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비축고 남측 수로 점검은 해가 뜨기 한 시간 전 시작됐다. 운하 수문을 점검하는 시간은 선박 운항이 가장 적고 수면이 안정된 새벽이었다. 궁성 밖의 시장은 아직 불을 밝히지 않았지만, 수문 위 작업장에는 기름등과 휴대용 난로가 줄지어 놓였다. 추위에 얼어붙은 밧줄을 두드리는 노동자들의 소리가 물 위로 번졌다.
진혁은 안전모를 쓰자마자 불평했다. “이건 왜 이렇게 무겁습니까?”
장재휘가 턱끈을 조이며 대답했다. “머리보다 가벼우면 보호를 못 하니까요.”
“정말 기술자답게 잔인한 답변이네요.”
남관역에서 잔광 확인기를 손봐 주었던 재휘가 왕도 시설팀의 요청을 받고 합류한 것이었다. 그녀는 오래된 수위계와 기계식 제어 장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동행한 인원은 비축고 시설 책임자, 감정청 조사관 하서린, 수문 관리자 둘, 경비병 셋, 재휘와 윤담, 그리고 진혁 일행이었다. 모든 작업은 허가된 남측 수로에 한정되었고, 잠겨 있는 보관 구역은 봉인을 풀지 않기로 했다.
지백 총괄관은 출발 직전 현장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잠을 못 잔 사람 특유의 피로가 드러나 있었다. 전날 왕실 예산 심사에서 오래된 수로를 가동한 이유를 설명하느라 밤을 샜다고 했다.
“시설 점검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지백이 말했다. “다만 공공 물길을 건드려 사고를 내면 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작하지 않고 측정만 하기로 했습니다.” 하서린이 답했다.
지백은 진혁을 바라봤다. “당신은 왜 이렇게 오래된 것들을 끄집어내는 겁니까? 고장 난 설비를 수리하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얼마나 시끄러워지는지 압니까?”
진혁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지백의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심이 있었다. 하지만 다음 말은 분명했다.
“누가 건드려도 되는 설비인지부터 알아야 수리를 하죠. 특히 사람의 기록이 연결되어 있다면요.”
수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젖은 돌 냄새가 강했다. 벽에는 오래전 철도 용접에서 튄 검은 얼룩이 남아 있었고, 물때가 쌓인 표면은 청록빛이었다. 배수로는 허리 높이만큼 낮은 구간과 사람이 똑바로 걸을 수 있는 구간이 번갈아 나타났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금속 장비가 돌벽에 부딪혀 소리를 냈다.
재휘는 첫 번째 수위계 앞에 멈췄다. 그녀는 각인된 기준점을 옮기지 않고 휴대용 측정기를 옆에 고정했다. 윤담은 새 잔향석 기록과 이전 검사값을 대조했다. 진혁은 낙찰받은 동화 여섯 닢짜리 연결고리를 붉은 천 위에 꺼냈다. 연결고리는 아직 아무 기능도 발휘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얼마나 비싼 걸 알려주는 겁니까?” 재휘가 물었다.
“최소한 동화 여섯 닢 이상이요.”
“입찰 수수료는요?”
“그건 잊어 주십시오.”
현장 책임자는 출발 전에 각자의 역할을 다시 확인했다. 수문 관리자는 수위가 갑자기 바뀌면 경보를 내고, 경비병은 통로를 비우며, 감정사들은 허가받은 위치에서만 물건을 검사한다. 카렌은 대피 동선을 먼저 확인했다. 그녀는 싸우는 것보다 사람이 뒤처지지 않게 돕는 일이 오늘의 검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길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왕도에서 내려오는 두 개의 생활 하수 통로, 운하로 직접 연결되는 화물 수로, 수위가 높아질 때만 쓰는 비상 배수로가 좁은 공간에서 교차했다. 벽에 다른 시대의 보수 표식이 겹쳐 있었다. 왕실의 사각 인장, 기술 조합의 둥근 도장, 이름을 알 수 없는 손바닥 자국까지. 물은 그중 어느 시대의 도장이든 가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윤담은 장비를 대는 손을 떨지 않았다. 그러나 진혁은 그가 입술을 꽉 깨무는 것을 보았다. 왕도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실수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결정을 내릴 때가 있었다. 진혁은 그에게 작은 농담을 건넸다.
