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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3화
PAYLUA ORIGINAL · 제13화

13화. 도둑이 훔치지 않은 장부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256자

오프라인 책장
검은 골목에 서 있는 안내인의 가면은 물에 젖은 거울과 닮았다. 진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면 위에 비친 얼굴을 다시 살폈다. 이안의 어린 얼굴은 분명했지만 안내인의 목소리는 깊고 건조한 성인 남자의 것이었다. 가면의 가장자리에는 검은 밀랍이 얇게 발라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오래된 금속 장치가 손톱처럼 박혀 있었다. 안내인은 진혁이 놀란 것을 보았는지 가면을 살짝 기울였다. “마음속에 가장 무거운 사람이 보입니까?”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래를 중개하는 사람이라고 해두죠.” “가면에 왜 저 아이 얼굴이 보이죠?” “다들 자기 대가의 얼굴을 봅니다. 어떤 이에게는 죽은 부모, 어떤 이에게는 잃어버린 연인이겠지요.” 카렌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장화 밑에서 젖은 모래가 으깨졌다. “내 동생을 어디에 두었죠?” “동생이라는 관계 자체가 유효한지부터 확인해야겠군요.” 안내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카렌의 검이 반쯤 뽑혔다. 달빛을 받은 은색 검날이 골목 벽에 차가운 선을 그렸다. 라일이 재빨리 그녀 앞을 막았다. “검사님. 여긴 상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손해 보는 곳입니다.” “비켜요.” “한 번만요. 저 사람들은 질문의 답보다 질문에 반응하는 모습을 거래합니다.” 진혁은 카렌의 어깨 너머로 안내인의 발을 보았다. 그림자가 두 개였다. 하나는 가로등 방향으로 길게 뻗었고, 다른 하나는 발밑에서 작은 원을 그렸다. 두 번째 그림자는 안내인의 의지가 아니라 가면에 붙은 장치의 움직임이었다. [대상: 감정 반사 가면.] [기능: 방문자가 가장 큰 책임감을 느끼는 대상을 영상으로 반사.] [부가 기능: 반응으로 책임 관계 추정.] [주의: 강제 자백 유도 기능 없음.] “잘 만든 장난감이네요.” 진혁이 말했다. 안내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입니까?” “저분의 동생 얼굴을 보여 준다고 동생의 소유권까지 가져간 건 아니잖습니까.” 안내인의 입술이 가면 아래에서 굳었다. “입장 의사를 결정하십시오. 지금 돌아가도 기억은 남겨 드립니다.” 진혁은 초대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문을 지나지는 않았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은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가져온다고 해서 당신에게 주겠다고는 안 했어요.” “상품 없이 입찰할 수 없습니다.” “그럼 방문객으로 관람만 하죠. 루멘에서는 낙찰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안내인은 처음으로 대답을 늦췄다. 뒤쪽 검은 골목에서 여러 발자국 소리가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라일이 진혁의 손목을 두 번 톡 쳤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신호였다. 그들은 여기서 싸우지 않고 뒤로 물러나기로 이미 정했다. “다시 오겠습니다.” 진혁이 말하자 안내인이 낮게 웃었다. “정말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안 되면 집에 가서 출근 도장이라도 찍어야 하거든요.” 진혁은 뒤로 한 발 옮겼다. 골목 입구에 앉아 있던 난다가 그들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내인의 가면에 비친 이안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는 소리 없이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세 사람이 원래 부두로 발을 내딛자 검은 골목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바닷바람이 세 사람의 얼굴을 때렸다. 난다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들을 훑어봤다. “들어갔다 나온 겁니까, 아니면 발만 담근 겁니까?” “발만 담갔습니다.” 진혁이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거기 오래 있으면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잊는다니까.” 난다가 주머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진혁이 준 메모 가운데 한 장에는 그녀가 적은 시각과 증언이 남아 있었다. 다른 종이는 하얬다. 다만 아무것도 쓰지 않은 종이 한가운데에 작은 발자국 모양이 찍혀 있었다. “왜 발자국이 있죠?” “나도 모르겠어요. 내 손가락에는 먹이 묻지 않았는데.” 진혁은 종이를 받아 표면을 살폈다. 흔적은 먹이 아니라 아주 엷은 은빛 소금이었다. [잔류 기억: 외부에서 기록된 방문자 수.] [산출: 네 사람.] [현장 관측: 세 사람.] “우리를 따라 나온 사람이 하나 더 있군요.”