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역의 아침 교대는 종소리가 아니라 작은 황동 패가 부딪치는 소리로 시작됐다.
야간 근무를 마친 직원들이 목에 걸고 있던 패를 내려놓으면, 다음 근무조가 같은 번호의 패를 받아 목에 걸었다. 패에는 이름이 아니라 담당 구역과 출입 가능한 창고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기차가 지연되면 다른 조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역에서는 얼굴보다 업무의 인수인계를 더 믿었다. 그렇다고 누구든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업자는 교대 장부의 시각과 동료의 서명이 맞아야 잠긴 구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진혁은 역 사무실의 장부를 보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왕도보다 실무 규칙이 촘촘하군요.”
“그래야 사람이 안 다쳐요.”
어제 수레를 끌던 여자가 작은 잉크병을 닫았다. 그녀의 이름은 이소담이었다. 전보와 화물 통보를 맡는 서기이면서 인력이 부족할 때는 직접 수레도 밀었다. 밤새 일을 한 듯 눈 아래가 짙었지만, 책상 위의 부표들은 칼날처럼 가지런했다.
“열두 해 전 원부를 보고 싶다면 증거 보전 명령이 필요해요. 그냥 옛날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장부를 빼 줄 순 없어요.”
하서린이 왕도에서 발급한 조사 협조 문서를 남관역에 전달해 두었지만, 그 효력은 즉각적인 강제 수색권이 아니라 기록 열람을 요청할 권한이었다. 카렌은 서류를 펴고 명시된 범위부터 설명했다. 진혁의 능력으로 장부 안쪽의 문구를 읽을 수 있다 해도, 절차 없이 얻은 정보는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소담은 서류를 오래 들여다봤다. “제9반송구와 남관역 화물 원부. 이 두 항목이면 구서고의 목차 확인까지는 가능해요. 다만 상자 원본을 옮길 땐 관리인 입회가 있어야 해요.”
“관리인은 누구죠?”
“문형규 역장님요. 지금 얼어붙은 분기기 아래에 계세요.”
사무실 문을 나서자 바깥에서는 쇠망치 소리가 들렸다. 눈을 쓸어낸 선로 가장자리에 두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장정들이 긴 쇠막대를 지렛대로 쓰며 선로를 움직였고, 옆에서는 흰 수염의 남자가 얼음이 낀 연결부에 따뜻한 모래를 부었다. 문형규는 남관역에서 스물일곱 해를 근무한 역장이었다. 그는 처음 보는 일행에게 반갑다는 인사 대신 선로에서 세 걸음 뒤로 물러나라고 말했다.
“사람 살리는 선로가 사람을 잡기도 합니다. 조사는 선로 밖에서 하세요.”
진혁은 그가 장갑을 벗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왕도 문서를 내밀었다.
역장은 법적 문구보다 마지막 장의 서명을 먼저 확인했다. “하서린 조사관. 그분이 직접 올 줄 알았는데.”
“왕도에 남아 공동 보전 절차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카렌이 답했다.
“그래서 여긴 네 사람이 왔군. 기록을 확인하는 건 좋습니다. 다만 구서고는 물이 찼고 남쪽 선로도 상태가 좋지 않아요. 내 허락 없이 들어가면 조사 대상이 아니라 구조 대상이 됩니다.”
그 말은 협박이 아니라 하루의 안전 수칙처럼 들렸다. 역장은 흙 묻은 손으로 도면을 펼쳤다. 남관역 지하에는 두 개의 물길과 세 개의 오래된 수송 터널이 있었다. 지금 사용하는 남쪽 물길은 펌프로 관리되고 있었지만, 한서겸이 마지막으로 배달 기록을 남긴 시기의 옛 반송 터널은 공식적으로 폐쇄되어 있었다. 폐쇄한 이유는 지반이 약해진 탓이었다.
“기록이 필요하면 위쪽에서부터 확인합시다. 아래로 내려갈 이유를 만들지 마세요.”
