.”
“그럼 혼자 결정하지 마세요.”
그 말은 힘을 내라는 위로보다 낫게 들렸다. 진혁은 카렌 옆으로 한 걸음 비켜 섰다.
“고마워요.”
“또 세 번째인가요?”
“이번엔 네 번째입니다.”
둘은 잠시 웃었다. 그때 회랑 반대편에서 벨라가 뛰어왔다. 낡은 감사 장부를 펼친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열두 해 전 냉각비 청구서가 이상해요. 매달 같은 금액이 빠져나갔는데 수리 명목이 아닙니다. 항목에 ‘응답 보관료’라고 적혀 있어요.”
“누구에게 지급했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계좌번호가 없어요. 대신 수취 시설명이 있습니다.”
벨라는 페이지를 뒤집었다. 한 줄의 이름이 나타났다.
‘루멘 제2심실. 보관 대상: 아직 하지 않은 대답.’
제14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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