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 경매장의 영업 종은 평소처럼 오전 아홉 시에 울렸다.
손님들은 그날도 화려한 거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중앙홀에는 붉은 융단이 깔렸고, 천장의 수정등에서는 누런 빛이 쏟아졌다. 바닷가 특유의 습한 공기를 잡기 위해 직원들이 향초를 피웠다. 젖은 가죽 장갑 냄새와 장작 연기, 유물 보존약의 신 냄새가 겹쳤다. 아침 첫 손님은 머리카락보다 수염이 더 긴 드워프 장인이었고, 그다음은 바다 괴물의 이빨을 팔러 온 어부였다.
진혁은 감정실에서 반품 접수표를 살폈다. ‘심실 일대 조사’라는 작은 안내문 한 장이 복도에 붙었을 뿐, 중앙 경매장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은 벽이 울릴 때마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소문이라는 건 늘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누구도 입 밖으로 말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모두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식이었다.
“29일이라.” 진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렐 기술관은 밤새 종시계의 문구가 나타난 시각과 심실 온도를 대조했다. 그 결과 전령통에서 종이가 나온 직후 냉각수의 유입량이 잠시 줄어든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것이 경고의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로의 오래된 역류 밸브가 함께 움직였을 수도 있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기한을 정해 주는 건 싫어요.” 카렌이 말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세 장의 보고서를 펼쳤다. “특히 그 누군가가 이름도 모르는 장치라면 더더욱.”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죠. 기한을 알았으니 준비라도 할 수 있습니다.”
“기한을 알렸다는 사실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어요.”
진혁은 카렌의 지적을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전령통 주변 접근권 조사’라고 덧붙였다. 건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뒤부터 그는 오히려 사소한 인간의 실수를 더 경계하게 됐다. 아무리 기묘한 마법이 존재해도, 누군가 보통의 문을 열고 종이를 끼워 넣었다면 먼저 그 경로부터 찾아야 했다.
점심 무렵 항만 운송업자 한 사람이 찾아왔다. 두꺼운 유포지를 덮은 수레 뒤에서 회색 소금가루가 흩날렸다. 그는 창고 접수 담당에게 문서를 내밀었다.
“중앙 비축고 반송 화물입니다. 수취지는 루멘, 수취인은 심실 설비 담당.”
벨라가 문서를 받다가 손을 멈췄다. “우리는 물건 이름을 확인하기 전에는 심실 앞으로 반입하지 않습니다. 위탁인과 반출 책임자는 누구죠?”
“왕도 서류에 다 있다고 들었는데요.”
“들었다는 말과 적혀 있다는 말은 다릅니다.”
화물 표면에는 낡은 분필 글씨가 남아 있었다. ‘보관용 소금’, ‘파손 우려 낮음’, ‘빈 상자 포함’. 상자 한 귀퉁이에는 43이라는 숫자 위로 검은 잉크가 두 번 칠해져 있었다.
진혁은 수레 가까이 갔다. 상자를 직접 열지 않고 운송인의 허락을 받아 봉인 부분만 살펴봤다. 납 봉인이 새것이었다. 반면 나무 틈의 소금 가루는 여러 계절의 습기를 먹은 듯 뭉쳐 있었다.
[운송 상자: 제43호 수취 보조판 보관함.]
[현재 내용물: 소금에 묻힌 표식판 1점, 항만 기록 부표 2점.]
[표면 표기: 보관용 소금.]
[주의: 개봉 순서가 중요함.]
“상자 안에 소금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진혁이 말했다.
벨라는 바로 운송인을 향해 서류를 돌렸다. “검증 전 인수를 보류하겠습니다. 반입 완료로 표시하지 마세요.”
운송인은 울상을 지었다. “이걸 다시 싣고 가면 운송비를 못 받는데요.”
세리아가 나타나 운송표를 살폈다. “인수 보류와 임시 보관은 달라요. 운송인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면 화물을 훼손하지 않고 공용 창고에 두고 확인할 수 있어요. 대신 원래 발송인의 연락처가 필요합니다.”
