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경매 첫날, 왕도에는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젖은 돌바닥에서 구두 굽 소리가 짧게 튀었고, 커다란 우산을 든 귀족들은 마구간을 개조한 전시장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문 앞에서 손님들의 보증금을 확인하는 직원은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왕실 정리품 경매는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는 사교 모임인 동시에 실제로 돈과 소유권이 오가는 자리였다. 등록된 입찰자마다 재정 보증 한도가 달랐고, 낙찰 이후 대금을 치르지 못하면 보증금 일부를 잃었다.
서진혁은 그 규칙을 좋아했다. 적어도 돈을 내기 전에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을 계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리아가 듣더니 웃었다.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기분이 묘하군.”
“사장님, 저는 무모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난달 화령에서 자기 수첩을 담보로 입찰하려고 했던 사람의 말씀인가?”
“그건 서류가 부족해서 잠시 제안했을 뿐이죠.”
카렌은 진혁의 명패를 바로잡아 주었다. “오늘은 소매를 걷지 마세요. 손바닥 문자가 보이면 설명이 어려워집니다.”
진혁은 손을 내려다봤다. 자신만 볼 수 있는 그 문구가 다른 사람에게도 보일까 걱정해 온 습관 때문인지 무심코 소매를 만졌다. 카렌은 그의 긴장을 보았지만 놀리지 않았다. 대신 장갑을 건넸다. 남관역에서 구입한 새 장갑이었다.
“일단 물건을 사야 하니까요. 도둑 찾는 건 조사관들에게 맡기고.”
43번 황동판은 정식으로 출품 취소되었다. 보험 평가와 분실 조사가 따로 시작됐고, 경매원은 안전에 문제가 있는 진열대를 교체했다. 진혁은 물건이 없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출품품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공식 목록과 새로 배포된 교정 목록의 차이를 비교하며 입찰석에 앉았다.
그때 옆자리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낡은 부품에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화령에서 만났던 감정사 윤담이었다. 그는 여행 가방보다 두꺼운 자료철을 들고 있었고, 검은 머리카락 끝에는 빗물이 맺혀 있었다. 예전에는 진혁을 한 수 아래로 보던 눈빛이었지만 이제는 대놓고 경쟁하려는 기색이었다.
“요즘은 부품이 저를 따라다닙니다.” 진혁이 대답했다.
“오늘은 그러지 마세요. 제가 조사하려는 부품까지 사 가면 곤란하니까.”
“제가 먼저 봤으면 제 겁니다.”
“감정 전에는 아무도 주인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웃었다. 불편하게만 이어졌던 경쟁이 조금씩 같은 일에 대한 존중으로 바뀌고 있었다. 윤담은 자신의 의뢰인이 운하 수문 관리국이라고 설명했다. 오래된 수문에 맞는 대체 부품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것은 비축고 아래 수로의 안전과도 관련 있었다.
경매사는 첫 세 물품을 빠르게 넘겼다. 의식용 은잔은 예상가보다 비싸게 팔렸고, 아무 기능도 없는 흑요석 장식은 왕족과의 연관성 때문에 경합이 붙었다. 네 번째 물품인 낡은 황동 종은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아 입찰자가 없었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진혁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 물속에서 쇠를 긁는 듯한 울림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뻗은 물건은 열일곱 번째 출품품이었다. 회색 유리 알갱이가 든 작은 주머니. 목록에는 ‘교체용 잔향석, 파손 다수, 시작가 은화 일곱 닢’이라고 적혀 있었다. 잔향석은 마법과 기계가 섞인 시설에서 마지막 진동을 짧게 저장하는 소모품이었다. 낡은 성문 경보 장치나 광산의 균열 탐지기에 쓰였으나, 시간이 지나면 정보가 흐려져 대부분 버려졌다.
잔향석이 나오기 전 진행된 스무 분의 경매는 진혁에게 유익한 수업 같았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구두 수선공은 마력이 전혀 없는 은실 여섯 타래를 샀다. 귀족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그의 작업장에서는 갑옷 안감의 마찰을 줄이는 데 쓰인다고 했다. 반면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뿔피리는 유명 가문의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예상가 세 배에 팔렸다. 진혁은 가문의 명성을 사는 사람을 비웃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수리 도구가, 누군가에게는 조상의 이름이 진짜 가치일 수 있었다.