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제3창고 벽 아래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숨을 만한 틈이 있었다. 바닥에는 물에 젖은 발자국이 이어졌지만 마지막 자국은 아무도 없는 벽 앞에서 끊어졌다. 라일이 틈새에 조용히 손을 넣었다. 손끝에 낡은 가죽끈 하나가 걸렸다. 그는 가죽끈을 보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데브의 물건이에요.” “실종된 감정 보조?” 진혁이 물었다. “내가 경매장에 들어가려던 날, 그 사람이 문을 열어 줬습니다. 나를 숨겨주다가 자기 이름을 뺏긴 거예요.” 라일은 작게 웃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다른 사람을 놀리는 웃음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훔친 건 도둑질한 귀걸이 하나였어요. 그 사람은 거래 장부를 가지고 나가라고 했죠. 나는 귀걸이를 가지고 도망쳤고, 장부는 두고 왔어요.” “왜요?” “장부를 들면 더 큰 돈을 받을 줄 알았거든요. 누군가 나중에 값을 치르겠다고 했으니까.” 카렌이 천천히 검을 집어넣었다. 라일의 목소리는 자조적이었다. “대가를 받았습니까?” 진혁이 묻자 라일은 목덜미의 은빛 실을 만졌다. “받았죠. 내 이름이 지워지는 값으로요. 그 뒤로 내가 누구였는지 알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난다를 시의회 증인 보호 담당에게 연결하고, 밤이 깊어지기 전에 루멘으로 돌아왔다. 항구 언덕을 오를 때는 멀리 배들이 켜놓은 등불만 검푸른 바다에 떠 있었다. 조선소의 망치 소리는 멎었고, 선원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골목에서 희미하게 들렸다. 카렌은 말없이 걸었다. 그녀가 떠올리는 것은 소년의 얼굴과 자신을 바라보던 가면의 차가운 빛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세 사람은 수문 옆 야간 식당에 잠시 들렀다. 기름에 튀긴 작은 생선과 뜨거운 수프를 파는 곳이었다.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 식당에서 하루의 마지막 끼니를 해결했다. 벽에는 외상 장부가 걸려 있었고, 빚을 갚은 사람의 이름에는 파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진혁은 창가 자리에 앉아 종이 위에 항구의 구조를 그렸다. 북부 부두에서 루멘 언덕까지는 마차로 십오 분, 제3창고에서 항만청까지는 걸어서 일곱 분. 장부 조작이 일어난 장소들이 생각보다 좁은 구역에 모여 있었다. 마레온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음모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항만청의 경보 장치, 창고의 등록문, 검은 경매의 거래 원부라는 세 시설이 연결된 구조였다. “여기서 가장 먼저 끊어야 하는 선이 뭘까요?” 그가 지도에 줄을 긋자 라일이 수프를 떠먹다 고개를 들었다. “창고 입구겠죠. 사람을 들이지 못하면 장사를 못 할 테니까.” “하지만 항만청의 장치가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카렌이 말했다. “그러면 안에 들어가서 누가 돈을 내는지 알아야 해요. 한 가지는 약속해 주세요. 이안을 만난다면 내게 먼저 말해 줘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단호했지만 손끝은 숟가락을 쥔 채 조금 떨렸다. 무엇보다 동생이 살아 있다는 가능성을 얻은 뒤가 더 괴로운 듯했다. 얼마든지 달려갈 수 있는 거리인데 그 거리 끝의 문을 열지 못하는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 식당 주인이 외상 장부를 가져오며 손님들에게 물었다. “아까 바깥에서 누굴 찾던데요. 당신들 일행인가?” “누굴요?” “작은 체구의 청년이요. 분명 이름을 말했는데….” 그녀는 말하다 말고 이마를 문질렀다. 잊은 말이 목구멍 끝에 걸린 사람처럼 답답한 표정이었다. 라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차림은?” “갈색 조끼에, 한쪽 소매가 찢어졌어요. 오른쪽 장화 뒤꿈치에 쇠붙이가 달려 있었고.” 진혁은 재빨리 그 특징을 적었다.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지는 남는다. 머리카락, 말버릇, 걸음걸이, 외상으로 사 간 수프의 값. 그는 내일 다시 이 식당에 와 증언을 받아 둘 생각이었다.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네요.” 진혁의 말에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죠. 적어도 지금 본 것은.” 그들은 수프값을 정산했다. 진혁이 계산서의 마지막 동화 한 닢까지 확인하자 라일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제발 오늘만큼은 제가 살게요.” “도둑이 돈을 내면 더 불안한데요.” “남의 지갑에서 꺼낸 돈은 아닙니다.” “그게 더 걱정되는 대답이군요.” 라일의 웃음이 조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루멘에서는 헥터가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실종된 세 사람의 출입 기록을 창고 노동자의 증언과 대조하던 그는 라일의 이야기를 듣고 오랜 시간 고개를 숙였다. “데브는 입사한 지 반년 된 직원이었네. 맡은 일을 제일 꼼꼼하게 했지. 겁이 많아서 야간 순찰도 피하려 했는데.” “겁이 많아도 다른 사람을 지킨 거네요.” 진혁이 말했다. 