“연락처가 없으면요?”
“그럼 바로 의심해야지.”
진혁은 화물번호 밑의 작은 표식을 발견했다. 지워진 부분 사이로 화령 장인들이 쓰는 정밀 접합 도안이 비쳤다. 라일이 그 문양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운송조합의 납인하고 다릅니다. 예전에 마레온에서 ‘빈 물건’만 배달하던 사람들이 쓰던 모양이에요.”
“물건이 비어 있는데 뭘 배달한다는 거죠?”
“받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요.”
그 말은 우스꽝스러웠지만 진혁은 웃지 않았다. 이름 없는 배달인들이 실제 물건보다 수취 확인을 비싸게 팔던 조직이 있었다. 남관역과 왕도 중앙 비축고에서 겪은 사건은 모두 그것과 닿아 있었다.
점심 경매에서는 맨 끝 줄의 손님이 뜻밖의 소란을 일으켰다. 바다용 신호등 세 점을 한꺼번에 낙찰받으려는 상인이 입찰표에 금화 한 닢을 적어 냈다가, 그것이 세 점 각각의 가격인 줄 몰랐다고 항의한 것이다. 경매사는 서두르지 않고 물품번호와 묶음 규칙을 다시 읽었다. 표에는 분명히 ‘총액 입찰’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글자가 지나치게 작았다.
“그럼 취소되는 겁니까?” 진혁이 물었다.
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바로 그렇다고 할 순 없어요. 다만 오해 가능성을 줄이지 않은 운영 책임이 있으니 확인해야죠.”
경매장은 낙찰 확정을 잠시 미뤘다. 상인에게 매각 조건을 다시 설명한 뒤 다른 입찰자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경매사의 판정 과정을 공개했다. 결국 상인은 이해한 가격에 낙찰을 받아들였다. 소란은 십 분 넘게 이어졌지만, 그 시간이 없어졌다면 나중에 훨씬 긴 분쟁이 생겼을 것이다.
라일이 혀를 찼다. “서류 하나가 배보다 무겁네요.”
“배가 잘못 가면 돌아오지만, 서류가 잘못 가면 사람 이름이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카렌이 답했다.
진혁은 그 말을 조용히 기록했다. 최근 경매장에서 배운 것 중 가장 비싼 문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진혁은 다음 경매의 출품 목록에서 대량으로 들어온 소금 포대를 발견했다. 루멘은 보존용 소금을 일정량 사들이지만, 이번 물량은 평소보다 많았다. 표에는 반입일과 중량이 정상적으로 적혀 있었다. 다만 보관 위치가 공용 창고로 바뀐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화물이 많아지면 확인할 일도 많아지겠네요.” 진혁이 말했다.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싼 물건이라고 확인을 건너뛰면 나중에 더 큰일이 생겨요. 오늘 들어온 화물은 일단 다른 포대와 섞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포대에 서로 다른 꼬리표를 달았다. 화물의 출처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똑같이 생긴 물건도 다른 물건이었다.
그날 오후 일반 경매에는 매각 대신 반환되는 물건도 여럿 있었다. 어부가 맡긴 바다 괴물의 이빨은 실제로는 커다란 가오리의 골편이었고, 드워프 장인이 가져온 낡은 나침반은 자력은 약했지만 특정 광산의 지하수가 흐르는 방향에서만 바늘이 흔들렸다. 진혁은 즉시 값을 올려 부르지 않았다. 간단한 검증을 제안했고, 장인은 물건을 팔지 않고 수리를 의뢰했다.
“오늘은 얼마 벌었습니까?” 라일이 물었다.
“감정비 은화 두 닢.”
“이런 세계적인 유물 감정사가 참 소박하게 삽니다.”
“세계적인 빚쟁이라고 부르려는 거면 정정하세요.”
