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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35화
PAYLUA ORIGINAL · 제135화

135화. 빚을 갚는 거울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439자

오프라인 책장
운하로 사라진 배를 쫓아갈 수 없었다. 수문 위에는 야간 작업 금지 팻말이 걸려 있었고, 물길 너비는 작은 배 한 척이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하서린이 방위병을 불렀을 때에는 선박의 그림자조차 사라진 뒤였다. 라일은 수문 위 돌다리에 서서 물의 냄새를 맡았다. 어린 시절 어디선가 맡았던 진한 송진 냄새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누군가 비를 막기 위해 갑판 틈에 송진을 발라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은 그것뿐이었다. 배에 탄 사람의 얼굴이나 자신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카렌은 라일의 옆에서 한동안 기다렸다. “쫓아가겠다고 뛰어들 줄 알았는데.” “그랬으면 멋진 도둑이 아니라 젖은 시체가 됐겠죠.” “괜찮은 판단이네.” “예전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어요.” 라일이 웃었지만 금방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이 가벼운 농담으로 남들이 겪는 두려움을 덮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누군가 자기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러나 강제로 끌어낸 기억이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부수는 장면은 남관역에서 이미 보았다. 다음 날 경매 두 번째 일정은 예정대로 열렸다. 사건 조사팀이 분실 품목의 이동 경로를 따로 추적하는 동안, 왕실은 인근 고아원과 운하 보수비에 쓰일 정리 수익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진혁은 그 설명이 얼마나 실현되는지 나중에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공개 목록에 올라온 물건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는 높이 한 사람만 한 거울이 걸려 있었다. 은이 거의 벗겨진 테두리, 군데군데 얼룩진 유리. 정면에서 바라보면 얼굴이 길게 늘어났다가 짧아져 우스꽝스러웠다. 출품번호 28번, 제목은 ‘연체 청산용 비취거울’. 예전 왕실 회계청에서 채무관계의 합산 상태를 보여 주는 장치로 썼다고 하나, 사용자의 사적인 기억을 비춘다는 괴담 때문에 봉인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저건 사지 마.” 카렌이 먼저 말했다. “아직 감정도 안 했는데요.” “당신 얼굴이 두 배로 늘어나는 건 볼 수 있지만, 사람 속까지 보이는 거울은 싫어요.” 세리아가 목록을 들여다봤다. “저 거울 때문에 채무자로 몰린 사람들도 있다는 기록이 있어. 경매원이 기능을 보증하지 않는다고 표시한 이유가 있겠지.” 진혁은 멀찍이서 거울을 보았다. 능력이 오래된 유리에 남은 그림자 같은 글씨를 띄웠다. [대상: 채무 상계 거울.] [실제 기능: 공탁 기록에 남은 미정산 수치를 광학 문자로 투영.] [이상 상태: 제3반사판 소실로 채권자와 채무자 표시가 뒤바뀔 수 있음.] [제한: 장치가 투영하는 기록은 법적 채무 확정의 증거가 아님.] “거울이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설명서를 잃어버린 거군요.” 진혁이 말했다. 그때 낡은 외투를 입은 여자가 전시장에 들어왔다. 여자의 손에는 어린아이 신발 한 켤레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거울의 유리함을 보자마자 발길을 멈췄다. 진혁은 낯선 사람이 울먹이는 것을 보고 말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안내 직원이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직원이 안내문을 보여 주자 여자는 조용히 물었다. “저 거울이 다시 팔리면, 우리 남편의 빚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나요?”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여자의 남편은 비축고 운송 노동자였고, 십 년 전 사고 후 남긴 임금이 정산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실 회계청에서 체불 임금 대신 부채를 상속하라는 통보가 왔다. 여자는 아이를 키우느라 오랫동안 항의할 기회를 잃었다. 하서린은 여자의 이름과 관련 서류가 있는지 물었다. 여자, 미엘라는 낡은 봉투를 내밀었다. 서린은 그 자리에서 문서를 다 읽지 않고 별도 상담 창구로 안내했다. 사적인 금융 기록을 관람객 앞에서 펼칠 수는 없었다. 진혁은 그 광경을 보다가 거울에 관심이 생겼다. 저 물건은 잘못 쓰면 끔찍하지만 정확히 수리하면 오래된 회계 오류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다만 개인의 사정을 듣고 영웅처럼 물건을 사 버릴 수는 없었다. 시작가는 금화 다섯 닢이었다. 루멘의 운영비에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경매가 시작되자 의외로 비싼 입찰이 붙었다. 왕도 상인 두 사람이 서로 가격을 올렸다. 거울의 기능보다 왕실 회계청 출신이라는 경력, 그리고 사람들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소문이 매력적인 듯했다. 진혁은 점점 불안해졌다. 입찰자가 저주를 없애려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금융 기록을 볼 사람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면 안 됩니까?” 카렌이 물었다. “금화 열 닢 넘었습니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그냥 보내야 해요?” “아뇨. 남의 돈으로 할 수 있는 정당한 절차가 있죠.” 진혁은 유물의 위험 가능성을 경매사에게 신고했다. 손바닥의 문자를 근거로 들지 않았다. 거울이 소개 시연 중 사람의 좌우 얼굴을 반대로 비추는 현상, 테두리의 빈 나사 구멍, 회계청의 구형 설명서에 그려진 세 장의 반사판을 대조했다. 윤담이 기술 참고인으로 나서서 제3반사판 결손 가능성을 확인했다. 경매사는 입찰을 중단했다. 비싼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됐다고 항의하는 소리가 터졌지만, 정식 안전 신고가 받아들여지면 다시 검증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오스카 벨턴의 측근이라는 소문이 있는 한 상인이 진혁을 노려봤다.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또 경매를 방해하는 거요?” “당신 좋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진혁은 침착하게 말했다. “가격을 올린 물건이 사실은 반대로 계산하는 계산기라면, 나중에 더 큰 손해를 볼 테니까요.” 그는 말끝에 웃지 않았다. 미엘라 같은 사람이 그 물건 때문에 실제 피해를 입었다면 장난이 아니었다. 상인은 입을 다물었다. 경매사는 거울을 검증 대상으로 이관하고, 출품을 일시 보류한다는 결정을 낭독했다. 