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납액 전액 상환 완료.’
그 통지서는 보기에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미엘라는 그것을 받고 밤새 잠들지 못했다. 돈을 내준 사람도 없었고, 사과도 설명도 없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바로 다음 날 빚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누군가 다른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진혁은 종이를 빤히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가장 불길한 영수증이군요.”
서린은 문구를 꼼꼼히 확인했다. 통지서를 발송한 기관은 왕실 회계청이 아니라 비축고의 정산 대행 부서였다. 회계청이 공인한 최종 결론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통지서에는 이의 신청 안내도 없었다. 정산 완료라는 두 글자만으로 실제 금전 지급이 이루어졌다고 믿을 수 없었다.
미엘라는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으면 좋았을까요?”
“아니요.” 세리아가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빚이 생기면, 그건 더 무서운 일이니까요.”
진혁은 미엘라에게 계약을 대신 받아 주겠다는 식의 약속을 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자 임금 상담 담당자를 연결했고, 그녀가 복사할 수 있는 발송 기록과 보존해야 할 봉투를 정리해 주었다. 세리아는 치료비와 왕도 체류비를 지원하고 싶어 했지만, 미엘라는 자신이 조사에 이용될까 우려했다. 세리아는 아무 조건 없는 교통비만 전달하고 나머지는 담당 기관을 통하기로 했다.
한편 비축고의 작은 부품 매각회가 공개되었다. 본 경매에서 제외된 소모품 가운데 검사 비용이 물품 가격보다 비싼 것들을 다루는 별도 행사였다. 창고 바닥의 쇠못, 오래된 저울추, 고장 난 깃발 걸이, 동화 한 닢에서 시작하는 잡동사니가 대부분이었다. 사교계 사람들은 오지 않았고, 대신 수리공과 마차 제작자, 작은 상회 사장들이 모였다.
윤담은 진혁에게 전화를 대신한 짧은 전보를 보냈다. ‘원래 출품번호 43번과 같은 재질의 물품이 소모품 목록에 하나 더 있음.’ 그는 잔향석을 공동 분석하는 조건으로 해당 정보를 공유한 것이었다. 진혁은 세리아와 카렌, 라일을 데리고 작은 경매장을 찾았다.
그곳은 왕궁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천장은 낮고 수증기가 차 있었으며, 물건들이 주제별로 나무 상자에 담겨 있었다. 입찰자들의 옷차림도 왕실 특별 경매와 달랐다. 어떤 남자는 바지에 톱밥을 묻힌 채 왔고, 어떤 여자는 손톱이 검게 물든 손으로 매각 목록의 부품 치수를 재고 있었다. 진혁은 그들이 자기에게 익숙한 화려한 수사 대신 나사 길이와 용접 여부를 물어보는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장 먼저 팔린 물건은 뚜껑이 없는 구리 솥이었다. 진혁은 솥을 만지지도 않았지만, 옆에 선 여자가 그것을 보자마자 손을 든 이유는 궁금했다. 여자는 왕도 외곽에서 빵을 굽는 사람이라고 했다. 솥이 낡았어도 바닥의 열이 고르게 퍼지기 때문에 작은 작업장에서 다시 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은 감정 능력을 가진 서진혁뿐이 아니었다.
“이런 데 오면 좀 부끄럽네요.” 진혁이 속삭였다.
“왜요?” 라일이 물었다.
“저분들은 물건을 만져 보지 않고도 쓸모를 알잖아요. 저는 마법의 글씨를 읽고도 모르던 게 많습니다.”
라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배우면 되죠. 도둑도 항상 새 자물쇠를 배웁니다.”
카렌이 뒤에서 기침했다. “직업 비유는 좀 바꿔 줘.”
