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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24화
PAYLUA ORIGINAL · 제124화

124화. 동화 스무 닢짜리 잔광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064자

오프라인 책장
남관역의 고물 경매는 기적이 아니라 찻주전자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매주 사흘마다 역 남쪽 광장에서는 분실 수리품과 폐기 예정 부품을 공개 판매했다. 쓸 수 없는 것은 용해장으로 보내고, 고쳐 쓸 수 있는 것은 작은 공방들이 사 갔다. 귀족들이 금화와 가문의 문장을 내세우는 왕도 경매와 달리 이곳의 참가자들은 물건 옆에 놓인 작은 분필로 불량 부위부터 표시했다. 비슷한 부품이라도 나사 하나가 살아 있으면 은화 값이 달라졌다. 진혁은 광장의 천막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는 마음이 편하네요.” “사장인 내가 매일 봤으면 하는 광경이야.” 세리아가 대꾸했다. “지금 우리 손에는 장부 복사비도 모자라지만.” 카렌이 웃었다. “결국 돈 벌 생각이죠?” “돈을 벌어야 여관에서 쫓겨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조사도 밥을 먹으면서 해야 하니까요.” 진혁은 진담이었다. 왕도에서 귀한 유물을 추적한 대가로 얻은 것은 수십 장의 증거 사본과 빚에 가까운 경비 장부였다. 남관역에 도착한 뒤에도 밤마다 넉넉지 않은 방값을 계산해야 했다. 세리아가 개인 돈을 쓰면 간단했지만, 그녀는 루멘의 운영 자금과 이 조사 비용을 섞지 않겠다고 정했다. 조사에 실패해도 경매장 직원들의 월급은 지급되어야 했다. 경매장 입구에는 등록 상인이 번호패를 받아 줄을 섰다. 출품표에는 물품 상태와 반품 조건이 적혀 있었다. ‘현 상태 인도’라는 단어 옆에 고장 여부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물건은 없었다. 진혁은 이것이 당연한 절차라는 사실에 조금 감동했다. “좋은 경매장은 거짓말을 잘하는 곳이 아니라, 거짓말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곳이어야죠.” 라일이 옆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지난번에도 그런 말을 했는데, 그때 산 게 녹슨 쇠막대였어요.” “그 쇠막대가 왕도의 사고를 막았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그때 남은 돈은 여전히 없죠.” 첫 번째 묶음은 오래된 침목용 못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두 번째 묶음은 역 창고에서 나온 온도계 세 개와 깨진 붉은 유리 덮개였다. 진혁은 마지막 상자의 작은 원통을 보자 걸음을 멈췄다.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둥근 유리 안에 호박색 렌즈가 들어 있었다. “저건 뭐죠?” 판매 담당자가 낡은 목록을 읽었다. “신호탑용 잔광 확인기. 구식이라 배터리도 없어요. 고장품으로 일괄 매각. 시작가 동화 스무 닢.” 진혁이 장갑을 벗고 렌즈 아래 금속 홈을 만졌다. 손바닥이 시큰했고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대상: 잔광 확인기 제3형.] [외관 평가: 폐기.] [숨은 기능: 기록등의 마지막 통전 방향 표시.] [작동 조건: 쌍을 이루는 복귀등 근접.] [교환 가치: 현장 검증 가능 여부에 따라 달라짐.] 그는 금세 세리아를 불렀다. “이거면 어제 상자에 있던 표시등을 뜯지 않고 살펴볼 수 있겠어요.” “공동 봉인 창고의 물건을 왜 당신 개인 돈으로 산 도구에 연결해야 하지?” “연결하는 게 아니라 가까이 대는 겁니다. 물건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 허가받기가 쉬워요.” 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도구가 진짜 작동하는지부터 여기서 입증해.” 진혁은 장터의 오래된 전등을 빌려 시험하려고 했다. 