그들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어제의 은실 장갑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창틀에 부딪치는 눈가루를 털지도 않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백우운송 계약관리부의 도건익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명함을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백우운송은 왕립 경매원에서 지방 창고로 보내는 대형 화물을 위탁받는 회사였다. 남관역의 일부 보관소도 그 회사가 돈을 내고 사용하고 있었다.
“왕도 조사관의 요청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귀하들이 확인하려는 상자는 당사 보험 지급과 관련이 있습니다. 무단 열람은 곤란합니다.”
“우리는 계약서에 적힌 범위만 확인할 겁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도건익은 그녀를 알아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루멘 경매장의 사장님이군요. 마레온의 경매장에서 왕도까지 오셔서 남의 장부를 뒤지시다니 대단한 정성이십니다.”
“계약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물건인지부터 확인하러 왔죠.”
“계약은 서명으로 성립합니다.”
카렌이 곧바로 받았다. “누가 무엇에 동의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면 서명 자체가 쟁점이 됩니다.”
도건익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는 회사 직원들이 회수한 상자 여섯 개를 이미 남쪽 보관소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표면상 이유는 습기 방지였다. 문제는 옮긴 날짜였다. 북쪽 구서고가 침수되기 이틀 전이었다.
“왜 사전에 물이 찰 걸 알았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겨울에는 흔한 일이죠.”
“그렇다면 역의 다른 상자들도 옮기셨어야겠네요.”
도건익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소담은 아무 말 없이 교대 장부를 열었다. 그날 이동한 것은 여섯 상자뿐이었다. 도건익은 자료를 더 요구하면 정식 이의 신청을 하겠다고 말한 뒤 사무실을 나갔다.
그가 떠나자 소담이 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은 사고가 나면 늘 보험금부터 따져요. 그렇다고 악인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워요. 그의 회사 돈으로 선로 고친 적도 있으니까.”
진혁은 창밖을 바라봤다. 물류를 운영하는 사람과 피해를 조사하는 사람이 같은 기록을 서로 다른 이유로 원한다는 사실이 이해됐다. 돈이 필요한 일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 돈이 남의 권리를 사들일 근거는 될 수 없었다.
구서고 앞에서 관리인 입회를 기다리는 동안 라일은 오래된 난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세리아가 그를 살폈다.
“기억나는 게 있어?”
“이쪽 복도를 달린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른들 발소리를 피해 숨었던 것인지, 누군가를 따라가던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카렌이 말했다. “기억이 돌아오는 속도에 맞춰 갑시다. 기억이 증거가 되기 전에 당신부터 다치면 안 되니까.”
그 말에 라일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혼자라면 벌써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갔을 사람이었다. 지금은 먼저 문서의 번호와 출입 허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소담은 오래된 분류표를 책상 위에 정렬하며 또 다른 설명을 덧붙였다. 열두 해 전 남관역에서는 일반 화물과 인적 계약의 증빙을 같은 번호 체계로 관리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한 사람이 화물과 계약서를 동시에 옮기는 일이 흔했다. 우편 조합에서 바코드 대신 쓴 인장도 등급에 따라 모양만 조금 달랐다. 그 때문에 기술자가 보낸 부품과 감정관이 보낸 원본 문서가 장부에서 한동안 같은 번호 아래 묶여 있을 수 있었다.
“악의적인 조작 이전부터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었군요.” 카렌이 말했다.
“네. 여기 사람들은 그걸 고치려고 몇 년째 요청했어요. 새 규격으로 바꾸려면 보관 상자를 다 새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진혁이 계산했다. 상자 한 개가 은화 두 닢만 들어도 수천 개라면 금화가 수백 닢이 필요했다. 누군가 사소한 번호 표식에 집착한 이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실수를 숨기기도 쉽고, 악의적인 기록을 끼워 넣기도 쉬운 구조였다. 그는 개량 비용이 커서 생긴 허점을 사람들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역장은 늦은 점심을 사무실에 가져와 소담과 나눠 먹었다. 검은 빵과 콩 수프 두 그릇이었다. 진혁이 여관에서 먹던 호화로운 식사를 떠올리자 얼굴이 붉어졌다. 역장은 그를 보고 말했다.