경매사는 품목이 많아 빠르게 호가를 불렀다. 입찰자들은 상대의 얼굴보다 물건의 나사산과 균열을 더 자세히 봤다. 도구 한 점의 마모도에 따라 손해가 정해지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진혁은 9번 상자에서 가장 작은 물건을 보았다. 푸른 녹이 낀 동그란 쇠고리. 용도 미상, 시작가 동화 한 닢. 고리 한쪽에는 어제 잔향석 실험기에서 본 것과 비슷한 작은 홈이 있었다. 손을 가까이 대자 짧은 정보가 떠올랐다.
[대상: 수로 이송 연결고리.] [실제 기능: 상부의 전달 지점을 하부 접수함과 연동.] [현재 상태: 외부 제어 권한 없음.] [오래된 기록: 연결 대상과의 접촉 흔적 보존.] [안전 주의: 물에 잠긴 상태에서는 작동 점검 금지.]
그 물건은 제0보관실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가 그 안팎을 오간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고리였다. 진혁은 잠시 웃었다. 거창한 문을 열 수 없더라도 문 앞을 지나간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면 충분했다.
“동화 한 닢.” 경매사가 외쳤다.
진혁은 패를 들었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붉은 장갑을 낀 상인이 동화 두 닢을 불렀다. 사소한 물건에 경쟁이 붙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상인은 진혁의 명패를 보더니 고리를 다시 바라봤다. 진혁은 괜히 가격을 올릴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 자리는 큰돈이 오가는 영웅의 무대가 아니었다. 수리공에게 필요한 물건을 이유 없이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은화 한 닢까지.” 세리아가 속삭였다.
“그렇게 많이요?”
“전시장 물건을 훔쳐 가는 사람이 있는 판이야. 같은 목적의 부품을 확보할 기회가 흔하겠어?”
상인은 동화 다섯 닢에서 멈췄다. 진혁은 동화 여섯 닢에 낙찰받았다. 생각보다 싸게 끝났다. 패를 내리고 나서 그는 괜히 허탈해졌다.
“엄청난 눈치싸움을 준비했는데 다섯 닢에서 포기하셨네요.”
“상대가 멍청해서가 아니에요.” 카렌이 말했다. “그에게 여섯 닢의 가치가 없었겠죠.”
붉은 장갑을 낀 상인은 실제로 수문 수리공이었다. 그는 가까이 와서 물었다. “그 고리, 어떤 데 쓰는지 아십니까?”
진혁이 설명하자 상인은 혀를 찼다. “난 수문 시계 받침으로 쓰려던 거였는데. 그 정도라면 당신한테 더 필요하겠네요. 대신 나중에 쓸모없는 황동 못이 나오면 알려 줘요.”
그들은 웃으며 악수했다. 싸게 산 물건을 둘러싼 경쟁이 반드시 원한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물건을 다르게 보는 시선 때문에 시장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낙찰 물건의 인수는 오히려 까다로웠다. 경매대가 공식 물품이고 출고 절차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은 돈을 냈다는 영수증, 해당 고리가 규제 설비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는 기술 확인, 보관 가능한 기간을 기록한 서류에 서명해야 했다. 하서린은 별도의 증거 가능성이 있다며 사진과 계측값을 남겼다. 소유권은 진혁에게 넘어왔지만, 그것으로 비축고의 운하 접근권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수대에서 물품을 건네주던 노년의 직원은 진혁에게 낙찰증 뒷면을 꼼꼼히 읽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비축고의 잡동사니를 운반해 왔고, 사람들은 그를 고물 아저씨라고 불렀다. 하지만 손등에는 오래된 마법 화상이 남아 있었고, 각 부품의 무게와 보관 기한을 머릿속으로 외우고 있었다.
“국가가 판다고 해도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야.” 노인이 말했다. “어떤 물건은 규격 때문에 한곳에서만 쓸 수 있고, 어떤 물건은 돈 들여 고쳐도 아무 도움이 안 돼.”
진혁은 고리를 들여다봤다. “그럼 이건 어디서 쓰였나요?”