그러나 직원은 값을 치르지 않은 물건을 이동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찰 번호패를 들었다. 시작가는 동화 스무 닢. 누군가 은화 한 닢을 부르자 진혁이 은화 두 닢을 제시했다. “왜 다툽니까?” 카렌이 속삭였다. “저 사람은 렌즈를 빼서 장식품으로 팔려는 것 같아요.” 상대 입찰자는 은화 넷까지 값을 올렸다. 진혁은 은화 다섯 닢을 부른 뒤 손을 멈췄다. 낙찰가보다 시험 비용과 보관료가 더 크게 나오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손에 쥔 돈과 남은 경비를 계산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낙찰자는 즉시 거래세와 인도료를 확인해야 했다. 진혁은 출품표를 다시 읽고 은화 한 닢의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경매장은 낙찰을 취소할 수 없는 대신 물품의 상태를 고지한 범위에서 인수증을 발급했다. 그는 물건을 받기 전 유리 덮개가 두 개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하나는 금이 갔고 다른 하나는 흠집만 있었다. 낙찰 전과 상태가 다르면 인수장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근처의 중고상 한 명이 그를 붙잡았다. “렌즈가 오래되면 노란빛이 사라져요. 그때는 은화 한 닢도 못 건집니다.” “알고 있습니다. 특정 시험에 필요한 도구라서 샀어요.” “무슨 시험인데요?” “성공하면 나중에 이야기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실패하면 그냥 제가 은화 다섯 닢을 날린 거고요.”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진혁은 자기가 꼭 대박을 노리는 도박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물건의 가치는 되팔아 얻는 금액만으로 정할 수 없었다. 사람의 말이 왜곡됐다는 사실을 밝혀 줄 장치라면, 그 작은 부품의 역할은 돈보다 컸다. 망치가 세 번 울렸다. 은화 다섯 닢에 낙찰됐다. 라일이 박수를 쳤다. “대단합니다. 폐품을 비싸게 사는 재능이군요.” “감정 결과를 확인하고 놀리세요.” 장터의 수리공들은 낯선 감정사의 입찰을 구경하다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그중 나이 든 여성이 작은 공구함을 들고 다가왔다. 공방 주인 장재휘였다. 그녀는 렌즈 옆에 손톱을 대고 노란 유리를 살폈다. “이건 햇빛을 모으는 물건이 아니야. 마지막 전류가 어느 쪽으로 흘렀는지를 기억하는 자철판이 들어 있어. 옛 신호탑을 다룬 사람이나 쓰던 거지.” “수리가 됩니까?” “부러진 받침만 고치면 돼. 은화 셋. 대신 일은 내일 끝나.” 진혁은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 손가락으로 무릎을 쳤다. “은화 여덟 닢이면 시험이 가능하군요.” 장재휘는 웃었다. “그걸 어디에 쓰려는지 먼저 말해. 남의 기록을 훔쳐 보려는 거라면 수리비가 아무리 커도 안 해.” 그들은 공동 보전 중인 장치의 마지막 작동 방향을 확인하려는 목적을 설명했다. 재휘는 한참 듣더니 공방으로 안내했다. 공방은 남관역 뒤편의 작은 골목에 있었다. 쇠를 달구는 대장간과 달리, 그곳에는 작은 유리 돋보기와 구리선, 열에 약한 종이 같은 섬세한 물건이 가득했다. 창밖에는 오래된 간판이 흔들렸고, 난로 위에서는 주인이 감자 두 알을 구워 먹고 있었다. “내가 젊을 때 저 탑을 고쳤어.” 재휘가 렌즈 받침을 분리하며 말했다. “열두 해 전에도 잠깐 불려 갔지. 그런데 그날은 수리하려던 장비를 만질 수도 없었어.” “누가 막았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왕립 경매원 사람들. 사고가 났으니 보존해야 한다고 했지. 보존이 필요하다는 말 자체는 맞았어. 다만 이상했던 건 고장 난 전등을 먼저 떼 갔다는 거야.” “전등을요?” “불이 나간 원인을 보려면 전등을 남겨야 하잖아. 그들은 기록을 보존한다면서 제일 중요한 물건을 가져갔어.” 라일이 신호탑을 보며 중얼거렸다. “네 시 십칠 분.” 