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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20화
PAYLUA ORIGINAL · 제120화

120화. 돌아가야 할 권리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210자

오프라인 책장
청문회 다음 날, 왕립 경매원의 창문에는 어제와 다른 공고가 붙었다. ‘영번 감정대 임시 가동 중지. 관련 기록 공동 보전. 재가동 일정 미정.’ 사람들은 공고를 읽고 저마다 다른 얼굴을 했다. 당장 일거리가 줄어든 기술자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계약에 묶일 뻔한 의뢰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경매가 취소된 게 아니라 특정 장치의 운영이 멈춘 것이었지만, 왕도에는 그 차이를 설명하지 않는 소문이 더 빠르게 퍼졌다. 서진혁은 아침부터 장부를 정리했다. 경매원에서 산 접속구 한 개, 배송조합에서 낙찰받은 고장 난 분류기 한 대, 숙박비와 마차비, 기록 복사 비용이 줄줄이 이어졌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지급한 식비와 증인들의 교통비까지 적자 그는 이마를 문질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은 역시 왕도입니다.” 카렌이 맞은편에서 장갑을 손질했다. “이제 돈을 아끼자고 하시겠군요.” “당연하죠. 이번에는 수익이 없었습니다.”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했잖아요.” “그건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드디어 당신도 그 말을 하네요.” 진혁은 웃었다. 카렌은 창밖의 눈을 바라봤다. 아버지 레온의 이름으로 남아 있던 오래된 기록을 찾아온 뒤부터 그녀는 자주 마음이 복잡해졌다. 레온이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이름을 따라가면 진실도 곧장 나타날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이름만큼 남아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리아는 아침 일찍 왕립 경매원을 다녀왔다. 영번 감정대 관련 자료의 봉인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서자 낡은 녹색 실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유나가 쓰던 봉인끈과 같은 재질이야.” “확인하셨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기록사에게 물었어. 같은 계열의 끈이지만 정확한 생산 연도는 더 조사해야 한대.” 그녀는 이번에도 단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나의 과거가 단순한 기억에서 실제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더라도, 그 사람이 지키려던 일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일행은 함께 왕립 기록청으로 향했다. 지하 봉인실에서 옮겨 온 제9입회 침묵함은 별도의 보관함 안에 놓여 있었다. 아직 열 수 없었다. 봉인된 원래 내용물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고, 누구에게 소유권이 있는지도 조사 중이었다. 하지만 그 물건을 정리품 경매에 내놓으려던 계획은 취소됐다. 기록사 유담은 새로운 목록을 내밀었다. “지난 열두 해 동안 제9입회 관련 물품이 옮겨진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처음에는 감정청 창고, 그다음에는 배송조합, 마지막에는 왕립 경매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움직인 기록이 있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로요?” “남관역입니다. 열두 해 전 늦겨울, 반송된 기록 하나가 그곳의 화물 문서함에 들어갔습니다.” 라일이 즉시 황동 고리를 꺼냈다. “제작자 명패에서도 남관역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기록이 오늘까지 남아 있을지는 모릅니다. 오래된 화물 문서함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전됐으니까요.” 카렌은 지도를 펼쳤다. 남관역은 왕도 남동쪽의 화물 철도와 운하가 만나는 곳이었다. 겨울에는 강 상류가 얼어 이동이 느려졌고, 기차는 하루 두 번만 왕도로 들어왔다. 남관역에서 갈라지는 노선은 작은 마을과 광산 지역으로 뻗어 있었다. 그곳에 가려면 두꺼운 방한복과 정식 조사 의뢰서가 필요했다. “여기까지 찾았는데 다시 눈 속으로 가야 하네요.” 카렌이 말했다. “관광은 아니지만 풍경은 볼 수 있겠군요.” 진혁이 답했다. 라일이 웃었다. “풍경에 돈을 받지 않으면 좋겠네요.” 유담은 그들에게 작은 조언을 했다. “남관역 화물 문서함은 오래전 배송조합과 왕립감정청이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누구도 단독으로 기록을 열 수 없습니다. 한쪽이 사라졌다면 다른 쪽에 남은 장부를 찾아야 합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는 한 사람이 비밀을 모두 알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렸다. 각자가 조금씩 다른 장소에 남긴 기록을 합쳐야 할 뿐이었다. 떠나기 전 진혁은 하서린에게 합법적인 감정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동안은 조사 협조를 이유로 별도 임금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멘에서 비용을 전부 지급하면 사람들은 이번 조사가 세리아의 사적 이해관계라고 의심할 수도 있었다. 하서린은 정식 기술 참고인으로 인정된 일수와 검사 항목에 따라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금액은 낙찰품의 시장가와 상관이 없었고, 증거로 제출한 물건의 감정 수수료는 이해충돌 때문에 별도 심사를 거쳐야 했다. 진혁은 여러 번 계산한 뒤 약간 씁쓸한 얼굴로 웃었다. “왕도까지 왔는데 돈을 벌기는커녕 손해만 봤군요.” “당신이 낙찰받은 부품의 소유권도 유지되고 있잖아요.” 카렌이 말했다. “보존 대상으로 묶여 있으니 팔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팔릴 수도 있겠죠.” “그때까지 이자를 계산해 두겠습니다.” 