그러나 물건에 붙은 이름이 사람을 속이는 도구가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졌다. 경매사는 한때 왕실 경비대가 사용했다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빛이 강하게 반사되는 칼날에는 왕실 문장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관객들은 오래된 전설을 기대했지만 금속 감정기는 평범한 군수 공방의 제작 연도를 표시했다.
“왕실 경비대가 썼다는 것은 기록으로 확인되나요?” 어떤 여자가 물었다.
경매사는 잠시 목록을 살폈다. “실사용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왕실 경비대 규격을 따라 제작한 장식 단검입니다.”
관객 일부가 실망했지만 진혁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정확한 설명은 물건의 매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돈으로 무엇을 사는지 알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감정서에 없는 영광은 입찰자가 따로 사는 것.'
윤담은 그의 수첩을 훔쳐보더니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철학적이네요.”
“밥값을 계산하는 철학입니다.”
“그럼 제 잔향석 입찰값도 알아맞혀 보시죠.”
“왜 선배님이 사려고 하는지부터 알려 주세요.”
윤담은 손끝으로 도면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의 의뢰인인 수문 관리국은 기계식 탐지 장치 일부를 새 장치로 바꾸려 했지만, 구형 기준값이 부족해 새 기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입찰에서 이기더라도 기록을 읽어 낼 수 없다면 돌멩이를 비싸게 산 셈이 될 것이다. 진혁은 어쩐지 그가 자신과 닮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을 참았다.
그의 눈앞에 글씨가 떠올랐다.
[대상: 잔향석 일곱 조각.] [잔존 기능: 수위 변화에 따른 진동 차이 기록.] [유효 조각: 한 개.] [정보 내용: 열두 해 전의 마지막 작동 신호 일부.] [주의: 연속 기록이 아니며 소리의 주체를 특정할 수 없음.]
“열두 해 전?”
그가 속삭이자 윤담이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 “뭔가 봤습니까?”
진혁은 즉시 자세를 고쳤다. “재질이 특이해서요. 수문 계열 부품인 것 같습니다.”
“그건 저도 봤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균열이 갔어요. 남은 기능을 확인하려면 실험실 비용이 더 듭니다.”
경매사가 입찰을 열었다. 은화 일곱 닢.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세리아는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입찰패를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윤담이 은화 아홉 닢을 불렀다.
“선배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수문 관리국에도 필요해서요.”
“방금 실험비가 더 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싸게 사려는 거죠.”
세리아가 은화 열 닢을 불렀고 윤담이 열둘을 불렀다. 진혁은 주머니 속 계산표를 펼쳤다. 경쟁 심리가 들끓었지만 필요 이상의 돈을 쓰면 중요한 사건에서 발목을 잡힌다. 세리아가 더 올리려는 순간 진혁이 조용히 손을 눌렀다.
“멈추죠.”
“놓쳐도 괜찮겠어?”
“가져가야 할 사람에게 가는 게 더 빠를 때도 있습니다.”
윤담은 은화 열둘에 잔향석을 낙찰받았다. 진혁은 입찰이 끝난 뒤 그에게 정식 분석 공동 의뢰를 제안했다. 공동 분석 결과 중 공공 설비 안전과 관계된 부분은 양측이 공유하고, 개인과 계약에 관한 정보가 나오면 권리 검토를 거치자는 조건이었다. 윤담은 처음에는 미심쩍어했지만 자기 돈으로 산 물건을 상대에게 공짜로 주는 제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석비는 누가 내죠?” 윤담이 물었다.
“기록이 공공 안전에 관한 거라면 감정청 수당을 신청하고, 그 외에는 절반씩 냅시다.”
“대충 넘어가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꼼꼼하군요.”
“저도 예산 담당자한테 많이 혼났거든요.”
경매가 잠시 쉬는 동안 진혁은 복도에서 윤담을 만났다. 윤담은 예상보다 비싸게 산 잔향석을 손에 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승리한 사람의 환한 미소가 없었다. 오히려 어떤 장치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술자의 표정이었다.