라일이 웃는 동안 벨라가 경매장 내벽의 유지 비용을 적은 회계서를 가져왔다. 냉각 수로 점검비, 화물 임시 보관료, 종시계 비파괴 검사비. 작은 숫자들이 모여 하루의 이익을 전부 삼켰다. 진혁은 영수증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괴수를 막을 방법을 찾다가 경매장이 먼저 파산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운송인은 화물을 공용 창고에 옮긴 뒤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이름은 주베른이었다. 늦게 귀가하면 병든 아내가 기다린다고 했지만, 수취 확인 없는 화물을 남겨 두면 운송조합에서 벌금이 나왔다. 그는 자신의 말을 믿어 줄 수 있느냐고 반복해서 물었다.
“믿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벨라가 대답했다. “서류를 남기면 돼요. 수취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불명확한 화물을 임시 보관하는 거라고요.”
벨라는 항만조합 표준 양식을 꺼내 두 장을 작성했다. 하나는 루멘 보관실, 하나는 운송인에게 주는 사본이었다. 보관료의 부담 주체는 발송인 확인 뒤 확정하기로 했다. 주베른은 이름을 세 번이나 확인한 다음에야 펜을 들었다.
“이런 종이 한 장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진혁이 물었다.
“어려워서 안 쓰는 게 아니죠.” 주베른이 쓴웃음을 지었다. “보통은 물건 받았다는 도장 찍기 바빠요. 하루에 여덟 번 부두를 오가는데 서류 읽고 서 있으면 일을 못 끝내거든.”
그는 진혁에게 자신의 화물 장갑을 보여 주었다. 손가락 끝에 소금 결정이 엉겨 붙어 딱딱했다. 그 장갑을 볼 때야 진혁은 불분명한 계약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꼭 경매장의 낙찰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일반 경매가 계속되는 동안 진혁은 주베른과 함께 옛 창고의 방수 구조를 확인했다. 높은 창문에는 해풍을 막는 두꺼운 덧문이 있었고, 바닥은 바깥보다 반 뼘 높았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돼 나무 창틀 한쪽이 썩어 있었다. 주베른은 자신이 다니는 창고 중에도 이런 곳이 많다고 말했다.
“침수 한 번 나면 화물값 때문에 싸움이 납니다. 장부에는 멀쩡하다고 쓰여 있어도, 실제 물건은 물에 떠내려가죠.”
“그럴 때도 기록과 물건을 따로 봐야겠네요.”
“그건 감정사님이 더 잘 아시겠죠.”
진혁은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유물의 본질을 보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젖은 천을 말리는 일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았다. 그는 운송인에게 오늘 밤만큼은 안전한 곳에 수레를 세워 두라고 권했다. 주베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지기 직전, 공용 창고에서 상자를 열어 보는 검증 절차가 시작됐다. 오렐과 도르, 운송인과 왕도 기록청 연락관이 입회했다. 뚜껑을 들어 올리자 짠내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소금 속에는 동전만 한 은빛 원반 두 개와 가로로 긴 황동판 하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황동판 위에는 출입 기록용 슬롯과 달리 작은 원형 구멍이 여럿 있었다.
“43번 판이군요.” 카렌이 말했다.
“형상은 맞습니다.” 오렐이 조심스럽게 바로잡았다. “같은 번호로 만든 사본일 수 있어요. 재질을 비교해야 합니다.”
진혁은 납작한 원반을 바라봤다.
[항만 기록 부표.]
[기능: 수면 아래 신호의 도착 여부 기록.]
[잔류 신호: 돌아오지 않은 질문 두 건.]
그는 둘 중 하나를 집어 들기 전에 하서린에게 전보로 열람 권한을 확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송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가져오라고 하신 분들 아닙니까?”
“가져오라고 한 사람과 열어도 되는 사람은 다릅니다.” 카렌이 답했다.
한쪽 원반의 표면에 응결한 물방울이 갑자기 떨렸다. 창고 밖에서는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바닥에 놓인 소금 자루가 서서히 부풀었다. 오렐이 측정기를 들여다보다 소리쳤다.
“멈추세요. 이건 발신기가 아니라 수신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공용 창고의 돌벽 너머, 경매장 심실 방향에서 똑같은 간격으로 세 번의 두드림이 들려왔다.
제14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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