“예전에는 수문 아래에 달던 거지. 그런데 우리 아버지 말로는 한쪽 물건을 다른 쪽으로 건넬 때 틀리지 말라고 걸어 두는 표시였대.”
“틀리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죠?”
“보낸 쪽은 보냈다고 적고, 받은 쪽은 받아야 받았다고 적어야지. 중간에서 한 사람이 둘 다 쓰면 세상이 엉망이 된다나.”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그러나 진혁에게 그 설명은 그날 입찰보다 중요했다. 오래된 기계의 부품 하나를 경매장에서 팔았어도, 그것을 만졌던 사람들이 남긴 일의 원칙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카렌은 정식 인수 대장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갈 필요가 있는지 확인했다. 공동 소유가 아니라 경호 자격으로 동행했으니 인수인이 될 이유가 없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자리의 서명란만 남겨 두었다. 기계가 깔끔하게 도장을 찍어 주는 시대였지만, 진짜 손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방식은 여전히 필요했다.
그날 점심에는 작은 경매장에서 산 물건들의 낙찰 확인서가 게시되었다. 동화 여섯 닢짜리 고리 외에도 톱니에 금이 간 시계, 탄성이 죽은 마구, 지워진 나무자 등이 팔렸다. 수리공들은 저마다 물건을 가져가 시험했다. 좋은 물건은 마법의 빛보다 생활 속에서 얼마만큼 버티는지에 따라 값이 달랐다.
윤담은 기술 분석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도 계약서에 한 줄을 적었다. '검증 중 파손될 위험을 사전에 고지한다.' 진혁은 그 문장을 보고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뒤이어 공공 설비에 잘못 연결했다가 사고를 내는 것보다는 작은 고리를 잃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진혁은 시험실에서 고리를 진동 감지 장치에 올렸다. 윤담이 가져온 잔향석과 결합하자 금속이 아주 짧게 떨렸다. 옛날 기록과 현재 수위 변화의 편차를 나타내는 파형이 나타났고, 그것이 얼마 전에 지운 43번 출품품의 도면 홈과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 뭘 할 수 있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누군가 수문을 바꾼 시각과 이송 장치가 작동한 시각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증거는 아니지만 이동 경로를 추정할 수 있죠.”
윤담은 펜촉으로 두 파형의 간격을 쟀다. 비축고의 숨은 창구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각은 전시물 분실 신고보다 열일곱 분 앞섰다. 같은 시각에 남쪽 수문에서 일상 점검이 취소된 기록도 발견됐다.
“그러면 무슨 뜻이죠?” 라일이 물었다.
“누군가는 43번 황동판을 훔치기 전에 수면부터 조절했습니다.”
진혁은 작업 기록을 받아 열일곱 분의 빈칸에 동그라미를 쳤다. 누군가 대놓고 서류를 지웠다면 분실을 숨기려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물길을 먼저 바꿨다면, 출품품을 빼내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해가 기울 무렵 서린이 미엘라의 회계 사건을 확인했다. 체납액이 사라진 대신 ‘왕실 비축고 특별 정산 계정’에 같은 액수가 등록되어 있었다. 납부자란은 비어 있었다. 빚은 갚아진 게 아니었다. 단지 누가 받을지, 누가 갚아야 할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진혁은 자신의 작은 연결고리를 바라봤다. 가장 싼 경매품이 어쩌면 수천 명의 빚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보여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사실을 증명하려면 비축고 아래의 물길을 공식적으로 조사할 권한이 필요했다.
바로 그때 감정청에서 봉인된 공문이 도착했다.
‘왕도 중앙 비축고 남측 수로 안전 점검 승인. 조건: 민간 감정 참고인 동행 가능. 수문 조작 금지. 제0보관실 접근 허가 아님.’
카렌은 공문을 두 번 읽었다. “또 물속이네요.”
진혁은 고리를 주머니에 넣으며 웃었다. “이번엔 적어도 동화 여섯 닢으로 시작했군요.”
제1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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