세리아는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진혁이 돈을 밝히는 버릇은 여전했지만 예전처럼 눈앞의 이익 때문에 위험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카렌도 그가 농담 뒤에 숨기는 피로를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몰래 진혁의 가방에 따뜻한 장갑 한 켤레를 넣었다. 앞서 상인에게서 산 장갑은 기록사 유담에게 선물로 주었기 때문에 새 장갑이 필요했다. 라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세리아에게 속삭였다. “두 사람은 서로 더 오래 다투겠군요.” “그런 것치고는 늘 함께 걷네.” “그렇죠. 저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영수증을 담당하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다음 날 떠날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리를 정리했다. 진혁은 낙찰증을, 카렌은 유품 서류를, 세리아는 오래된 사진을, 라일은 황동 고리를 챙겼다. 같은 사건을 바라본 사람들이었지만 가방 속에 가장 먼저 넣는 것은 서로 달랐다. 그들은 남관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여관에서는 출발 전에 짐을 줄여야 했다. 세리아는 서류가 담긴 가방 두 개를 가져왔고, 카렌은 검과 외투, 비상식량을 챙겼다. 라일은 언제나처럼 작은 짐 하나만 들고 있었다. 진혁은 자신의 낙찰증을 정리하며 지갑을 확인했다. “이번엔 누가 여비를 내죠?” “루멘에서 지급할 거야.” 세리아가 말했다. “이 말씀을 듣기 위해 열두 해의 기록을 찾았습니다.” “대신 보고서는 자네가 작성해.” 진혁은 표정이 굳었다. “인건비를 더 받아야겠군요.” 하서린은 왕도에 남았다. 조사청이 요구한 기술 검증과 가짜 동의 기록의 승인 경로를 추적해야 했기 때문이다. 출발 전 그녀는 진혁에게 조사 의뢰서 한 장을 건넸다. “남관역에서는 기록을 확인하는 데까지만 도와주십시오. 누군가를 체포하거나 강제로 압수하는 일은 제 명령서로도 할 수 없습니다.” “저를 무슨 사람으로 보십니까?” “가끔 급하게 뛰어드는 감정사로 봅니다.” 라일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네요.” 진혁은 의뢰서를 품에 넣었다. 그 종이는 무엇을 해도 된다는 허가증이 아니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적어 둔 약속이었다. 그는 그런 경계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출발 전날 밤, 라일은 혼자 우체국 옛 마당을 찾아갔다. 직원들이 정리하는 경매품을 바라보다가 그는 낙찰받은 분류기의 빈 아홉 번째 슬롯 앞에 섰다. 손바닥에 쥔 황동 고리가 조금 따뜻해졌다. 오래전 누군가 자신에게 그 자리를 비워 두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했다. 반송되어야 할 물건을 억지로 건네지 않는 것. 그리고 전달하지 못한 이유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 그가 돌아오자 여관 창문에는 노란 불이 켜져 있었다. 진혁은 장부를 정리하다가 잠들었고, 카렌은 그의 손에서 펜을 빼내 탁자에 놓았다. 세리아는 낡은 사진을 다시 보며 유나의 얼굴을 손끝으로 짚고 있었다. “왜 늦었어?” 카렌이 물었다. “갈 데가 있어서요.” “찾은 건?” “아직 없습니다. 다만 무엇을 찾을지는 좀 알겠어요.”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다. 왕도를 떠나는 마지막 밤, 진혁은 방의 불을 끄기 전에 하서린에게 짧은 감사 편지를 썼다. 이곳에서 배운 것은 왕도의 호화로운 경매 절차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확인을 받는 방법이었다. 그는 편지 끝에 ‘가능하면 출장비는 조속히 지급해 주십시오’라는 문장을 덧붙였다가 지웠다. 잠시 고민한 뒤 따로 영수증을 첨부했다. 카렌은 그 장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감사는 감사고 돈은 돈이군요.” “당연하죠. 감사까지 청구하면 너무 비싸잖아요.” 그들은 오래간만에 조용히 웃었다. 장거리 열차에 오르기 전의 짧은 밤은 누구에게나 필요했다. 다음 날 새벽, 왕도를 떠나는 열차가 역에 들어왔다. 하얀 증기가 지붕에 부딪쳐 떨어졌고, 짐수레가 돌바닥 위를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플랫폼 가장자리에는 눈이 쌓였지만 선로만큼은 검게 드러나 있었다. 사람들이 한 명씩 객차에 올랐다. 진혁은 표를 확인하다가 작은 봉투가 좌석 아래 놓인 것을 발견했다. 봉투에는 정확히 네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진혁, 세리아, 카렌, 라일. 발신인은 없었고 우편 소인은 남관역이었다. 안에는 손바닥만 한 금속판 한 장과 짧은 문장이 들어 있었다. ‘제9반송 기록의 원본을 찾고 싶다면, 무엇을 거절했는지가 아니라 누구에게 되돌아가야 하는지를 물어라.’ 금속판의 뒷면에는 봉인 장치를 표시하는 두 가닥 선 아래 작은 점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진혁이 그것을 보자 손바닥에 새로운 글씨가 떠올랐다. [대상: 최초 거절 기록의 반송 표식.] [연결 대상: 제998호 원부의 원본 보관처.] [최종 수취인: 확인 불가.] [추가 정보: 반송 기한이 끝나지 않았음.] 그는 창밖으로 눈 덮인 왕도를 바라봤다. 화려한 경매는 잠시 멈췄지만 누군가 오래전에 시작한 거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물건의 주인을 찾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진혁이 말했다. 세리아가 그를 바라봤다. “그럼 무엇을 찾는데?” “돌아가야 할 권리를 찾는 거죠.” 기적이 울리고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하서린은 멀리서 그들의 객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제의 승리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왕도의 영번 감정대는 더 이상 누군가의 침묵을 동의로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남관역에는, 그 침묵을 돌려받아야 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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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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