“우리는 기록이 중요한 거 압니다. 그래서 오늘 점검을 미루고 온 겁니다. 대신 조사하다 문제가 나오면 감추지 마세요. 고치는 비용이 두렵다고 놔두면 언젠가 사람이 다칩니다.”
오후가 되자 역장이 직접 구서고 문을 열었다. 직원 두 명이 바닥의 물기를 닦았고, 흙탕물 위로 널빤지를 놓아 걸을 길을 만들었다. 진혁은 마른 장갑을 끼고 서고의 선반을 한 칸씩 살폈다. 오래된 서류는 천장의 환기구 근처에 있었고, 최근에 옮긴 서류 상자는 바닥 위에 새 자국을 남겨 놓았다.
목차 장부는 생각보다 온전했다. 제9반송구 항목은 반송 완료가 아니라 ‘수취인 미확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몇 장 뒤 같은 번호가 ‘최종 인수’로 바뀌어 있었다. 다른 서기 손으로 적힌 글씨였다. 날짜 사이에는 세 달의 공백이 있었다.
“누가 그 사이에 수취인을 정했네요.” 소담이 중얼거렸다.
진혁은 잉크가 스며든 종이의 뒷면을 살폈다. 두 번째 글씨가 지나치게 일정했다. 사람 손의 획이라기보다 기계로 눌러 찍은 듯했다. 그가 장부에 손을 대자 문장이 떴다.
[기록: 제9반송구 화물 원부.] [기본 상태: 반송 대기.] [후대 수정: 최종 인수 확인 인영 삽입.] [원래 수취인: 본 장부에 기재되지 않음.]
진혁은 능력의 문구를 그대로 증거라고 내놓지 않았다. 대신 소담에게 같은 시기 장부의 인영과 대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소담은 확대경과 투명 자를 가져와 인장 가장자리의 작은 흠집을 비교했다. 흠집의 위치가 달랐다. 같은 도장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가짜 인영일 가능성이 있네요.”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까?” 카렌이 물었다.
“역의 문서가 이렇게 고쳐졌다면, 전보 원본이 남았을 거예요. 옛날엔 중요한 인수에는 전보 확인을 꼭 붙였으니까.”
소담은 전보 문서의 색인을 뒤졌다. 물건 번호는 나왔지만 상대방의 주소가 비어 있었다. 수취 확인이 있었다면 빠질 수 없는 항목이었다.
소담은 인영의 가장자리뿐 아니라 잉크의 농도도 비교했다. 옛 문서에는 빗물이 스며들면서 갈라진 작은 점들이 있었는데, 뒤늦게 찍힌 인영에는 그런 점이 없었다. 같은 보존 환경을 거쳤다고 보기 어려웠다. 진혁은 그 장면을 유심히 보았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흔적은 그의 능력과 달리 누구든 확대경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그런 흔적이 있어야 장부를 정정할 이유가 생겼다.
“저도 사진을 찍어도 됩니까?”
“번호가 보이게 찍으세요. 원본 위치가 없으면 사진 한 장만으로는 의미가 없어요.”
카렌은 기록을 세 장으로 나누어 보존했다. 한 장은 역에, 한 장은 왕도 조사관 하서린에게, 마지막 한 장은 봉인된 사본으로 남기는 방식이었다. 세리아가 한 부를 루멘에 가져가겠다고 하자 카렌은 웃으며 거절했다. 사장이라고 해도 공식 보전 기록을 사적으로 보관할 수는 없었다. 세리아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경매장에서는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인데.”
“여기선 저희 모두 손님입니다.”
그 순간 역 바깥에서 호각이 길게 울렸다. 소담이 얼굴을 들었다.
“남쪽 선로에서 열차가 멈췄어요. 화물 실을 시간이 아닌데.”
역장이 무전관을 들었다. 한동안 잡음만 나더니 기관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시 편성 요청서가 들어왔습니다. 백우운송 특수화물 여섯 상자, 남관역 출발. 목적지는 공란입니다.”
진혁은 장부를 덮었다.
옮겨 놓은 기록 여섯 상자가 지금 역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받는 사람의 이름이 없는 열차에 실려서.
제12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