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에서 가장 먼저 팔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믿음이다.
진혁은 루멘 대경매장 한쪽에 임시로 설치된 감정대를 보며 그 말을 떠올렸다. 손님들은 감정서에 적힌 이름을 믿고 돈을 지불한다. 물건에 깃든 마력이 진짜인지, 출처가 적법한지, 위험한 저주가 숨겨져 있는지는 대부분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매장에는 감정사와 공증인이 있고, 그들이 남기는 서류가 금화만큼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그 믿음 자체를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오전 열한 시, 소경매실 삼번 방에는 검은 인장 상회로부터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방은 대경매장보다 작고 천장도 낮았지만 벽마다 다른 시대의 경매품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붉은 융단이 깔렸고, 다른 쪽에는 종이 서류를 보관하는 내화 금고가 있었다. 한 손님은 녹슨 창끝을 들고 왔으며 다른 사람은 보석이 빠진 목걸이를 가죽 주머니째 내밀었다. 위조 나침반 사건이 알려진 뒤 그동안 참고 넘어간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이 창이 용의 불꽃도 막는다고 해서 샀는데 빵 굽는 불에도 녹았소!”
“그건 손님께서 너무 가까이 댄 게….”
“가까이 대지 않고 불을 어떻게 막는단 말이오!”
진혁은 목소리를 높이는 상인을 보며 침착하게 안내장을 넘겼다. 경매품 환불 규정은 기존 감정서에 허위가 있거나 중대한 결함을 숨겼을 경우 재심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단순히 기대한 가격보다 낮게 팔렸다는 이유로 환불해 주면 경매장 장부가 무너진다. 그렇다고 손님이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한 분씩 보겠습니다. 제가 감정하기 전에 판매 당시 서류부터 대조하겠습니다.”
“마법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소?”
“제 마법이 모든 법적 책임을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는 창끝의 감정서를 펼쳤다. 잉크와 마정석의 조합이 그럴듯했다. 종이에 인쇄된 인장도 원본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감정 결과의 숫자 7만 다른 종이보다 짙었다. 진혁은 바닥의 햇빛 아래에 종이를 기울이고, 그다음에야 손바닥을 올렸다.
[대상: 방염 창끝.]
[실제 효과: 단시간 저온 화염 분산.]
[설명서 기재: 고위 화염 면역.]
[오염 방식: 감정 결과 한 문장만 수정.]
“환불 대상 맞습니다.”
그가 말하자 손님들이 술렁였다. 진혁은 시의회 조사관에게 원본 서류와 판매 당시 기록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조사관은 모든 행동을 적었고, 방 안에 있던 손님 두 명이 증인으로 서명했다. 진혁이 홀로 아무리 정확하게 감정해도 나중에 ‘마법이 거짓말했다’고 우기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손님은 검은 코트 차림의 노인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처럼 고함을 치지 않았다. 낡은 손수건에 감싼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병에는 푸른 빛이 한 점 들어 있었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목소리를 산 줄 알았소. 그런데 들리는 건 바람 소리뿐이더군.”
진혁은 병을 받기 전에 영수증부터 확인했다. 물건명은 ‘선원 부인의 마지막 인사’, 가격은 금화 열다섯 닢이었다. 서류의 제작 날짜는 노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삼 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진혁은 병에 손끝을 댔다.
[대상: 기억 소리 보존병.]
[내용: 북항 등대 인근의 바람 소리.]
[녹음 주체: 확인 불가.]
[특정 인물의 음성 여부: 증명되지 않음.]
“판매자에게 원본 증빙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병에 아내분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까지 제가 단정할 수는 없어요. 바람 소리 안에 아주 짧게 섞였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노인은 한동안 병을 바라봤다.
“그럼 나는 속은 건가?”
“상품 설명이 증명되지 않았다면 환불을 청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병을 부수거나 내용물을 제거하면 나중에 확인할 기회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노인은 손수건으로 병을 다시 감쌌다. 잠시 생각하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바람 소리라도 남겨 두겠소. 아내가 마지막으로 보던 바다에서 녹음한 게 맞을 수도 있으니.”
진혁은 고개를 숙였다. 노인의 선택은 단순히 금화를 되찾는 것보다 복잡했다. 그는 감정 기록에 ‘원본 검증 필요, 파기 금지, 소유자 보관 희망’이라고 적었다. 손님이 아내를 기억하려는 마음까지 감정 결과로 대신할 수는 없었다.