재휘의 손이 멈췄다. “그 시각을 어떻게 알아?” “시계가 멈춰 있었습니다.” “사고 기록은 네 시 이십 분이야. 하지만 전등이 꺼진 시각은 그보다 앞이었어. 그 사실을 말했더니 기록 담당자가 나를 현장 밖으로 내보냈지.” 진혁은 수첩을 펼쳤다. 두 개의 시각이 차이 나는 이유가 드디어 기술적 질문으로 바뀌었다. 인영만 따지던 사람들에게는 작은 기계 하나가 새 증인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재휘는 렌즈를 손에 올려놓았다. “이건 수리할 수 있어. 다만 오래된 자철판은 흔들리면 방향을 잃을 수도 있으니 내 작업실에서 고정할 거야. 공동 봉인 창고 물건을 가져오지 말고, 관리인 허가를 받으면 내가 그쪽으로 가겠어.” 재휘의 작업대에는 작은 인형 같은 금속 모형이 있었다. 은색 바퀴를 돌리면 네 개의 깃발이 차례로 올라가는 단순한 장치였다. 그녀는 그걸로 신호탑의 원리를 설명했다. 첫 깃발은 출발, 둘째는 통과, 셋째는 보류, 넷째는 반송을 뜻했다. 반송이 작동하면 맨 앞의 출발 깃발이 자동으로 내려가야 했지만, 열두 해 전 장치에서는 두 깃발이 동시에 올라간 채 멈춰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왜 실수했다고 말하는지 이제 알겠네요.” 진혁이 말했다. “원래 기계는 이런 모순을 막으라고 만드는 거야. 그런데 사람이 일부러 모순을 남길 수도 있지.” 카렌은 모형의 넷째 깃발을 가리켰다. “반송이 제대로 되었다면, 누가 무엇을 돌려받아야 하는지는 확인할 수 있습니까?” “기계는 주소를 알고 있지 않아. 주소가 없으면 다시 묻게 만들 뿐이지. 그게 설계의 핵심이었어.” 재휘는 렌즈 받침을 손질하면서 나사가 마모되는 이유와 오래된 자철판이 충격에 약한 까닭을 설명했다. 진혁은 원리를 이해하려고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보는 신비로운 문구가 어느 날 사라지더라도, 이런 기계의 작동 방식을 알면 적어도 거짓말에 휘둘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라일이 옆에서 모형 깃발을 마음대로 움직이다 재휘에게 손등을 맞았다. “그건 교육용이지 장난감이 아니야!” “장난감처럼 생겼는데요.” “그러니까 도둑이란 사람은.” 재휘는 투덜거렸지만 곧 라일을 불러 모형의 고장 난 축을 직접 조립하게 했다. 라일은 생각보다 능숙하게 작은 스프링을 끼웠다. 손이 기억하는 기술은 그의 잊힌 이름보다 오래 남아 있는 듯했다. 그날 저녁 진혁 일행은 공방의 좁은 식탁에서 구운 감자와 소금에 절인 생선을 나눠 먹었다. 라일은 배가 고프다며 감자를 하나 더 집었고 카렌은 그가 화상 입지 않도록 껍질을 벗기는 법을 알려 줬다. 세리아는 조용히 창밖의 황혼을 바라봤다. 재휘가 유나의 이름을 들었을 때 잠깐 보인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유나를 아세요?” 세리아가 물었다. 재휘는 난로 불을 낮추었다. “이름은 들어 봤지. 그 여자가 그날 역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이 뭔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시는 게 더 있나요?” “다른 건 몰라도, 그 여자가 역 안의 어린아이를 안아 들고 나오는 건 봤어. 아이가 너무 울어서 장갑을 벗겨 줬던 기억이 나.” 라일이 무심코 자신의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잠깐 스치는 기억 때문에 숨이 가빠졌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조용히 물었다. “그 아이가 그때 뭐라고 했습니까?” 재휘가 답했다. “자기 이름을 달라고 하지 않았어. ‘봉투를 돌려줘야 한다’고만 했지.” 진혁은 잔광 확인기의 노란 렌즈를 바라봤다. 동화 몇 닢짜리 폐품을 찾으러 온 하루가, 열두 해 전 누군가의 간절한 부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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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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