“은화 열둘이면 맛있는 저녁을 몇 번 먹을 수 있을까요?” 진혁이 물었다.
“그 질문을 하러 오셨습니까?”
“물건을 산 뒤에도 후회하는 감정사가 저 말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워서요.”
윤담은 작게 웃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그만해도 돼요. 같은 물건을 다르게 볼 뿐이지 나이가 많다고 더 정확한 것도 아니잖아요.”
진혁은 잠시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화령에서 서로의 감정서를 비웃던 날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윤담 씨. 제가 모르는 부분을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윤담은 수문 도면의 한 귀퉁이를 펼쳤다. 잔향석은 물소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물을 통과하는 진동의 차이를 남긴다. 따라서 같은 사건을 여러 곳에서 기록했다면 소리가 오는 방향을 비교할 수 있다고 했다. 구형 자료가 세 종류만 있어도 수문 앞에서 발생한 변화인지, 창고 아래에서 발생한 변화인지 대략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자료가 세 개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군요.” 진혁이 말했다.
“적어도 하나는 오늘 샀죠.”
진혁은 그 말에 웃었다. 윤담은 자기가 낙찰받은 물건의 가치를 남들과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그렇다고 혼자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모른 체하지도 않았다. 그는 분석 계약에 서명할 때 자료를 도용하거나 손상하면 서로 배상한다는 항목을 직접 추가했다.
세리아는 계약서를 읽고 윤담을 다시 보았다. “자네, 의외로 사업을 잘하는군.”
“언젠가 루멘에 감정실을 낼 생각이 있습니다.”
진혁이 펄쩍 뛰었다. “경쟁업체 입점을 왜 여기서 협의하십니까?”
세리아는 두 사람을 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감정실이 두 개라면 수수료를 낮출 수도 있겠지.”
“사장님!”
잠시지만 그들은 제0보관실과 오래된 이름, 누군가 사라졌다는 무거운 이야기를 잊었다. 경매장 안에는 이런 건강한 다툼도 필요했다. 어느 물건이 필요한지, 어느 정도까지 값을 지불할지, 누구에게 일을 맡길지 각자 자기 판단을 내리는 다툼이었다.
오후의 간이 실험실에는 젖은 돌 냄새와 따뜻한 구리 냄새가 섞여 있었다. 시설 기사들은 잔향석을 정식 고정틀에 끼워 미세한 진동을 재생했다. 금속판이 세 번 떨린 뒤 얇은 유리에서 작은 종소리가 났다. 마지막 조각은 심하게 탁한 음을 냈지만, 기록지에는 일정한 간격이 남았다.
윤담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낙하 신호가 아니에요. 수면이 내려가며 생긴 음정 변화입니다.”
“사람이 수문을 열었다는 뜻인가요?” 카렌이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수위가 바뀌었다는 사실까지만 알 수 있죠. 원인이 수문인지 펌프인지, 사고인지 의도인지 아직 몰라요.”
그 말을 듣고 진혁은 자신의 감정문에 나온 ‘연속 기록이 아님’을 떠올렸다. 중요한 증거는 항상 말해 주는 것보다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많았다.
기사가 파형을 기록하자 진혁의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열두 해 전 기록과 현재 기준 수위의 차이: 영점 편차 18센티미터.] [동일 규격 기록 가능성 높음.]
그 숫자는 전날 배수 통로에서 확인한 편차와 같았다.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누군가 수위계를 최근 손댄 이유는 옛 사건을 재현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옛 기록을 지금도 유효한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일까.
윤담은 경매 영수증을 접어 넣으며 물었다. “이거면 수문 관리국에서 수리비를 받을 수 있겠죠?”
“그 전에 누가 수리 지시를 내렸는지 확인해야겠습니다.”
실험실 문을 나서는데 하서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긴급 봉투가 들려 있었다. 전시실에서 사라졌던 43번 황동판의 분실 신고가 방금 취소되었다는 통보였다.
“누가 찾았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아무도요. 비축고 쪽에서는 그 물건이 애초에 출품 목록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진혁은 멍하니 봉투를 바라봤다. 물건이 사라진 것만이 아니었다. 그 물건을 본 사람들의 서류에서 물건의 자리를 지우려는 손길이 움직이고 있었다.
제13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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