미엘라의 집은 운하 동쪽의 세탁소 위층에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오르면 삶은 천 냄새가 가득했고, 창문에는 햇빛에 희게 바랜 아이 옷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작은 난로 하나로도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지붕을 수리할 돈이 없어 바람이 밤마다 들어왔다. 미엘라는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자신은 일했고, 아이를 키웠고, 할 수 있는 만큼 세금을 냈다. 그런데 서류에는 일을 한 사람이 아니라 빚을 갚지 않은 사람으로 적혀 있었다. “남편은 사고가 나기 전날도 비축고에 갔어요. 잘못 쌓은 상자를 옮기면 다음 달에 보너스를 준다고 했다고요.” 세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사고의 원인을 조사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누가 어떤 상자를 옮겼고 왜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는지 알아내는 일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 하나가 문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는 낯선 사람들의 장갑과 검집을 차례로 보다가 라일의 손에 시선을 고정했다. 라일은 반사적으로 손목의 작은 도구 주머니를 감췄다. “아저씨는 마술사예요?” 아이가 물었다. “아저씨는 아니고, 아주 뛰어난 손기술 전문가야.” “그럼 이 단추 고칠 수 있어요?” 아이는 단추가 빠진 외투를 내밀었다. 라일은 당황했지만 주머니에서 바늘과 실을 꺼냈다. 단추를 훔치는 것보다 꿰매는 일이 느렸고, 손은 생각보다 자주 미끄러졌다. 카렌이 옆에서 도와주자 라일은 뚱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이런 종류의 기술은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럼 오늘 배우면 되죠.” 소년은 외투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었다. 라일은 그 웃음을 오래 바라봤다. 자기가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했던 것이 편지인지, 이름인지 아직 모르지만, 오늘 아이에게는 단추 하나를 돌려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진혁은 거실의 작은 탁자에 올라온 오래된 급료 영수증을 보았다. 이자를 계산하면 액수가 커졌지만, 미엘라가 정말 원했던 것은 숫자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일을 했다는 사실을 누군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마음을 계산 장부의 빈칸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오후 미엘라가 진혁 일행을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경매장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진혁은 자신이 들은 일은 기록하지 않았으며, 상담 자료는 서린이 별도로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도 오래된 임금은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모릅니다.” 카렌이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거울이 누군가를 빚쟁이로 만들었다는 주장과, 실제 회계 장부가 그렇게 기록했는지는 나눠서 볼 수 있어요.” 미엘라는 아이 신발을 꼭 끌어안고 돌아갔다. 진혁은 그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사람에게는 금화 몇 닢이 아니라 십 년 동안 못 받은 한 달치 급료가 인생의 큰 빚일 수도 있었다. 경매가 끝난 뒤 미엘라에게서 감사의 쪽지가 왔다. 진혁은 처음에 돈을 요구하는 글이 아닐까 괜히 긴장했다. 하지만 쪽지에는 아이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단추를 고쳐 줘서 고마워요'라고 적혀 있었다. 라일은 쪽지를 받아 들더니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저걸 그렇게 오래 읽어?” 진혁이 물었다. “철자가 두 군데 틀렸어요. 다음에 알려 줘야겠네요.” “기억해 주기만 하면 된 거 아닌가?” 라일은 쪽지를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자기가 누구였는지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는 존재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저 단추 하나를 꿰매 주었을 뿐인데, 아이에게는 오늘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카렌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손기술 전문가에게 새 일이 생겼네요.” “저 이제 외투 수리까지 의뢰받는 겁니까?” “돈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요.” 라일이 잠시 생각했다. “그럴 바엔 도둑이 더 수익이 좋을지도요.” “그 말은 서류에 기록해 두지.” 하서린이 지나가며 말했다. 모두 웃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상담 창구 바깥에는 미엘라처럼 설명되지 않은 통지를 받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조금 전의 웃음과 그들의 불안은 같은 공간에 있었다. 진혁은 그 모순을 억지로 해소하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오늘 미소를 지어야 내일 다시 항의할 힘이 생기기도 했다. 밤이 되자 윤담이 작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거울 시연 중 반사된 회계 번호를 기록해 둔 종이였다. 가장 최근에 처리된 일괄 정산의 담당 기관은 ‘왕실 중앙 비축고 제0접수’라고 적혀 있었다. “열두 해 전에 폐쇄됐다는 부서가 작년에도 회계 처리를 했다는 뜻인가요?” 진혁이 물었다. “표기만 살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윤담이 말했다. “그래서 원장과 대조해야겠죠.” 진혁은 잠시 머리를 쓸어 넘겼다. 황동판이 사라지고, 가짜 동의서가 나타나고, 지금은 사람들의 빚이 수상한 창구로 모이고 있었다. 세리아는 문득 입을 열었다. “유나는 물건을 팔 때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라고 했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진혁은 미엘라의 낡은 신발을 떠올렸다. 이번 사건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값이 얼마나 나가는 장치가 아니라, 그 장치를 이용해 누구의 삶을 어디로 옮기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미엘라의 집으로 ‘체납액 전액 상환 완료’라고 적힌 통지가 도착했다. 서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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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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