노인이 떠난 뒤 소경매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진혁은 환불 명단의 숫자를 다시 세었다. 같은 허위 감정이라도 어떤 이는 돈을 돌려받고 싶어 했고, 어떤 이는 작은 가능성을 버리고 싶지 않아 했다. 불확실한 사실을 성급히 확정하지 않는 것 또한 감정사의 일이었다.
점심 무렵 세리아가 소경매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새 회계 담당자를 데리고 왔다.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젊은 여성이었는데, 이름은 엘리였다. 검은 상회의 장부가 조작된 뒤 루멘의 수입과 지출을 전부 다시 계산하도록 임시로 채용했다고 했다.
“환불액이 얼마나 됩니까?”
진혁이 묻자 엘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현재 접수된 청구만 금화 이천사백 닢입니다. 전부 지급한다면 보호 기금은 첫 달부터 적자가 납니다.”
“그럼 못 돌려준다고 할 겁니까?”
“그럴 수는 없죠. 대신 물건별 원인과 책임자가 누군지 나눠야 합니다.”
엘리는 장부를 펼쳤다. 판매 수수료와 위탁인의 몫, 공증 비용, 안전 감정 비용이 촘촘하게 적혀 있었다. 진혁은 이제야 사장의 일이 얼마나 많은지 느꼈다. 정의로운 판정 하나로 끝나는 사건은 없었다. 환불할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경매장은 문을 닫고, 그러면 모라를 보호하기로 한 약속도 지킬 수 없었다.
세리아가 말했다.
“오늘 오후에는 작은 시연을 하나 하자. 감정서가 왜 필요한지 손님들에게 보여 줘야 해.”
“사장님은 제가 대중 앞에서 망신당하는 걸 좋아하시네요.”
“망신당할 일이 없다면 괜찮잖아.”
“사장님은 항상 결론을 너무 빨리 내십니다.”
시연에 사용한 것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낡은 은색 저울이었다. 접시 두 개가 달린 작은 기계였는데 중앙 기둥에는 불꽃 모양의 장식이 있었다. 감정서를 보면 ‘거짓말의 무게를 재는 유물’이라고 적혀 있었다.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기 좋은 물건이었다.
“사람이 거짓말할 때 접시가 기울어집니다.”
보조 진행자가 말했다.
앞줄에 앉은 소년이 크게 웃었다.
“그럼 우리 아버지한테 보여 주면 매일 부서지겠네요!”
객석에 웃음이 퍼졌다. 진혁은 소년을 향해 미소를 보인 뒤 저울의 접시에 동전 하나를 올려놓았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다음에는 자신이 입으로 말했다.
“저는 이번 달 월급을 한 닢도 받지 못했습니다.”
접시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커졌다.
“정확하군. 자네는 어제 선지급 받았잖아.”
세리아가 말했다.
진혁은 헛기침했다.
“테스트는 성공입니다. 사장님, 제 금융 정보는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그는 저울의 작동 원리를 의심하고 있었다. 거짓말은 사람의 의도와 기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고 틀린 말을 하면 저울이 움직일까. 진혁은 보조 진행자에게 미리 준비해 둔 종이 두 장을 전달했다. 첫 번째에는 실수로 계산한 잘못된 금액이 적혀 있었고, 두 번째에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가격을 적어 두었다.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울은 첫 번째 종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째 종이를 올렸을 때만 접시가 기울었다.
“이 저울이 판단하는 건 문장의 진실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거짓임을 아는지 여부군요.”
진혁이 설명했다.
“그럼 나쁜 사람이 자기 말이 진실이라고 믿으면 통과하겠네?”
앞줄의 소년이 물었다.
“그렇죠. 그래서 이 저울만으로 누군가를 죄인이라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진혁은 관객을 둘러봤다. 사소한 시연처럼 보였지만 바로 이런 오류가 검은 상회의 장부를 정당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상대방이 자신이 무엇을 내놓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하면, 계약서에는 동의한 것으로 기록된다. 거짓말 저울은 그 사람이 진심으로 동의했다고 믿는 순간 아무 이상을 감지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때 저울의 표면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거짓말의 저울.]
[정식 명칭: 의향 편차 측정기.]
[최초 제작 목적: 계약 당사자의 이해 여부 확인 보조.]
[개조 이력: ‘알지 못했다’는 증언을 거짓말로 분류하도록 수정 시도.]
“잠깐.”
진혁이 유물을 들어 올렸다. 밑면에는 조그만 검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손으로 문지르자 마감용 밀랍이 벗겨지고 은색 글자가 드러났다.
‘998.’