헥터는 명부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래. 그런데 나는 걔가 사라진 날 오전에는 휴가였다는 기록을 믿었어. 그 기록이 누가 쓴 것인지도 확인하지 않았고.” “이제 확인하면 됩니다.” “말은 쉽지.” “쉽지 않아서 다들 월급 받는 거잖습니까.” 헥터는 피식 웃더니 책상 아래에서 두꺼운 소가죽 장부 하나를 꺼냈다.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닳은 오래된 창고 접수 원부였다. 공식 기록은 마법 인장으로 작성했지만 헥터는 습관처럼 종이 장부에도 수기로 화물의 반입 수량을 적었다. 진혁은 그 낡은 습관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마법으로 이름을 지울 수 있어도 사람 손으로 세어둔 상자의 무게까지 한꺼번에 바꾸기는 어렵겠네요.” “그렇지. 창고가 비어 있었다는 날에 반입된 상자 수가 서른둘이야. 그런데 밖으로 나간 건 서른한 개지.” “한 개가 남았다는 겁니까?” “숫자상으로는.” 라일이 장부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마지막 칸의 작은 표시를 보자 손가락이 멈췄다. 수량 옆에는 ‘분실 우려 물품, 손으로 이동’이라는 말이 있었다. “짐이 아니었어요.” “그럼?” “이것들은 사람을 상자로 셌어요.” 방 안에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혁은 다시 장부의 수량을 세었다. 열둘, 셋, 일곱. 출입 시각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는데 세 사람의 실종일과 꼭 맞았다. 그들의 이름을 지워도 화물이 하나 덜 나갔다는 사실은 남아 있었다. “한 명이 아니라 셋 다 아직 어디엔가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아니면 셋이 하나의 기록으로 합쳐졌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 세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막 집무실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외투 소매에는 봉인실에서 묻은 푸른 먼지가 남아 있었다. “사람을 숫자로 다루는 놈들이라면 충분히 할 법해. 우리가 찾아야 할 건 출입 기록만이 아니야. 저들이 어떻게 이름과 몸을 서로 다른 재산으로 취급하는지 알아야 해.” 진혁은 종이 장부를 살폈다. 기름 묻은 손으로 써 내려간 삐뚤빼뚤한 글씨는 마법 인장이 있는 정식 문서보다 오히려 믿음직했다. 도둑이 두고 왔다는 장부가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건 엄청난 보물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들이 살아 있었다고 말해 주는 마지막 증거일지도 몰랐다. 라일은 책상 아래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안에는 낡은 동전 하나와 절반이 찢긴 이름표가 있었다. 이름표에는 ‘데브’라는 글씨만 남아 있었다. “사실 훔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어요.” “뭔데요?” “그 사람의 이름.” 라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도망갈 때 데브는 자기는 기억해 달라고 했어요. 나는 그 말만큼은 지웠다가 다시 떠올리기를 수없이 반복했죠. 누가 나한테 무엇을 줬는지 잊지 않으려고.” 진혁은 문득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기억이 화폐처럼 거래된다면 누군가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얼마짜리일까. 검은 초대장에 쓰인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물건’이 꼭 괴상한 유물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값을 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에 가까울 수도 있었다. 그때 창밖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 루멘의 업무 종료 신호가 아니었다. 항만청의 야간 경보였다. 헥터가 창문을 열자 멀리 바다 위에 노란 등불들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광경이 보였다. 바람이 강해지고 있었다. 세리아가 책상 위에 새 소식지를 내려놓았다. 항만청은 갑작스럽게 북쪽 부두의 방벽 점검을 공지했고, 점검 기간 동안 그 구역의 모든 선박에 대한 손해 책임은 ‘사전 통지된 특별 계약 조건’에 따른다고 적었다. 진혁은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 “선박들이 손해를 입기도 전에 책임을 포기한 겁니까?” “법률가들이 좋아하는 방법이지.” 라일이 말했다. 진혁은 피곤한 눈을 비볐다. 점점 드러나는 것은 한 번의 경매가 아니었다. 도시의 공적인 기록, 노동자의 생계, 사라진 이름들이 같은 실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실의 끝에는 누군가 이미 ‘내일’이라는 상품 번호를 달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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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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