“윤담 씨, 우리 둘 중 누가 더 돈을 잃을 것 같습니까?”
“분명히 당신이죠.”
“왜요?”
“부품 값을 적는 사람이 당신이니까요.”
윤담은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그는 흔들리는 손을 다시 장비 위에 올렸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경쟁에서 시작했지만, 물속에서 같은 오류를 찾아내는 동안 한쪽이 다른 쪽의 실수를 잡아 주는 동료가 되었다.
재휘는 벽에서 샘솟는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지 않고 시약에 떨어뜨렸다. 겉으로는 같은 물이지만 염분과 금속 함량이 다른 물길이 있었다. 누군가가 만든 오래된 지도만 믿고 움직일 수 없는 이유였다. 새 측정값을 직접 얻어야 했다.
“이건 북측 이송로에서 내려오는 물이에요.” 재휘가 말했다. “오늘은 원래 이쪽에 흐르면 안 되는데.”
진혁은 종이에 그 사실을 적었다. 이상이 생겼다고 모두 무너뜨리거나 범인을 쫓아갈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아는 것이 우선이었다.
라일이 웃다가 수로 건너편에서 들린 작은 금속음에 귀를 세웠다. 물속 어딘가에서 쇠사슬이 느리게 당겨지고 있었다. 수문 관리자가 고개를 들었다. 평소라면 사람이 조작해야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누구도 제어 레버에 손대지 않았다.
“기록 장치를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재휘가 말했다.
수로 벽의 시계 바늘이 네 시 십칠 분을 가리키며 잠시 멈췄다. 실제 시각은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남관역 사고 시각과 겹치는 숫자였다. 진혁의 등골에 서늘한 감각이 흘렀다. 그가 시간을 마법처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도록 설계한 장치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재휘가 한쪽 계측함을 열자 낡은 구리 인장 두 개가 나란히 박혀 있었다. 하나는 왕실 쌍관 문장, 다른 하나는 가늘게 갈라진 그림자 같은 도형이었다. 원래는 하나의 인장이 찍혀야 하는 자리였다. 두 도형의 조각이 서로 비껴 박혀 있어 정면에서 보면 하나로 겹쳐 보였다.
“이게 뭐죠?” 카렌이 물었다.
“출고 승인과 수취 확인을 서로 다른 기관이 해야 할 때 쓰는 복합 인장입니다.” 재휘가 설명했다. “한쪽만 찍히면 물건을 내보낼 수 있지만, 최종 수령이 되지는 않죠.”
세리아가 숨을 멈췄다. “유나가 남긴 두 가닥 선이… 원래는 두 사람의 서명을 뜻하는 줄 알았어.”
“둘이 아니라 두 절차였을 수도 있겠군요.” 진혁이 말했다.
재휘는 인장을 분리하지 않은 채 고해상도 모사판에 찍었다. 그림자는 같은 듯 달랐다. 왕실 인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수문 보수 기록에 정상 사용된 것이었고, 다른 그림자는 열두 해 전 이후 사용이 중지됐다는 관리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그림자 아래에는 새로 묻은 푸른 윤활유가 남아 있었다.
“최근에 움직였습니다.” 윤담이 말했다.
“그렇다고 사용자가 지백 총괄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서린이 즉시 기록했다.
그때 멀리서 물이 일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수로 끝에 설치된 목재 가림막이 흔들렸다. 수문 관리자는 당황해 손등의 땀을 닦았다. 제어 레버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아래쪽 물이 빠지고 있었다. 물길 밖 다른 수문이 열린 것이다.