관객들 앞에서 손이 멈췄다. 상품 998,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의 이름. 그 번호가 어떻게 평범한 검사 도구에 남아 있는 것일까. 진혁은 보조 진행자에게 시연 중단을 알렸다. 관객들은 실망했지만 세리아가 즉시 다른 경매품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돌렸다.
소경매실 뒤쪽의 회의 공간에서 진혁과 카렌, 라일이 저울을 다시 살폈다. 카렌은 저울을 보고도 한참 말이 없었다. 가난한 집에서 큰돈을 빌릴 때 계약 조항을 모두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이안이 아팠을 때 그녀 역시 서둘러 서명한 서류가 몇 장 있었다.
“저도 저울에 올라가면 동의했다고 나올까요?”
“무슨 뜻입니까?”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제가 도장을 찍었죠. 그런데 치료비 채권을 넘길 수 있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어요.”
진혁은 저울 밑면의 인장을 문질렀다.
“그렇다면 선택한 건 치료비 대출이지, 동생의 신분이 아닙니다.”
“법이 그렇게 볼까요?”
“보게 만들어야죠.”
라일이 창가에서 고개를 돌렸다.
“검은 경매의 입장 조건이 무엇인지 알 것 같네요. 가격 없는 것은 진실을 말하겠다는 약속일지도 모릅니다. 저울은 그걸 시험하는 도구이고요.”
“그런 약속은 돈으로 살 수 없죠.”
진혁이 말했다.
“살 수 없지만 깨뜨릴 수는 있죠.” 라일이 조용히 답했다. “저들은 약속을 깨는 사람을 기다리는 겁니다. 딱 한 번 거짓말하면 그걸 담보로 이름을 가져갈 수 있도록.”
세리아는 책상 위에 놓인 저울과 초대장을 나란히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두 사람을 지하의 보존실로 안내했다. 보존실은 지상 경매품과 달리 팔 수 없는 물건들을 모아 둔 곳이었다. 유산을 찾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맡긴 가족 편지, 원주인이 돌아오기 전까지 공개할 수 없는 감정 기록, 죽은 선원의 마지막 편지가 담긴 병 등이 선반에 차례로 놓여 있었다.
“왜 이런 물건을 따로 보관하십니까?”
진혁이 물었다.
“가격을 매길 수 없어서.”
세리아가 대답했다.
“루멘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모든 것을 팔려고 만든 곳이 아니었어. 무엇이 거래될 수 없는지 구분할 장소도 필요했지.”
진혁은 유리병 속의 오래된 편지를 바라봤다. 아무도 펼쳐 볼 수 없는 편지에 무슨 가격이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동화 한 닢 값어치조차 없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 어떤 금화보다 소중할 것이다.
“그러면 검은 경매에 가져갈 것은 정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세리아가 물었다.
“어떤 물건?”
“물건이 아닙니다. 제 선택이에요.”
진혁은 초대장의 뒷면에 한 문장을 적었다.
‘나는 그들이 가져가려고 한 사람의 이름을 가격으로 말하지 않겠다.’
잠시 뒤 검은 글자가 종이 속으로 스며들었다. 초청장에 희미한 금빛 원이 생기더니 작은 문장이 나타났다.
[입장 조건 예비 심사 통과.]
[가치 산정 불가: 선언자의 신념.]
[단, 그 신념이 실제 행동과 충돌할 때 재심사됨.]
라일은 웃지 않았다.
“이거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저들은 반드시 당신이 그 말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 겁니다.”
진혁은 초대장을 접었다. 검은 종이의 감촉이 처음과 달리 약간 따뜻했다.
“그럼 그때 다시 선택하면 되죠.”
그 말에 카렌이 오랫동안 그를 바라봤다. 진혁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다음 순간 그녀가 창가를 향해 돌아섰을 때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귀 끝이 조금 붉어진 것을 보았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헥터가 손에 봉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시의회에서 보낸 긴급 통지네.”
그가 종이를 펼쳤다.
“레온 하르트의 사망 기록을 다시 조사했더니 사망 당시 소지품 목록에서 검집 하나가 더 발견됐대.”
카렌이 급히 몸을 돌렸다.
“아버지 검집은 제가 가지고 있어요.”
“그건 첫 번째야.”
헥터가 말했다.
“두 번째 검집은 검이 들어 있지 않았고, 내부에 서명된 계약서가 숨겨져 있었답니다.”
진혁은 봉투 끝에 찍힌 검은 인장을 보았다. 오래된 실선 사이로 상품 번호 998이 조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이번에는 검보다 검집이 더 위험한 물건일지도 몰랐다.
제1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