“전체 퇴피 준비.” 하서린이 명령했다. “관찰을 중지하고 상부 안전 통로로 이동합니다.”
카렌은 앞장서지 않고 뒤쪽에서 모두가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라일은 동작이 느린 기술자를 붙잡아 끌어 올렸다. 진혁은 연결고리를 챙기다가 바닥에서 작은 발자국들을 보았다. 어린아이 발크기쯤 되는 오래된 흔적이 마른 석회 가루 위에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발자국이 아니라 물건을 끌어 올릴 때 찍힌 좁은 구두 모양의 쇠바퀴 자국이었다.
“라일, 저거 봐!”
라일이 무릎을 굽혔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내가 저 바퀴를 닦았어요. 어렸을 때.”
“기억났어?”
“누가 시킨 건지 몰라요. 하지만 손에 검은 기름이 묻어 있었고, 그때 누군가 바퀴에 손을 넣지 말라고 했어요.”
카렌이 두 사람을 붙잡았다. “기억 이야기는 위에서 해. 지금은 물이 오잖아.”
급류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구두가 젖는 정도였지만,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발목을 붙잡는 힘이 생겼다. 라일은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작은 기름등 하나 때문에 두세 개로 늘어나 보이는 것을 보았다. 어린 시절 이런 곳에서 길을 잃었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기억이 그를 잠시 멈춰 세웠지만, 카렌이 곧 큰 소리로 불렀다.
“라일, 오른쪽 벽을 잡아요! 왼쪽은 배수 홈이야!”
라일은 그녀의 지시대로 손을 움직였다. 감정사나 검사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들의 작업장에서 배워 온 안전 표식이 목숨을 구했다. 진혁은 자기 주머니 속 고리를 놓치지 않으려 하다가 그 물건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 손을 바꿔 쥐었다. 물건이 자신을 끌고 넘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뒤쪽에 있던 재휘는 낮은 턱에 걸린 운반 상자를 밀어냈다. 상자가 흐르는 물에 넘어가며 소음을 냈지만, 그 덕분에 마지막 사람이 몸을 통과시킬 공간이 생겼다. 그들은 돈과 증거를 들고 들어왔지만, 나갈 때 가장 먼저 세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숫자였다.
그들은 위쪽 안전 통로로 달렸다. 물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좁은 통로에서는 한 사람의 호흡도 크게 울렸다. 뒤따르는 재휘가 발을 헛디뎠지만 라일이 벽의 손잡이를 잡고 그녀를 붙들었다. 끝에 남은 카렌은 금속문이 닫힐 때 모두가 안쪽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위로 올라오자 새벽이 밝아 있었다. 물이 솟아오른 것은 한 구역에 한정되었고, 비상 차단문이 작동해 큰 사고는 막았다. 하지만 기사가 설명한 대로라면 공식 조작실에서 해당 수문을 연 기록은 없었다. 제어 신호만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이다.
진혁은 숨을 고른 뒤 하서린에게 두 인장 모사판을 넘겼다. 그것은 최초 수취인이 누구인지 알려 주지는 않았지만, 한 기관의 의사로 출고와 수령을 동시에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안전장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때 세리아가 오래된 구리 인장의 문양을 다시 보았다. 두 번째 그림자의 아래쪽에 바늘로 긁은 듯한 세 글자가 있었다.
‘유나 보관.’
세리아는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유나의 이름이 범인의 서명처럼 남아 있는지, 아니면 위조를 막으려 새긴 표시인지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 이름은 지난 열두 해 동안 누군가 계속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축고 북쪽에서 전시품을 실어 나르는 왕실 화물차가 한 대 출발했다. 장부에는 정식 매각 물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차체 아래에는 젖은 황동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지켜보던 라일이 낮게 말했다.
“43번입니다. 저 물건이 움직이고 있어요.”
제13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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